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3)최종장 (3)
“응?”
뭐야, 갑자기 비명소리가 왜 들리지?
그리고.. 뭔가 낯이 익은 소리인데?
위대하신 대헌터군단장님의 호출로 인해 얼마 전 토벌되어 텅 비어버린, 일명 ‘공허던전’에 들어온 난 갑작스레 들려온 비명소리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유추될 만한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방금 무슨 소리죠?”
마치 이 S12 던전의 보스마냥 보스룸의 중앙에 서있는 이강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놈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호위기사마냥 놈의 양 옆으로 서있는 2명의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대중들에게 [ 청룡 ]이라 불리는 푸른색 머리칼의 헌터 한 명과 [ 주작 ]으로 불리는 붉은색 머리칼의 헌터 한 명이었는데, 둘 모두 이강호의 아들이었었다.
나처럼 버려진 아들이 아닌, 자연각성을 통해 ‘아들’로서 인정받은 아들들 말이다.
당연하게도 두 녀석들은 하얀 깃발 수호단에서도 최정예멤버로 손 꼽히는 S급 헌터들이었고.
토벌이 끝나 비어버린 S급 던전으로 나를 부른 것과 최측근인 S급 헌터들을 대동한 것과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3마리의 눈빛들은 나를 부른 목적이 ‘불온’한 것임을 알리고 있었다.
뭐,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동요하지는 않았다.
이곳까지 홀로 발걸음을 옮긴 놈이 ‘앗! 나를 습격하기 위함이었나!’라며 놀라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 쯤을 예측했음에도 이곳에 온 것은 놈이 얘기한 ‘주변인의 위협’을 막기 위함일 뿐이었다.
사지로 내몰린 놈은 예상대로 서윤 누나와 안나 누나를 타깃으로 나를 협박해왔으니까.
그렇기에 최후담판을 짓기 위해 그냥 왔을 뿐이다.
S급 헌터 두 명이 동시에 습격한다면 꽤나 고전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여기서 담판을 짓지 않는다면 이강호의 성격 상 설령 자신이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황천길 동무로 내 발목을 잡아끌 놈이었다.
아니, 나와 나의 주변인들의 발목을 싸잡아 끌고 갈 놈이었다.
유비무환.
이제 마신 토벌이라는 거사를 치르기 전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은 깔끔하게 정리해두는 것이 좋을 터이기에, 오늘 이곳에 온 것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히려 ‘던전’은 내게 유리한 장소였다.
마나각성이 이루어지기 전의 난 그저 나약한 인간 중 하나일 뿐이니까.
청룡이라 불리는 헌터 놈이 큭큭 웃으며 비아냥댄다.
“큭큭, 제 아무리 초월급 헌터라도 고작 ‘버퍼’ 주제에 간댕기가 부었구나? 공격스킬도 방어스킬도 없는 서포터 따위가 우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비아냥에 화답이라도 하듯 주작이라 불리는 붉은 머리가 똑같이 큭큭 웃어댄다.
피는 못 속인다고, 역겹게 생긴 건 똑 닮았네, 닮았어.
애미도 같은 애미인가?
“큭큭큭, 설마 진짜로 혼자서 올 줄이야. 초월급이니 이제 눈에 뵈는 게 없으시겠지. 여기가 묫자리가 될 줄도 모르고 말이야.”
묫자리라.
놈들의 시답잖은 만담을 들으며 이강호를 쳐다보자, 놈은 으레그랬듯 손을 들어 놈들의 입을 막았다.
“경거망동하지마라.”
“넵.”
던전은 마나가 흐르는 곳이고, 마나가 흐르면 마나칩의 발동과 더불어 나의 특수능력도 개화가 된다. 즉, 놈의 생각을 읽을 수가 있다는 것인데.
딱히 읽을 거리가 없을 듯해 능력을 발동시키지는 않았다.
뻔히 보이지 않은가.
자신에게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두 자식새끼들을 앞세워 나를 무력으로 굴복시키겠다는 건데.
애석하게도 둘의 전투력은 ‘합산했을’ 시에 나의 평시 전투력보다 1.5배 정도 앞섰다.
즉, 자버프를 발동한다면 둘의 전투력을 합해도 내게는 못 미친다는 것이다.
거기다 저 이빨 빠진 호랑이는 어떠한가.
신체적 나이 탓에 전투력이 현격히 낮아져 현재의 현역 헌터로 따지자면 B급 정도의 수준.
놈의 공격 따위는 내게 생채기 하나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내게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분명 놈도 이정도의 간극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정보 또한 대헌터군단 중앙 마나칩에 모두 기록되어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게 유리한 ‘던전’을 최후 결전 장소로 선정한 것은 무슨 계략이 있을 게 분명했다.
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나 누나나 서윤 누나를 볼모로 잡아뒀을 수도 모르는 일이고.
혹여모를 상황에 대비해 언제든 자버프 발동 준비를 하며 ‘결투장’으로 선정된 듯한 보스룸 중앙의 원형사장으로 들어섰다.
“그래서, 지금 제게 무력이라도 쓰시겠다는 겁니까?”
“무력이라… 어쩌면 무력이 될 지도 모르겠지. 이 두 녀석을 데리고 온 것은 네놈이 나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일 뿐이다.”
“계획이라… 아직도 미련하게 마신 토벌의 꿈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놈이 고개를 저었다.
