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헌터중앙기구의 역할은 주로 특수던전 클리어에 있다.
특수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국에 헌터중앙기구가 설치되어있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
그들의 기술력이 없다면 특수던전을 클리어 할 여력이 안 되기에 손을 빌리는 것.
쉽게 말해, 국가와 헌터중앙기구는 협력관계다.
조약에 따라, 특수던전으로부터 얻는 모든 것을 정부와 공유한다.
비단 아티팩트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얻는 정보까지도 모두.
두구두구두구!
이윽고 S팀이 도착한 창동 5동의 던전.
이미 어시스트 A팀이 와서 보조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개중 최고참 에이전시가 임장호에게 고개를 숙인다.
“임 팀장님. 오셨어요.”
“어어. 나영 씨. 수고가 많아요. 결과는?”
“5분 전에 I팀으로 보냈습니다.”
“곧 받아볼 수 있겠군.”
치지직-.
임장호의 예상이 적중했다.
본부의 I팀으로부터 무전이 온 것이다.
-I팀에서 전달합니다. 창동 5동에 발생한 던전의 규모는 지하 128미터. 평방 4만평입니다. 원래 위치는 동묘원으로 민간 피해는 없습니다.
“나쁘지 않네.”
본디 특수던전이나 일반던전의 발생빈도는 극히 낮다.
대부분의 던전은, 땅이 무너지지 않으며 가상적으로 발생하는 '허상던전'이라는 것인데,
헌터중앙기구의 경우 특수던전 만을 맡는다.
“유형은?”
-불입니다. 곳곳에 화염기둥트랩이 있으니 주의하세요.
“날도 추운데 잘됐네. 등급은?”
-5성으로 추정됩니다.
“오케이.”
임장호는 무전을 끊었다.
이제는 S팀이 임무를 시작할 차례.
그렇다고 해서 다른 팀의 임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
A팀은 S팀의 뒤를 밟아 던전의 상태를 조사하고 I팀에게 정보를 보낸다.
정보를 받은 I팀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주시하며 S팀에게 분석결과를 보내고.
즉, 팀 간의 호흡이 한데 어우러져야하는 것이다.
“자자, 그럼 바로 착수하자고.”
“예.”
아까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
평소에 말 많던 강보검도 입을 굳게 닫은 채 임장호의 지시에 따른다.
들어가기에 앞서 임장호가 말했다.
“오늘은 막내도 있고 하니, 플랜에 대해서 간략하게만 설명한다. 먼저 플랜 A.”
플랜 A.
탱커-서포터-근접딜러-원거리딜러-힐러-누커-팀장.
팀 헌팅의 정석으로 던전에 진입하는 것을 뜻한다.
특별한 경우가 없을 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기도 하고.
S팀은 간략한 설명이 끝난 후 플랜 A에 따라 던전으로 들어갔다.
“나영 씨. A팀. 수고.”
“네. S팀도 고생하세요.”
선봉은 S팀.
A팀을 뒤로, S팀은 탱커 방어진을 선두로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길을 잃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I팀으로부터 실시간으로 무전을 받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헌터중앙기구의 ‘정보력’.
한국에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인 것이다.
치직-.
-I팀에서 알립니다. 전방 15미터 사각바위 앞에 화염기둥트랩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카피. 탱커, 마킹 꼼꼼히 하고!”
“예!”
저벅-.
임장호의 지시에 방어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화염기둥 라인입니다. 통구이가 되기 싫으면 여긴 절대 넘지 마세요.”
방어진은 그 앞에 표시를 해두고 길을 틀었다.
뒤따라오는 A팀을 위함이었다.
후미에 위치한 시현은 바로 뒤에서 걸어오는 임장호에게 물었다.
“특수던전이랑 일반던전이랑 차이점이 뭐죠? 트랩은 일반던전에도 있는 것인데.”
“잠시 후면 알게 될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임장호가 외쳤다.
“그만.”
그 말에 방어진이 발걸음을 멈췄고.
