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일단 얼마나 강한지 볼까.”
메카 만티스는 기계형 몬스터.
미지의 던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 당연지사.
시현은 그것으로부터 알아내고 싶은 게 있었다.
메카오거를 만났을 땐 여유가 없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기에.
스윽-.
시현은 단순근력으로만 주먹을 뻗었다.
시커먼 구릿빛의 금속팔뚝을 향해!
파앙!
-키아오오오오!
메카 만티스가 울부짖는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 같던 팔뚝하나에 금이 갔으니.
-키아아아아아!
메카 만티스가 뒤로 주춤 물러나며 울부짖는다.
그 앞으로 시현이 다가선다.
마치 동족을 대하듯, 친근한 목소리로 만티스에게 말한다.
“키익?”
-키이익?!
메카 만티스의 거대한 눈이 빛난다.
오랫동안 굶주렸다가 먹잇감을 발견했을 때보다도 번쩍 뜨인 눈.
어떻게 인간이 자신들이 쓰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시현은 분명 몬스터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키익, 키이익, 키이이이익.”
수습생들의 귀에는 가래침 끓는 소리로 들렸지만.
메카 만티스의 귀에는 달랐다.
“놀랐나보군. 내가 네놈들의 언어를 사용하니까.”
-어, 어떻게 인간주제에!
“주제에? 거슬리는군. 벌레 주제에.”
스윽-.
순간적으로 강화된 시현의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파공음을 자아내며 돌풍을 일으키고.
메카 만티스가 채 반응도하기 전에 뻗어가더니.
파아앙!
좌즈즈즈즉-.
채애애애앵!
메카 만티스의 팔뚝을 부서트렸다.
-이, 이런 건방진 노옴!
“건방진 노옴? 좋아, 한 번 더.”
우직.
시현이 팔뚝을 돌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메카 만티스가 입을 다물었다.
“쯧.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키, 키이익···!
메카 만티스는 콩벌레마냥 몸을 둥글게 말아서는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역시 힘 앞에선 장사 없는 것이다.
그 기이한 광경에 수습생들은 하나둘 씩 움츠렸던 몸을 풀었다.
그들의 대표, 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몇 가지 간단하게 물을 테니 답해주길.”
-어··· 어림없는 소리!“답해라.”
드아아아!
시현의 음성이 메카 만티스의 몸을 짓누른다.
마치 쇠사슬이 몸을 묶고 있는 듯한 느낌.
시현이 말을 잇는다.
“던전이 생기는 기준은 뭐지?”
시현은 그게 가장 궁금했다.
또 의아했다.
미지의 던전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맞닥뜨린 던전만 벌써 두 번째였다.
아무리 던전이 빈번하게 발생한다지만 이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우연치고는 너무한 우연.
혹은 하늘이 엮어준 인연인가?
-생기는 기준? 그것을 왜 나한테 묻지?
“네가 모르면 누가 알지?”
-큭큭. 멍청한 녀석. 글쎄, 더 이상은 해줄 말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 동족의 역사라도 말해줘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하찮은 벌레들에게도 역사가 있느냐? 몸에 고철을 박아두고서. 끔찍한 혼종주제에.”
-뭣이?
메카 만티스가 노한다.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누가 내 몸에 고철을 박아둔 것이냐!
“······?!”
시현이 문득 생각에 잠긴 찰나.
저저저저적!
메카 만티스의 전신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유충이 성충이 될 때 탈피하는 것처럼.
몸을 감싸고 있던 구릿빛 금속이 완전히 갈라져 떨어진다.
그 안에서 쇳빛의 금속이 드러난다.
딱 보기에도 전보다 훨씬 가볍고 튼튼해 보인다.
힘을 숨기고 있던 것인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겠군.’
녀석의 수준은 이미 3성 정예를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놈의 팔뚝은 이미 완전히 회복됐기 때문.
즉, 회복형 몬스터란 뜻이다.
회복하기 전에 한 방에 끝내는 게 답.
스윽-.
시현이 자세를 낮췄다.
