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62화 (62/68)

EP.61)최종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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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내가 살아생전 청와대란 곳에 오게 될 줄이야.

야심한 시각이라 다들 퇴근했는지, 싸늘하게도 가라앉은 청와대 복도의 대리석 냉기는 오금을 저리게도 만드는 것 같았다.

그만큼, 중압감이 상당했다.

청와대에 오는 것도 새까만 고급 세단을, 그것도 일명 `회장석`에 앉아 왔기에.

왠지 모를 경외심도 느껴져왔다.

그런 복도를 지나, 어느새 도착한 어느 문 앞.

별다른 문패 하나없이 우드색 목조로 된 문은 고풍스러워보였다.

"여깁니다."

하우스부터 날 이곳까지 에스코트한 비서실장이 공손히 물러갔고.

똑똑, 긴장된 노크소리로 방문을 알리자 이내 문 너머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들어오세요.

뉴스에서 몇 번이고 들었던 목소리.

그 목소리가 고막을 강타하자 나도 모르게 울대가 한번 움직인다.

꿀꺽.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두침침한 실내는 호롱불 몇 개로 밝혀지고 있었고, 쇼파엔 대통령이 앉아있었다.

나를 보고는 풀고 있던 정장자켓 단추를 잠그며 일어나 악수를 건네는 대통령.

안나 누나에게 들은 바로는 현 대통령 역시 야망이 크며, 이강호 못지않은 잔인한 인간이었었기에 긴장감은 배가 된다.

"어서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허허, 아닙니다. 우선 앉으시지요. 긴 밤이 될 것 같은데."

긴 밤이라.

내게 어떤 제안을 하려고 그러는 걸까?

제안은 오히려 내가 하고픈 입장인데.

하지만 먼저 치고 들어온 선수에게 카드패를 밝히는 건 어리석은 짓이기에, 그가 꺼내들 카드패를 기다리기로 했다.

쪼르르.

백자 같은 엔틱한 작은 주전자로 내게 차를 따라준 대통령은 제 잔을 들어 향기를 음미한다.

어색한 침묵에, 나 역시 차를 홀짝였다.

"…맛이 좋네요."

"허허, 그런가요?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군요. 제가 이 늦은 시간에 결례를 무릅쓰고 헌터님을 뵙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상체를 앞으로 당기는 대통령에 나 역시 척추를 곧추세웠다.

어찌됐건 그는 군수권 최고권위자.

평판은 좋지 않으나, 딱히 내게 해악을 끼친 것도 없거니와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렇기에 예우는 최대한 갖추어야했다.

그의 노쇠한 눈빛에 호롱불의 첨예한 빛이 일렁인다.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어 그렇습니다."

"제안요? 어떤 제안이신지.."

"헌터님도 다 아실 거라 생각해.. 단도직입적으로 제안드리겠습니다. 저희 대한민국이 마신 토벌국이란 명예를 쟁취하게끔 도와주십시오."

역시 이강호 못지않게 임기가 끝나기 전, [ 마신 토벌 최초 성공 대통령 ] 이란 명예로운 칭호를 얻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기에 나를 찾은 것일 터고.

그리고 나와 이강호와의 대립에 대해선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이야기가 아주 수월하게 잘 풀려갈 듯싶다.

"대통령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가 마신 토벌전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이강호 군단장 때문입니다."

"허허,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국익을 위해 한 몸 바치고, 더 나아가 어가이브 길드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마신 토벌전에 참여하고 싶으나…"

조금은 조심스러운 이야기에 말끝을 늘렸는데, 대통령은 아무래도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먹은 모양이다.

그가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을 끊었다.

"길게 둘러 말하실 것 없습니다. 조건을 얘기해주시지요."

조건.

내가 마신 토벌전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 어떤 것도 들어주겠다는 그의 호언장담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이었다.

이강호의 즉각적인 처분은, 오직 국가원수인 대통령만이 가능한 일이니까.