“여기가 좋겠다. 플랜B로 변경.”
플랜 B.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포지셔닝하는 것.
누커 시현의 경우,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야했다.
그때,
스우우우웅-.
서포터 김지원이 허공에 은빛다리를 생성했다.
“시현 씨. 올라가세요.”
김지원.
이름만큼이나 지원을 잘하는 서포터였다.
시현은 은은한 빛의 인공다리 위로 올라가 우뚝 섰다.
밑에서 보기엔 시현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광범위 공격을 하기에도 적절한 위치.
그 좌우에 근딜 강보검과 원딜 사수영이 대기했다.
“누커 형! 달라붙는 놈들은 나한테 맡기고 걱정 없이 주먹만 휘둘러요. 그리고 원거리 몬스터들은 수영이 누나가 맡아줄 거예요.”
끄덕.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폈다.
지금 이 상황이 꽤나 감탄스러웠다.
아무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보니 신기했던 것이다.
“자, 다들 포지션 잡고. 놈들은 화(火)속성이니까 화상조심하고.”
“예.”
그런데 왜 던전 중간지점에서 포지션을 잡는 것인지.
시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이곳으로 몬스터들이 습격을 해오는 것인가?
임장호가 다리 위로 올라오며 말했다.
“기대는 안 하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B급 헌터의 실력만 보여봐.”
“B급이라···. 하지만 전 D급이잖습니까?”
시현은 임장호의 저의가 궁금했다.
어째서 갓 수습을 마친 D급 헌터에게 B급을 요구하는 것일까?
자신의 실력을 B급으로 단정 짓고 있는 것인가?
임장호의 대답은 달랐다.
“S팀에 입사하려면 최소 B급 헌터의 실력은 가지고 있어야 돼. 그리고 하나 더. 권능을 얻은 지 1년 미만이어야 하고.”
그 말은 즉, 아직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때 묻지 않고 재능까지 겸비한 헌터만 채용한다는 얘기.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몬스터들은 어디 있죠?”
“이제 질리도록 보게 될 거다. 그리고.”
스윽.
임장호가 시현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죽을 거면 오늘 죽어라. 정든 놈 보내는 건 서로 가슴 아프잖아.”
그렇다고 진짜 죽으란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였다.
씨익.
그 말에 시현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
임장호가 핑거스냅을 쳤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고.”
임장호의 지시에, 서포터 김지원이 백옥 빛의 봉을 휘두른다.
사라라락-
모두의 두 손에 푸른빛의 정기가 깃들었다.
시현으로서는 처음 보는 스킬.
‘이런 스킬도 있군.’
임장호가 설명을 시작한다.
“이제부터 네 공격은 수속성이야. 화상에도 적당히 면역이 되고. 그러니까 인정사정없이 다 죽여 버려.”
“정말 인정사정없이 죽이면 되는 겁니까? 사체는요?”
“보존하면 좋겠다만, 사체 생각해가면서 싸울 여력은 안 돼. 워낙 놈들이 거칠어서. 그냥 닥치는 대로 죽여 버려.”
“최선을 다해보죠.”
피식.
임장호가 웃으며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흑색의 돌.
“잘 봐. 이걸 소환석이라고 해. 헌터중앙기구가 여러 국가에서 특수던전을 독점할 수 있게 해주는 전무후무한 물건이지.”
“소환석이라면, 몬스터를 소환하는 겁니까?”
“눈치 좋네.”
까딱.
임장호가 고개를 들어 정면을 가리킨다.
“준비하시고.”
스스스슥-.
사수영이 흑색의 활을 당김과 동시에.
“갑시다.”
임장호가 소환석을 반대편에 던졌다.
그러자.
우우우우우우우우웅!
허공에서 암흑이 일렁이더니,
“잘 봐. 저게 바로 게이트라는 거야. 놈들이 오는 문구멍.”
그 속에서,
전신을 화염으로 휘두른 도마뱀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카아아아아악!
말도 안 되는 광경.
