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9화 (9/100)

# 9

침대 위에 누운 시현은 핸드폰을 들고 거래 어플에 접속했다.

“흠.”

어플에 들락날락거린 게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아직 안 팔렸다니.

[진동의 양날도끼]

등급 : 2성 정예

판매희망가 : 50,000,000원

판매자 : 박시현

안심번호 : 0600-XXXX-XXXX

“너무 비싸게 올렸나?”

메카오거가 남기고 간 양날도끼.

정식명칭은 진동의 양날도끼로,

타격 시 일정확률로 여진을 일으킬 수 있는 아티펙트다.

등급은 2성 정예.

하지만 도끼의 크기 때문에 인기가 많지는 않았다.

수요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한편, 오거의 사체는 그 당일 날 곧바로 정부기관에 제값을 주고 팔아버렸다.

보존률이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

그러나 도끼는 아직까지도 안 팔렸다.

평균 거래가에서 100만원이나 낮췄는데도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철갑오거의 방망이 역시 마찬가지.

“그냥 내가 써?”

절레절레.

시현의 고개가 돌아간다.

암만 생각해도 도끼나 방망이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간 팔리겠지.”

당장 급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미 1억이란 돈이 수중에 있으니 상관은 없다.

아티팩트 시세가 떨어지기 전에만 팔면 되니까.

그런데.

지이잉.

타이밍 좋게 날아온 문자 한 통.

[진동의 양날도끼 네고 가능합니까?]

“흐음-.”

이럴 땐 보통 어떻게 하더라?

언젠가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변수를 이용해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어라’ 라는 말.

시현은 답장을 보냈다.

[철갑오거 방망이까지 합해서 5300.]

철갑오거 방망이의 평균 거래 가는 400만원.

둘이 합해서 5200까지는 봐줄 수 있다.

지이잉-.

[5200 어떠세요?]

바로 온 답장.

급하긴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네.

하지만 시현은 급한 것 하나 없었다.

[수고하세요]

[5250은요?]

[강남역 10번 출구 12시에 봅시다.]

.

.

.

“수고하세요.”

방망이와 도끼를 넘기고 오는 길.

시현은 현금 5250이 담긴 돈 가방을 받았다.

아티팩트 거래를 할 때, 현금으로 하던 계좌로 하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구매자는 구매증명서를,

판매자는 판매증명서를,

한국거래위원회에 제출하면 끝이다.

시현은 모든 거래를 끝마친 뒤 은행에 가서 5250을 예금했다.

통장잔고는 어느새 8천.

어윤성에게 받았던 1억은 집에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

원인이 불분명한 돈은 계좌추적을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

안 그래도 시현은 정부의 감시대상일 게 분명했다.

지금만 해도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경비가 보고 있는 신문이 시현의 눈에 들어온다.

[청담동에 발생한 2성 던전, 민간인 박 모 씨의 활약으로 클리어!]

그날의 사건은 잘 마무리됐다.

하나만 빼고.

‘김은혜. 던전을 어떻게 탈출한 거지?’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때, 김은혜는 분명 던전에 갇히지 않았다.

던전이 생기기 직전, 모종의 방법으로 탈출했던 것이다.

광범위 텔레포트는 절대 무리고.

그럼 아티팩트를 사용한 건가?

시현은 집으로 돌아가 SNS에 접속했다.

8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계정이 살아있었다.

로그인까지 끝마친 시현은 김은혜의 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녀에게 미련이 남은 것은 절대 아니었고.

그저, 무언가 알아낼 게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들어가니 프로필 계정에 이렇게 나와 있었다.

“최민호 님과 달달한 연애 중?”

그때 그 교회오빤가?

“음.”

최민호에 대한 정보는 나와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기긴 했는데.

그 때.

띠링-.

느닷없이 내 계정으로 메시지 한통이 날아왔다.

[헐. 박시현이냐? ㅡㅡ]

이용수.

