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후루루룹!
면발 흡입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냉면그릇까지 씹어 먹을 기세.
그 광경에 시현이 임장호에게 물었다.
“매번 이런 식입니까?”
“뭐가?”
“화 속성 던전을 클리어 할 때마다 회식으로 냉면 먹는 거요.”
“음. 불화가 있으면 냉(冷)으로 씻어야지. 안 그래?”
임장호가 자작으로 소주잔을 털어 넣는다.
정식퇴근시간인 18시 15분이 넘었기에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화라니?
시현은 그 말에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 때문에 팀에 불화가 생겼다는 뉘앙스였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불화라는 건,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야.”
“알고 있습니다. 보통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죠.”
“동시에 고쳐야하는 것이기도 하고.”
불화(不和).
화합이 안 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오늘 맞췄던 합(合)이 좋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잘 끝내지 않았습니까? 5성 정예인 리자드 맨도 생포했습니다만.”
“그래···.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 하지만···.”
벌컥.
다시금 소주잔을 들이켜는 임장호.
“과정에 문제가 있었지.”
혹시 개인행동을 했다고 이러는 것인가?
일은 부상자 없이 잘 끝났다.
더군다나 리자드맨을 생포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임장호는 무엇이 불만스러운지 표정이 영 어두웠다.
“이모! 물비냉으로 하나 더 부탁드려요!”
방어진이 손을 번쩍 든다.
벌써 세 그릇째이거늘, 체구만큼이나 많이 먹는 방어진이었다.
하기사, 수백 마리의 샐러맨더들의 공격을 1선에서 막아냈으니 그만큼 지쳤을 터.
“형, 그만 먹어. 고기 먹어야지.”
그렇다.
오늘 회식의 주식은 사실 냉면이 아니라 고기였던 것.
이때만큼은 모든 것을 다 잊고 술과 고기로 몸을 축인다.
시현이 술잔을 비우지 않자 김지원이 말한다.
“편하게 드세요. 오늘 일은 다 끝났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나요? 이제 겨우 7시인데.”
아닌 게 아니라 아까부터 묻고 싶었다.
이러다가 특수던전이 또 나타나면 어쩌려고 이러는 것인지.
김지원에게 알코올을 분해해주는 스킬이라도 있는 것인가?
김지원이 말한다.
“퇴근시간이 왜 18시 15분인 줄 아세요?”
“왜죠?”“한국기준으로 18시부터는 특수던전이 발생하지 않거든요.”
“신기하네요. 놈들의 준비시간이라도 되는 건가?”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는 있는데, 뭐 정확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가 놈들의 서식지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김지원이 술잔을 건넨다.
“그러니까 오늘은 걱정 말고 마셔요. 첫날이잖아요. 가장 고생하시기도 했고.”
“고마워요. 그런데 지원 씨는 안 물어보시나요?”“”
던전을 클리어 한 이후.
팀원들이 물어왔다.
왜 ‘무도가’라고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진짜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하지만 딱 두 명, 임장호와 김지원은 묻지 않았다.
시현은 그게 궁금했던 것이다.
혹시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인가?
“무도가면 어떻고 마법사면 어때요? 중요한 건, 시현 씨가 우리 팀에 와줬다는 것. 덕분에 오늘도 특수던전을 무사히 깼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가요.”
“그럼요. 시현 씨 아니었으면, 이제야 진홍의 샐러맨더랑 혈전을 벌이고 있었을 거라구요.”
시현은 지원이 자신과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 놓으세요. 앞으로 계속 함께 지낼 텐데. 저도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인 김지원.
서포터임에도 헌터 11기 차석을 꿰찼던 신성(新星
)이었다.
짠!
둘의 잔이 부딪힘과 함께.
지이이잉-.
식탁 위에 진동소리가 찾아 왔다.
핸드폰이었다.
그것도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동시에 울렸다.
무슨 우연인지 시현의 것만 빼고.
하지만 그들은 익숙하다는 듯,
“어? 에이.”
먼저 핸드폰을 확인한 방어진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사라가 묻는다.
“뭔데, 오빠?”
“6성.”
“에이. 술이나 먹자!”
실시간 던전알람어플이었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시현이 모르는 내색을 보이자.
김지원이 손수 어플을 깔아주었다.
“여기, 이렇게 들어가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오···. 고마워.”
시현은 방금 전 어플에 업데이트된 던전을 확인했다.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규모는 6성으로 추정.
현재 결계를 부수는 작업이 진행 중.
1시간 후 결계가 해체될 예정.
인근 대기 헌터들 지원 요망함.
위치는···.
“가깝네.”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시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까, 깜짝이야. 시현 씨. 어디가?”
“일이 생겨서요.”
설마하는 표정의 방어진을 뒤, .시현은 임장호에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끄덕.
임장호가 술잔을 꺾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상관이야 없지. 지금은 근무시간이 아니니까.”
“죄송합니다. 회식 때 빠지게 돼서.”
“회식은 무슨···. 그냥 뒤풀이하는 겸 술도 곁들여 먹는 건데. 헌터가 일하러 가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나. 어서 가봐.”
시크릿 에이전트도 사람이다.
근무시간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할 수 있었다.
회사에 구속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아 그리고, 오늘 일한 거 추가수당은 내일 정산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자네가 생포한 리자드맨도 마찬가지, 위에서 포상금이 내려올 거야.”
헌터중앙기구가 개개인의 공로를 떼먹는 곳은 절대 아니었다.
특히나 S팀의 경우.
그들이 없으면 기구가 돌아가지 않기에,
그들의 편의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주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 잠깐. 이거 가져가.”
임장호가 시현에게 팀장용 헤드기어를 건넨다.
