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C급 헌터 여덟 명이 단숨에 제압되고, B급 헌터 박몽구가 기절했다고? 허, 허허, 허허허!”
불시훈련이 종료된 후 훈련소장실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윽박을 질러도 이상할 거 없는 상황이었지만.
장광 훈련소장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속에 허탈함과 경탄이 담겨있었다.
“저··· 소장님···.”
방금 전 훈련결과를 보고했던 총교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직 정확히 파악된 사항은 없습니다. 누가 그랬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어서···.”
C급 헌터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저 발전소의 출입구를 열자마자 ‘무언가 강력한 것’에 맞았다고 했다.
그리고 박몽구는 의무대에서 기력을 회복 중이라 증언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박몽구 팀장이 깨어나는 대로 조사해보겠습니다. 지금 CCTV도 감식 중에 있고요.”
슥슥.
장광은 고개를 내저었다.
남은 웃음기를 추스른 뒤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조사할 게 뭐 있나. 뻔할 뻔자지. 헌터가 되어선 안 되는 놈이라더니. 이미 헌터들을 발아래 둔 놈이었잖아?”
B급 헌터 중에선 수준 이하의 박몽구였지만.
그래도 한때는 유망 있는 누커가 아니었던가?
암살적인 측면에서 뛰어났던 그는 나이트메어III의 팀장으로서 제격인 헌터였는데.
“기절을 해? 허허.”
“그럼··· 보고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떡하긴.
수습헌터훈련소는 헌터관리부의 산하기관.
비단 훈련결과뿐 아니라 특이사항 역시 보고하는 것이 철칙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어차피 수습생들은 아무 것도 못 봤다며?”
“아, 예. 그럼 나이트메어 팀은 어떡할까요?”
“상반기에 받은 격려금 있잖아? 교관들 입에 물리고 지퍼 채워.”
“알겠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이 외부로 새나가면 골치 아파질 것이며.
더 이상 시현에게 손을 댈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장광에게 있어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명표의 품에서 벗어나 아진의 동아줄로 갈아탄 장광이었기에.
“내가 이 자리에만 8년을 앉아있었어. 이쯤 했으면 건실한 자리 하나 내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8년간 이명표가 해주지 않은 것을.
아진이 해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장광이었다.
“그럼 어떠실 계획이십니까···?”
“죽기 전에 파란 기와집 대문은 넘어봐야지, 안 되겠어. 아진 최민호한테 통화 요청해.”
.
.
.
불시훈련이 종료된 그날 밤.
불시훈련 탓에 연기되었던 저녁점호가 있기 직전.
A클래스 생활관에서는 뜻밖의 풍경이 벌어졌다.
“죄송합니다.”
“······네?”
영문 모를 두 남자의 사과.
시현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제이가 당황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제이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기에 당황했지만.
시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불시훈련이 있기 직전.
제이에 대해 뒷담화를 했던 남자들이 아닌가?
모를 리가 없었다.
당황한 제이가 볼을 붉히며 되묻는다.
“뭘요······?”
“아까 저희가 뒤에서 험담을 조금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괜찮아요···. 다음부터 안 그러시면 되죠.”
제이는 손사래를 쳤고, 시현은,
“그만 했으면 충분한 것 같으니 자리로 돌아가세요. 곧 점호 시작합니다.”
“예. 그럼 쉬십쇼.”
“아, 잠깐. 그리고.”
“예?”
“앞으로 서로 친하게들 지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17주는 더 같이 봐야하니까. 무슨 말인지, 다들 아시겠죠?”
좌아아-.
그 말의 무게는 가히 놀라울 정도.
전달력과 힘이 깃들어있었다.
카리스마라고 해야 할까?
액티브스킬이 아니더라도,
고유스킬이자 패시브인 언령이 시현에게 있었기에.
시현의 말 한마디가 생활관의 분위기를 꽉 묶어 놓은 것이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편안하지 않다.
모두들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은연중에 알고 있는 것이다.
발전소에서 교관을 때려잡은 사람이 바로 시현이라는 것을.
A클래스뿐만 아니라 17기 수습생 전체가 인지하고 있었다.
시현의 강함을.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예!”
생활관 내 수습생들이 한입 모아 외쳤다.
시현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한 마음이 된 것이다.
누가 보면 시현이 교관인 줄 알 것이다.
정말로, 생활관 밖 복도.
저녁 점호를 준비 중이던 젊은 교관이 벽에 딱 붙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뭐, 뭐야, 저거······.’
언령의 전파력은 생각보다 넓었기에.
그날 A클래스의 점호는 30초 만에 끝나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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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1주차는 기본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만큼, 기력은 헌터에게 있어서 중요한 능력이다. 생명줄이라고 볼 수도 있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말.
시현은 교관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쓸 수 있는 기력은 한정돼있고, 채우는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
던전에서 조절하지 않고 무작정 사용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던전은 살아있는 자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던전을 탈출하는 순간까지도 방심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기력을 채우는 법부터 배워야겠지?”
헌터이론수업이 끝나자, 장년의 남자교관 ‘기전수’가 시범을 보인다.
“흐읍-.”
정자세로 앉아서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뒤 양팔을 좌우로 뻗는다.
스아아아-.
