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0)무너지는 대헌터군단장
ㅡ쿵!
마룻바닥이 들썩일 정도로 호쾌하게도 무릎 꿇는 이강호.
그 비루하기 짝이 없는 자세에, 등어리엔 소름 한 줌이 흩뿌려진다.
쾌감이다.
짜릿한 복수쾌감.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게 한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곧 그 쾌감은 비릿한 쓴맛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비록 무릎은 꿇었다만, 뜻을 굽히지 않는 저 역겨운 표정은 마치 `대의를 위해 소신을 굽힌다`식의 정의를 표방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사지에 몰린 병사들을 위해 적진에 혈혈단신으로 쳐들어가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장군마냥, 굳은 결의에 찬 표정은 되레 나를 가해자로 만들고 있었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역겨운 족속이다.
제 비뚫어진 정의가 옳은 것마냥 행동하는 역겨운 것들.
사과는 고사하고, `모든 건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다.`라고 알리는 듯한 표정에.
심산은 더욱 뒤틀려갈 뿐이었다.
안 하니만 못한 사죄.
"하.. 진짜 벌레만도 못한 새끼."
그에 마음 속 분노가 문자가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무언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걸 눈치챈 놈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무릎까지 꿇었다. 대헌터의 대장인 내가 헌터에게 무릎을 꾾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굳이 설명 안 해도 알겠지. 자, 이제 우리 하얀 깃발 수호단에 입단하겠느냐.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
지랄도 풍년이네.
거기 들어가는 게 수치인데 대우를 해주긴 개뿔.
"누가 입단하겠다 했습니까?"
"뭐, 뭐?"
"입단을 고려해보겠다고 했지요. 그것도 사과가 `만족`스러웠을 때요."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한글도 제대로 못 땐 아둔함에 피식 조소가 나왔다. 어느새 복도 양 끝으로 몇몇이 모여들어 부자지간의 신랄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관중이 많을수록 좋지.
놈이 무너지는 걸 혼자 보는 건 너무나도 아쉬우니까.
"능멸이라, 그래서 아니꼬우신가요? 그럼 그냥 없던 일로 하시죠. 가보겠습니다."
약올리듯, 신사의 인사법으로 정중히 허리를 숙이자 놈이 다급하게 외친다.
"자, 잠깐!"
"왜 그러시죠? 제대로 사죄할 마음이 드셨나요?"
"하… 알겠다.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 그만 노여움을 풀거라. 아비로써 간곡히 부탁하마."
쥐새끼에게 궁지에 몰린 호랑이가 이제야 쥐새끼가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 깨달은 모양이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까지도.
마신 강림까지 시간이 얼마없을 것이다.
보통 전조현상 이후, 한 달 이내에 강림했었으니까.
그렇기에 아주 똥줄이 타시겠지.
명예에 죽고 못 사는 이강호는 숨이 끊기기 전, 마신 토벌을 `최초`로 성공한 군단장으로써 이름을 올리고 싶어할 테니 말이다.
명예에 환장한 늙다리 같으니.
그놈의 명예 탓에 나와 소민이를 버렸었지.
자신의 혈통에 각성실패자가 끼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테니까.
건들거리며 놈을 노려보았다.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셨나요?"
"후… 국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그러니 과거의 잘못을 그만 잊어줘."
"그놈의 국가타령, 아주 충직한 개가 납셨네."
"…."
평소였다면 제 존엄을 모욕하는 행위에 호통으로 응수했겠지만, 칼자루가 제 손이 아닌.
내 손에 쥐어졌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은 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보기 좋은 얼굴이다.
핏덩이 같은 아카데미 생도들이 보는 곳에서 무릎을 꿇은 채 비참함이 묻어나는 표정을 짓고 있다니.
마음 같아선 사진이라도 찍어 우울할 때마다 꺼내보고 싶을 심정이지만, 그런 유치한 짓으로 숭고한 복수를 폄훼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강도를 조금 더 올려보기로 했다.