시현은 몸이 바싹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당연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소환된 몬스터의 수만 가히 수십?
아니, 수백 마리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5성 레어 몬스터 ‘플레임 리자드’.
크기를 보자면 도마뱀이 아니라 악어수준!
바깥세상에서 봐온 던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순간,
-카아아아악!
그것들이 달려든다.
그와 동시에.
피유유유융!
물기를 머금은 거대화살이 묵직하게 날아가 수십 마리를 찢어발겼고.
최전방에선 방어진이 놈들의 퇴로를 차단하며.
강보검이 날렵하게 검을 휘둘러 놈들을 차례차례 제거해나갔다.
-카아아아악!
그럼에도 놈들은 여전히 미친 듯이 몰려온다.
마치 몬스터가 습공해오는 것처럼.
화르르르르!
놈들이 불을 뱉기 시작하고 곳곳이 불길에 휩싸인다.
김지원이 애써 불을 끄고 있지만.
미친 듯 튀어나오는 물량에는 역부족이다.
누커의 역할이 절실한 순간이었다.
“누커! 뭐해!”
한참 지시 중이던 임장호가 시현에게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시현은 옆자리에 없었다.
무슨 연유에선지 다리 끝자락에 서있는 것이었다.
“야! 박시현! 어, 어디가 임마! 너 누커야! 어그로 끌리면 안 된다고!”
누커가 가장 안전한 위치를 포기하고.
모두에게 노출이 되는 자리로 간다?
가히 미친 발상이었다.
하지만 시현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발상.
왜?
그럴 힘이 있으니까.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시현은,
파앗!
공중으로 도약했다.
마치 육상선수가 스프린트를 하는 것처럼.
재빠르고 간결하게.
탓!
타앗!
공중에 붕 뜬 시현.
자연스레 어그로가 끌려버렸고.
-카아아악!
플레임 리자드들이 시현을 향해 불길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
아파트 한 채를 순식간에 녹여버릴 정도의 방대한 규모.
김지원의 화상면역버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탱커가 아니고서야 그로부터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
사르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거센 불길이 한 번 지나간 뒤 공중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맙소사···. 죽으랬다고 진짜 첫날부터 죽은 거냐···.”
허탈해하는 임장호.
반면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힐러 사라.
“티, 티, 팀장님 저기! 중앙에!”
그득그득한 플레임 리자드들 사이에서.
시현의 모습이 비쳤다.
어느 틈에 거기로 간 것인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시현은 그저 리자드들과 친구사이가 된 것처럼.
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서있었다.
리자드들의 몸에서 나오는 화염이 뜨거울 법도 하지만.
배리어가 있었기에 끄떡없었다.
김지원이 쏴준 배리어가 아닌, 자신이 시전한 A급 배리어였다.
그 광경에 팀원 모두가 눈이 빠지도록 놀랐다.
그러면서도 전투는 치러야했기에 곁눈질로만 시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일렀다.
시현은 인간십자가라도 되려는 듯, 양팔을 거세게 뻗었다.
-카아악?
시현의 존재를 그제야 파악한 리자드를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굳은 땅에 물 고이는 것처럼.”
그 말이 있자마자,
촤아아아아아아!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물줄기가 거세게 일었다.
마치 온천이 터져나온 것처럼.
시현이 서있는 땅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물길이 터져 나왔다.
퐈아아아!
시현의 손길에 따라 파도가 형성되며.
퍼버버벅!
단번에 수백 마리를 쓸어버리고.
콰으으응!
수속성이 깃든 권격을 내질러,
접근해오던 리자드들의 목숨 줄을 끊어버렸다.
단 한 번의 일격이었지만, 그것의 효과는 연쇄작용으로 이어졌다.
멀리 떨어져있던 리자드들이 단체로 겁을 먹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카아아··· 카아아.
마치 후퇴하라는 듯한 다급한 음성.
시현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진짜 후퇴명령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음성의 주인공이 ‘정예’급이라는 것.
-게이트로 도망쳐라.
