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8)아카데미 졸업? 아니 자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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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빠각!
오른 손 맨손 뚝배기 한번에 레드 스컬 한 마리.
왼 손 단검 횡베기 한번에 머미 두 마리.
그간 다져온 격투기술로 리드미컬한 공격을 하며 스컬 메이지에게 다가가자 놈은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친다.
이아영을 윤간하던 머미새끼들 또한 살벌한 도륙 현장을 목도하곤 꼬무룩했는지 겁에 질린 똥개들마냥 옹기종기 모여 눈끝을 떨어댔다.
ㅡ푹! 빠각!
ㅡ끼엑! 크득!
스켈레톤 뚝배기가 깨지며 뼛가루가 날리고, 배때지가 그인 머미는 오장육부를 쏟아내며 수십 년 고인 하수구보다 더한 악취를 풍겨댄다.
막 머미의 배때지를 쑤시려던 칼이 멈췄다.
이러다 악취에 졸도할 거 같은데.
급히 칼을 올려쳐 놈의 턱 아래부터 뚝배기까지 관통시킨다.
뼈가 으개지는 소리가 났는데, 근력이 높아서 그런 건지 머미 두개골이 물뼈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까지 처리하자 기어이 홀로 남아버린 스컬 메이지.
꼬부라진 꼬깔모자가 애처롭게도 보인다.
개새끼.
휴지 없는 닝겐을 이용하는 악랄한 마나 트랩을 설치하다니.
졸업시험의 패작의 원인은 어쨌든 이아영이지만, 근본적인 원흉인 저 새끼가 아니던가.
성큼성큼, 피 묻은 단도를 휙 베어 피를 털어내곤 놈에게 다가갔다.
ㅡ키륵! 끄르륵!
위협하듯 지팡이를 휘적대는 스컬 메이지.
헤지고 낡은 로브는 구멍이 뚫려 애처로움이 배가 된다.
너도 참 기구한 운명이네.
초월급 헌터를 만나다니 말이야.
만약 나만 아니었다면 구조대가 올 때까지만이라도 히죽대며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을 텐데.
ㅡ키르르륵… 두득, 다르륵.
궁지에 몰린 놈이 지팡이를 부여잡고 주술을 외우는 듯했는데, 영창만 되고 발현이 되지 않는 걸로보아 마나가 바닥난 모양이었다.
ㅡ휙! 휙!
ㅡ키륵! 카득!
결국 좀비마냥 반쯤 나간 이빨을 드러내며 지팡이를 휘두르는 스컬 메이지.
아니, 이젠 스컬 워리어인가.
지팡이 워리어?
그리고 트랩 설치자의 마나가 바닥나자 트랩 효과가 약해졌는지, 지민이와 일행들이 쇠창살을 부수고 뛰쳐나왔다.
스컬 메이지의 뼈만 남은 썩은 얼굴에 절망만이 가득 차오른다.
피해자인냥 그런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지말라고.
안 그래도 졸업 시험 망쳐서 개빡쳐있는 상태니까.
ㅡ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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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미들과 달리 뇌가 없는 스컬 메이지는 깔끔한 두개골 박살과 함께 절명하고 말았다.
손에 묻은 뼛가루를 털어내고 있자 내게 다가와 어깻죽지부터 다리까지 정성스레도 털어주는 지민.
"어휴, 뼛가루 묻은 거 봐."
"됐어. 어차피 씻을 건데 뭐."
"어차피 죽을 거 왜 산대? 얼른 돌아봐, 털어줄게."
...감사인사를 특이하게 하는 지민에 몸을 돌려주었고, 보모마냥 꼼꼼히 먼지와 뼛가루를 털어낸다.
잠시 후, 대선과 빛나가 아영을 부축한 채로 다가왔다.
대선이 힐과 리커버리를 이용해 회복을 시켜놓은 터라, 혈색이 그나마 도는 아영.
물론 머미에게 집단윤간 당한 기억탓인지, 축 늘어진 고개를 들진 못했다.
