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5화 (5/100)

# 5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자신을 차버리고 간 전 여자 친구든 생판 모르는 사람이든.

무엇이든 간에 혼자 있는 것보단 낫다.

끼이익-.

차가 신호에 걸리자 시현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살아있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싱그러운 가로수들.

모든 것이 살아 숨 쉰다.

던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때깔 좋다.”

알록달록한 도보 블록.

건물들의 네온사인.

다채로운 풍경이 시현의 시각을 만족시킨다.

여기는 더 이상 칙칙한 세상이 아니다.

시현은 어윤성 팀장에게 물었다.

“내가 갇혀있던 곳은 무슨 던전입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세계 일곱 군데에서 동시에 발생한 던전인 것밖에는···.”

“다른 여섯 군데는 어떻게 됐답니까? 거기도 다 탈출했대요?”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 같습니다만···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 양반은 정확히 아는 게 뭐야?

“어디 소속이라고 하셨죠?”

“한국헌터연합입니다.”

“팀장이라고요?”

“예. 정확히 말하자면 강원지부 5팀장입니다.”

5팀장이면 강원지부에만 최소 다섯 개 팀이 있다는 뜻.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낮다.

팀장이래서 그럭저럭 중직자인 줄 알았는데.

“급은요?”

“급이라면···”

“헌터 등급이요.”

어째선지 둘의 위치가 바뀐 느낌.

언제부턴가 심문하듯 질문하는 박시현과,

“B급입니다···.”

고분고분 대답하는 어윤성 팀장.

구태여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기세에 눌려버린 것일까?

저도 모르게 대답하게 된다.

지부장이나 되는 상관 앞에 선 것만 같은 느낌.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왠지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기도 하고······.

“B급이라···.”

시현이 턱을 괸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윤성은 그럭저럭 대단한 인물인 듯하다.

세상엔 D급 헌터가 대부분이니까.

“그럼 당신 위에 지부장이 있겠군요?”

“그렇죠. 강원지부장님께서 강원도를 맡고 계십니다.”

“이번에 나 때문에 승진하시겠네.”

“예?”

“그쪽도요.”

시현은 현재 자신의 위치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남자가 아닌가?

미지의 던전에서 탈출한 유일한 남자.

오직 자신만이 그곳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무슨 몬스터가 나왔으며, 어떠한 힘을 얻었는지.

어깨가 으쓱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일급기밀을 알고 있으니.

입만 잘 털어주면 정부로부터 많은 것을 취할 수 있으리라.

속된 말로 삥 뜯는다고 하지.

흐흐.

어깨를 들썩대며 웃는 시현.

그를 바로 앞에서 지켜보던 어윤성은 내심 불안했다.

“확인 차 여쭤보는 겁니다만, 아까 하셨던 약속은···”

“한 입 갖고 두말 안 합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예.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으신가요?”

“많죠, 그럼. 8년 만에 깨어났는데. 아, 대통령은 누굽니까?”

.

.

.

이명표 현 헌터관리부장관은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정계의 핵심인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던전이 생긴 이래로 권력의 중심이 헌터관리부로 집중되어왔기 때문.

이명표가 괜히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일전에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바 있으며,

더욱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순탄대로가 펼쳐질 것이다.

“수고들 했네.”

“아닙니다, 장관님. 여기 앉으시지요.”

이명표는 미리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 강화유리 너머에 마련된 취조실을 바라보았다.

남자 둘이 이제 막 대화를 시작하려고 한다.

“저 자가 생존자인가?”

“예. 박시현이라고 합니다.”

“프로필은?”

“여기, 국정원에서 받은 정보입니다.”

비서관이 보고서를 제출한다.

박시현의 정보를 요약해놓은 보고서.

대충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이름 박시현

성별 남

나이 28

연애 1회(아진E&M 소속 헌터 김은혜와 교제)

특징 : 현자건설(現 아진건설) 사장 박종기의 장남

역시 국정원.

평생에 한 번 있었던 연애까지 파악해놓았다.

“과연.”

이명표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비서관에게 물었다.

“현자건설이면 8년 전 아진그룹에 인수합병된, 맞나?”

“맞습니다. 현 아진건설입니다.”

