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시현이 핸드폰을 개통하자마자 전화 한 통이 왔다.
헌터관리부 비서관의 전화였다.
-요구하신 것은 다 해결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약속은 속전속결로 이행됐다.
더 이상 시현의 신용엔 문제가 없었고 그 어떤 경제활동도 가능했다.
치열했던 협상 끝에 평범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럼 시간은 언제 괜찮으십니까?
“천천히 하죠. 시간은 아직 많으니. 사람 머리란 게, 억지로 쥐어짜내면 더 기억이 안 나는 법 아니겠습니까?”
지난 날, 시현은 자신이 던전에서 겪었던 모든 것을 털어 넣지 않았다.
무려 8년이란 세월이다.
8년 동안 겪은 일을 하루 만에 다 얘기할 순 없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권능은 더더욱 비밀로 해야 했고.
-그럼 또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십시다.”
전화를 끊자 이번엔 문자가 울린다.
[답장 잘 받았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어윤성 팀장이다.
시현은 그에게서 받을 게 있었다.
[강남역 10번 출구로 오세요]
시현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오피스텔을 나섰다.
강남소재의 오피스텔.
이명표 장관 측에선 지원해준 오피스텔로, 40평정도 되는 규모였다.
혼자 살기엔 과분했지만,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부족했다.
과거의 누렸던 부와 명예를 되찾으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시작은 일단.
“여깄습니다.”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만난 어윤성이 돈 가방을 내밀었다.
“안 세 봐도 되겠죠?”
“그럼요. 정확히 1억입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장관님께 알아듣게 얘기했으니 일자리 걱정은 마시고요.”
“안 그래도 회사 수뇌부에서 바로 반응이 오더군요.”
“뭐라던가요?”
어윤성이 밝은 표정을 내보인다.
“좋은 결과 있을 거랍니다.”
“하하. 승진 축하드립니다.”
꾸벅.
어윤성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낸다.
“약소하지만 이건 제 감사의 표시······”
“됐습니다. 어차피 저도 얻은 게 있잖습니까.”
때로는 푼돈이 더 탈나기 쉬운 법.
“이거면 됐습니다. 정 감사하시다면 은혜는 다른 걸로 갚으시죠.”
“은혜라면···”
“뭐 좀 묻고 싶군요.”
시현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도대체 뭘 물으려는 것인지.
혹시라도 회사내부의 기밀 따위를 물으면 곤란한데···.
“잘하는 치과 좀 아십니까?”
“예?”
“임플란트 해야 되는데. 어디가 좋을지 모르겠군요.”
던전에서 처음 몬스터와 조우했을 때.
치아가 나갔던 시현이다.
“아···. 그런 거라면 인터넷에 쳐보심이······.”
“그럼 은혜는 다음에 갚으시는 걸로.”
시현은 쿨하게 떠났다.
혼자 남은 어윤성은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연신 뇌까렸다.
“뭐지, 저 사람···.”
사람이 던전에 갇히면 저렇게 되는 건가?
시현은 도저히 걷잡을 수없는 남자였다.
.
.
.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나오는 치과는 다 거기서 거기.
입소문을 타면 어디든 훌륭하다고 나온다.
연예인이 이용했다느니 어쩌니.
썩 내키지 않았던 시현은 기억하나를 꺼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소량의 기력이 몸에서 빠져나간다.
뇌에 남아있던 옛날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눈앞에 형상화된다.
마치 고전영화를 보는 듯.
아직 위력이 낮아서 흐릿하지만 보이기는 한다.
초·중·고등학생 시절.
치과에 갔던 기억이다.
“그래, 휴먼 치과였어.”
휴먼 치과.
치아에 문제가 없어도 스케일링 하러 꼬박꼬박 갔던 곳이다.
그래도 면식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겠지.
시현은 청담동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전박대를 예상하진 못했다.
“예약하고 오셔야 됩니다.”
퉁명스럽게 말하는 리셉션니스트.