불알친구였다.

.

.

.

삼성동의 한 고급 바.

시현은 오랜만에 모인 고등학교 동창들과 한잔 적시는 중이었다.

동창회는 아니고, 그 당시 같이 어울려 다녔던 친구들 모임이랄까.

재력가 자제들의 모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새끼, 그 동안 뭐하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야?”

“장례식 끝나고 연락도 안 되더니. 8년 만에 페북 로그인을 해?”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크하하!”

오랜만에 봐서 기쁜 마음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한 마디씩 쓴 소리를 퍼부었다.

물론 농담조로.

“그래도 건강하니 다행이다.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헛소문이었나 봐?”

“실종은 무슨. 어디 조용한 데서 요양 좀 하다왔다.”

피식.

갑작스레 반대편에 앉은 남자가 조소한다.

“고생 많았다.”

그의 이름은 천우현.

한성그룹의 후계자이자, 한성H&M의 얼굴마담헌터.

그가 말을 덧붙인다.

“그간 빚쟁이들한테 쫓기느라 참 고생 많이 했어.”

천우현의 말 한 마디에 짙은 정적이 내려앉는다.

“네 아버지, 개인채무도 해결 못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너 그것 때문에 도망 다닌 거 아니었냐?”

“잘 알고 있네. 천우현.”

“내가 예전부터 정보망은 좀 빨랐지 않냐.”

동시에 시현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놈이기도 하다.

“그러게 내가 그때 장례식장에서 충고했잖아. 빨리 상속 포기하라고. 그런데 뭐 받을 게 있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냐?”

시현의 부모가 장례를 치르던 날.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장례를 도왔다.

천우현도 마찬가지.

그때 그가 그렇게 말했었다.

상속을 포기해야 빚을 면제 받을 수 있다고!

변호사도 그렇게 조언해줬다.

하지만 시현은 끝끝내 상속을 포기하지 않고.

1년간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방방곳곳으로 도망 다녔다.

하지만 지금의 시현은···.

“충고는 고마운데, 내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마라. 죽여 버리기 전에.”

예전과 달랐다.

차앙!

시현이 술잔으로 테이블을 내리친다.

두드드드드-.

테이블이 흔들린다.

천우현이 몸을 움츠리며 생각한다.

‘뭐지? 착각인가? 방금 살짝 땅이 울렸던 것 같은데······.’

살짝 겁먹었던 천우현은 정신을 가다듬고선 시현을 살살 긁어대기 시작했다.

“새끼가. 더 잃을 게 없어서 그런가, 성격이 완전 걸레짝이 됐네.”

“칭찬 고맙다.”

“큭큭. 그래서 그 많은 빚은 언제 갚으려고?”

끊임없이 시현을 건드린다.

예전에 잘나가던 시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막힌 권능을 받은 것도 아니고.

천우현은 그런 시현을 밟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만 하자.”

보다 못한 이용수가 나섰다.

“너넨 간만에 만나서 또 싸우냐? 특히 천우현이 너, 철 좀 들어라.”

“···그래, 내가 용수 네 봐서 참는다.”

이용수의 말 한마디에 천우현이 입을 굳게 다물었고.

이후 분위기가 다시금 무르익었다.

술자리의 대화주제는 단연 회사 얘기, 헌터 얘기.

올해 3월 정기시험에서 합격한 신입헌터 최경수가 화두가 되었다.

“경수 넌 요즘 어떠냐? 아직도 과장이 많이 갈궈?”

“말도 마라. 저번에 터틀레오 잡다가 작은 실수 한 번 했다가 욕 오지게 처먹고 시말서까지 썼다.”

“큭큭. 그래도 우리보단 낫지. 넌 몬스터 좀 잡으면 돈 들어오잖아.”

“그게 부잣집 도련님이 할 소리냐? 난 목숨 걸고 돈 번다, 이 새끼야.”

