# 25
헌터중앙기구 인근의 조용한 카페.
시현과 임장호가 만남을 가졌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그래···. 오해 말고 들어줬으면 하네.”
무게를 잡는 임장호.
쪼르륵.
커피를 마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우리 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제 겨우 하루 지냈지만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하다···. 그래, 훌륭하기야 하지. 순수 국내에서 따졌을 때 최고의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럼 이렇게 물어보겠네.”
슥.
임장호가 몸을 앞으로 당긴다.
“자네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어떠한가?”
“제 기준이라면.”
“D급 신입헌터 박시현이 아니라, 국내최정상 박시현으로서 말이야.”
시현을 국내최정상급으로 여기는 임장호.
적어도 오늘 보여준 활약으로서는 확실히 그러했다.
“제 실력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 뭐. 일단은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세계 최정상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재능이 있는 헌터들은 죄다 외국으로 빠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부다 말해줄 순 없지만··· S팀원 중 S등급은 단 두 명밖에 없어.”
S급.
SSS급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시현과 고작 두 걸음 차이였다.
하지만 S급과 SS급 사이에 엄청난 벽이 있듯,
SS급과 SSS급에도 허물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그게 누군지는 말씀해주실 의향이 없으시군요.”
“그건 뭐···. 개인적인 사정이라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아니고. 자, 그래서 요지가 무엇이냐면···”
드르륵-.
이제는 의자를 당기기까지 하는 임장호.
“팀을 하나 개설할 생각이야. 자네만을 위한.”
“아까 말씀하신 ‘불화’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허허. 오해하는 거 같은데. 물론 자네 때문에 팀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건 사실이야. 그런데 그게 뭐?”
임장호가 양손을 내민다.
어쩌라는 식의 뉘앙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단, 내가 걱정하는 건 자네야. 만약 자네가 S팀에 구속받지 않고, 최고의 서포팅을 받으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저야 애당초 솔로잉이 익숙하긴 합니다만. 기존의 틀을 깨고자하시는 것이군요.”
“그렇지.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팀플레이도 하게 될 거야.”
그것이야말로 임장호가 바라는 것이었다.
벌컥벌컥!
아직도 취기가 살짝 남아있는 임장호가 커피를 들이켠 뒤 말을 덧붙였다.
“팀명은 SSS팀. 어때?”
Team Special Secret Scenic.
이른바, 특수비밀현장 팀.
“괜찮네요. 저랑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딱!
임장호가 핑거스냅을 쳤다.
당사자의 승낙을 받았으니 이제 상부의 허가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다음주 중으로 자리 한 번 같이하지.”
“누구랑 말입니까?”
“본부장님.”
“아, 출장 가셨다는···?”
특수본부 본부장.
시현이 직접 그를 독대한 적은 없었다.
‘본부장’이라는 칭호만 들었었지, 이름을 들었던 적은 없었다.
이제 겨우 입사 1일차가 아니던가?
“그래.”
끄덕.
임장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인다.
“아직 건의한 건 아니지만, 정식으로 건의하면 분명 본부장님께서 자네를 따로 뵙자고 할 거야. 워낙 깐깐한 양반이라.”
“많이 깐깐하신가보군요.”
“하하. 자네 앞이라서 말하는 건데, 함경만 본부장님. 오죽하면 까탈레나라고 부를까.”
“······!”
소스라치게 놀란 시현.
‘본부장’이란 타이틀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본부장님의 성함,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
.
함경만.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또 얼마나 있을까?
찾으면 물론 많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헌터와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 중 함경만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그 날.
던전에서 시현을 구출해주었던 헌터들 중 한 명인 함경만.
본부장과 그는 동일인물이 아닐까?
집에 돌아온 시현은 옷을 주섬주섬 벗으며 상념에 빠졌다.
그땐 일개 헌터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엄청난 거물이었던 것이다.
얼추 맞아 떨어진다.
쿵쿵.