“대표님!”
뒤에서 제이가 외친다.
“버프 받으세요!”
그녀의 두 손이 푸른빛으로 타오른다.
“블레싱 말고도 다른 버프가 있었나요?”
“네! 지금 바로 쏴드릴게요!”
자신의 위치를 아는 제이였다.
어쭙잖은 공격으로 도와주는 것보다는,
“권능으로 명하노니, 기력의 파도를 일깨우노라!”
버프를 쏴주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시현의 기량은 수습생들과 천지차이니까.
스아아아아-.
그 즉시.
시현의 몸에 내재된 기력의 농도가 올라간다.
기력의 질이 향상한 것이다.
그것은 무려 C등급의 스킬 ‘스펠파워 인챈트’.
‘양성소에서 C등급의 스킬은 가르쳐주지 않는데. 설마 습득한 것인가? 재능이 있나보군.’
하지만 지금은 한눈 팔 때가 아니었다.
탈피하여 더욱 강력해진 메카 만티스가 날개를 펼쳤기 때문!
퍼드드드득!
눈 깜짝할 사이 메카 만티스가 시현에게로 쇄도한다.
패턴이 없는 무자비한 공격.
시현이 피할 수 없도록.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사방에서 공격해온다.
솨악!
좌우에선 날카로운 발이,
위에서는 뾰족한 턱이 시현을 덮친다.
휘익!
그럼에도 시현은 여유만만.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좌아악-.
시현의 육체가 강화된다.
안력(眼力)또한 마찬가지.
‘전보다 더 잘 보이는군.’
스펠파워 인챈트의 효과로 인해서.
육체강화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가히 엄청난 시너지.
메카 만티스의 움직임이 더더욱 느릿느릿하게 보인다.
녀석의 공격을 기다리는 게 지루할 정도.
그렇기에, 시현은 먼저 움직였다.
스윽-.
발을 앞으로, 팔을 뒤로.
최대한 쭉 당겨준 뒤.
녀석을 한 방에 보낼만한 스킬을 실었다.
이왕이면 만티스의 역속성인 불 속성으로.
“불구경.”
쿠와아아아아앙!
화염을 머금은 권격이 날아간다.
순식간에 메카 만티스의 온몸을 뒤덮고.
꿈적도 안할 것 같던 금속피부를 녹여버렸다.
그리고.
-키이이오요오오오!
연이은 시현의 일격이 메카 만티스의 명을 앗아갔다.
.
.
.
“결계파괴까지 30분 남았습니다.”
“이러다가 유골도 못 건지게 생겼군.”
탐탁지 않은 보고에 헌터중앙지구 부총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한국이 헌터약소국이라고는 하나, 구조에 있어서 이렇게 오래 걸린다면.
그 어떤 국민이 안심하고 대한민국에 살 수 있겠는가?
9년 전, 몬스터침공이 시작된 이래로,
아쉽게도 한국이 헌터사회에서의 중심이 될 수는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이 패권을 잡았고.
극단적으로 비교하자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거의 꼴지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가차원에서의 범용적인 스킬개발이나, 아티펙트 개발이 이뤄져야 할 텐데.
그게 아니라면.
위대한 헌터가 나오거나!
쿠과과과과광!
“뭐, 뭔가?”
급작스럽게 요동치는 대지.
보호시설에 대피했던 모든 이가 저절로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현재 스크린에는···.
“겨, 결계가 부서지고 있습니다!”
“아직 30분 남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습니다만··· 던전이 자동적으로 붕괴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설마.
던전 안에서 누군가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것?
부총장 옆에 서있던 함경만 본부장이 버럭 소리친다.
“다들 뭐하고 있어! 어이 소장!”
“예, 예!”
장광 소장이 쪼르르 달려와 함경만 앞에 선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안에 A클래스 생도들만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부, 분명 그렇습니다만···.”
“그런데 던전을 클리어 해? 누가 보나 안에 교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는데.”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부총장이 대화에 끼어든다.