“재앙을 송두리째 맞은 집안이구먼. 그래서 빚이 다 해서 얼마야?”

아진그룹에 인수될 당시.

연6% 이자로 15년 거치 15년 분할 상환된 박종기의 개인채무는···

“흠-. 세빠지게 일해야겠구먼. 그럼 바로 시작하지.”

“예.”

비서관이 무전기로 신호를 보내자 수사관이 입을 연다.

“그나저나, 모조리 알아낼 수 있겠어?”

“걱정 마십쇼. 저 자는 베테랑 수사관이니까요.”

.

.

.

헌터관리부로 파견 나온 베테랑 수사관 말한다.

“처음 던전에 들어갔을 땐 뭐가 있었습니까?”

“들어가다니. 들어가짐을 당했는데.”

시현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그건 그렇고, 이것 좀 벗고 말하면 안 됩니까?”

시현의 입엔 마스크가, 손발엔 특수장치가 끼어져있다.

혹시 모를 전염병 예방 차원에서 준비한 것이다.

“입 냄새가 나서 그런 거면 양치를 좀 시켜주던가.”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일단 여기서 간단한 것만 조사한 뒤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실 겁니다.”

“조사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어쭈? 이놈 봐라.

왜 이렇게 당당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는 건가?

수사관이 머리를 쓸어 넘긴다.

“박시현 씨.”

“예.”

“일단 살아 돌아온 건 축하드립니다. 우리 측에서도 감사할 따름이고요.”

“살아 돌아온 게 아니라 귀환한 거라니까 그러시네.”

“말장난은 그만합시다.”

엄숙해지는 분위기.

수사관이 목소리를 내리깐다.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당신, 영웅 따위가 아니야. 우리가 돌봐야하는 국민 중 하나일 뿐이지.”

좁혀들었던 수사관의 미간이 서서히 펴진다.

목소리도 가벼워진다.

“그러니 수사에 협조해주십시오.”

이 정도 했으면 말귀를 알아들었겠지.

그렇게 생각한 수사관이 본론으로 넘어가려 할 때.

시현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누구한테 그렇게 잘 보이려고 되도 않는 가오를 잡는 겁니까? 보아하니 저 유리창 너머에 누가 왔나본데, 장관쯤 되려나?”

던전에 오랫동안 갇혀있다 보면 자연스레 눈치가 빨라진다.

만약 이 약초를 먹으면 오늘밤 설사로 고생을 할 것인가, 아닌가와 같은.

직감이라고들 하지.

“대통령이 직접 오진 않았을 것이고.”

“이 사람이!”

“급한 건 내가 아니라 그쪽 아닌가? 왜 나를 닦달하려고 하지? 내가 만만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

이 작자, 쫄보가 아니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어지간한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강경책은 접어두고 회유책을 펼쳐야하나?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던전에 처음에 들어갔을 땐 뭐가 있었습니까?”

“마스크 좀 벗어도 됩니까?”

“이봐요! 박시현 씨!”

윽박을 질러보아도 시현은 요지부동.

수사관은 한걸음 물러나기로 한다.

“후-. 좋습니다. 벗으십쇼.”

건물에 들어오기 전, 사실 1차 검사는 모두 끝냈다.

출장 나온 질병관리본부 직원이 간이 검사한 결과,

시현의 몸에 독이나 바이러스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시현에게 겁을 주고 정부에 기대게 하려는 의도였건만.

실패로 돌아간 듯하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던전에 들어갔을 땐 뭐가 있었습니까?”

“배고픈데 뭐 좀 먹고 하면 안 됩니까?”

지끈.

참다못한 수사관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마음 같아선 이미 책상을 부수고도 남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유리창 너머에 장관이 와계셨기 때문에.

예를 보여야한다.

격식을 차려야하며, 수사관의 자질을 입증해보여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목표인 정치판에 입문할 수 있다.

“드시고 싶으신 게 있습니까?”

“수사관님. 그 눈치로 정계에 진출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뭐요?”

“내가 지금 밥배가 고픈 거겠습니까?”

“그게 무슨······ 아!”

시현이 입을 벌린다.