시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생명의 은인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70%는 확신해.’
그에게 꼭 물어봐야할 것이 있었다.
그런 시현의 복잡한 생각처럼, 그날의 밤도 깊어져갔다.
늦은 밤.
쏴아아아-.
시현은 샤워를 하면서 노곤한 하루의 피곤을 쫙 씻어냈다.
바깥세상에 벌써 익숙해지긴 했나보다.
자기 전에 샤워를 해야만 하루가 끝났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시현은 샤워를 하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헌터중앙기구에 들어가길 잘했어.’
현재 당초 계획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헌터가 되었고, 정보력이 뛰어난 팀에 들어갔다.
시크릿 에이전트 팀의 덕을 본 것은 확실했다.
가령 이런 것.
띠링-.
방금 도착한 문자.
[오늘 하루 수고 많았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그래요, 말콤. 잘 자고 내일 봐요. 약속한 건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된다고 했죠?]
[YES!]
말콤과 약속을 잡았다.
회사기밀을 말해주진 않겠지만.
회사와 관련 없는 정보는 말콤이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I팀의 정보력이라면 믿을 만 했다.
‘일단 열쇠에 대해 물어봐야 돼.’
그 외에도 이루고 싶은 것들이 천지였다.
이를 테면 아버지의 회사를 찾아오는 것.
그것은 부가적인 희망이었지만 언젠가는 이뤄내고야 말 것이다.
때마침 날아온 친구 이용수의 문자 한 통.
[부탁한 거 찾아봤다. 010-XXXX-XXXX로 전화해.]
시현은 곧바로 용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금 말해줄 수 있나?”
-보안피시로 보내줄게.
“그래, 고맙다.”
금세 날아온 메일 한 통.
내용은 현자건설 인수에 관한 아진그룹의 계획서였다.
요악하자면 이러했다.
<경과>
1. 아진그룹 최 회장은 故박종기가 던전에서 죽기 전부터 현자건설을 인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 박종기가 죽었을 당시, 같은 던전에 있었던 헌터들 중 아진H&M의 초대初代 사장 함경만이 포함되어 있었다.
3. 시현이 실종된 이후, 현자건설에 대한 인수합병이 톱니바퀴 맞춰진 듯 이뤄졌다.
4. 그 과정에서 한성건설이 아진을 도우면서 아진그룹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었다.
5. 김은혜는 아진H&M에 입사하여 고속으로 승진하였다. 현 남자친구 최민호(아진몬스터연구개발소 소속).
<결과>
1. 박종기의 죽음은 단순 사고사가 아닐 확률이 높다.
2. 만약 박종기의 죽음이 계획된 것이라면 두 가지 조건이 참이여야 한다.
(1)아진H&M이 던전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
(2)아진그룹의 명확한 범죄동기(단순 인수합병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음)
요약본을 모두 읽은 시현.
꽈득.
주먹을 말아 쥐었다.
부르르르르-.
테이블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확증 없이 섣불리 주먹을 움직일 수는 없는 법.
시현은 아공간을 열어 '6성 정예 에이션트 쉘롭‘을 꺼내 묶었다.
-취이이이이익!
발광하는 쉘롭에게.
파앙!
시현은 주먹을 내질러 녀석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 물었다.
“열쇠가 무엇이지?”
아진이 찾고자하는 것은 열쇠가 분명했다.
아버지를 죽인 이유도 필경 그것일 터.
뭔지 모를 ‘열쇠’를 빼앗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의문이었다.
어떻게 시현의 아버지, 박종기가 그토록 귀중한 물건을 가지고 있던 것일까?
지금 그것을 쉘롭한테 물어보려는 시현이었다.
에이션트(Ancient).
고대의 몬스터이니만큼 알고 있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상대로, 에이션트 쉘롭은 반응을 보였다.
- ······!
마치 감정을 숨기려는 듯한 표정과 자세.