5성 정예 몬스터 리자드 맨.
저만치 구석에 서있는 놈이었다.
그의 명령에 수백 마리의 플레임 리자드가 게이트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솨아아아아아아!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땅에서 우뚝 솟아나온 거대한 장벽이 게이트를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에.
“거긴 내가 맡을게요!”
김지원이었다.
S팀의 일원답게 뛰어난 판단을 한 것이다.
이에 당황한 리자드 맨이 재차 외쳤다.
-다른 길로 도망가라. 샐러맨더님이 오실 때까지 살아 도망쳐라!
파바바바바바밧!
그의 명령에 따라 수백 마리의 리자드들이 양 갈래 길로 산개한다.
그러나 그 작전은 무산됐다.
시현이 도약했으므로.
동에 번쩍.
스슥-
불끈!
순간이동 후 육체를 강화한 시현.
그에 이어,
휙!
가볍게 내뻗은 주먹이 지면을 내리꽂는다.
바직!
필살기는 아니고, 소모가 적은 C급 스킬이었지만.
파동의 영향으로.
촤르르륵!
리자드들의 몸이 동시에 터져 즉사하였고.
“서에 번쩍.”
스슥-
시현이 다시 한 번 이동하자.
좌측으로 도망치던 플레임 리자드들의 앞에 우뚝 서게 되었다.
-크아아아아!
이미 시현의 강함을 인지했지만 지들 딴엔 살아보겠다고 입을 벌리는 플레임 리자드들.
하지만.
“닫아.”
읍!
말 떨어지기 무섭게 리자드들의 입이 닫혔다.
언령 진(眞)을 시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현의 말에 담긴 의지와 중압감을 리자드들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언령술사의 본질(本質).
완전히 상대를 제압했을 경우에만 효과가 나타나는 패시브 스킬.
-카··· 카아악···.
리자드들은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곧이어 영원히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시현이 손바닥을 뻗었으니까.
스오오오······.
손바닥 끝에서 기류가 역동적으로 요동친다.
눈 뜨고 보아도 믿기지 않는 현상.
리자드들의 몸이 뒤틀리면서 무한히 회전한다.
퍼더더더더덕!
약 100여 마리의 리자드들이 배를 까뒤집은 채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제 한 놈 남았나.’
시현이 눈을 껌뻑이자.
혼란을 틈타 슬금슬금 도망치고 있는 리자드 맨이 시현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고.
“Back to square one.”
슥!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운 속도로 10미터 거리를 단번에 되돌아간 시현.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스킬을 시전한 것이다.
도망치는 리자드맨을 잡기 위해.
“어딜.”
턱!
부리나케 도망치다 뒷덜미를 잡힌 리자드맨은,
콰아아아아!
시현의 손을 녹이기 위해 불길을 뿜어댔으나.
슥슥-.
시현의 가벼운 동작에 턱 없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빠각!
-크아아아아!
시작되는 관절 부수기.
바드득!
-쿠어어어어!
빠직!
-케에에에에!
팔, 다리 관절을 정확히 집어내는 시현.
다시는 도망치지 못하도록 불구를 만들어놓는 무자비함을 보였다.
그리고.
빠지직!
깔끔한 동작 몇 번 끝에.
털썩-.
리자드 맨을 불구로 만들어 쓰러트렸다.
“이 정도면 됐나.”
정예몬스터까지 생포해서 잡아간다면 필시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을 터.
훽!
시현은 임장호에게 물어보고자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
동태눈을 뜬 채 미동도 안 하는 S팀 인원들.
그들의 입장으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난 2분 동안 시현이 보인 활약을 보자면.
짝짝짝-.
돈 주고도 못 볼 진풍경.
S팀의 팀원들이 본능적으로 박수갈채를 쳤고.
임장호 팀장까지 손뼉을 마주치려 할 때.
삐빅-.
임장호의 허리춤에서 무전이 울렸다.
-I팀에서 알립니다. 진홍의 샐러맨더가 출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화독(火毒)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