"뭐든 한다고 하셨죠?"
"…그래."
체념한듯 읊조리는 놈에, 까닥까닥 손짓을 하며 걸음을 돌렸다.
속죄의 무대로 삼기에 아카데미 복도는 너무 좁았다. 부자지간의 숙원을 푸는 무대인데, 아무래도 넓고 관중들도 많아야 그 맛이 살겠지.
"따라오세요."
그렇기에 난.
아카데미 운동장으로 향했다.
**
스크래치가 나다못해 회복이 불가할 정도로 깊게 파인 자존심에 이강호의 관자놀이는 연신 꿈틀거렸지만.
이왕 자존심을 내리기로 한 거, 조용히 강준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아카데미 본관의 바깥.
마치 선생에게 혼나는 제자마냥, 질질 끌려다니는 행태에 당장이라도 강준의 볼기짝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아카데미 전교생의 이목이 쏠린데다, 무엇보다 이번 주 내로 강준의 마음을 회유시키지 못한다면 대통령께서 직접 움직이겠다 엄포한 상태였기에, 기필코 오늘만큼은 그에게 선처를 받아야만 했었다.
그렇기에.
제 위신과 존엄, 자존심 따위를 버렸건만.
아무래도 이강준은 자신의 그것들을 처참히도 짓밟으려는 모양이었다.
왠지모를 도축소가 된 듯한 기분.
그 비참함을 고스란히 느끼며 걷길 1분여, 이내 운동장의 중앙에 도착한 강준이 걸음을 멈췄다.
"자, 길게 끌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고개를 박고 엎드리세요. 그리고 모두가 들리게끔 크게 외치세요. 지난 날의 과오에 대해서."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강호가 방금처럼, 무릎을 찧으며 바닥에 꿇었다. 감히 형언할 수 없는 굴욕감이 심장을 짓누른다.
수치스럽고, 창피한 굴욕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이 또한.
역사가 흐르고 나면 《최초로 마신 토벌 성공을 이끈 대헌터군단장의 결단력과 위업》이란 명분으로 재평가될 테니까.
본래 역사가 그렇지 않은가.
성공하면 위업이요, 실패하면 억업이요.
그렇기에 그는 어금니를 깨부술듯 씹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어차피 여론전에서는 승산이 없었다.
세상 모두가 최초의 초월급 버퍼의 편이었었으니까.
"…그럼, 사죄하마. 부디 내 진심을 알아다오."
콘서트장마냥 즐비하게 깔린 구경꾼들 사이에서 기어코 이강호는 버렸던 자식의 앞에서 참회의 도개자를 시전한다.
쿵! 무릎에 이어 이마까지 으개버릴듯 억세게도 도개자를 하는 이강호.
욱씬대는 이마에서 뜨거운 핏물이 흐르는게 느껴졌지만, 그는 강준이 얘기했던 지령대로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나 이강호는! 각성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자식과 아내를 버렸으며 아내의 죽음을 외면했었다! 그에 깊이 사죄하며 이강준 헌터에게 선처를 바람과 동시에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ㅡ!"
확성기를 단 것마냥 쩌렁쩌렁하게도 울리는 이강호의 지난 날의 참회.
강준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모여든 생도들의 웅성거림으로 운동장은 소란스러워진다.
강준이 고개를 박고 도개자를 하고 있는 이강호에게 다가갔다.
그 발소리에서 일말의 자비심을 엿본 이강호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쯤했으면 되지 않았겠는가.
생명과도 같은 위신을 굽힌 결단력으로 기어이 그를 회유했다는 기대감에 이강호의 굳은 입꼬리가 반등의 요지를 보인다.
"좋습니다. 훌륭했어요.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용서를 구할 줄이야.. 이빨 빠진 호랑이가 그래도 아직 악바리가 남아있나보네요."
황제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린 신하마냥, 고개만 든 이강호를 내려다보는 강준.
입가에 옅은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그럼.. 이제 용서해주는 게냐?"
