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19화 (19/100)

# 19

드르륵.

마지막 보안 문 안으로 들어간 시현.

그의 눈에 비친 광경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완전히 판이했다.

첨단기술의 집약체라고나 할까?

마치 미래의 우주선 안에 있는 듯한 느낌.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8년간 세상과 단절되었던 시현이다.

경이로운 과학발전에 놀란 것은 당연했다.

“여기가 특수본부 라운지입니다. 좌측통로는 A팀. 우측통로는 I팀. 그리고 중앙은···”

시현의 소속 S팀.

중앙 문으로 들어가자 확 트인 공간과 열댓 개의 방이 나타났다.

마치 대저택을 이곳에 옮겨놓은 듯한 광경.

없는 시설이 없을 정도다.

“대단하네요.”

시현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

좌측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건장한 남자 한 명이 나왔다.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추정.

얼굴은 장난기 그득한 고등학생.

말투 역시 그러했다.

“건이 형 왔어? 어? 누구?”

남자가 시현에게 묻는다.

류건이 대신 대답했다.

“강보검 씨, 인사하세요. 이분은 오늘부터 한 식구가 된 신입···”

“박시현입니다.”

시현이 먼저 손을 건넸지만,

“아. 이번에 새로 뽑는다던 누커? 빨리도 뽑았네. 장례 치룬지 얼마나 됐다고.”

강보검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는 시현의 손을 외면하고 도로 자신의 개인공간으로 들어갔다.

“아···. 놀라셨죠? 보검 씨가 워낙 나이가 어려서요.”

“몇 살인데 그럽니까?”

“보검 씨는 스물한 살입니다. 성인이 되자마자 헌터가 된 케이스죠. 주 포지션은 근접딜러이고요.”

“그렇군요. 그런데 장례는 무슨 말이죠?”

“그건···. 차차 설명해드릴 테니 일단 팀장실로 들어가시죠.”

가장 안쪽에 있는 팀장실에 들어가자,

팀장이라는 남자가 여자 한 명과 심각한 얼굴로 얘기 중이었다.

얼마나 심각한 얘기를 하는지, 문을 열고 들어온 시현은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류건이 먼저 입을 떼야했다.

“팀장님.”

“어. 자네 왔나. 옆에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햇병아리겠군. 누커, 맞지?”

“그렇습니다.”

그는 시크릿 에이전트 S팀 팀장 임장호.

팀장보다는 야전사령관에 딱 어울리는 외모를 지지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마흔 정도.

“반갑네.”

임장호가 악수를 청해온다.

둘이 간략한 인사를 나누자,

임장호와 얘기 중이었던 늘씬한 여자가 연달아 악수를 청해왔다.

“반가워요. S팀의 원딜을 맡고 있는 사수영이에요.”

사수영은 몸에 착 달라붙는 군청색 바디슈트를 입고 있었다.

제조업체는 마틴 사(社).

머리부터 발끝까지 요염미를 풍기는 미녀였다.

이어 시현은 S팀 팀원들과 한 번씩 인사를 나눴다.

“누커를 맡게 된 신입 박시현입니다.”

“탱커 방어진이요.”

“힐러 사라 킴이에요. 미국에서 살다 왔어요.”

“서포터 김지원이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시현을 제외하고 총 여섯 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다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지나치게 활기도 없을 뿐더러,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너무 프리하네.’

이게 직장인지, 애들 놀이터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모두에게 개인공간까지 주어져 있으니 말 다했다.

안에서 뭣들 하느라 안 나오나 했더니,

잠을 자거나, 남녀가 한 방에서 뒹굴거나.

류건에게 들어보니 방어진과 사라 킴이 사내커플이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는 인원은 없다는 것.

시현이 당황하던 차, 류건이 입을 열었다.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르죠?”

“완전히 다르군요.”

“다들 개인주의가 심해서요.”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팀 모토가 ‘자유’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기강이 이렇게 안 잡혀있는 것인가?

헌터니까 당연히 몬스터 사냥을 하겠지만···.

어이가 없었다.

팀장이라는 작자 역시 팀장실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이래가지고는 제대로 팀워크를 맞출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궁금했던 시현이 물었다.

“여기서 가장 높은 분이 무슨 등급입니까?”

“제가 팀원 분들의 정보에 관해선 알려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들에게 직접 들으셔야 할 겁니다.”

“철통보안이 따로 없군요. 그래서 이젠 뭘 하죠?”

“기다려야죠. 임무가 들어올 때까지. 그게 S팀의 임무입니다.”

이렇게 하고 연봉 10억을 받아간다니.연봉 10억에 계약을 체결한 시현은 기가 찼다.

회사가 돈이 남아도는 것이 틀림없다.

