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레전드 권투선수가 남긴 유명한 어록.
시현이 미지의 공간에서 발현했던 스킬 중 상급이었다.
즈아아아 -.
스킬의 작용으로 시현의 주먹이 검게 물들었고.
김은혜의 얼굴을 향해 곧바로 날아갔다.
강력한 주먹이,
퍽!
김은혜의 얼굴을 강타했다.
저저저저적-.
각질이 벗겨지듯 스톤스킨이 갈라진다.
바다에 떨어졌는데, 구명조끼를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저저저적!
살짝 때렸을 뿐인데.
스톤스킨은 산산조각 나버렸고, 김은혜의 얼굴도 걸레짝이 되었다.
“크허··· 허어억······.”
김은혜가 숨을 헐떡인다.
아까 공기업 팀원들 앞에서 똥배짱을 부렸는데.
이게 무슨 개망신인가?
공격을 막아내는 건 고사하고 강냉이까지 털리다니.
흙바닥에 굴러다니는 자신의 앞니가 보인다.
젠장!
어디 숨어있을 쥐구멍이라도 좀 없을까?
김은혜가 들어갈 쥐구멍은 없었지만 거기서 나온 남자는 있었다.
박시현.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
던전을 탈출한 그가 김은혜 앞에 무릎을 쪼그린다.
“그때, 왜 그랬지?”
“하.. 하아... 뭘?”
김은혜는 시현에게서 살의를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유망 있는 헌터답게 그 상황에서도 정신을 부여잡았다.
어차피 공기업 헌터들이 있는 자리, 시현이 자신을 죽이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윽고 구조대와 헌터 지원 병력이 도착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자.
“그, 그만··· 해···. 오빠···.”
김은혜는 떨리는 손으로 시현의 손등을 쓸었다.
그러나.
턱!
시현은 오히려 그 손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우지직-
“으아아아아아아아-!”
꽈배기마냥 비틀어버렸고.
두드드득!
걸레 빨듯 발로 지그시 밟아버렸다.
“하악··· 그만··· 제발 그만···.”
김은혜가 울부짖으며 애걸복걸 했음에도 시현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부모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 그녀였음에.
하지만,
"너도 살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 하지만."
그때의 악몽이 시현을 괴롭혔다.
자그마치 무려 9년 씩이나.
이제는 그것을 조금이나마 풀 때가 온 것이다.
.
.
.
어윤성 팀장 외 열 명의 팀원들은 5분 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폭력행위가 그 이유.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괜히 불똥 튈 것 같았기에.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묵사발이 된 김은혜를 보고 있으니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한 여름에 들이켜는 수박화채랄까.
크으!
더 때려라.
저런 양아치 같은 것들에겐 정의구현이 답이다.
반면 어윤성은 호기심이 앞섰다.
거지꼴을 하고 있는 저 남자, 뭐지?
과거 김은혜와 연인관계였던 것은 파악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
대체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마법능력을 보자면 김은혜보다도 최소 한수 위다.
그리고 전투능력을 보자면···.
‘흠... 나보다도 최소 한수 위인데. 잘 모르겠군.’
일단 기술면에서는 박시현이 영락없이 우세했다.
재능 있는 C급 헌터 김은혜를 저렇게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저, 저기······.”
어윤성이 조심스럽게 시현에게 다가섰다.
휙-.
시현이 등을 돌린다.
피로 흥건한 손으로 얼굴의 땀을 닦자 얼굴이 피로 물들었다.
마치 광대와 마주하는 듯한 느낌.
그런 그가 말했다.
“택시비 좀.”
.
.
.
던전이 생성되거나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부르지도 않았건만 귀신같이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헌터와 기자.
두 직업군은 항상 세트로 붙어 다닌다.
던전이 있는 곳엔 돈 냄새가 풍기고,
돈 냄새가 풍기는 곳엔 사건이 터지길 마련이니까.
지금도 그러했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거운리 야산.
원래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오늘만큼은 최고의 관광명소임에 틀림없다.
냄새를 맡고 몰려든 각 기업의 헌터와 기자들이 나타난 것을 보면.
“한 마디만 좀 해주십쇼!”
“생존자라는데, 사실입니까? 정부 측에서는 조난자가 없다고 발표했는데요?”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일각에서는 북한의 공작이라는 말이 있던데, 이와 관련해 아는 사실이 있습니까?”
국내외 기자 할 것 없이 시현에게 이목을 쏟는다.
그 환경이 낯설었던 시현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현장을 빠져나갔다.
어윤성이 그와 함께 동행 했다.
“자세한 건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제 명함부터 받으시죠. 그리고 다른 기자 분들 건······.”
이미 받았다.
시현의 손에는 이미 수십 장의 명함이 쥐어져있었다.
‘어느 틈에···. 뺏어야하나? 아니, 괜히 저지하지 말자. 어차피 이따가 압수당할 텐데. 일단 데려가는 게 먼저야.’
생각을 마친 어윤성이 승합차로 안내한다.
“일단 가시죠.”
“어딜 가는 겁니까?”
“당신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겁니다. 지금 당신이 믿을 수 있는 건 국가뿐이며,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도 국가뿐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저희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인지, 시현은 정부차량에 오르며 어윤성에게 물었다.
“배상금도 줍니까?”
“그건··· 확실치 않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명목으로······.”
“확신이 없으시군요.”
“아마도······.”
“예상은 필요 없습니다. 내가 당신과 같이 갈 필요도 없는 것 같고요.”
시현은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윤성이 황급히 따라 일어나 시현의 팔목을 잡았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급해서 그만···. 그러지 마시고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시면······”
“아뇨. 저는 이미 상황파악을 끝냈습니다. 정부에서 저를 강압적으로 데려가는 것. 권한 없지 않습니까?”
어윤성은 시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방금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에 의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남자를 정부기관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시현의 말대로, 어윤성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었다.
경찰이 와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경찰들은 뭐 이렇게 늦게 오는 거지?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시현에게 확신을 주는 수밖에.
“혹시 확신을 드린다면······.”
“한 장.”
“예······?”
“아까 다 들었습니다. 김은혜에게 돈을 주기로 한 거. 그 돈, 저 주신다고 약속하면 같이 가드리죠.”
이 남자, 생각보다 위험하다.
벌써부터 자신의 살길을 챙기는 것인가?
어윤성은 시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뛰어난 활약상에 대해, 높으신 분들께 말씀드리죠.”
나쁘지 않은 거래다.
아니, 훌륭하다.
어차피 김은혜에게 줘야했던 1억.
이 자에게 준다면 출세까지 노려볼 수 있으니까.
“약속합니다. 국가에서 주는 보상금 제외하고, 제 사비로 드리죠.”
진심이 담긴 어윤성의 표정.
시현은 그 표정을 보고나서야 미소 지었다.
“어서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