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65화 (65/68)

EP.64)최종장 (4)

"씨발…! 그 멍청한 년이 기어코..! 방해될까봐 보초나 서라했더니 이딴 개짓거리를 해?!!"

"그만! 신나희 헌터님 이제 다 끝이에요!! 순순히 투항하세요!"

"큭큭큭! 투항!? 나보고 투항하라고? 아니! 여기 있는 것들 모조리 죽이고 하얀 깃발 수호단에 들어갈 거야악ㅡ!!"

신나희가 바위에 세워두었던 검 한 자루를 집어들었다. 헌터들은 각 등급별로 신체적 능력을 보정받는다. 즉, 힐러라하더라도 S급이 되면 신체 능력이 월등해진다는 것이다.

사용하는 스킬과 그에 맞춰 전투감각을 단련시키는 것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 것뿐.

그렇기에 서윤의 공격에도 치명상은 면한 신나희가 핏물을 삼키며 검을 든 것이다.

서윤이 조용히 읊조렸다.

"지민씨하고 벨라씨는 안나부터 풀어주세요."

""넷.""

그리곤 시위를 끝까지 당긴 채로 공동의 중앙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희 역시 이미 서윤을 제외하곤 자신에게 위협이 될 헌터가 없는 것을 파악하고는.

오로지 서윤을 노려보며 검을 겨누었다.

"그러고보니 그쪽이 이강준과 연모설이 돌던 헌터군요."

"연모설이 아니죠. 이강준 길드장님과 저는 미래를 약속한 사이니까요."

실력을 탐색하듯, 검과 활로 서로를 겨눈 채 스텝을 밟는 나희와 서윤.

스텝을 멈춘 나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핫! 그럼 너무 잘 됐잖아?”

“…무슨 소리죠?”

검 끝으로 서윤의 목덜미를 겨냥한 나희가 조소를 흘려대며 쇄도자세를 취했다.

먹이를 앞둔 짐승마냥, 안광을 번뜩이는 그녀.

살육의 광기가 가득 차오른 힐러의 안광은, 확실히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킥킥킥! 너를 죽이면 그 새끼가 꽤나 슬퍼한다는 거잖아?”

ㅡ쉬잇!

말을 마친 신나희가 곧바로 뒷발을 박차며 쇄도해 서윤과의 거리를 좁힌다.

힐러라고 볼 수 없는, 마치 숙련된 근딜과도 같은 민첩하면서도 정확한 쇄도에 서윤은 급히 거리를 벌리려했지만. S급의 근력은 확실히 얕볼 수 없는 것이었다.

“꺄하핫! 너도 내가 힐러라고 무시한 거야?”

“흐읏!”

숨 한번 내쉰 사이, 그어진 검의 궤도는 정확히 목을 향해 그려졌고.

서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궤도가 살짝 벗어나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ㅡ슈욱!

**

젠장.

진짜 미친새끼 아냐.

던전 마나핵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다 같이 죽자… 이건가?

헌데, 푸른 머리 헌터와 붉은 머리 헌터 역시 폭탄의 설치 위치, 아니.

당혹스런 눈빛들을 보아하니 나와 같이 폭탄이란 걸 처음 들은 듯한 표정이었다.

던전의 마나핵은 통상 보스룸 뒷편에 위치해있으며, 굉장히 예민한 코어구조라 작은 폭발에도 연쇄작용을 일으켜 심하게는 던전을 파괴시킬 수도 있었었다.

토벌 중 실수로 마나핵을 폭발시켜 던전에 그대로 매몰되버린 사례도 세계적으로 찾아보면 꽤 빈번하게 나타났었고.

그러니까 여기서 제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폭탄을 터뜨려 모두 황천길 동무로 데려가겠다는 것이다. 아니지, 놈이라면 분명 궁여지책으로 제 살 길은 도모해뒀을 지 모른다. 여하튼 미치지 않고서야 내지를 수 없는 횡포에, 두 헌터 역시 이강호를 쳐다보며 노발대발해댔다.

“구, 군단장님 그런 말씀은 없으셨잖습니까! 여긴 S급 던전입니다! 마나핵이 터지면 다 죽는다구요!!”

