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약 30분 전, 나가라고 했던 시현의 말에 진짜로 퇴장했던 나이트메어III의 교관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훈련소 제 7교장에 서있었다.
어리둥절.
왜 발걸음이 저절로 돌아갔던 거지?
총 9명으로 구성된 나이트메어III 팀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였습니다···.”
“······.”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기억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명 누가 나가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
“그걸 말이라고 해? 설마 우리가 그 말에 쫄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거야? 환술이라면 모를까.”
명색에 C급 헌터인데.
수습생들을 잡는 것은 이여반장만큼이나 쉽거늘.
더군다나 팀장 박몽구는 B급 헌터가 아니던가!
팀장 박몽구는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생각했다.
3시간 전.
장광 훈련소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오늘밤 모든 수습생들을 포박하라고.
의아했지만, 훈련과정은 소장이 재량껏 조정할 수 있었으니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엄청난 놈이 들어온 거야. 그때 그 괴물수습생이 들어왔던 것처럼.”
“5년 전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었지.”
그랬던 적이 있었다.
5년 전, 7기 수습생 중에서.
기력의 기재라 불리는 세기의 서포터가 나왔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제격이었다.
전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서포터.
당대의 소장은 그 자를 시험하기 위해 지금과 비슷한 일을 벌였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이트메어 쓰리가 아닌 투였지 않습니까?”
나이트메어II와 나이트메어III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더군다나···.
“게다가 오늘은 입소첫날입니다. 둘째 주라면 모를까, 첫날인데 나이트메어 쓰리를 발동시키다뇨. 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이 입소했기에···.”
“아까 봤잖아. 그 놈 말 한 마디에 우리 몸이 제멋대로 움직인 거.”
“아, 그렇다면!”
“그래. 희귀 중에서도 희귀하다고 알려진 권능. 환술사가 틀림없어.”
놈은 환술사가 틀림없다.
해법을 찾은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공습종료까지 31분 남았습니다.”
“젠장.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겼군.”
우선 A클래스부터 잡은 뒤 나머지 클래스를 차례대로 잡으려고 했건만.
소장을 볼 면목이 없게 됐다.
잘하면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는 상황.
“이렇게 된 이상 A클래스만이라도 잡는다.”
“하지만 상대에겐 환술사가 있잖습니까? 저희 쪽엔 환술을 감당할 만한···”
“멍청하긴.”
“···예?”
“환술사가 딜러야? 서포터지.”
즉, 육탄전엔 쥐약이라는 뜻.
거기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다굴 앞에선 장사 없는 법이야. 특히 기습 앞에선.”
.
.
.
공습종료까지 20분남은 상황.
A-F까지의 모든 수습생들은 시현의 통솔 하에,
훈련소 이착륙장 너머에 위치한 통합발전실로 도망쳤다.
제 7교장과 정 반대편에 있어서 시간 벌기에 딱이었고.
몸을 숨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환경이었다.
빛 한 줄기 없는 완벽한 암흑덕분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시현 옆에 서있던 제이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거 진짜 뭐였어요? 보고도 안 믿기던데···. 환술이라도 쓸 줄 아는 거예요?”
“아, 그거. 별 건 아니고, 자신감이라고 해야 하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시현의 고유스킬이자 SSS급 스킬이었다.
언령 진(言霊 眞).
얼마 만에 써본 스킬인지 모르겠다.
그것의 잠재력은 시현 역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시현이 알고 있는 것은 그저.
1. 재사용대기시간이 길고.
2. 아무 말이나 다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고.
3.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는 상대가 있는 반면.
4. 씨알도 안 먹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후우.”
기력이 엄청나게 소모된다는 것.
‘기력만 좀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력이란 게, 후천적으로 쉽게 늘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천고의 영약을 먹거나 높은 수준의 버프를 받는 게 아니라면.
꾸준한 훈련과 아티팩트로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시현이 무리해서 언령 진을 사용한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아무리 그래도 수습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관을 패버릴 순 없지 않은가?
그것도 이유라면 이유였고.
둘째, 과연 ‘언령 진’이 동시에 몇 사람에게나 먹혀들지.
어느 수준까지 통할지.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상대로 쓰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시간도 많이 벌었고.
여러모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7여분만 더 버티면 된다.
아무리 나이트메어III 팀이라고 해도,
이 넓은 훈련소에서 통합발전실을 콕 집어 찾아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현의 생각을 무참히 깨버리듯.
스스스슥-.
‘기어코 찾아왔군.’
공습종료까지 고작 6분남은 상황.
발전실 외부에서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른 수습생들은 듣지 못했지만 시현의 귀에는 생생히 들렸다.
암살자에게서나 나올법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스스스슥!
‘들어온다.’