“이 좋은 상황에 왜 화를 내고 그러나?”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그랬습니다. 진즉 보고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애타게 기다리진 않았을 겁니다.”
“허허. 그거야 그렇지. 이제야 안심이 좀 되는구만. 던전이 클리어 됐다는 건 생존자가 있다는 얘기니까. 어서 구조작업을 시작하라고 하게.”
“···예.”
30미터가 넘는 깊이.
역시 3성 던전답게 깊이도 넓이도 광대했다.
현장에 나간 구조대원들이 밧줄을 내리고.
일사천리로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그 상황을 스크린으로 통해 보고 있던 부총장이 손가락을 들었다.
“저, 저 자는···.”
구조작업이 딱히 필요 없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수습생 대표가 아닌가?”
던전에서 튀어나온 시현이었다.
그는 거대한 몬스터 사체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만티스과 몬스터였다.
“저, 저것은 만티스 킹이 아닌가?”
“아··· 아닙니다. 자세히 잘 보면 살짝 다릅니다.”
“그럼?”
“메카 만티스입니다···.”
그렇다.
피부를 두르고 있던 금속이 모두 녹아버렸기에.
구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좋은 소식 하나 더.
던전 안에서 나온 수습생들은 총 20명.
전원생존이었다.
최악의 상황이 최고의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허허허!”
짝짝짝-.
난데없이 대피소에서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
발원지는 부총장이었고.
곧이어 박수가 박수를 낳아, 대피소는 박수갈채로 가득했다.
부총장이 장광 소장에게 물었다.
“이후 일정이 어떻게 되지?”
“그게··· 원래는 A클래스의 시범이 있은 후, 수료소감과 축하 연주 그리고 축시가 예정돼있습니다.”
“그래? 오늘은 사고도 있고 그랬으니 간략화하지. 어차피 다 병원에 보내야할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장광 소장이 고개를 끄덕인 뒤 교관에게 지시했다.
일정을 취소하고 수습생들을 병원으로 이송시키라고.
그런데.
“아, 수료소감은 꼭 듣고 싶군.”
“수료소감 말입니까?”
“그래, 저 박시현이라는 사내의 소감이면 충분하네. 병원 검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내 앞으로 데려오게.”
.
.
.
평택국제병원.
간단한 검사를 마친 제이는 시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아까 그거, 메카 만티스랑 어떻게 대화하신 거예요?”
“대화?”
“키익··· 킥··· 키이익. 이런 거요···.”
시현이 피식 웃는다.
“대화는 무슨. 혹시나 해서 시도해본 겁니다.”
“아···. 그래서요?”
“그래서는요. 당연히 안 됐지요.”
권능에 관한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한다.
설령 누군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그 누구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비밀이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전 세계의 헌터강대국들이 시현을 탐낼 것이다.
단순 스카우트되는 것이 아닌,
실험실에 끌려가 생체실험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뜻.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이다.
세계의 발판에 오를 수 있는 힘과 능력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그 순간이 되면 도약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 인터뷰는 자제해야했다.
“찍지 마세요. 초상권 침해입니다. 사진 불법 도용할 시 법원 갑니다.”
시현이 한 말이 아니었다.
A클래스 수습생들이 시현의 주위를 에워쌌다.
마치 경호원들이 귀빈을 보호하는 것처럼.
저벅-.
시현은 제이와 함께 기자들을 피해 병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복도 저 끝에서 쫄래쫄래 따라온 남정네들.
검사를 모두 끝마친 A클래스 수습생들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들은 자진해서 일제히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
생명의 은인에 대한 찬사이자 감사였다.
그 모습이 낯설었던 시현이 허허, 다소 민망한 소리를 내자, 옆에 서있던 제이가 말했다.
“우리의 영웅이잖아요.”
17기 최고의 헌터들의 영웅이 된 시현이었다.
그런 시현을,
“박시현 씨!”
저 멀리서 달려오며 부르는 한 남자.
차림새를 보아하니 어디 정부에서 파견된 비밀요원 같은데.
그가 분위기를 깨는 한 마디를 던졌다.
“같이 가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