“마신 토벌 전에 몸풀기 겸 대련이나 펼쳐보라셨잖습니까! 폭탄이라뇨! 노, 농담이시죠?!!”

하지만 귀찮은 모기새끼가 앵앵거리는 것을 듣듯, 놈은 제 아들들의 원망도 고스란히 씹어버린 채 오로지 나만을 노려보았다.

역시, 대단한 새끼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물건 따위로 취급하는 대단한 십새끼.

결국 놈은 제 아들들을 나의 발을 묶어 놓을 ‘족쇄’ 정도로 취급해 이곳에 데리고온 것이지 않은가.

자신이 폭탄을 터뜨리고 도망치는 사이,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끔 말이다.

‘그래서 놈들을 데려온 걸 계획 무산을 방지하기 위함이라 한 건가…’

갑작스레 놈들이 애처로워보이려한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눈엣가시 같은 초월급 헌터와 대련하는 것이라고 속아 이곳에 끌려오다니.

누구에게나 추앙 받는 수호단의 헌터들도 결국은 군단장의 사욕을 위한 ‘졸개’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놈들이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이강호에게 진실을 요구해댄다.

“아, 아버지! 뭐라 말씀 좀 해보세요!!”

“이건 아니잖아요! 설마 진짜 터뜨리실 거는 아니시죠!!”

“어허!! 헌터는 군단장의 명에 복종만 하면 그만이다! 토 달지 말거라!!”

하지만 늘 그랬듯, 놈은 호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자식들을 불구덩이에 몰아넣고도 되레 큰 소리를 치는 뻔뻔함까지.

아버지로서 갖춰야 될 덕목은 고사하고 악덕만 골라 가득 채워놓은 꼬라지에 역겨운 분노가 치솟는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급발진 아냐?

오랜 숙원 하나 실패했다고, 그리고 대헌터군단장이란 목 좋은 자리에서 쫓겨난다고, 그 옛날 미개한 쪽바리 가미카제 정신에 입각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겠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린게 틀림없을 것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아카데미에서의 치욕은 놈의 입장에서 정신이 나갈 정도의 충격이긴 할 테지.

그래도 자식들을 자신의 무덤에 함께 수장하려는 짓거리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몸 속 단전 깊은 곳에서, 마나의 소용돌이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붉은 빛이다.

분노를 형상화한, 붉은 빛.

얼른 터뜨려주길 바라듯 이글대는 붉은 화마가 주변을 잠식하며 점점 세력을 키워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놈이 버튼을 손에 쥐고 있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놈에게 당도하는 것보다, 놈이 버튼을 누르는 게 더 빠를 테니까.

‘젠장… 어떡하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애석하게도 상황을 타개할 묘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담 북쪽대지를 호령하는 김씨 일가의 회전양면전술을 펼치는 수밖에.

ㅡ털썩.

그리고 남자의 무릎 따위,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꿇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저 광기가 섣부른 파멸을 부르기 전에 급히 무릎을 꿇고 앉으며 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만 더 기다릴 걸 그랬는 모양이다.

“가, 강준아!!”

“강준아!!”

등 뒤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중한 두 여인네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아, 쪽 팔리게 지금 오면 어떡하냐고.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읊으며 로켓처럼 날아가볼까 싶었지만, 만화는 만화일 뿐이다. 추진력을 고사하고 대사를 읊는 순간 마나핵께서 용트림을 시작할 테니까.

“…어, 벨라? 지민아…?”

헌데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앙지로 향한 내 시선엔, 서윤 누나 뿐 아니라 지민이와 벨라의 놀란 눈동자까지 담기고 말았다.

아… 너희들은 또 어떻게 온 거야.

***

“가, 강준 오빠 지금 무릎 꿇은 거야…?”

지민이의 현실도피성 물음.

“그럴 리가요… 내가 아는 강준이라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옛여친의 기억부정형 물음.

“무,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야.”

현 정실의 리커버리형 감싸기.

“벌써 공격을 받아버린 건가…!”

현 후실의 잘못된 상황판단.

…으음, 어가이브라는 신흥길드의 수장이자 4명의 예비아내를 둔 가장이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은 확실히 보기에 좋지는 않겠지.

