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23화 (23/100)

# 23

던전에 들어온 시현이 라이트 장치에 의존하며 나아가길 10분 째.

치직.

-There! 거기! 멈춰요!

저벅.

말콤의 무전에 따라 시현이 발걸음을 멈췄다.

-거기서 10미터 전방에 거미줄 있어요. 주의요망!

시현이 전방을 살폈다.

바위에 묻어있는 액체가 은은하게 보였다.

거미줄 트랩.

시현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미지의 던전에서도 많이 당해봤기 때문.

더군다나 6성 던전의 트랩은 생각보다 훨씬 허술했다.

신경 써서 보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

하지만 말콤의 무전이 있다면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게 바로 I팀의 장점.

헌터들이 던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말콤 씨.”

-어어···. What? 거기, 혹시. 임 팀장 씨 아니에요?

“아, 밝히지 않아 미안합니다. 저는 S팀 신입 박시현이라고 합니다.”

-······와우. 보이스가 거의 샘샘이군요. 뭐죠? 왜 미스터 임의 헤드기어를 가지고 있는 거죠?

“일반던전에 헌팅하러 간다고 했더니 팀장님께서 빌려주신 겁니다.

-오호. 용돈 벌이하러 가신 거군요? 그럼 저랑 수익도 나누어야겠어요?

······.

잠깐의 정적.

“당연한 거라고 생각되네요.”

-큭큭. 양심 있는 man이 들어왔군요. I'm okay. 돈은 됐어요. 삼겹살이나 한 번 사시죠!

삼겹살을 좋아하는 말콤은 호쾌하게 웃으며 시현의 길잡이가 돼주었다.

똑- 또옥-.

천장에 걸린 거미줄에서 액체방울이 떨어진다.

던전의 상태가 변화했다는 뜻.

이런 것쯤은 말콤이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파앗!

순간, 폭발적인 스피드로 돌진한 시현이었다.

-헤, 헤이! 거기 앞에···!

예고 없는 시현의 움직임에 말콤이 놀랐지만.

푸욱!

-케에에에엑!

시현은 바위 뒤에 매복해있던 거미류 몬스터를 선공으로 제압했다.

6성 노멀 몬스터 애시드 스파이더(Acid spider).

그 이름에 걸맞게,

취이이이이이!

바위마저 녹여버리는 강한 산성을 엉덩이에 품고 있었다.

-케륵, 케에에엑!

몸이 반으로 갈라진 스파이더는 발버둥 치다가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조, 조심······.

“그래야겠군요.”

만만치 않은 던전이다.

특히 이 정도로 강한 산성을 지닌 놈들은 더더욱 주의를 요망해야한다.

언제 어디서 산성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닿을 시 피부는 예사, 근육과 뼈까지 모두 녹아내릴 것이다.

시현이라고 예외인 것은 아니었다.

제너럴 슈트에 산성저항기능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었다.

대량의 산성에 맞는다면 꼼짝없이 당하리라.

“헌데, 앞서 간 헌터들은 도통 보이질 않는군요. 발자국도 안 보이고.”

-Of course. 트레이스리스 버프를 걸었을 테죠. 6성 던전이면 경쟁이 심하니까요.

트레이스리스(Traceless).

C급 스킬로,

대상자로 하여금 발자국을 남기지 않게 해주는  서포터의 필수 스킬이었다.

공용 던전인 만큼 후발 헌터들의 추적을 따돌리는 것이 목적.

-하지만 걱정은 마요. 내가 길을 잘 찾아볼 테니까.

“제주도 흑돼지 삼겹으로 대접해드려야겠군.”

-Yo!

저벅.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길목이 넓어졌다.

나오는 몬스터들도 점점 많아졌다.

특수 던전과 다르게 일반 던전은 몬스터가 상시로 소환되기 때문에.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쭉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컹!

강화된 시현의 손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검격(劍激)을 날린다.

육체강화 1단계 ‘샤프 암즈(Sharp arms)’.

이정도면 스킬 없이도 애시드 스파이더들은 일격에 처치가 가능하다.

사악!

-키이이익!

연속으로 두 마리를 죽이자.

-취이이이!

놈들이 천장에서 거미줄을 타고 내려온다.

무려 쉰 마리.

전투에 있어서 머리수는 기세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취이!

-취이이!

애시드 스파이더 기세 좋게 달려든다.

