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3화 (3/100)

# 3

“오, 오빠···. 오빠가 어떻게 여기에······.”

시현을 본 김은혜는 굳어버렸다.

뇌가 정지한 듯 모든 사고가 멈췄다.

쟤가 왜 여기에 있지?

이게 아니라,

쟤가 왜 살아있지?

이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부모가 죽은 뒤 빚 독촉에 시달리다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죽은 게 아니었어?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버렸던 첫 남자 친구가 되살아 나타났다는 건.

자신의 명백한 잘못을 알고 있는 전 남자 친구가 되살아 나타났다는 건.

그와 반대로 시현은.

‘헌터에 재능 있다더니, 정말 헌터가 되었나보군.’

김은혜.

그녀를 본 시현은 나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째 서지?

부모님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을 때, 능력 좋은 교회오빠와 피서를 갔던 여자인데.

막상 보면 화가 넘치듯 날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그런가?

그저 이런데서 다 만나게 될 줄이야.

악수라도 한 번 하고 싶네.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싶고.

따지고 싶었다.

그날, 어째서 부모님을 죽음으로 몰고간 것인지.

하지만 시현이 뱉은 말은,

“오랜만이네.”

단지 그 말뿐이었고.

김은혜는 고개를 절래 저으며 걸음을 뒤로 물렀다.

“그래도 간만에 봤는데. 아는 척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풉-.”

조소하는 김은혜.

신랄한 눈을 치켜뜬다.

눈동자에 무언가 서려있다.

악의인가? 아니면 증오?

도대체 시현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시현은 믿을 수 없었다.

순수했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변했다니.

그래도 제대로 한 첫사랑이 아니던가?

꿈틀.

깊은 곳에 잠재돼있던 무언가가 움직인다.

분노인가?

“저, 저기······.”

그 틈에 끼어든 남자.

어윤성 팀장이 시현에게 한 발자국 다가간다.

“···안녕하십니까. 한국헌터연합 어윤성 팀장이라고 합니다. 혹시 생존자 되십니까?”

“생존자요? 그럼 사망자도 있습니까?”

“아··· 아뇨. 현재까진 없습니다.”

“그럼 생존자란 말은 접어두시죠.”

“그럼······?”

“귀환자. 그걸로 합시다.”

수백 번도 넘게 죽다 살아난 시현이다.

‘생존자’란 말을 듣고 있으니 기쁘다기보다는 끔찍했다.

방금 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렇기에 생존자란 말은 듣기 싫었다.

던전에서의 기억은 접어두고 어서 빨리 사회로 돌아가고 싶다.

이 순간을 몇 년이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지금이 몇 년돕니까?”

“2026년입니다···. 아마 갇히신 지 8년이 지났을 겁니다.”

“그런 거 같네요.”

“예?”

“기억이 잘 안 나서요. 시간감각이 무뎌진 건지. 확실 한 건, 내 8년을 거기서 잃어버렸다는 거죠.”

이제는 보상받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빚을 청산하고,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

남들 부럽지 않을 정도만?

아니, 남들이 자신을 부러워할 정도로 떳떳하게.

그런 시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가 듬성듬성 나있는 야산이 보인다.

그래, 기억난다.

대부업체 빚쟁이들을 피해 여기까지 도망쳤었지.

그날 시현은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조폭들한테 쫓기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었다.

그러다가 미지의 던전에 갇혔던 것이고.

스윽.

시현은 시야를 넓혔다.

바위마냥 굳어버린 일곱 명의 헌터들이 보인다.

검, 창, 활, 지팡이 등 무기를 들고 있고,

그 아래쪽에는 인상을 찌푸린 채 김은혜가 서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팀장 어윤수가.

시현은 그에게 물었다.

“저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

“에··· 예, 그렇습니다.”

“당신이 이 팀의 팀장이고요?”

“예···. 그렇습니다.”

“흠.”

시현은 무언가 아쉽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저 여자도 당신 팀이겠죠?”

“저 여자라면···”

“김은혜 말입니다.”

“아, 저 분은 저희 팀이 아닙니다.”

그 순간, 시현의 표정이 몰라보게 달라진다.

“그렇습니까?”

“예. 김은혜 씨는 이번 작전을 위해 임시로 투입된 아진H&M의······.”

“아, 거기까지.”

“예?”

“그만하면 됐습니다.”

시현의 표정이 밝아진다.

동물원에 처음 가본 어린아이의 표정이 그러할까?

가히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 상태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

시현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이게 얼마만인지.

처음 엘리트 몬스터와 맞닥뜨렸을 때나 이렇게 흥분했던 것 같은데.

오랜 만이네, 이 느낌.

“하하···.”

“왜, 왜 그러십니까?”

“기뻐서요.”

신경 쓰이던 문제는 해결됐다.

아무리 김은혜한테 원한이 있다지만, 자신을 구해준 팀장의 팀원을 무턱대고 막대할 순 없었는데.

김은혜가 다른 팀이었어?