그에 나 역시 단도직입적으로 조건을 내걸기로 했다.

"제 조건은.. 이강호 군단장의 파면입니다."

조건을 예상했다는듯,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파면이라.. 그 뜻은 단순 경질을 넘어 이강호 군단장의 몰락을 말하시는 것이겠지요?"

"그는 저희 가족을 버리고 어머니의 죽음도 외면한 파렴치한 인간입니다. 그에 합당한 처분만 있으면 됩니다."

대통령 김석우가 리듬을 타듯 고개를 앞뒤로 몇 번 끄덕였다.

이미 생각해뒀을 것이다.

나를 여기로 불렀다는 것은 즉, 이강호를 토사구팽하고 내게 붙겠다는 뜻일 테니까.

그가 흡족스레 미소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좋습니다. 그럼 계약 성사하시지요."

"아, 그리고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허허, 뭐든 얘기해보십시오."

이강호의 몰락과 별개로.

우리 길드원들과 했던 약속이 있었다.

그들 역시 내게 약속했던 일이었고.

김석우 대통령의 악수를 맞잡으며, 말했다.

"마신 토벌대는 저희 어가이브 길드원들로 구성하게 해주세요. 기필코 성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

ㅡ쿠당탕!

ㅡ우지끈!

ㅡ콰직! 쿵!

대헌터군단장실 문 너머로까지 울려퍼지는 굉음들. 복도를 지나는 이들은 하나 같이 불똥이 튈 세라 몸을 사리며 지나가기 급급했다.

"어휴, 당분간 결재보고도 못 올리겠는걸."

"그것뿐인가?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으으으…!"

"서, 서둘러 가세!"

ㅡ쿠궁!

ㅡ푸콰악!

한동안 멈추지 않는 굉음이 30분여를 대헌터군단실을 울렸고, 이내 사그라든다.

"후우..! 후우..!"

그 굉음들을 일으킨 장본인, 이강호가 숨을 격하게 내쉬며 너덜해진 의자에 주저앉았다.

거의 모든 가구들이 반파됐으며, 서류와 파일들은 더 이상의 정리를 거부하듯.

봄날 벚꽃잎마냥 어지러이도 흩날려있다.

그럼에도 이강호는 좀체 분을 삭히지 못하며 으르렁대고 있을 뿐이었다.

"개자식..! 감히 나를 뭘로 보고! 내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것 같으냐! 으아아아ㅡ!!"

ㅡ쿠당탕! 콰직!

어제의 치욕에 채 삭히지 못한 울분이 토해지며 목재 선반 하나가 벽면으로 날아가 부서진다.

청소업체를 불러야할 정도로 엉망이 되버린 집무실.

하지만 이강호는 어제의 치욕에 치를 떨 뿐이었다.

하라는 대로 모두 했건만.

새파란 핏덩이 같은 생도들 앞에서 지옥과도 같은 치욕만 얻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였다.

일개헌터가 대헌터군단장을 농락하고 가지고 놀다니.

상상치도 못한 그 일은 일어났고, 바닥으로 추락하다못해 지하까지 뚫고 내려간 군단장으로서의 위엄은 더 이상 회복조차 불가할 듯했다.

평생을 조림당할 굴욕의 순간.

재차 떠오르는 악몽과도 같은 순간에 이강호가 창밖으로 의자를 내집어던지려했는데.

부서진 문틈 사이로 보좌관이 급히 들어왔다.

"구, 군단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냐는 질문조차 능멸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미 언론에선 두 얼굴의 군단장의 몰락이라며 힐난해대고 있는 걸 급급히 진화하고 있었는 데다, 대한민국의 최초 마신 토벌의 업적을 위해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도 들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상.

그가 바라던 `숙원`은 물거품이 되고만 것이다.

그 물거품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이강호의 서슬퍼런 눈동자가 보좌관에게로 향했다.

"뭐? 괜찮아? 네놈 눈은 애꾸인 것이냐!!"