“차라리 그게 더 낫지. 우리는 돈 걸고 목숨 번다. 결재 한 번 잘못해서 날아가는 모가지가 몇인데.”

돈 잃는 게 더 무섭다는 기업인 친구들.

목숨 잃는 게 두렵다는 헌터 최경수.

그리고 그 사이.

기업인과 헌터를 모두 꿰차고 있는 천우현이 입을 열었다.

“다들 그만해라. 여기, 둘 다 가지지 못하는 애가 있는데. 그게 애 앞에서 할 소리냐?”

천우현이 시현을 지목하자.

피식.

시현이 이죽거렸다.

“나도 이번에 헌터시험 봐.”

.

.

.

찜찜했던 술자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이용수가 시현을 불렀다.

“담배나 하나 피우고 가자.”

“난 끊었다.”

“오, 니가?”

던전에 8년이나 갇혀있다 보면 저절로 끊게 된다.

라는 말을 집어넣고, 시현은 다른 말을 꺼냈다.

“천우현이 요새 잘나가나봐?”

“한성그룹? 잘 컸지. 지금도 크고 있고.”

“그런가보네. 한성‘건설’도 아닌 한성‘그룹’인거 보니.”

아버지가 죽지 않았더라면.

현자건설도 지금쯤 현자그룹이 됐을 텐데.

시현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이용수가 뜬금없이 사과한다.

“그땐 미안했다.”

“갑자기 뭐가?”

“네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못 도와준 거.”

“자식이. 뭘 미안하냐. 네 사정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니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고 유학 갔었잖아.”

“그래···. 이해해주니 고맙다.”

“내가 너네 아버지 엄한 걸 내가 모르냐.”

둘은 친하다.

이해관계를 넘어서.

8년간 만나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가장 친한 사이였다.

“좀 걷자.”

“기사는?”

“너랑 얘기하려고 좀 쉬라고 했어.”

저벅-.

이용수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나한테 숨기는 거 있냐?”

“뭔?”

이용수의 돌발발언에 시현은 당황했다.

혹시 자신이 미지의 던전에 갇혔던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다행히 그건 아닌 듯했다.

“빚. 못 갚았을 거 아냐.”

“그건 갑자기 왜?”

“얌마. 나 이용수야. 아버지 말이나 고분고분 듣던 코찔찔이가 아니라고.”

“너 이 새끼···.”

이용수의 말뜻을 이해한 시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이은 것은 이용수였다.

“그러니까 속 시원히 말해. 네 빚 갚아줄 능력은 충분하다.”

“돈 많나보다?”

“여기저기 묻어놓은 게 좀 있지. 그래서 얼마나 필요한대?”

“1000억 가능?”

“······.”

이용수가 한 템포 쉰다.

“야 이 씨···. 뭔 소리야. 빚이 뭔 그렇게 늘어나.”

“무리겠지?”

“무리긴 마. 형만 믿고 걱정 붙들어 매라.”

“묘책이라도 있냐?”

“그럼 없겠냐? 빚은 갚는 게 아니라 변제 받는 거지. 흐으.”

시현의 입 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간다.

던전에서 귀환한 이래로 가장 편안한 시간임에 틀림없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뭐 나한테서 얻어먹을 콩고물이라도 있는 것도 아닌데.”

“얌마. 괜히 불알친구냐? 한 쪽 터지면 다른 한 쪽이 더 고생해야 돼. 그러니 서로 돕고 사는 거지. 특별한 이유가 있겠냐? 나 짝불알 되기 싫다.”

“큭큭. 네 말이 맞다.”

“그래, 임마. 걱정 말고. 내일부터 내가 알아볼 테니까, 힘든 거 있으면 아무 때나 연락해.”

이용수가 명함지갑에서 VIP전용 명함을 내민다.

하지만 시현은.

“빚은 됐으니까 대신 뭐 하나만 사주라.”

“뭐?”

“저거.”

시현이 거대한 무언가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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