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자, 잠깐만요!”
제이를 포함해, 수습생들이 의문을 가졌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거랑,
주변에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다는 거랑,
무슨 연관인지.
제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시현이 가볍게 웃는다.
“보면 압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 걸음 가지도 않았건만.
시현이 확신한대로, 주변에서 몬스터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크락! 크라악!
생김새면 몰라도, 목소리만으로는 몬스터의 정체를 유추할 수 없었다.
경험이 없는 수습생들의 한계였다.
하지만 시현은 달랐다.
“확실히 플라잉 만티스군.”
“그, 그걸 어떻게 알죠?”
“들으니 알죠.”
목소리만 들어도 구별할 수 있는 시현이었다.
더해, 필기시험까지 공부했던 시현은···.
“2성 노멀 몬스터. 어깨축지에 달린 톱니날개를 이용해 고속비행한다. 날카로운 집게와 빠른 스피드를 조심할 것. 이 정도는 다들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헌터자격시험에서 필기시험을 공부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지식.
하지만 수습생들은···.
“아, 맞아. 그, 그랬지.”
“프, 플라잉 만티스면······ 2성인데···.”
바들바들 다리를 후들거린다.
당황하고 만 것이다.
명색에 A클래스였지만, 예고 없이 실전을 겪게 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F클래스가 왔더라면 발걸음도 떼지 못했으리라.
시현이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번 기수에서 건질 수 있는 건 제이뿐이군.’
제이는 이미 전방을 주시하며 양손을 뻗고 있었다.
언제라도 스킬을 날릴 준비가 된 것이다.
“놈들의 유형은 풍(風).”
“파이어 애로우가 제격이겠군요.”
역시, 이미 던전을 겪어봐서 그런지 다른 이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아니면, 실전체질인가?
“하지만··· 오백 마리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무슨 수로 수습생들이 2성 노멀 500마리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먼저 선공해야할까요?”
“아뇨.”
“그럼···.”
“놈들의 경우, 기습 올 때 역으로 카운터를 치는 게 더 수월하죠. 보통은.”
언젠가 미지의 던전에서 플라잉 만티스를 수차례 상대하면서 얻은 경험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북서쪽은 제가 맡죠. 나머지는······”
“아니.”
제이의 도움을 사양하는 시현.
“발목이나 좀 풀고 있어요. 갈길 머니까.”
대표로서 해야 하는 브리핑은 끝냈다.
그러니까 이제는 모범이 되어 손수 시범을 보여야할 때.
파앗!
시현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동시에 파란색 사마귀들이 바위에서 튀어나왔다.
-키에에에엑!
-키엑! 키엑!
플라잉 만티스.
헬리콥터마냥 톱니날개를 프로펠러삼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위이이이잉!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현에게 달라붙는다.
그 수만 무려 500마리.
공중에 떠오른 시현의 몸을 덮친다.
마치 병풍해가 몰아닥친 듯한 참경.
“대, 대표님!”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제이만이 정신을 부여잡고 손을 뻗는다.
그리고 파이어 애로우를 날리려는 순간.
공중에서 시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벌레는 밟아야 제 맛.”
좌으응-.
그 순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한차례, 시현을 중심으로 알 수 없는 파동이 일어났고.
허공에서 거대한 거인의 발이 소환되었다.
무식하리만치 거대한 발은 벌레들을 무자비하게 내리찍었다.
좌아아아악!
-키여여역!
-키에에에엑!
수백 마리의 플라잉 만티스가 거인의 발에 짓눌려 무참히 찢겨나간다.
모두의 시선이 시현에게 돌아간다.
특히 제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저, 정령사?’
저건 대지의 가호를 받는 정령사가 부릴법한 엘리멘탈 스킬이 아니던가?
무도가가 어째서 저 스킬을?
아니면, 설마 말로만 듣던······
‘스위쳐?’
제이가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탓-.
시현이 지면에 가볍게 착지했다.
바닥은 이미 만티스들의 쥐어터진 사체로 그득했다.
사실상 사체로 말하기 힘들 정도.
거진 흔적이 남아있질 않았다.
당연히 건질만한 부산물도 없었고.
“벌레들은 몸이 너무 약해서 별로야.”
허나 시현의 퍼포먼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족의 죽음에 분노한 플라잉 만티스들이 곳곳에서 날아온 것이다.
위이이이-
놈들이 시현의 머리 위에서 고공 비행하며 간을 본다.
그러다가 시현의 빈틈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플라잉 만티스들은,
위이이이잉!
거세게 날아들었다.
'만티스의 비행술'을 부리면서, 수십 마리가 일제히 앞다리를 내리꽂는다.
일반 헌터였다면 필경 머리가 두 쪽이 났을 터.
그러나 시현에게는 행운이었다.