우선 최대한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서 마치,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기 위해 무릎을 굽혔던 것처럼 무릎을 탁탁 털었다.

“어휴, 딱 스킬 시전하려던 참이었는데.”

스킬 시전.

내가 가진 스킬이 무엇인지 모르니 아주 적절한 변명이라 생각한 난 천연덕스레 서윤 누나와 일행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방귀 뀐 놈이 성내듯, 그들을 질책했다.

선빵필승의 만물의 이치는 어디에서나 통하는 법이니까.

“근데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다들 몰려와 위험하게. 다들 미쳤어?”

“가, 강준 오빠가 위험하다고 해서 그랬단 말이야…!”

하지만 나의 질책에도 지민이는 어린 아이마냥 달려왔고, 서윤과 안나, 벨라 역시 어디 카페에 들어가기라도 하듯, 아랑곳않고 보스룸으로 들어선다. 지키기 위해 홀로 온 것이 무색해져버렸네.

이렇게 모두 와버리면 혼자 온 게 무슨 소용이냐고.

“길드장님께서 위험하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그리고 길드장님이야말로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오고 그래. 길드를 이끄는 사람이 이렇게 무모해서 되겠어?”

내게 다가와 살짝은 퉁명스레 말하는 안나 누나는 말과는 다르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의 안위를 살폈다. 하여튼 츤데레 같은 누나라니까. 벨라는 이렇다할 말은 못 붙인 채, 그저 걱정스런 표정이었고.

서윤 누나가 난생처음 보는 화난 표정으로 이강호 쪽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강호 군단장님!!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하지만 이강호 입장에선 치워야할 쓰레기들이 한 곳에 모였으니 되레 반가울 터다.

그것을 반증하듯, 호쾌한 웃음이 보스룸을 쩌렁하게 울린다.

“허허허허! 그렇잖아도 한 명씩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이참에 잘 되었군. 모두 저 놈의 저승길 동무로 수장시켜주마.”

“…누나, 나서지마.”

탱커도 아니면서, 내 앞을 가로 막은 서윤 누나에게 나직이 얘기했다.

“이건 가족 간의 일이야. 내가 처리할게. 물러서.”

하지만 서윤 누난 한 치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상대는 S급 헌터들 중에서도 최상랭커들.

A급 미만의 헌터들이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다.

“아니. 이건 이제 우리 어가이브 길드의 일이야. 길드장을 위협한다는 건 우리 어가이브를 위협한다는 거고, 그럼 당연히 길드 측에서 대응하는 게 맞잖아?”

“…어차피 뭐라 말려도 안 들을 거지?”

서윤 누나의 성격은 누구보다 잘 안다.

한 번 마음 먹은 ‘올곧은’ 일이라 생각되는 일은 누가 말려도 듣지를 않지.

그제야 서윤 누나가 나를 돌아보며 싱긋 웃는다.

역시, 언제 보아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럼~!”

“어휴…”

한숨을 내쉬고는 지민이와 벨라, 안나 누나를 둘러보았다. 뭐, 애당초 내 말을 들을 생각이었다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겠지.

서윤의 생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공표하듯, 결의에 찬 눈빛들은 예상대로 길드장의 말을 따를 생각들이 눈곱만큼도 없어보였다.

무슨 전장에 나가는 전사들 같기도 하네.

피식, 실없는 미소가 나왔다.

“…길드장, 길드장해놓고 길드장 말을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구나.”

“응!”

…그렇게까지 깨발랄하게 대답할 건 없잖아.

“어휴, 그래…”

체념하듯 한숨을 한 번 더 깊게 내쉬자 벨라가 다가와 방어구들을 착용시켜주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등교시킬 때의 옛날처럼.

벨라의 도움으로 건틀렛과 견장, 부츠까지 착용하고는 모두에게 얘기했다.

“나중에 저승에서 만났다고 나 원망하지마.”

“응! 오빠!”

“원망 안 해.”

“풋, 만나서 반갑다고나 하지마셔.”

“다들 긴장해.”

…헌터들이라 그런가 아무래도 죽음이란 게 뭔지 까먹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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