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66화 (66/68)

EP.65)최종장 (5)

그래도 던전 마나핵에 폭탄이 설치되어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대련의 가벼움을 지워버린 우리 길드원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차올라 있었다.

나 역시 비장한 표정으로 길드원들의 선두에 서서, 놈들을 노려보았다.

이제 전면전의 시작일 것이다.

물러설 수도, 도망칠 수도 없기에 돌파구는 결국 놈을 무찌르는 것 뿐.

가소로운 핏덩이들을 보듯, 놈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크하하! 우리 하얀 깃발 수호단을 무시하는 것이냐? 아직 실전도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니놈 따위가 우리 청룡과 주작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오만하기 짝이 없는 건 당신입니다. 설마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제 스텟치만을 보고 이런 짓을 벌리신 건 아니겠죠?”

“…뭐?”

앞서 얘기했듯 헌터들의 능력치는 모두 국방부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있다.

그 기록들을 마나칩을 활용해 헌터들 간에 공유, 확인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기록은 한 달에 한 번, 검사소에 방문해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하게끔 되어 있었었다.

다시 말해, 각성한 이후 아직 검사소에 방문하지 않은 나의 능력치는 각성 ‘당시’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

의중을 파악한 놈이 급히 마나칩을 활용해 나의 ‘현재’ 능력치를 확인한다.

“이, 이럴 수가… 고작 아카데미 따위를 다녔다해서 능력치가 대폭상승할 수는 없다…!!”

현재 나의 종합 전투력은 100,303

각성 당시의 8만 대보다 무려 2만이나 상승해있었었다.

8만에서 2만이 상승했다는 건 수치상으로 보면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지만, 어느 정도 극에 달한 헌터들은 전투력 1천조차 상승시키기 버거워한다.

이미 기본 전투능력과 신체능력이 극에 다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8만대의 난 그저 각성을 막 끝낸 풋내기 헌터.

초월급이라해도 시작점이 8만이었을 뿐, 풋내기 헌터였고 한 달 간 피땀을 흘리며 해낸 훈련과 알렉스와의 실전 버퍼 훈련은 나의 종합 전투력을 대폭 상승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었었다.

현재 청룡과 주작이라 불리는 저 S급 헌터들의 종합 전투력은 각각 [ 53,000 ]과 [ 55,000 ].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들이라는 칭호답게 S급 중에서도 가히 탑급에 속하는 전투력이기는 했다.

하지만 둘이 합산해도 나의 ‘노버프’ 상태일 때 전투력과 비등할 뿐 자버프를 사용한다면 감히 견줄 수도 없는 것이다.

8만에서의 2배와.

10만에서의 2배는 천지차이와도 같으니까.

게다가 놈의 예상과달리 나에겐 ‘파티원’들이 늘어났다.

버프 스킬을 이용해 이들 모두의 능력치를 상승시킨 채로 2 대 5의 전투를 벌인다면 과연 어느 쪽이 유리할까?

느낌상으로 나 혼자서도 둘 정도는 제압할 수 있을 듯했으니까 확실히 어느 쪽이 유리한지 가늠하지 않아도 충분할 터다.

이제야 우리 길드원들의 방문을 환영할 것이 아니었단 걸 깨달았는지 놈의 표정이 굳는다.

한심스레 조롱 섞인 어투로 말했다.

“…사람은 머리가 좋아야 몸이 고생하지 않는다고 했죠. 고작 들고나온 패가 이 정도라니.”

“저, 전투력 따위는 수치싸움에 불과하다! 네놈이 과연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하얀 깃발 수호단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확실히 실전 경험은 전투의 판가름을 내는데 큰 기여를 한다.

그리고 헌터 대 헌터의 결투에서는 위협적인 스킬과 무기들이 난무하기에 전투력은 수치일 뿐이겠지만, 어쨌든 그 수치가 주는 피력은 상대를 압도시키고, 압도 당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청룡과 주작 놈들의 표정이 굳어있는 것이겠지.

…아니면 폭탄 때문인가?

성큼, 사장의 중심으로 걸어가며 놈에게 말했다.

“그전에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정말 여기서 다 죽일 생각이셨습니까?”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하였다. 하지만 니놈이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지. 그리고 난 이제껏 이루지 못한 것은 없었다. 이루지 못할 것은 미리 부숴버렸기 때문이지.”

“…제가 굽히지 않을 것을 알고 차라리 아무도 마신 토벌의 업적을 이룩하지 못하게 저를 부숴버리겠다, 이겁니까?”

“그렇다. 폭탄은 최후의 장치일 뿐이고.”

“…폭탄을 터뜨리면 당신 자식들도 죽습니다.”

“헌터는 군단장을 위해 존재하는 피라미드의 하층구조물일 뿐이다.”

“…쓰레기다운 쓰레기 같은 발언이네요.”

“귀찮은 언쟁은 하고 싶지 않다. 결정하거라. 나와 함께 마신 토벌을 할 지, 아니면 여기서 다 같이 죽을지 말이다.”

이곳에 더 이상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정은 내가 아닌 ‘우리’가 하는 것.