"풋, 뭐 어찌됐든.. 버퍼로써 마신 토벌전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속죄를 진실되이 여기며 선처를 하는 강준에, 이강호의 입이 초승달을 그린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희망 뒤에 오는 절망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것인지를.
강준이 싸늘히 웃으며 말했다.
"근데… 조건이 있습니다."
"뭐, 뭐든지 얘기해. 돈? 명예? 전부 가져다주지..!"
강준의 싸늘한 미소가 혹한의 바람마냥 냉기를 흘린다.
"군단장에서 물러나세요."
희망 뒤에 찾아온 절망에 이강호의 벌어진 주둥이가 경직되고만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이제야 주변의 소리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아, 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버렸단 말인가.
"그리고, 모든 재산 사회에 환원하시고요. 그럼 버퍼로써 그쪽이 좋아하는 `국가`를 위해 마신 토벌전에 참여하겠습니다."
이강호의 떨리는 눈동자에 과거의 편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얻은 것 하나 없는, 잃은 것 밖에 없는 기억들 뿐이었다.
강준이 자세를 낮춰 그를 노려보았다.
"큭큭, 보기 좋은 얼굴이네요. 마치 옛날의 저처럼요. 너무 절망하지마세요. 전 이제 시작이니까요."
말을 마친 강준이 피식, 조소를 바닥에 남겨둔 후.
걸음을 옮겼다.
이제, 다음 순서를 기다릴 차례다.
**
"와… 파장이 장난 아닌데?"
그날 저녁.
이제는 `집`이 되버린 서윤 누나의 하우스에 도착한 난 누나들과 지민, 벨라를 모두 불렀다.
지민이는 [ 생명의 은인인데 여기 방 하나만 줘! ]라며 여기에 엉덩이를 눌러앉아버렸고, 벨라는 아버지와 살 집이 구해지기 전까지 임시로 머물게 되어 마침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오빠.. 뉴스 나오는 거야?"
"뭐 그렇게 됐네. 누가 제보했나봐."
뉴스에 안 나오는게 오히려 이상하겠지.
수백의 생도들이 지켜봤었는데 말이다.
묵묵히 앉아있는 벨라의 옆에서 우유를 한 모금 마신 안나 누나가 허탈한 웃음을 뱉었다.
"하, 저런 걸 군단장이라고..."
"어허, 안나야."
서윤 누나의 책에 안나 누나가 말 끝을 흐리곤 내 눈치를 본다.
내 앞에서 놈을 폄하한 게 걸리는 눈치였기에, 고개를 짧게 저어주었다.
"괜찮아. 아버지 취급 안 하고 있으니까."
지민이 어느샌가 가져온 과자봉지를 뜯으며 말했다.
"근데 저 사람도 대단하네. 군단장이란 위치의 사람이 어뜨케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저럴 수가 있대?"
"뭐.. 절박한 사람은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니까. 그나저나 당분간 다들 조심해. 저 인간 분명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나의 걱정스런 말에 서윤 누나가 거뜬하다는듯, 사슴 같은 눈에 힘을 주었고.
안나 누난 별 일 아니라는듯, 우유를 홀짝.
지민이는... 음... 별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벨라는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래 뭐..
별 일이야 있겠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허튼 짓거리를 하기는 쉽지 않겠지.
그렇게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며 아늑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는데.
하우스 초인종이 울렸다.
"응? 이 시간에 뭐지? 배달시킨 사람 있어?"
"아니?"
"나둥 안 시켰어요."
서윤 누나가 인터폰으로 다가갔는데, 입술을 샐쭉 내밀며 고개만 까닥일 뿐이었다.
"뭐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리곤 인터폰 버튼을 눌러 방문자의 정체에 대해 물었고, 스피커 음량의 목소리는 또렷히 우리에게 들려왔다.
《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대통령비서실장입니다. 감석우 대통령께서 이강준 헌터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
옳치.
이제 다음 순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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