현실이 믿기지 않는 시현은 화두를 돌렸다.

“아까 그 남자가 했떤 말, 무슨 뜻이죠?”

“아, 강보검 씨가 말했던 ‘장례’요? 별 거 아닙니다. 얼마 전 임무 중에 누커 한 명이 죽었거든요.”

섬뜩.

시현의 등줄기에 오한이 서렸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사람의 죽음을 쉽게 대할 순 없었다.

‘위험한 일을 하는 곳이긴 한가보군.’

하지만 일거리가 없었다.

아무리 첫날이라지만 몸이 근질근질한 시현에게는 지루했던 것이다.

‘개인훈련이라도 하고 있어야하나?’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시설을 찾아가려던 무렵.

위이이이이잉-

실내에 귀를 찌르는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류건이 시현에게 말했다.

“특수던전 발생. 출동입니다. 오늘은 첫날이니만큼 제가 옆에서 케어 해드릴 겁니다. 일단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세요.”

시현은 사전에 외운 매뉴얼에 따라 장비실에 가서 초경량강화헬멧과 장갑을 착용했다.

“기본 슈트도 챙겨 입으셔야죠.”

“꼭 회사 걸 착용해야합니까?”

“그럼요? 혹시 장만하신 것이 있습니까? 모르시겠지만, 저희 측에서 기본으로 제공해드리는 슈트가 더······”

척.

척.

촤악-.

순식간에 카오틱 슈트를 입은 시현의 모습에.

류건이 말을 돌렸다.

“가시죠.”

S팀의 이동경로는 주로 하늘이다.

대부분 헬기를 이용하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시속 1200km에 달하는 헬기였다.

그 덕에 사건이 터진 안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헬기에서 내린 여덟 명은 빠르게 목적지로 이동했다.

원래라면 류건을 제외한 S팀 일곱 명이 움직이는 게 철칙이지만.

첫날이었던 시현을 위해 매니저 류건이 동행한 것이다.

이내 목적지에 가장 먼저 도착한 팀장 임장호가 무전으로 알렸다.

-특수던전이 확실하다. 플랜A로 투입한다.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서포터 김지원이 탱커 방어진의 몸에 라이트를 부여.

직후 하강 로프를 설치한 뒤.

탱커 방어진을 선두로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시크릿 에이전트라고 특별한 건 아니었다.

신기한 게 있다면 던전의 결계가 없다는 것.

그래서 특수던전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누커는 팀원 중 가장 마지막. 이제 시현 씨 차례입니다.”

힐러보다도 중요한 포지션이 누커다.

S팀의 목표는 ‘안전한 섬멸’보다는 ‘완전한 섬멸’이었기에.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누커가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했다.

그리고···.

“똑똑히 새겨들으십쇼. 누커의 임무는 적의 우두머리를 사살하는 겁니다. 적을 두고 절대 등을 돌려선 안 됩니다.”

“명심하죠.”

시현은 류건과 함께 구덩이 아래로 내려갔다.

.

.

.

던전에 들어온 지 30분 정도.

앞 쪽에서 남자 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데 이제 막 헌터시험 합격한 햇병아리인데, 실전에 투입시켜도 될까?”

“적응 못하면 죽는 거지. 새삼스럽게 뭘 그래, 형.”

방어진과 강보검은 섬뜩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해댔다.

시현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농담조로 하는 말이었지만 시현은 중압감을 느꼈다.

‘특수던전’이란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

더군다나 이 정도 규모의 던전은 지금껏 외부에서 보았던 것 중에 최대 규모였다.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해. 수습생 수석이라잖아. 어련히 잘하시겠지. 못하면 죽는 거고. 안 그래요, 팀장님?”

“불길한 소리 마라. 곧 목표지점이다.”

임장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길 몇 초.

터억-.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사방을 밝게 비추던 라이트가 꺼져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꺄아아아아악!”

최전방에서 들려온 비명소리.

그리고 연이어 울려 퍼지는 괴수의 음성.

-사아아아아아아······.

시현으로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기계와 혼종된 몬스터라는 뜻.

문제는 라이트가 꺼져 형체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것.

설상가상으로 팀원들의 비명소리가 울림노래마냥 퍼졌다.

“케에··· 에에엑···.”

“크헉······.”

“라이트가 안 켜져요! 티, 팀장님? 크허억!”

대체 무슨 일이 벌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이거 하나.

시크릿 에이전트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다는 것.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서포터 김지원까지 비명을 흘린 뒤 바닥에 드러누웠다.

시현을 제외하고는 움직이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게 무슨.’

S팀 시크릿 에이전트들이 몰살당하다니.

사상초유의 몬스터가 나타났음에 틀림없었다.