그럼에도 부르르 떨고 있는 뒷다리는 숨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시현이 주방에서 식칼 하나를 꺼내왔다.
그러고는.
푹!
-고오오오오오오!
비록 스테인리스 칼이었지만.
근력과 컨트롤로 쉘롭의 다리 정도는 충분히 관통할 수 있었다.
“네 놈, 열쇠에 대해 알고 있구나.”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
푸욱!
-그오오오오오오!
“평생 죽지도 못하고 생체실험이나 당하면서 살고 싶나보군.”
-크, 케헤엑···. 구슬이 어디 있는지 말해주면 나도 말해주지.
난데없이 딜을 걸어오는 에이션트 쉘롭.
“구슬? 열쇠 말고도 귀중한 물품이 있나보군. 네 놈들의 물건인가?”
-그것뿐이겠는가! 권능의 열쇠 또한 우리의 것이니라!
부르르.
묶어놓은 쉘롭이 요동친다.
“권능의 열쇠라···. 좋은 정보 고맙다.”
-취히!
엿이나 먹으라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는 쉘롭.
“더 이상 물어봐야 의미 없겠군. 너는 평생 실험실에 가서 살아라.”
다음날.
시현은 헌터중앙기구에 에이션트 쉘롭과 옹골리엔트 사체를 팔아넘겼다.
정산금은 18억 4200만원.
겨우 수백만 원인 메카오거와는 차원이 다른 값어치였다.
거기에 던전 수당으로 기본급 4천만 원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5성 정예 리자드맨을 잡은 포상으로 4억까지.
국가와 회사와 돈을 나눈 금액이었다.
즉, 하루 만에 23억을 번 시현.
이렇게 1년 내내 일한다면 약 8000억을 벌 수 있으리라.
그러나 오늘 하루는 어제와 달리 조용했다.
딸칵.
시현은 S팀 본부 개인공간에서 컴퓨터를 두드렸다.
찾고 있는 것은 C타입 포켓자극캡슐.
집으로 배송시키고자 검색을 하는 중이었다.
판매가는 25억.
시현은 고개를 절래 저었다.
아무리 돈을 쉽게 벌어도 허투루 쓸 수는 없는 법.
정상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져봤던 시현이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돈이 있어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공립헌터단련장에 가서 이용해야하나.’
정부차원에서 지원하는 공립헌터단련장.
C타입 캡슐의 경우 이용금액이 1번에 1000만원뿐이 하지 않았다.
즉, 10단계를 실패 없이 클리어 할 시 고작 1억 밖에 들지 않는 것.
그게 확실히 이득이었다.
정부 측에서는 더더욱 강한 헌터를 양성하고자 충전비용만 받고 빌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약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한 번 이용하는데 최소 한 달은 걸릴 터.
그렇게 따졌을 때, 수습헌터훈련소의 복지는 대단히 뛰어난 것이었다.
아니면 용수에게 부탁해야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에.
터억-.
“하하. 뭘 놀라고 그러십니까.”
“안 놀랐습니다.”
정말 하나도 놀라지 않은 시현은 류건을 바라보았다.
“음···. 그렇군요.”
류건은 시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캡슐 보십니까?”
“예. 생각보다 꽤 비싸네요.”
“연봉 10억 받는 분이 이게 비싸다니요. 게다가 다음 연봉협상 땐 더 많이 받으실 분이.”
“매니저님이 살 거 아니라고 막말하시는 군요.”
시현이 농담조로 말하자 류건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그런데 그건 왜 보시는 겁니까?”
“포켓 통을 늘리려는데, 하나 장만할까 해서요.”
“아니, 그걸 왜 장만합니까? 사내에 다 구축돼있는 것을.”
“······사실입니까?”
지이잉-
임장호를 따라 들어간 곳은 시크릿 에이젼트 전용 단련실이었다.
그 안에는 C타입 캡슐뿐 아니라,
“없는 게 없군요.”
복지천국 헌터중앙기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