그리고 헝겁에 묶인 허벅지의 아래로는 공허함만이 남아있었다.
위로할 생각은 없었다.
자업자득이다.
초딩들도 피할 저급한 마나 트랩에 걸려들어 우리의 졸업시험을 망쳤는데, 위로는 무슨.
그리고 졸업시험은 고사하고 하마터면 목숨까지도 잃을 뻔한 일이었다.
어찌보면 잘 된 일이다.
저 무지하고 생각없는 헌터가 생사가 놓인 전선에서 파티원들을 더 이상 위험에 빠뜨릴 일은 없지 않겠는가.
이제 헌터로서의 인생은 끝일 테니까.
다리 한 쪽으로 액뗌했다 여기길 바래볼 뿐.
"어서 나가죠."
"넵."
그렇게 우린, 졸업시험을 쫄딱 망친 채로 던전을 빠져나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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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총점 82점?"
졸업시험 평과 결과는 그 다음날 곧바로 공지되었다. 하여튼 한국사람들 스피드 근성은 알아줘야한다니까.
헌데.
인터넷에 뜬 졸업시험평가표를 본 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종합 점수 82점.
커트라인인 70점을 무난하게 상회한 점수였는데, 나를 제외한 조빛나와 최대선은 각각 45점, 55점이었었다.
즉.
조별 시험에서 나만 합격했다는 것이다.
종합 평점 사유엔 [ 파티원들을 위한 희생 정신에 높은 평가 점수를 부여함 ] 이라고 적혀 있었었다.
위기에 빠진 파티원들을 구조한 것에 점수를 부여한다는 것인가.
납득은 되지만, 조에서 홀로 시험 합격하니 왜인지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최대선이 웃으며 공손히 악수를 건넸다.
"하하, 당연한 결과죠. 강준씨 아니었음 저희 여기 있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혼자 합격한 게 영.. 기분이 그렇네요. 다들 고생했는데."
멋쩍은 미소로 악수를 받는 내게, 이번엔 조빛나가 말을 건네왔다.
"호호, 그런 생각 안 하셔도 돼요. 목숨의 은인이신데 합격은 당연한 거죠. 저흰 다음 차수에 재시험 치면 돼요."
흠.
그건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레이드 실패가 아니던가. 게다가 졸업시험 규정상, 참관 헌터가 개입했을 시엔 조별 시험에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라는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설마, 초월급 버퍼라는 이유로 특혜라도 주겠단 건가? 일전에도 마음을 다잡았듯, 초월급 버퍼란 이유로 내게 주어지는 특혜들은 조심해야했다.
특혜에 적응하는 순간, 그토록 내가 경멸했던 오만하고 파렴치한 족속이 될 테니까.
인간이란 원래 그렇다.
거듭되는 특혜를 어느샌가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기 마련이라는 거다.
영화 부당거래에서도 현자 주양 검사님께서 그러시지 않았던가.
《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
제 아무리 절제력과 중립심이 뛰어난 사람이라하더라도, 냄비 안에서 끓는 개구리가 제 살이 익는지도 모르고 가만히 있다가 뒤지는 것처럼.
호의를 받기 시작하면 나중엔 호의가 없어지면 심보가 비뚤어지기 시작한다는 거다.
고로.
정했다.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저 혼자만 합격할 수는 없습니다. 규정상 참관 헌터가 개입한 조는 전원 탈락이라고 다들 알고 계시잖아요?"
"아.. 그건 그렇지만 일종의.. 특혜 아닐까요? 워낙 귀하신 몸이시니..."
"특혜는 필요 없습니다. 다 같은 헌터들인데 저만 혜택을 누린다는 건 공평하지 못하잖아요. 학장님께 직접 건의드리러 가보겠습니다."
고지식하다해도 상관없다.
이런 아집스런 고지식함은 몸에 베이다못해 스며들 때까지 부릴 거니까.
곧장 학장실로 향했다.
*
"마침 왔군."
학장실 문을 열자마자 반기는 건 호랑이의 기백을 담은 우직한 얼굴이었다.