오로지 예약제로 운영된다고?
그랬던가?
그땐 부모님이 알아서 다 해줘서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럼 예약해주세요. 돈은 있으니까.”
치과를 나온 뒤 미용실을 찾았다.
아무래도 겉모습이 이러니까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는 모양이다.
곧바로 인근의 헤어살롱으로 들어가자.
“어서오세······ 억···.”
센서티브해 보이는 남자미용사가 입을 적 벌린다.
어디서 이런 거지새끼가 왔지?
커트비용만 9만원인데.
돈은 있나?
이런 얼굴.
그 모습에 시현은 당당히 돈 가방을 열었다.
5만 원짜리 지폐가 수북하다.
한 덩이 꺼내서 열장 챙겨줬다.
그리고 말했다.
“풀 코스. 부탁합니다.”
.
.
.
몇 시간 뒤, 청담동 휴먼치과 리셉션.
“예약했는데요.”
“죄송한데 누구······.”
“박시현. 아까 왔지 않습니까.”
“헉!”
이 남자 뭐야!
아까 그 거지는 어디가고, 어디 부잣집 도련님이 온 거지?
이발에 면도까지 깔끔하게 돼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섹시한 포마드 머리에다가···.
피부까지 좋다!
이제 보니 엄청 잘생겼잖아?
당연하다.
그래도 한때는 잘나가던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던가?
태생적으로 귀티가 좔좔 흘러넘치는 시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옷이 날개죠?”
“아··· 네···. 멋지십··· 아!”
리렙션니스트는 자신도 모르게 말할 뻔했다.
너무 멋있다고!
“슈트가 너무 잘 어울리세요······.”
당장 충무로로 가서 연기해도 될 본판이다.
능력 좋은 실장님이나 젠틀한 재벌 3세 배역이 딱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하하. 감사합니다.”
웃으니 확 깬다.
이 남자, 임플란트가 절실하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시현은 안내를 받아 코디네이터 실장실로 들어갔다.
“임플란트 하러 오셨다고요?”
“예.”
“그럼···.”
시현은 상담할 것도 없이 전적으로 그의 의견을 수용했다.
시술예약을 끝마친 뒤 밖으로 나왔다.
리셉션니스트가 차를 가져온다.
“시술 전 주의사항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드르륵-.
한참 설명을 듣던 와중에 출입자동문이 열린다.
낯익은 여자가 걸어온다.
“허···.”
“또 만나네.”
김은혜다.
얽히기 싫었는데, 이렇게 또 만나다니.
악연이긴 한가보다.
“흥.”
그녀는 도로 치과를 나갈까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안으로 들어왔다.
“임플란트 하러 왔나봐.”
“오빠 덕분에.”
김은혜가 시현을 노려본다.
묘한 기운이 감돈다.
시현은 확실히 느꼈다.
‘이 냄새···. 많이 맡아본 건데?’
그 순간.
콰과과과광!
지면이 박살났다.
.
.
.
재앙은 언제나 그렇듯 느닷없는 불어 닥친다.
건물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하로 떨어진 사람들 대부분이 부상을 당했다.
“크윽··· 내, 내 다리! 아아아악!”
사지가 절단된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손끝하나 다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를 테면.
“던전인가?”
멀쩡히 서있는 시현.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컴컴한 어둠뿐이 안 보였지만 이윽고 곳곳에서 플래쉬가 터져 나왔다.
생존자들이 킨 핸드폰 불빛이었다.
‘김은혜는 어디있지?’
아마 다른 곳으로 착지한 모양.
김은혜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흐윽···. 여기, 힐러 없나요?! 사람이 죽어가요!”
“여기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힐러가 있었다.
휴먼치과에 근무 중이던 수간호사가 미약하지만 힐러 스킬을 보유 중이었다.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돌봤고, 다른 사람들도 서로를 도왔다.
“더, 던전이 생긴 건가요?”
“그런 거 같아요···.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죠.”