순식간에 시현의 주위를 에워싸고는,

휘익!

독이 묻은 앞발을 거듭 내뻗는다.

그러나 시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훽!

공중으로 떠올라 몸을 반 바퀴 구른 시현.

위이이이이이잉!

드릴처럼 회전한다.

인간팽이가 된 듯한 모양새.

360도 무한 반복을 시작한다.

사사사사사삭-!

-취에에엑!

단말마의 비명이 폭죽 터지듯 곳곳에서 자욱이 울려 퍼진다.

그럼에도 시현의 몸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빨라진다.

도는 팽이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스핀에 스핀을 머금고 더더욱 빠르게 회전한다.

취이이이익!

기습을 도모하고자 했던 후방의 스파이더들이 거미줄을 뿜어댔지만.

시현을 중심으로, 검격이 쇄도했다.

푸른 섬광의 검격.

마치 유형(有形)의 수리검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꼴처럼.

그것은 날카로웠다.

스파이더의 탄탄한 피부와 심장을 사정없이 뚫어버릴 정도로.

스겅!

카아앙!

놈들은 속절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른 여 마리의 스파이더가 종잇장 찢어지듯.

좌아아아악!

몸이 갈라지고 도륙 났다.

그와 동시에,

촤르르르륵!

사방으로 산성이 튀었으나 시현은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

진성 거미가 된 것처럼, 이미 천장거미줄에 달라붙은 뒤였으니.

그리고.

-키이이이이······.

천장거미줄에 붙어있는 거대한 거미 한 마리.

언뜻 보면 바위 같은 그것은,

에이션트 셀롭(Ancient Shelop).

6성 정예몬스터였다.

하지만 녀석은···

툭, 툭.

시현이 발길질을 해보아도 움직이지 않는다.

언제나 한결같은 바위처럼.

눈알조차 굴러가지 않는다.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마치 죽은 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혹 겁을 먹고 시현에게 달려들길 망설이는 것인가?

그렇다면, 녀석의 생각은 단연코 판단미스였다.

그것은 시현에게 압도되었다는 뜻이기에.

“그대로 있어라.”

섬뜩.

그 순간부터 에이션트 셀롭은 솜털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쥐죽은 듯 있었다.

시현은 미리 챙겨온 로프를 아공간에서 꺼내 녀석을 포박한 뒤.

쏘옥.

아공간에 도로 집어넣었다.

포획하기 어렵다는 산성 류(類) 몬스터를 생포한 것이다.

그리고 또, 쥐 죽은 듯 있던 이가 있었다.

-언빌리버블······.

놀랍다고 말하지만, 겁먹은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 말콤.

-나, 사, 삼겹살 괜찮아요···. 베이컨이면 충분···, 아니, 그것도 괜찮······.

혹시 전파로도 언령이 전달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시현의 활약에 말콤이 놀란 것인가?

아무튼, 확실한 것은 하나.

“겁먹지 마요. 배터지도록 사줄 테니까.”

시현의 첫인상이 말콤의 뇌리 속에 강하게 남게 되리란 것이다.

.

.

.

헌터중앙기구 특수본부.

임장호가 술 냄새를 풍기며 관리관실 앞으로 걸어오더니.

“미정 씨, 퇴근 안 해요?”

문 밖에서 대기 중인 비서에게 물었다.

비서가 코를 찡그리며 꾸벅 인사한다.

“관리관님 아직 퇴근 안 하셔서요.”

“퇴근은 무슨. 안에서 또 혼자 술 퍼마시고 있죠?”

“아, 아닙니다···.”

“아니기는. 이거 순 권력남용이구먼? 사람 퇴근도 안 시키고 술심부름을 시켜?”

임장호가 무작정 관리관실의 문고리를 돌린다.

그러고는 비서에게 일허게 말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내 잔도 좀 부탁해요.”

쾅.

문이 닫히고.

관리관실 안으로 들어간 임장호가 고개를 까딱 숙였다.

“어어-. 임 팀장 왔어? 한 잔 하다 왔나봐?”

딸꾹.

중년의 사내, 특수본부 관리관이 마른안주에 글라스 잔에 소주를 부어 마시고 있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두 볼이 시뻘게진 그는,

A/S/I 세 팀을 총괄하는 관리관 ‘백민식’이었다.

