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17화 (17/100)

# 17

점심시간 전, 시현의 발이 당도한 곳은 용산구의 헌터중앙기구 본청.

규모로만 보자면, 웬만한 동 하나의 크기였다.

보안시설 또한 삼엄했다.

전쟁이 나면 괜히 이곳으로 대피하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르륵-.

간략한 절차 후에 자동문이 열렸고, 안내에 따라서 별관09 건물로 들어가자.

온화하게 생긴 30대 남자가 악수를 건네 왔다.

“반갑습니다. 헌터특부본부 S팀 담당 매니저 류건입니다.”

혀 굴러가는 발음을 보자면 토종 한국인은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세계기구이다 보니, 혼혈직원이 많은 모양.

“안녕하세요. 박시현입니다.”

간략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류건은 시현이 반드시 알아야하는 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저희 S팀에 관하여 간략한 설명은 듣고 오셨다고요?”

“예. 부회장님에게 듣고 오는 길입니다.”

“잘 됐군요. 그럼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보안, 둘째 보안. 그리고 셋째···”

“보안입니까?”

“예.”

“간단해서 좋군요. 그런데 첫째, 둘째, 셋째, 뭐가 다릅니까?”

류건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며 설명을 시작했다.

“보안 하나, 직업에 대한 비밀유지입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노출해선 안 됩니다. 비단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사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팀원끼리도요?”

“그건 아닙니다만, ‘특수본부’를 제외한 다른 팀에게는 비밀로 하셔야합니다.”

“그럼 직업은 뭐라고 말합니까? 선볼 때 무직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하하.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측에서 명함과 사원증을 만들어드릴 테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두 번째 보안은요?”

두 번째 보안철칙.

“사내기밀입니다.”

“사내기밀이라 함은?”

“모든 것. 사내에서 보고 듣고 먹는 모든 사실을 통틀어 사내기밀이라고 합니다.”

“점심메뉴 마음에 안 들면 어디 가서 불평도 못하겠군요.”

“하하하.”

시현의 유머에 선하게 웃는 류건.

사람 참 좋아 보인다.

그런데 저런 사람이 매니저라니.

유한 외모 뒤에 그만한 카리스마가 있는 것일까?

류건이 웃음기를 쫙 빼고 입을 열었다.

“이제 세 번째 보안철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류건이 세 번째 보안철칙까지 말한 뒤, 계약서를 내밀었다.

“시크릿 에이전트 전용 표준 계약서입니다.”

시현은 계약사항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걱정과는 달리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정규직이었기에 계약기간 따위는 없었고.

계약서를 훑던 시현이 물었다.

“표준 계약서라고 하더니 연봉이나 수당 같은 조약항목은 명기가 안 되어있네요? 아, 계약금도 주나봅니다?”

“물론이죠. 그리고 액수는 개인의 능력마다 달라서 일부러 비워놓은 겁니다. 저희는 공무원이 아닌 사기업 소속이니까요.”

시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류건을 바라본다.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연봉협상.

돈은 돈이었기에 긴장되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마침내 류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현 씨가 입사하실 S팀의 경우, 특수본부 내 최고액의 연봉이 지급되니까요. 여기, 받으시죠.”

류건이 시현에게 펜을 건넨다.

“희망연봉을 적어주십시오. 어차피 반기별로 갱신되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레인지는 정해 주셔야할 것이 아닙니까?”

“자사에 연봉 1억 이하의 정규직은 없습니다. 100억이 넘는 분도 안 계시고요.”

“화장실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정규직입니까?”

“청소는 기계가 합니다만.”

생각보다 어려운 난제다.

최소 연봉 1억에 최대 연봉 100억이라···.

헌터의 주 수입원은 연봉이 아니기에 기본급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사전에 알아본 결과, 아진E&M의 신입헌터연봉이 4억이었다.

‘흐음.’

시현이 잠시 고민하자 류건이 편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현 씨의 값어치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말 그대로 ‘협상’이니까요.”

“그럼.”

슥슥-.

시현은 거침없이 숫자를 써내려갔다.

연봉 20억.

“음. 앞에 숫자는 하나 줄여야할 듯싶군요.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 헌터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사냥으로 먹고사는 직종이니까요.”

어쨌거나 계약은 만족스럽게 끝났다.

세계 어디를 가든 이만한 대우는 받기 힘들었기에.

더군다나 시현이 헌터중앙기구를 선택한 것은 ‘정보력’이 첫 번째 이유였기 때문이다.

시현이 싸인을 마치자 류건이 검지를 펼쳐들었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류건은 시현의 첫인상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향후에 있을 특수임무에 시현이 어떤 활약을 하게 될 지 너무나도 기대됐다.

.

.

.