몬스터들이 손수 찾아와 준다는 것은.
"어디."
스윽-.
콰아아아아!
과할 정도로 괴력적인 권격은 허공을 갈랐고, 그 뒤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저, 너무나도 강했던 시현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며.
무언가 더 흥미로운 것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뭐가 어떻게 된 것이오?”
“일단 구조대가 경위를 파악 중에 있습니다. 어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지요, 부총장님!”
훈련소는 난리가 났다.
17기 A클래스 수습생들이 모두 죽게 생겼으니 당연지사.
제 7교장에 발생한 던전의 규모를 보자면 적어도 3성.
그것도 보통 3성이 아니었다.
규모만 10만 평에 달하는 수준.
그 정도면, 몬스터 개체 수만 해도 적어도 수백은 될 것이다.
“죽었다고 봐야겠구먼···.”
“세상에나 이런 비극이···.”
참관을 온 고위인사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반 포기한 상태. 희망은 없었다.
안에 교관이라도 한 명 같이 들어가 있으면 모를까.
“구조 작업은 얼마나 걸리지?”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턱도 없겠구먼······.”
부총장은 경악했다.
던전이 발생하는 거야 흔하디흔한 일이지만.
하필 헌터양성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헌터중앙지구에서 신입 누커를 뽑아갈 계획이었는데.
모두 허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쯧쯧쯧.”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부총장이 혀를 찬다.
옆에서 그를 보좌 중이던 함경만 본부장이 거든다.
“아무래도 누커는 B클래스에서 뽑아야할 듯싶습니다. 들어보니 싹이 보이는 수습생들이 여럿 있더군요.”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젊은 친구들이··· 참으로 안 됐어.”
부총장이 던전에 갇힌 이들을 걱정하는 가운데.
구구구구궁!
던전의 결계 안에서 격동이 일어났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정예 몬스터가 깨어났다거나···.
“희망은 정녕 없는 것인가?”
부총장이 두 손을 맞대며 묻자 함경만이 고개를 젓는다.
“무리입니다. 안에 메카만티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메카만티스라···. 뭐?”
부총장이 고개를 돌린다.
“메카만티스라고 했나?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나?”
던전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서.
던전 안에 있는 정예 몬스터의 정체를 알고 있다?
“부총장님. 벌써 잊으신 겝니까. 저는 헌터 계에 9년을 몸 담아왔습니다. 그간 방대한 데이터를 보고 경험해왔는데, 예측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지요.”
“흐음. 그래···. 예측이야 누구나 할 수 있지···. 헌데, 메카만티스는 3성 정예가 아닌가?”
“맞습니다.”
메카만티스(Meca Mantis)
3성 정예 몬스터.
속도는 두말할 것 없이 빠르고.
패턴을 무시하는 다양한 공격까지.
메카만티스의 도감을 떠올린 부총장은.
“쯧쯧-.”
희망을 버리고 스크린에서 눈을 뗐다.
.
.
.
저벅-.
“거의 다 왔네요.”
“하지만 아직 정예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잖아요?”
“이제 나오겠죠.”
어느덧 도착한 던전의 끝자락.
중간 중간 습격이 있었지만 시현의 손과 발이 수많은 만티스를 처리했다.
시현의 원맨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A클래스 수습생들은 극한의 상황에 부딪히게 됐다.
“맙소사···. 기계몬스터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어림잡아 7미터.
메카오거보다는 작지만 그보다 훨씬 위험해 보인다.
어두운 시야 사이로 빛나는 노란 안광에 날카로운 집게발.
거기에 포유류도 울고 갈 기계식 뼈대까지.
그리고···.
-키이아오오오오!
포악한 상정까지!
과연 3성 정예 메카만티스답다.
시현을 발견한 메카만티스가 차츰차츰 다가온다.
“다들 뒤로 물러나있으세요.”
시현의 말 한마디에 수습생들이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제가 서포트 해드릴게요.”
누커를 해도 손색치 않은 제이.
그녀가 시현의 서포터를 자청했다.
“뭐, 쓸 줄 아는 버프 있나요?”
“기본적인 것들은요.”
스아아아-.
제이의 손에서 파란빛이 쏟아져 나온다.
시현은 근력과 민첩성이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블레싱이군.”
“등급은 낮아요.”
제이가 겸손하게 말했지만.
시현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높든 낮든, 흥미롭군요.”
“네···?”
'누군가와 같이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는 것.'
시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솔로잉이 편했지만 굳이 고독한 솔로잉을 할 필요는 없었다.
서포터 하나 곁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버프를 받았으니 밥값을 해야겠지.”
저벅-.
시현은 메카 만티스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말했다.
“너에게 좀 알아낼 게 있다.”
-키이이이이이!
피융!
시현은 도약했다.
총알처럼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