"아아..! 그, 그! 군단장님께서 말씀하신 두 분 모셔왔습니다..!"

모진 채찍질이 가해질까, 급히 고한 보좌관이 문 너머로 손짓을 했고.

곧바로 두 명의 여성이 들어왔다.

금방 물들인 듯한 금발이 눈부신 여성 한 명과.

힐러를 알리는 듯한 성스런 백색의 단발이 인상적인 여성 한 명이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신나희와 박나영이었다.

폐허로 변한 군단장실에 살짝 놀란 둘이 급히 고개를 조아린다.

""부르셨습니까, 군단장님.""

그런 둘을 본 이강호가 괴랄한 노기를 거두며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퍼뜨렸다. 평생에 걸쳐 가지지 못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질 수 없다면 빼앗아서라도 가져야했고, 빼앗을 수마저 없다면 아무도 가지지 못하게 파괴해버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이제 최후 통첩인 것이다.

"어서들 앉지."

앉을 자리가 없었다.

**

"나희야.. 진짜 괜찮은 걸까?"

폐허를 방불케하는 군단장실을 나선 나영의 표정엔 불안감이 팽배했다.

헌터로써 거역할 수 없는 군단장의 명령과 달콤한 제안은 왠지모를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희는 뒤통수에 손깍지를 끼며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답했다.

"뭐~ 저희 임무는 간단하잖아요? 유안나 씨를 데려오기만 하면 되는 거에요. 그 뒤의 일은 저희랑 연관없는 거구요."

"그치만..."

시무룩해하는 나영에 나희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와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 입장에선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고.

그저 유안나를 데리고 와 군단장님과의 만남만 주선해주면 되는 일인데, 그 간단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 무려 [ 하얀 깃발 수호단 입단 ]을 받을 수 있다면 백 번이고 해야할 일인 것이다.

더욱이.

길드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자신들이라면.

이제껏 자신을 외면한 길드장들의 안면이 떠오르자 나희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치만이라뇨!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유안나와 이강준이 저희를 속여서 이 지경이 된 거잖아요!"

"그건.. 맞지.."

"이제 우릴 받아주는 길드도 없잖아요! 무조건 해야돼요! 하얀 깃발 수호단에 들어가서 그 파렴치한 인간들과 길드장놈들한테 보란듯이 복수해야죠!"

"그, 그건 그래.."

"그러니까 어서 전화해요! 제가 하면 의심할 게 분명하니 나영씨가 하셔야해요!"

"아, 알았다구.."

등 떠미는 나희에 결국 휴대폰을 꺼내드는 나영.

머뭇대는 손은 나희의 거듭된 재촉에 기어이 [ 유안나 언니 ]를 검색하고.

"어서어서요."

곧이어 통화버튼을 누른다.

가느다랗고 뽀얀 손가락을 잘게 떨며 스피커 모드로 돌리는 나영.

"하... 긴장돼."

"긴장할 거 없어요! 커피 한 잔 하자는 건 누구나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요!?"

ㅡ뚜루루.

ㅡ뚜루루.

유달리 길게 느껴지는 연결음.

두근대는 심장에 정신이 달아오르는 것 같은 나영이 나희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한 때 생사를 함께했던 동료를 이용한다는 생각은 자꾸만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게끔 종용하지만, 나희의 힘 준 동공은 미약하게나마 남은 도덕성을 짓밟는다.

'그래... 어차피 오갈 데도 없잖아.'

ㅡ뚜르르, 딸각.

잠시 후,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오랜만에 듣는 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나영아?

"아, 으응. 언니. 잘 지냈어..? 우리 커피 한 잔 안 할래? 하고픈 얘기도 있고..."

ㅡ나야 좋지! 언제, 어디서 볼까?

"아... 내가 시간하고 장소는 톡으로 보내줄게."

ㅡ그래! 알겠어!

오랜만에 듣는 쾌활한 목소리는, 나영의 가슴을 후벼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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