발전소의 입구는 동서남북 총 네 군대.
“대표님.”
제이 역시 외부의 기척을 느꼈는지 시현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시현이 우직하게 내뱉는다.
“가만히 있어요. 다들.”
시현에게는 대표로서 져야할 책임이 있었다.
수습생들이 잡히지 않도록 대표답게 잘 통솔할 것.
그렇기에 시현은,
우직!
양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쩔 수 없지.’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하지만 혼자서 어쩌시려고··· 저희가 도울게요.”
“말은 고맙지만 사양하죠.”
“······하지만 아무 것도 안 보이잖아요. 상대는 분명 야간투시경을 착용했을 텐데....”
시현이 걱정되는 제이였다.
대표가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가는 건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시현의 생각은 정반대.
‘방해만 되겠지. 고작 수습생들이니.’
물론 시현 역시 ‘고작’ 수습생이었지만, ‘괴물 같은’ 수습생이었기에.
시현은 아무 걱정 없이 툭 내뱉었다.
“사람이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자하니.”
우우우웅!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시현의 눈과 귀에 빛이 돌았다.
일개 수습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빛.
그 순간부터, 외부에서 대기 중이던 나이트메어 교관들의 무전소리가 시현의 귓가에 전달되었다.
치직.
치지직-.
-1조, 동쪽으로 빠르게 들어가 수습생들을 교란시킨다. 하나, 둘, 셋!
콰아앙!
그 즉시 동쪽에서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동시에 시현이 동쪽으로 권격(拳擊)을 내질렀다.
상대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파아아아앙!
“어억!”
동시에 교관 두 명이 비명을 흘렸고.
다시금 나이트메어 팀의 무전이 울렸다.
-1조! 1조! 응답하라!
교신이 될 리가 없었다.
1조의 두 교관은 이미 대자로 바닥에 뻗었으니까.
-젠장. 무슨 일이···. 어쩔 수 없다. 2조, 3조, 4조 한 번에 투입한다! 닥치는 대로 잡아와!
무전이 시현에게 도청이 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나이트메어 팀장 박몽구는 팀원들을 각각 서/남/북쪽 출입문으로 보냈다.
그 찰나.
철컥-.
콰아앙!
동시다발적으로 세 군대에서 출입문이 열렸고.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던 시현은.
후욱!
쉐도우 복싱을 하듯 허공으로 주먹을 날렸다.
서쪽으로 한 번.
퍼억!
“우억···!”
남쪽으로 한 번.
퍽!
“어억....!”
마지막으로 북쪽으로 권격이 날아가 4조 조원들의 복부를 강타.
퍼어억!
퍼억!
참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단숨에 8명을 기절시켰다.
발전소 안에 숨어있던 수습생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어둠 탓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퍽 소리가 나더니 억 소리가 나면서 사람들이 털썩 주저앉는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그나마 제일 가까이에 있었던 제이는 시현의 몸동작을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었지만.
시현의 몸놀림이 경탄스러울 정도로 빨랐기에.
권격이 남기고간 잔바람만을 느꼈을 뿐이다.
같은 수습생으로서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수준인 것.
그래도 그 정도는 양반이었다.
가장 놀란 이는 단연 나이트메어III 팀장 박몽구.
이미 발전소 안에 숨어들어온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잠깐만······.’
방금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인가?
야간투시경에 오류가 생긴 것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저 수습생은···.
헌터중앙지구에서 파견된 정보요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 정도면 최소 A급··· 아니 어쩌면, ······S급?’
공습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5분.
수습생들을 잡아야하는 박몽구의 입장이 뒤바뀌었다.
이제는 자신이 숨어있어야 했다.
괴물신인의 활약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 그게, 원하는 대로 될까?
시현이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그의 눈에 야간투시렌즈가 덧입혀진 듯 짙은 어둠이 투시되었고.
천장에 거미처럼 딱 붙어있는 박몽구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굴뚝으로 들어 왔나보군.’
역시 B급 헌터 박몽구.
누커였던 그는 암살에 특화된 능력덕분에 시현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부질없는 능력이었다.
대쪽 같은 성격의 소유자 시현에게 발견되었으니까.
‘더 이상 적의가 보이지는 않는다만.’
위험요소를 방치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시현은 손바닥을 머리 위로 뻗었다.
스윽.
그렇다고 죽일 생각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교관이니까.
앞으로 잘 봐달라는 뜻으로.
“살짝.”
기절할 정도만.
“따끔할 겁니다.”
그런데···.
쿵!
아무 짓도 하지 않았건만 박몽구가 스스로 땅바닥에 떨어져 착지했다.
얼굴은 땀으로 흥건했고 아랫도리는 축축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이미 시현에게 굴복했던 육체였기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몸이 스스로 반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