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 만큼 긴 세월이 흘렀을 터.
언제부턴가 시현은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훅-.
그저 주먹을 내지르고, 거듭 내지르고.
대기를 가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결국에는···.
파앙!
공기가 부르르 떠는 것을 느꼈다.
거기까진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지구에는 이미 강한 놈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더욱 더 강해져야 한다.
밟히고 밣히는 무력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필코 강해져서 돌아가야 한다.
.
.
.
이유가 있었던 걸까?
암흑 구렁텅이에 갇히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저 신의 장난?
아니, 신은 없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신이 있었다면 지구에 던전이 생기지도 않았겠지.
번번이 일어나는 몬스터 공습도 없었을 것이며.
무고히 희생되었던 시민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도.'
후욱-.
괴로울 때면 주먹을 내뻗는다.
보다 강하게 정신을 단련하고, 자신의 몸을 혹사 시킨다.
허망한 꿈인지 참된 기회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허망된 기회가 아니기를 바랄 뿐.
고3 수능날이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
그래서였던가?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인지 시험을 보는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꿋꿋이 시험을 쳤지만 예상만큼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수능만을 위해 보고 달려왔던 19년이 송두리 채 날아가는 순간.
교문을 벗어나면서 보았다.
하늘이 열리고, 그 속에서 몰아치는 회오리를.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과연 번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형언키 힘든 빛줄기가 지면을 강타한 순간.
노성이 지구에 울려 퍼졌다.
인간은 권능을 받고 각성했다.
인간들은 하나가 되어 뭉쳤다. 몬스터 침공을 막아냈다.
던전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더더욱 강한 힘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무 능력한 시현이었다.
남들 스킬북을 보고 스킬을 터득할 때.
남들 칼자루를 쥐고 던전을 털러갈 때.
시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떨어진 뒤로 깨달았다.
자신의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일까?
시현의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의지가 있었고 전달력이 깃들어있었다.
그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침내 능력을 찾아낸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없는 유일한 권능.
언령술사(言霊術師)였다.
.
.
.
100미터 전방.
묵직한 안개 사이에서 좀비들이 기어나온다.
더불어 오십 마리의 스켈레톤까지.
이윽고 불화살이 쏟아진다.
이윽고 안개 낀 하늘이 불길에 휩싸이자.
시현은 입을 열었다.
"동에 번쩍."
번쩍!
시현의 몸이 사라진다.
마치 텔레포트를 하듯, 순식간에 동쪽으로 이동한다.
스르륵-
동쪽으로 피한 시현은 덧붙였다.
"서에 번쩍."
스륵-
직후 시현이 도착한 곳은 서쪽.
정확히 말하자면.
-키이이?
스켈레톤 무리의 옆구리.
시현은 있는 힘껏 주먹을 말아 쥐었다.
까드득.
그리고 내뻗는다.
콰아아아 -
풍압이 흘러나오고.
오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뼈가 산산히 조각나 바닥에 흩어진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 매를 맞지 않은 좀비들이 기어오고 있다.
섬뜩한 소리를 내지르면서.
-그어어어어.....
좀비들은 스켈레톤과 다르다.
스켈레톤은 두개골을 부수면 죽지만, 좀비는 머리가 터져도 죽지 않는다.
지난 세월, 이곳에서 지낸 바 터득한 경험이었다.
고로, 태워 죽이는 것이 약.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다시금 하늘이 시뻘개진다.
자욱이 안개 낀 하늘에 노을이라도 진 듯.
불길이 타오르고, 화염 세례가 쏟아진다.
방금 전, 스켈레톤들이 쏘아 올렸던 불화살 세례가 떨어져 내린다.
대지는 화염으로 타오르고, 좀비들은 번데기 터지듯 폭발한다.
춰엉!
기이한 소리를 내며 재가 되어 소멸됐다.
좀비나 해골 따위는 더 이상 시현을 위협할 수 없었다.
"한 입 거리도 안 되는군."
그래도 좀 쉬어야겠다.
이것조차도 권능이기에, 스킬을 사용함에 따라 기력이 소모된다.
과도한 사용은 건강에 해롭다.
심신을 파괴하고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현의 눈 앞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급 : B
설명 : 받은 공격을 그대로 되갚는다
위력 : 등급/기력비례
이렇듯, 시현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비단 속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령.
"마음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명상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명언을 말한다면.
스아아아-.
심신이 편안해지며 기력이 회복된다.
쉽게 말해, 위명 있는 그 어떤 말도 시현에게는 스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교오오오오!
또 다시 몬스터가 소환됐다.
이번엔 어떤 놈이려나.
하늘에 껴있던 안개가 걷히고 눈보라가 내린다.
금방 눈이 쌓여 설산을 형성하였고,
쿵!
설인이 걸어온다.
"잘 됐네."
혼자서 눈사람 만들 건 아니잖아?
그럼 눈은 녹여줘야 제 맛이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늘이 재차 뻘겋게 타오른다.
솨아아아아-.
소나기가 내리듯 불화살이 대지를 강타한다.
불바다를 만들어 설인들을 불지옥으로 보낸다.
-으어어어어!
설인은 녹아내려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도 꽤 쓸 만한 스킬이네."
시현은 이불을 덮고 바닥에 누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진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이제는.
"쥐구멍에 볕들 날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