체념한 듯 보이는 무력한 눈에는 확실히 예전과 달리 ‘욕망’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네놈은 나의 숙원을 이뤄줄 생각이 없겠지.”
“잘 알고 계시네요. 전 당신 같은 인간에게 득이 될 만한 행동은 일절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신 토벌을 한다해도, 당신이 대헌터군단에 발조차 붙이지 못할 때에야 가능할 일이죠.”
놈이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래도 마지막으로 물어보마.”
마지막이라는 건 내게 없었기에, 놈의 말을 끊으려했는데.
놈이 되레 내 말을 끊어버린다.
“웃기…”
“성급하게 대답하지마라! 이 옆방에 지금 네놈이 아끼는 사람이 잡혀있으니까.”
놈의 말에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뭐, 뭐라고요?”
“내가 얘기했지. 난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 적은 없었다. 실패한 적도 없었고.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왔다. 설령 자식을 버려서라도 말이다.”
놈이 주절대는 게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급히 방금의 비명소리를 되짚어보자 하나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익숙한 목소리.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짐 없이 들었던 목소리.
…설마, 안나 누나의 목소리였단 말인가?
일순간 기름을 부은듯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놈을 노려보았다.
주변인을 건들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나를 불러놓고는, 이미 주변인을 건드렸단 말인가?
선을 넘는 오만함에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치졸한 새끼가 감히..! 이딴 짓거리를 벌이고도 무사할 것 같습니까?!”
“무사할 것 같다라… 내 안위도 다 걱정 해주고,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마치 세상 하직하는 인간마냥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이강호.
여태껏 응수하던 분노가 아닌, 회한에 섞인 말은 왜인지 섬짓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모두 덮고, 나와 함께 하겠느냐.”
모두 덮어?
내가 당한 일들, 소민이가 당한 일들, 그리고 안나 누나가 당한 일까지 모두 덮고 함께 하자고?
개풀 뜯어 먹는 소리도 적당히 해야 들어줄만 하지.
분노가 치밀다못해 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나 누나가 볼모로 잡힌 이상,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젠장… 어떡하지?
마음 같아선 당장이고 저 셋을 묵사발내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안나 누나가 위험해질 게 뻔했다. 어떤 손을 써뒀는지는 모르겠지만, S급 헌터가 비명만 내지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마력제억석으로 꽁꽁 묶어뒀다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분명 명령을 기다리는 감시자가 붙어있을 것이고.
“섣부른 생각하지마라. 이 버튼이면 어차피 모두 끝나겠지만.”
뒷짐을 진 채로 서있던 놈이 버튼 하나를 꺼내 보였다.
작은 막대 형식의 끝에 붉은색 버튼이 솟아있는, 전형적인 폭발 버튼이었다.
설마… 안나 누나에게 폭탄이라도 붙여놨다는 말인가?
헌데 육체각성이 일어난 S급 헌터의 방어력은 왠만한 폭탄 하나에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닐 텐데, 그렇다해서 제 아무리 군단장이란 지위가 있어도 핵폭탄 급의 폭탄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일 테고.
하지만 놈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내게 겁박을 해댔다.
“이 버튼 한 번이면 우리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이 끝나게 된다. 내가 누르길 바라느냐?”
“비겁한 개새끼..!! 대헌터군단장이란 놈이 헌터 목숨줄을 가지고 협박하는 겁니까?!”
“헌터의 목숨줄이라… 내가 폭탄을 일개 헌터 따위에게 설치했을 줄 아는 모양이군. 내 그릇을 폄하하지마라.”
“뭐…?”
무력해보이던 놈의 눈동자에 섬짓한 빛무리가 발광한다.
“폭탄은 던전의 마나핵에 설치되어있다.”
**
"꺄악!"
넓은 공동에 울려퍼지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공동의 깊숙한 곳까지 메아리치며 날아간 비명이 사그라들었고, 비명을 내지른 신나희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휘청였다.
그녀의 뒤편 돌벽에는 화살 하나가 막 박힌듯, 물고기처럼 꼬리를 떨고 있었다.
"뭐, 뭐야악ㅡ!! 어떤 새끼야ㅡ!!"
난데없는 습격에 나희가 입가의 피를 훔칠 새도 없이 화살이 날아든 쪽을 쳐다보았다.
휘청이는 시야에, 다시금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여성과 그 옆으로 두 명의 여성이 보였다.
"아, 안나 총괄책임님! 괜찮으세요!?"
끝에 성스러운 백색보석과 천사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든 여성이 안나를 불렀다.
이제는 제법 힐러 태가 사는, 이사벨라였다.
"너, 너희들..! 여길 어떻게..!"
안나의 말에 서윤이 시위를 당긴 채로 답했다.
"익명의 제보가 왔어. 너가 여기에 있다고."
"익명의 제보…? 설마..?"
안나가 짐작가는 바가 있는듯 비틀대는 나희를 쳐다보았다.
카페에서 분명 나영이와 공모한 듯한 뉘앙스였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영이는 연신 미안해했었고.
'그럼.. 나영이가..?'
평상시에도 나영이는 언니언니하면서 자신을 친근하게 따랐었었다.
비록 강준이나 남을 대할 때는 모질었어도 말이다.
안나의 짐작이 맞는지, 나희가 핏물을 툭 뱉으며 표독스레 지껄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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