“여기, 내 입에 달짝지근한 무언가 좀 넣어주셔야 말이 나오겠는데.”

대가를 원한다는 얘기다.

그 뜻을 그제야 이해한 수사관은 발가락마저 움켜쥐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보상에 관한 건 자신의 영역이 아니다.

더 이상 자신이 수사를 진행할 여건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포기할 때 하더라도, 준비한 것은 모조리 시행해본다.

“국가가 만만한가봅니다?”

“그럼 어려워해야합니까?”

“지금 그런 말이 아니잖소!”

수사관이 버럭 화를 내자 시현이 양손을 내민다.

“그럼 전 다른 나라로 이민가렵니다. 유감스럽게도 일급기밀도 함께 가겠군요.”

“국가에서 순순히 보내준답니까?”

“이 사람들한테 전화하면 전용기를 보내줄 것 같은데요.”

박시현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명함다발.

내로라하는 국내외기자들의 명함이다.

“그건···!”

건물에 들어올 때 소지품은 모두 압수했을 텐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아공간 소켓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고.

설마······ 스킬?

뭐가 되었든 간에 일단 수거가 먼저다.

“물건반입은 금지입니다. 어서 내놓으십시오.”

“그럼 내 똘똘이도 가져가야하는 것 아닙니까?”

“크윽···. 말장난 말고 어서······”

“사실 압수해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머릿속에 저장돼있어서.”

“그걸 다 외웠다는 말입니까?”

박시현이 일류대학에 진학한 사실은 이미 프로필을 통해 파악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머리가 좋을 줄은 몰랐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 아십니까?”

“뭐요?”

“나는 아는 만큼 보입니다. 그럼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말은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헉!”

마술인가?

시현의 손에 들려있던 명함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러니 진 빼지 맙시다.”

농담이 아니었다.

실제로 시현이 보고자하는 것이라면, 아는 것만큼은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하아···.”

짙은 한숨을 내리쉬는 수사관.

기싸움에서부터 이미 졌다.

상대를 너무 무시했던 걸까?

상대는 미지의 던전에서 8년이나 살아왔던 남자인데.

그러기 위해선 각고의 노력과 능력이 있어야하거늘.

‘어리석었어.’

더욱이 이미 언론에도 노출이 된 상황.

70년대에나 쓰던 막무가내 식 수법으론 해결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젠장!’

수사관이 눈물을 머금고 구원의 손길을 뻗으려던 찰나!

철컥-.

이명표 장관이 들어왔다.

“자, 장관님!”

“나가있게.”

“예······. 죄송합니다.”

망했다. 여기까지가 한계구나.

정계는커녕 밥줄까지 끊기게 생겼다.

수사관이 자책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걱정 마세요. 내가 장관님께 잘 말씀드릴 테니까. 당신 해고하지 말라고.”

“아······.”

장관이 있는 자리에서 직접 그 말을 하는 게 더더욱 야속했다.

어쩌면 저 남자, 악마일지도 몰라.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감사인사부터 하자.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고, 그 정도 배포로는 국회는커녕 동네 부녀회에서도 못 살아남을 것 같은데요.”

수사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자신의 머릿속을 꿰뚫고 있는 거지?

거기다가 쓸데없는 오지랖까지.

이 남자, 보면 볼수록···

“배포가 크구먼.”

이명표 장관이 한 말이다.

“자네는 걱정 말고 나가보게. 나가서 가족이랑 점심이나 한 끼하고 와.”

“감사합니다, 장관님···.”

꾸벅.

수사관은 90도로 인사까지 하고나서야 밖으로 나갔다.

“반갑네. 이명표라고 하네.”

“잘 알고 있습니다.”

“나를 말인가?”

“부친과 함께 뵌 적이 있습니다. 중소기업인들의 밤이었나요? 장관님께서 경제부총리로 역임 중이실 때였죠.”

“그걸 기억하나?”

“워낙 인상이 좋으셔서요.”

“허허.”

일단 상대의 첫인상은 마음에 든다.

그렇게 느낀 이명표는 악수를 건넸다.

“그럼 협상 시작하지.”

“이제야 말길이 통하는군요.”

진작 이렇게 할 것이지.

우여곡절 끝에 협상테이블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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