그리고 임장호와 둘만 있을 때는 아우동생 하는 호형호제 사이이기도 했다.

“아이고, 형님. 집에 좀 들어가쇼. 밖에서 마시던가. 누가 보면 어쩌려고.”

“큭큭. 여기만큼 또 좋은 곳이 있겠냐. 본부장은 항상 칼 퇴근 하는데 무슨 걱정인고.”

또각.

이내 비서가 글라스 잔을 갖다 준 뒤 도로 나갔다.

“아니, 근데 형님은 왜 애를 밤늦게까지 묶어놔? 집도 못 가게.”

“내가 언제 가지 말라했나? 지가 추가 근무하겠다는 걸 말릴 순 없잖아?”

쪼르르르-.

백민식이 임장호의 술잔을 가득 채운다.

“잡설은 집어치우고, 뭔 일이길래 술을 중간에 끊어 마시고 온 거냐?”

술을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보는 임장호였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고 중간에 끊고 백민식을 찾아온 것이다.

중요하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

“우리 팀 막내, 만나봤지?”

“계약하러 왔을 때 잠깐 인사는 나눠봤는데. 왜. 설마 문제 있는 건 아니지?”

“음······.”

“이런 니기미. 설마 관심병사야?”

끄덕.

기다렸다는 듯 임장호가 고개를 숙인다.

쾅!

백민식이 테이블을 내려친다.

“제엔장!”

기꺼이 심사숙고해서 뽑았건만 관심병사라니.

너무 하지 않은가?

“암. 관심이 많이 필요한 병사지. 그렇고말고.”

“다시 뽑아야할 정도야? 그놈, 역대급 루키던데?”

“암. 역대급 루키지, 그럼. 안 봐도 국내에선 최상급인데.”

“뭐?! 최상급?”

“‘못해도’ SS급. 지금 당장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거요. 24배의 증폭을 나눠먹은 5성 엘리트를 단숨에 때려잡았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백민식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놀라긴 아직 일렀다.

“형님, 아직 말 다 안 끝났소.”

“아, 뭔데? 변실금있어? 찔끔찔끔 던지지 말고 빨리 말해.”

“거, 성격 참. 한 번 말할 테니 잘 듣고, 답 좀 주쇼. 오케이?”

짠!

꿀꺽꿀꺽-.

글라스 잔에 담긴 소주를 들이켠 뒤.

임장호가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

“혹시 팀 개편 좀 되겠소?”

“개편? 인원증가를 말하는 거야?”

“아니, 팀을 아예 새로 하나 만들었음 하는데.”

“그게 뭔 소리야? 갑자기 팀을 왜 만드는데?”

임장호는 목이 타는지,

벌컥!

소주를 병나발 채 불고서 진지한 어조로 고쳐먹었다.

“형님, 잘 들어요. 그 관심병사, 우리랑 비빌 레벨이 아냐.”

.

.

.

빠직!

시현의 손끝에서 셀롭의 머리통이 찐 감자마냥 으깨진다.

5성 레어 몬스터 ‘셀롭’.

에이션트 셀롭 보다는 작지만.

성체의 경우, 다리의 기장만 무려 1미터가 넘는다.

꾸불꾸불한 통로를 지나쳐 들어온 지 30분 째.

시현은 그런 놈들을 지금까지 40마리나 처치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Sir, 거의 다 왔습니다. 저 통로만 지나면 분명 엘리트 몬스터가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통로 안으로 들어가던 시현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모든 천장에 거미줄이 걸려있네요.”

-놈들이 인간을 산 채로 먹기 위해 설치해놓은 거죠!

“그럼 조난자들은 통로 너머에 산 채로 있겠군요.”

통로를 지나던 시현은, 여기저기 희끄무레하게 남은 검흔(劍痕)을 발견했다.

즉, 가까운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뜻.

꾸불꾸불한 통로를 모두 지나치자.

예상대로 수백 명의 조난자들이 있었다.

밀랍인형처럼 고치가 된 채.

대롱대롱, 천장에 매달려있었고.

-고오오오오오!

견갑을 몸에 두르고 있는 거미귀신.

옹골리엔트(Ungolient)가 한 가운데에서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으며.

동시에 수백 마리의 셀롭 떼들이 치열하게 전투 중이었다.

정확히 마흔 두 명의 헌터들과 함께.

그리고 그 중.

“음?”

시현이 아는 얼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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