그 주위로 푸른빛이 모여든다.
물론 생도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연의 기(氣)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헌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윽고 교관이 눈을 떴다.
“이게 바로 메디테이션이라 불리는 스킬, 기본 중의 기본. 자세가 올바르고, 또 거듭 훈련할수록 스킬의 효율이 자연스레 상승한다. 그럼 다들, 배분받은 스킬북을 펼쳐보도록.”
솨아아아-.
시현이 스킬북을 펼치자 알 수 없는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몇 초간의 의식이 있은 후.
시현은 묘한 힘이 신체에 깃들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게 보통 사람들이 스킬을 터득하는 과정.’
시현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던전에서 혼자 습득만 하다가,
여기에서 이론을 배우고, 스킬을 터득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들 됐나? 그럼 나를 따라 자세를 취해보도록.”
배웠으면 직접 해보는 게 인지상정.
A클래스 수습생들이 기전수 교관을 따라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멍하니 앉아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박시현 수습생. 안 따라하고 뭐 하나?”
“꼭 양팔을 벌리면서 해야 합니까?”
“당연하지. 메디테이션은 양팔을 벌려야 작동되는 스킬인데.”
“그럼 기력시험을 치를 때에도 메디테이션으로 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라네. 명상스킬이라면 그 어떠한 것도 가능해.”
“그럼 됐습니다.”
교관은 그때까지도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2주 뒤, 시험을 치를 때까지.
.
.
.
기력시험 당일.
A클래스 수습생들 중 메디테이션을 시전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A클래스답게, 모두들 그들만의 명상스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선행학습이라고 하는 것.
최소 수백만 원짜리 E급 명상스킬에서,
심지어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B급 명상스킬까지.
헌터에게 있어서 명상스킬은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무릇 헌터라면 명상스킬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이 당연했다.
“엄청나구만.”
기력시험을 담당한 기전수 교관은 A클래스 수습생들의 기록에 놀랐다.
특히 이번 기수는 전 기수에 비해 전체적으로 월등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제이였다.
스으으으응-.
외부의 기(氣)가 제이에게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소용돌이마냥 흡수되는 꼴.
B급 스킬 ‘볼텍스 메디테이션’이었다.
‘수습생 신분에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스킬을 사용하다니···.’
돈이 있어야 헌터도 해먹는다는 소리가 틀린 게 아니다.
물론 그릇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마저도 불가능하지만.
‘저 정도면 만점을 받을지도 모르겠군.’
평점채점기준은 D급 헌터.
하지만 높은 등급의 스킬을 쓴다고 해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킬은 말 그대로 스킬.
S등급의 스킬을 쓰더라도, 시전자에 따라서 위력은 천차만별.
스킬이 몸에 얼마나 체화되었는가.
시전자의 성향에 잘 맞는가.
기력의 손실률이 얼마나 적은가.
자세가 얼마나 올바른가.
등등.
스킬북으로 스킬을 터득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예컨대, F등급의 메디테이션이 B등급의 볼텍스 메디테이션보다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이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저 아이가 이번 기수 수석인가?’
그 생각이 들기를 10초.
교관은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시험장 한 가운데에 서있는 시현에게서.
솨아아아아아-.
엄청난 양의 기력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저건··· 뭐지?’
처음 보는 명상스킬이었다.
자세. 동화율. 기력의 손실률 등.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교관의 눈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
그야말로 ‘완성형 스킬’.
시전자와 스킬이 하나가 된 경지인 것이다.
‘설마 지난 8년간 저 스킬에만 몰두한 것인가?’
그러지 않고서야, 스킬을 저 정도로 완벽하게 다룰 수는 없었다.
아니면 재능이 엄청나거나.
확실한 건, 제이의 볼텍스 메디테이션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것.
결과는 당연히.
[박시현]
(1SPS) 5.0/5.0
(1SPA) 5.0/5.0
(1SPQ) 5.0/5.0
(1SPR) 5.0/5.0
1분간 기력이 흡수된 속도.
1분간 흡수된 기력의 양.
1분간 흡수된 기력의 질.
1분간 흡수된 기력의 보존률.
모두 5.0 만점.
그랜드슬램 달성이었다.
물론 D급 헌터 기준으로 만점이었지만.
만약 채점기계세팅이 A급 헌터로 돼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다.
교관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시현을 계속 응시했다.
단점이 없다는 것이 단점일 정도로 편안해 보이는 자세.
이 순간을 위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들였을까?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실 시현은 고작 말 한마디 했을 뿐.
언령 스킬에 따라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쉽게 말해, 시현의 스킬은 언제나 효율이 100%인 셈.
재능으로 보나 노력으로 보나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기전수 교관은 그 경이로운 광경을 한동안 넋 놓고 쳐다봐야 했다.
미친 듯이 궁금했다.
박시현, 저 남자가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포켓이 능력을 따라가질 못해.’
포켓(Pocket).
소위 무협에서 단전이라 말하는 그것.
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사실 시현의 경우, 포켓이 작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마저도 상당한 수준의 크기였다.
다만,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해 작을 뿐.
기력은 어마어마하게 차오르는데.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없는 것이다.
즉,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인가?
기전수 교관은 시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순수 '기력 교관'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