무전기능이 탑재된 장치였다.
“이건 왜···”
“I팀에 ‘말콤’이라고 오늘 야근하는 애 있거든? 걔한테 부탁해서 던전 정보 알아보고 들어가. 자네가 아무리 강해도, 정보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니까.”
“감사합니다.”
시현이 떠나자, 임장호가 허탈하게 웃는다.
김지원이 물었다.
“왜요, 팀장님?”
“황소개구리가 연못에 뛰어든 격이잖아. 일반 헌터들은 가서 인건비도 못 건지겠어···.”
헌터들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시현.
그것도 물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황소가 아닐까요?”
“흐음. 그래, 지원이 네 말이 맞다.”
임장호는 그 황소를 격리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S팀으로서도 도저히 품을 수가 없는 황소였으니까.
.
.
.
수원시 인계동.
고작 4천 평 규모의 면적이었지만 깊이는 200미터에 육박하는 6성 던전이 발생했다.
시민들은 대피하였지만 4천 평 이내에 있던 건물들은 모두 폭삭 주저앉아 자취를 감췄다.
식당, 노래방, 약국, 모텔, PC방, 당구장 등.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이들이 터전을 잃게 된 것이다.
그중, 구조대가 친 바리게이트 바로 앞에서 울부짖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경아야....! 경아야!”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내, 내 딸이 아래로 떨어졌단 말이오!”
“이해합니다. 하지만 방금 구조대와 헌터들이 들어갔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오! 제발 우리 경아를 구해주시오. 제발···.”
딸을 던전에 잃어버린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딸을 살릴 수만 있따면 전 재산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전 재산이라도 드릴 테니 누가 내 딸 좀 구해주십쇼!”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던전의 깊이만 200미터다.
권능을 부여받은 자가 아니라면 필경 추락사로 죽었을 터.
“혹시··· 따님이 권능을 부여받았나요?”“아닙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 된 아이입니다. 혹시 헌터 되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이만···.”
이게 현실.
나 살기 바쁜 시대에 영웅 짓거리 하려고 굳이 목숨을 내거는 이는 드물었다.
그의 딸 경아는 이미 죽었을 확률이 압도적이었다.
던전으로 떨어진 일반인은 모두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흑, 흑···.”
사내는 좌절했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결국 이대로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무도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은 그때.
“그거, 나 주십쇼.”
등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헌터입니다. 내가 당신 딸아이 데리고 올 테니, 걱정 붙들어 매고계시죠.”
저벅-.
시현이 바리게이트로 다가선다.
구조대원이 시현의 앞을 가로막는다.
“일반인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습니다.”“헌터입니다.”
“아! 무슨 용건이십니까?”
“헌터가 던전에 무슨 용건이 있겠습니까? 헌팅 하러 왔죠.”
“아······.”
다소 초라해 보이는 시현의 행색에, 구조대원이 말꼬리를 흐린다.
그럴 만 했다.
불구덩이에서 뒹굴다온 시현은 한 겨울에 검정색 런닝을 입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척!
처억-.
시현의 몸에 슈트가 덧입혀지자,
“아, 예! 헌터라이센스 좀 확인하겠습니다!”
“여깄습니다.”
시현이 라이센스를 꺼내 내밀자, 구조대원의 표정이 다시금 일그러진다.
“······D급?”
시현을 무시하는 듯한 어조.
“문제라도 있습니까?”
“저야 문제는 없지만 그쪽한텐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요. 여긴 1성이 아니라 6성 던전입니다.”
구조대원이 콧방귀를 낀다.
“난 또, 혼자 오셨기에 A급 헌터이신 줄 알았네.”
휘휘-
구조대원이 통제 봉을 꺼내 허공에 휘두른다.
마치 파리를 쫓는 듯한 모양새.
“젊어 보이는데, 목숨 아까운 줄 모르면 집에나 갑시··· 헉!”
대놓고 시현을 무시하던 구조대원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손에 들고 있던 통제 봉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리고,
“옷 벗기 싫으면 비킵시다.”
언제부턴가 시현의 손에 들려있었기 때문에.
시현은 구조대원에게 통제 봉을 돌려준 뒤 물었다.
“들어간 인원은 얼마나 됩니까?”
“어어··· 그, 그게······ 개인정보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총 마흔두 명 들어갔습니다. 선생님까지 합하면 마흔 셋이겠네요···.”
42명이면 다섯 팀에서 여섯 팀 사이.
“몬스터의 유형은요?”
“그건 아직 전달 받은 게 없습니다···.”
과연, 정말이지 수준 낮은 정보력.
던전이 발생한지 한 시간이 넘었는데도 아는 것이 없었다.
시현은 하는 수없이 임장호의 헤드기어를 장착해 I팀을 호출했다.
칙칙!
치익-.
-Yes, sir. Malcom from I Team.
무전 너머에서 들려오는 유쾌한 목소리.
“인계동 6성 던전 영상 보냅니다. 분석 좀 부탁합니다.”
-미스터 임? 임 팀장님이에요? Anyway, 일단 3분만 기다리십시오.
그로부터 딱 3분.
치직-.
-A팀의 수집 데이터가 없어서 디테일한 건 알지 못해요. But... 몬스터의 타입은··· 어, Spider. 거미네요.
“거미라···.”
땅 속성.
그 정도면 정보면 충분했다.
-아 그리고, 미스터 임. 조심해야겠어요. 트랩이 아주 많거든요? But don't worry. 내가 다 알려줄 테니까.
“Thank you.”
-Good luck, 미스터 임.
시현을 임장호라고 생각하는 말콤.
그의 도움을 받은 시현은,
파앗!
성난 황소마냥 구덩이 안으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