언령으로 당장 던전을 클리어하고 팀원들을 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능력이 덜 발현된 것인지, 아니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시현의 언령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쉽게 말해, 반토막짜리.

언령엔 정도가 있었다.

따라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상대가 무엇이 되었든, 다양한 스킬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

언령 진(眞)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스아아아아아아아······.

암흑 속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연신 터져 나온다.

그럼에도 시현은 물러서지 않고 작게 읊조렸다.

“사람이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자 하니.”

터억!

시현의 눈에 빛이 돌았다.

암흑 속에 가려있던 거대한 기계가 선히 보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기계.

눈코입, 팔다리 따위는 없었다.

그저 기이한 음성을 낼뿐.

몬스터의 모습은 단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게 뭔들.’

이미 던전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시현이다.

당황할 여지가 없었다.

그저 손이 움직이는 대로,

스윽.

양 손목을 맞대고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입을 떼려고 할 때.

“거기까지!”

“!”

짝짝짝짝-.

머리가 굳을 정도로 어이없는 상황.

암흑 속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임장호 팀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대단하군.”

그뿐만이 아니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팀원들이 하나둘 씩 일어났다.

“이야! 역대 급인데요?”

“도대체 저 형은 심장이 몇 개야? 당황한 기색이 아예 없는데?”

“그러게. 보검이 너는 팀원들 훌러덩 버리고 도망쳤었지, 아마?”

“에이, 그건 그때고요. 그래도 다시 돌아오긴 했잖아요.”

“큭큭큭.”

이유모를 축제 분위기.

이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시현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일어난 류건 매니저가 사건의 전말을 모두 밝혔다.

“누커의 자격은 완벽하게 입증된 것 같군요. S팀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시크릿 에이전시, 박시현 씨.”

“입사 테스트였나요?”

“신고식 또는 실전에 대비한 예행연습이라고 하죠.”

“된통 당했네요. 그럼 아까 본부에서 분위기가 그랬던 것도?”

끄덕.

“그럼 장례인가 뭔가 한 것도?”

끄덕.

류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그래도 명색에 S팀인데 던전으로 침투하는 과정이 수습생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류건이 입을 열었다.

“임무가 없는 시간엔 다들 부 업무나 훈련을 합니다. 자세한 일과는 오후에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시죠.”

촤라라라락-.

그제야 라이트가 사방에 켜졌다.

전방에는 거대한 기계가 놓여있었고, 그 주위에는 두터운 투명 막이 설치돼있었다.

팀장 임장호가 그것을 가리키며 시현에게 말했다.

“저건 헌터중앙기구의 혁신, 기력 발전기라네.”

“아, 그렇군요.”

“그리고... 우리가 이런 식으로 신고식을 치르는 건, 자네의 기질을 알아보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실전에 앞서 자네가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이유야. 신고식을  치르지 않으면 신입들이 실전에서 얼을 타거든. 그래도 놀랐을 테니, 다시 한 번 내가 정식으로 사과하겠네.”

“괜찮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네.’

다행히 팀원들은 다들 괜찮아 보인다.

특히 원거리 딜러 사수영.

“우리팀 전통이라서···. 많이 놀라셨죠? 미안해요.”

“와, 저 누나 혼자만 착한 척 하는 거봐. 신입 형이 아무리 잘 생겨도 그렇지.”

아까와 비교해서 극적으로 다른 분위기.

시현에게는 가족같은 분위기처럼 느껴졌다.

"원래 이런 분위기인가요?"

"네. 오늘처럼 신입이 들어올 때만 무거운 분위기를 잡아요. 실전훈련 때문에요. 아, 그리고 장례다 뭐다 한 거는 순전히 보검이의 장난이구요."

"하하.. 죄송합니다. 신입 형."

강보검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이번엔 탱커 방어진이 다가와 사람 얼굴만 한 손바닥을 건넸다.

“방어진입니다. 나이는 서른 셋. 팀의 안전을 책임지는 탱커죠. 잘 부탁합니다.”

시현은 팀원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어진의 여자 친구 사라가 콧소리로 앵앵대듯 말했다.

“멤버도 잘 뽑은 것 같은데, 자축할 겸 점심이나 먹으러 가는 게 어때요?!”

“좋지! 오늘은 팀장님이 쏘시는 날이니까.”

“내가 왜 임마. 나이도 제일 어린놈이 버릇없이.”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시현은 신기한 감정을 느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지.

이젠 정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통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 좋은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바람처럼 될까?

삐비빅-.

예고 없이 울린 팀장의 비상호출기.

그 안에서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I팀에서 전달합니다. 도봉구 창5동 특수던전으로 사료되는 구간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좌표 찍어 보내드리겠습니다.

신고식은 끝났고.

이제는 데뷔전을 치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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