고개를 돌려 우리 길드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하나 같이 입술을 앙 다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죽음이란 게 뭔지 잊어먹은 게 분명해.

쓰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당신 같은 쓰레기와 마신 토벌 업적을 이룩할 생각은 백번이고 죽어도 없습니다.”

“…그래, 니놈 뜻은 잘 알겠다. 그럼.”

ㅡ딸각.

…자, 잠깐!

아니 씨발, 이렇게 쉽게 폭탄 버튼을 누른다고?

“버, 버튼을 눌렀어?!”

“아니, 진짜 미친 거에요?!”

“가, 강준아…!”

하지만 장내에 퍼지는 충격을 즐기듯, 놈은 시퍼런 웃음을 터뜨리며 청룡과 주작 놈들에게 명했다.

“오늘 여기서 끝을 보자꾸나. 이태수. 이태호. 네놈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다. 폭탄이 터질 때까지 저 놈년들을 보스룸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아둬라. 알겠느냐.”

**

푸른 머리의 청룡, 이태수와 붉은 머리의 이태호의 눈빛이 서로 충돌한다.

그저, 남들의 이목이 끌리지 않는 곳에서 초월급 헌터와의 대련한다는 기대감에 이곳에 왔건만. 제 아버지이자 군단장의 ‘마지막’ 명령은 죽음을 종용하고 있었다.

이태수가 전투자세를 풀며 이강호를 쳐다보았다.

“아, 아버지…! 진짜 여기서 끝을 보시겠다는 겁니까?!”

이태수의 항쟁에 태호 역시 거들고 나섰다.

“구, 군단장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저 대련하기 위해서 온 거란 말입니다!”

하지만 이강호의 짙은 먹빛의 눈썹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오늘 아침댓바람부터 고별도 없이 들이닥친 ‘특수감찰팀’은 군단장실에 있는 모든 서류와 책상 금고까지 탈탈 털어갔으니까.

그리고 그 특수감찰팀의 편성자가 ‘대통령’이었었고.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특수감찰팀이 자신의 치부 하나까지 모조리 털어갔으니 조만간 파면이 이어질 터다. 아주 혹독하고 지독하게 발가벗겨버릴 파면식이.

특수감찰팀이 가져간 금고에는 길드로부터 상납 받은 재화와 버퍼를 만들기 위해 예산을 멋대로 편성한 것까지 조목조목 기록되어 있었기에 파면식은 아주 성대하게도 치러질 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놓아버렸었다.

대헌터군단장이란 명예로운 칭호도 뺏긴 데다, 헌터들에게 작용하는 극도의 ‘도덕성’을 위반했으니 어쩌면 평생을 지하감옥에서 썩어야할 지도 모를 터였다.

버퍼란 직업은 백년에 한 번 나올까한 특수희귀직업이다.

자신의 저승길 동무로 데려간다면 아마 자신의 존재가 잊히기 전까지는 절대 그 누구도 마신 토벌의 업적을 성공시키지 못하리라.

가질 수 없다면 뺏었고, 뺏을 수 없다면 파괴해버리며 평생을 살았다.

그리고 그 인생의 순리대로 이제 끝을 맺는 것 뿐이었다.

그런 그가 품을 살짝 열어 스크롤 한 장을 보여주었다.

“텔포 스크롤이다. 지점은 던전 바깥으로 설정해두었지.”

개척자들이 들고다녔을 법한 돌돌 말린 스크롤이었다.

일명 ‘텔포 스크롤’.

S급 중에서도 최상 등급 던전을 토벌할 때에 대헌터군단에서 지급하는 스크롤로 희소성이 매우 강해 값이 천문학적이었었다.

그 스크롤을 본 이태수의 표정에 오묘하게 밝아졌다.

무너지는 전장에서 퇴로를 확보했다는 것에 기뻐해야할까?

무너지는 전장에 출정 당한 것에 분노해야할까?

그마저도 아니면, 혈육에게 물건 취급 당했다는 것에 슬퍼해야할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일단 살고봐야했으니까.

이태수의 눈빛을 읽은 이강호가 사탕 발린 거짓말로 그를 현혹하기 시작했다.

“폭탄이 터지기 전까지만 저것들을 이곳에 묶어두어라. 폭탄이 터지는 순간, 너희들을 데리고 던전 바깥으로 이동할 테니까. 내 너희들을 믿기에 데려온 것이다. 충직한 부하이자, 믿음직한 아들로써.”

그 사탕 발린 말의 속내를 알지 못한 이태수는 그저 퇴로를 확보한 장군에게 감사하기로 하고는 탄복해했다.

무너지는 전장에서 토사구팽 당하는 졸개가 되는 지도 모른 채.

“여, 역시…! 생각이 다 있으셨군요…!”

그리곤 곧바로 이강준 일행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이태수.

이태호 역시 스크롤을 확인하고는 곧장 이태수와 같은 스탠스를 취했다.

퇴로가 확보된 마당에 거칠 것은 없었다.

두 투견을 구슬린 이강호가 저열하게 웃으며 뇌까린다.

“시간은 3분여다. 놈들의 손과 발을 묶어두어라.”

““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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