헌터중앙기구와 계약을 끝낸 지 일주일 되던 날.

시현은 얼굴을 마스크와 선글라스 따위로 가린 채 집을 나섰다.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박시현 씨 아니십니까?”

집 주위에 잠복해 있다가 말을 거는 남자.

“대림E&M 영업대리 최휘순이라고 합니다.”

그가 명함을 내민다.

대림E&M 대리라고 적혀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대림E&M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숱하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그럼에도 시현은 연신 거절했다.

남들은 못 가서 난리인 곳을.

“다른 곳이랑 이미 계약했습니다. 그러니 그만 하고 가시죠.”

“혹시 해외 매니지먼트와 계약하신 겁니까? 저희 측 정보에 따르면, 국내 기업과는 아직 계약하지 않으신 걸로······”

“이봐요.”

“예?”

“정보력이 그것 밖에 안 되는 회사에 들어갈 생각 없습니다.”

말 그대로, 시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직의 정보력이었다.

꼭 찾아야할 게 있었기에.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시현은 한숨을 내리쉬며 동네를 떠났다.

그리고 찾아간 곳.

김포시 헌터실전훈련소 제1지구로 들어갔다.

평택의 훈련소보다도 훨씬 넓은 평야가 펼쳐져있었다.

‘여기서 3주.’

헌터중앙기구 규율 상 시크릿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선 정식헌터가 되어야하며.

국내 헌터특별법 상 정식헌터가 되기 위해선 실전훈련을 끝마쳐야한다.

따라서 실전훈련과정까지 수료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딱 3주.

시현은 3주 뒤엔 정식헌터가 되어, 헌터중앙기구 소속 시크릿 에이전트가 될 것이다.

.

.

.

3주 후, 퇴소 당일.

1차 훈련소 때처럼 거창한 수료식은 없었다.

그저, 헌터관리부 산하 헌터관리국 국장이 초청되어 훈시문을 읊었을 뿐.

“신임헌터 여러분, 반갑습니다. 헌터로서 첫 걸음을 내딛는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환영과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뻔한 인사말로 시작했던 훈시는.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여러분의 앞날에 무한한 발전과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뻔한 인사말로 끝났고.

곧바로 정식헌터를 증명하는 라이센스와 배지를 수여했다.

이제 막 정식헌터가 사람들은 마치 졸업장을 뗀 사람들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땐 걱정 반 기대 반이었고.

대학교 졸업식 땐 걱정뿐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야아! 드디어 배지를!”

정식 헌터가 된 이들에겐 헌터배지 하나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출셋길이 열렸구나!”

말 그대로 출셋길이 열렸다.

여기에서도 국가직, 공기업, 사기업으로 나뉘겠지만.

못해도 상류층의 삶은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17기 헌터들의 평균나이는 24살.

20대 초반이 태반이었다.

그래서인지 훈련소 밖은 그들의 부모들로 가득했다.

퇴소에 맞춰서 축하를 해주러 온 것이다.

정말로 졸업식을 하는 것처럼.

“아이고, 상현아! 고생 많았다, 많았어.”

아들의 합격에 극성맞게 기뻐하는 어머니도 있고.

“우리 아들. 어서 한 번 입어봐!”

1억 원대에 육박하는 아티팩트 슈트를 맞춰온 부모님도 있었다.

그러나 시현에겐 아무도 없었다.

축하는 개뿔. 집에 가서 자축이나 해야지.

생각하며 돌아가려던 찰나.

“대표님.”

등 뒤로 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아저씨가 아니라니. 영광이네.”

여덟 살의 나이차.

김제이가 초등학생일 당시 시현은 이미 성인이었다.

시현은 제이의 호칭 선택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래도 아직은··· 아재 티가 안 난다는 거니까.

“오빠, 연락처 좀 알려주실래요?”

“여기. 그런데 너는 가족들 안 왔어?”

“네. 저희 부모님은 합격한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셔서요.”

“그렇지, 참.”

끼이익-.

제이 앞에 기업총수나 탈법한 고급외제차가 한 대 섰다.

뒷좌석에서 내린 젊은 남자가 제이에게 다가온다.

“가시죠, 아가씨.”

역시, 어디 잘 나가는 재력가 딸내미였던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함께 어울렸을 자리였지만 지금은 아직 아니었다.

시현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제이를 보냈다.

“연락할게요!”

시현은 말없이 손을 흔들고 등을 돌렸다.

택시를 타고 갈까, 지하철을 타고 갈까.

생각하던 찰나에.

끼이-.

부드러운 브레이크 음을 내며 시현의 앞에 선 고급세단 한 대.

그곳에서 내린 이는 다름 아닌.

“박시현. 축하한다.”

이용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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