완벽한 상황이다.

안 그래도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는데.

“별 건 아니고, 그저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감사해서요.”

감사한 기념으로.

“동에 번쩍.”

“!”

찰나간의 정적.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모두가 경악했다.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김은혜 앞에 나타난 시현을 보고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방금 그거, 텔레포트인가?

재능 좀 있거나 돈 좀 있는 마법사들이나 시전 할 수 있는 스킬인데.

어떻게 방금 돌아온 생존자가··· 아니, 귀환자가 쓸 수 있는 거지?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

스킬북을 보고 배우거나, 스스로 깨닫거나.

즉, 돈을 주고 터득하거나, 재능으로 습득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던전에 8년씩이나 갇혀있던 사람이 스킬북을 보고 배웠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저 사람은 필경 재능을 가진 마법사!

가장 놀란 것은 김은혜였다.

고3때만해도 권능을 부여받지 못했던 시현인데······.

어떻게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었지?

최악이다.

방금까지 그렇게 무시했는데.

능숙하게 텔레포트를 시전 한 것을 보면 적어도 자신과 동급이거나 그 아래.

아니면······ 설마 그 위?

김은혜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오······.”

“쉿.”

“어··· 응?”

지끈.

시현은 주먹을 쥐었고,

“자, 잠깐! 오빠, 오해가······!”

김은혜가 수를 쓰기도 전에 시현의 주먹이 먼저 움직였다.

빠르게.

퍼억!

그대로 김은혜의 따귀에 꽂힌 시현의 주먹.

“쿠···헉!”

파바바바밧!

속수무책으로 당한 김은혜는 바닥에 엎어졌다.

“바, 박시현······. 이 미친 새끼가!”

“이제야 아는 척을.”

“으흑··· 크윽······.”

김은혜는 타오르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역시 재능 있는 C급 헌터답다.

실전경험뿐만 아니라 전투센스도 겸비한 그녀였기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재능 없는 B급 헌터 어윤성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김은혜는 곧바로 상황을 직시했다.

‘일반인 치고는 확실히 강해···. 하지만······.’

근접딜러로 보기에는 확실히 부족하다.

그 어떤 스킬도 가미되지 않은 맹주먹이었다.

배리어를 두르지 않았음에도 강냉이 하나 털리지 않은 것을 보자면.

근력은 그리 높지 않은 모양.

“그 던전에서 살아나온 걸 후회하게 해줄게···. 오빠는 그 때 네 부모랑 같이 죽었어야 됐어.”

김은혜가 이를 바득 간다.

독기품은 눈을 치켜뜬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죽여버리는 게 앞날에 도움될 것이다.

최대한 사건을 빨리 덮을 수록 유리한 김은혜였기에.

스르릉-

시현이 눈 깜짝할 사이, 김은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현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다.

김은혜가 텔레포트를 사용했기 때문.

하지만 시현 역시 한 번의 기회가 아직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는 몸을 우로 돌며 입을 열었다.

“서에 번쩍.”

스슥-

“이, 이게 무슨······.”

다시금 김은혜 앞에 우뚝 선 시현.

김은혜는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지 못했다.

이건 경악할 수준을 뛰어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텔레포트는 쿨타임이 긴 스킬인데.

아까 쓰지 않았던가?

우직.

시현은 이미 주먹을 쥔 상태.

방심하면 이번에도 맞는다.

김은혜는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피부를 돌덩이처럼 강화시켰다.

스톤스킨(Stone skin C-Grade)

그녀의 스톤스킨은 C등급으로, 쓸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C등급의 일반 무도가에게 맞아도 피해가 거의 없을 정도.

피해를 입는 건 오히려 상대방이다.

그야말로 단단한 바위에 맨주먹을 내지르는 것이니만큼, 고통스러운 건 시현일 것이다.

생각을 마무리지은 김은혜는 시현을 도발하기로 했다.

“남자 새끼가 쪼잔 해서는. 설마, 병신 같이 그때 그 일 때문에 아직도 그러니? 그래서 여자나 패고 다니는 거야? 미친 새끼.”

김은혜가 시현에게 단단한 얼굴을 내민다.

전투에 있어서 도발은 좋은 작전이다.

그걸 증명하듯, 시현이 재차 주먹을 말아 쥐었다.

도발에 넘어온 것이다.

꽈득.

그러자.

이때다 싶었던 김은혜는 마지막 도발을 가한다.

“그것가지고 되겠어? 이번엔 좀 다를 텐데?”

시현이 최대한 세게 때리길 바라는 김은혜였다.

그래야 시현이 더더욱 큰 피해를 입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상대 나름이지.

시현은 김은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뱉었다.

“그래, 이번엔 좀 다를 거야.”

우지끈.

주먹을 쥔 것 까지는 같다.

하지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뭐······?”

“한 대 쳐 맞기 전까지는.”

한이 담긴 시현의 주먹이 거멓게 변색돼서는.

파앙!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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