“그러다가 몬스터가 오면 어떡하죠···?”
“모, 몬스터······.”
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흐윽. 어쩌면 좋아···.”
“다음 주면 결혼식인데······ 엉엉.”
모두가 침통한 가운데.
저벅.
가장 먼저 발을 뗀 건 시현이었다.
“어, 어디가십니까?!”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시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뭡니까?”
“저는 헌터 박강인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요?”
“예···?”
박강인은 시현의 반응에 놀랐다.
보통 헌터라고 말하면 태도가 바뀌어야 정상인데.
요즘 같은 세상에, 사짜직업보다도 대단한 게 헌터인데!
이 남자는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설마, 이 남자도···
“헌터이십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이라면··· 수습생이시군요?”
“아뇨.”
뭐? 그럼 설마 지망생?
아직 자격시험도 합격하지 않았다는 거잖아?
박강인은 시현의 태도가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참았다.
아무래도 생존자 가운데 헌터는 자신 밖에 없는 듯 하니까.
자신이 진두지휘해야했다.
생각을 마친 박강인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은 접니다. 던전에 관해서 가장 잘 아는 것도 저고요.
“확신합니까?”
“그럼요. 저는 현직 헌터거든요. 그러니 제 통제에 따르십쇼.”
“음. 당신이 내 상관이요? 난 백순데?”
“지금 말장난하자는 게······”
콰아앙!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터진 폭발음.
이어 들려오는 괴성.
- 우어어어······.
“몬스터다! 모두 몸을 숨기세요!”
무슨 몬스터가 나올지 모른다.
겉보기로 봐서는 1성 던전인 듯한데.
미리 몸을 대피해서 나쁠 것 하나 없다.
몬스터 처리는 순전히 박강인의 몫이 될 것이다.
그가 이곳에서 유일한 헌터니까.
‘1성 정도면 혼자서 충분히 깰 수 있을 거야···.’
박강인은 D급 헌터 중에서도 중상위권.
1성 던전을 깨지 못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하사 받은 권능은 ‘검’.
솔로잉에 최적화된 근접딜러 검사였다.
쿠구구궁!
나왔다.
마침내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우어어어···.
“처······ 철갑오거?”
철갑오거.
2성 레어 몬스터로, 어지간한 D급은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없는 몬스터다.
그 정도로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공격이 약한 것도 아니다.
놈의 방망이에 맞으면 필경 사망할 것이다.
“철갑오거가 나올 리가···.”
그렇다면, 1성 던전이 아니었단 소린가?
-으어어어!
철갑오거가 날뛰기 시작한다.
방망이를 휘두른다.
저적.
바닥에 금이 갈라진다.
곧이어 연쇄작용으로 폭발까지.
쿠앙!
저것이 철갑오거가 무서운 이유다.
단단한 방어력과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겸비하였기 때문.
박강인이 어떻게 해볼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구조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1분 1초가 시급한데.
시간이라도 버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국가직 헌터, 공무원의 의무니까!
스앙-.
박강인의 손에 롱소드가 소환된다.
뿐만 아니라 슈트와 투구까지 장착된다.
물론 고급 아티팩트는 아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기본세트일 뿐.
싸구려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꽈득-.
박강인이 롱소드를 세게 움켜쥐며 기회를 엿본다.
전면전은 무조건 피해야한다.
오거의 느린 스피드를 공략해야한다.
그것만이 살길.
-으어어어어!
휘익!
철갑오거가 방망이를 내리꽂는다.
‘이때다!’
박강인이 디딤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파앗!
무언가 쏜살같이 앞을 지나갔다.
‘아까 그 헌터지망생······?’
그렇다. 시현이었다.
그가 나지막이 말한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불끈-.
그 즉시 시현의 육체가 강화되었고.
“희망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강화된 주먹이 철갑오거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쿠와아아아아앙!
복부에 정통으로 주먹을 맞은 철갑오거는.
-그어어어어······.
쿠웅-.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