자잘한 상흔이 과거의 영광마냥 두드러져 보이는 얼굴.
그리고 좆 같은 얼굴.
놈을 투명인간 취급하듯 무시한 채, 학장님께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를 올렸다.
"학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마침 아버님과... 얘, 얘기 중이었습니다."
나와 그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아는지, `아버님`이란 단어를 불쑥 뱉어버린 제 주둥이를 두어번 친 학장이 쇼파 자리를 가리켰다.
자신의 옆자리였다.
본능적으로 이곳의 권좌는 이강호 군단장의 것임을 알기에, 그와 마주하는 자리를 권하는 학장이었는데.
난 보란듯이 이강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이곳에 온 이유를 설파했다.
"저 혼자 졸업시험에 통과하는 건 규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다음 차수에 재시험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아..."
헌데 곤란한 표정으로 이강호를 쳐다보는 학장.
...꼴을 보아하니 특혜에 이강호의 입김이 작용한 모양이다.
그렇담 더더욱 졸업할 수 없지.
학장의 시선을 받은 이강호가 눈만 살짝 돌린 채로 말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얼른 졸업할 생각을 해야지, 허울 뿐인 아카데미 따위에서 시간을 낭비할 셈이냐. 세상이 널 원하고 있다. 서둘러 졸업하고 우리 하얀 깃발 수호단에 들어올 준비나 하거라."
하, 진짜 저 고압적인 주둥이에 피스팅을 시전해 강냉이를 다 으깨버리고 싶네.
짜증스레 어금니를 씹으며, 놈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뇌까렸다.
"김칫국도 사발로 드링킹하시네요. 누가 그깟 용병단에 들어간답니까? 저 어가이브 길드의 수장입니다. 어가이브 길드가 있는 한, 전 어디도 안 갑니다."
"후..."
길게 한숨을 내쉬는 이강호.
옆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그가 내뱉는 숨결이 혹여나 내 폐부를 더럽힐까.
숨마저 아껴쉬게 만든다.
하여튼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
"그렇담.. 대체 내가 무얼 제안해야 뜻을 따르겠단 말이냐."
"전에도 얘기했잖습니까? 무릎 꿇고 질질 짜면서 사과하라고요. 어머니 묘 앞에서."
"...고작 원하는 게 그거냐?"
고작이라.
어머니의 죽음을 `고작`이라는 단어로 폄하하는 말에 순간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고작이라니, 당신이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과거의 잘못도 바로 잡지 않으려하면서 미래를 도모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됐고. 학장님."
부자지간에 부는 서슬퍼런 칼바람에 바짝 얼어있던 학장이 나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쳐다보았다.
"네, 네?"
이사장도 그렇고 학장도 그렇고.
아카데미가 언제부터 군단장 졸개집단이었단 말인가?
아마 어느 아카데미를 가도 마찬가지겠지.
서울 아카데미 학장조차 벌벌 기는데, 그 하위 아카데미 학장들은 사람 좋아하는 시골개마냥 알랑방귀를 껴대며 질질 쌀 게 뻔했다.
하.
이강호 이 새끼는 진짜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에 있어 걸림돌인 건 변함이 없네.
그것도 아주 깊게 박힌, 가시 돋힌 걸림돌이랄까.
물론 달라진 건 있었다.
바로 나.
그때는 맨발이라 가시 돋힌 걸림돌을 넘을 수가 없었다면, 이제는 18미리 철판을 깐 신발을 신었달까.
그러니 이젠 그냥 가시째로 밟아버려주마.
놈이 원하는게 나의 아카데미 졸업이라면, 극도의 사춘기에 접어든 자식마냥.
반대로 행동하면 되는 일이다.
"학장님, 저 자퇴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곤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내가 아쉬울 건 없었다.
아카데미 졸업을 못하면 레이드를 못 뛰지 않냐고?
그럼 뭐 어때.
레이드 못 뛴다고해서 우리 어가이브 길드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이강호 군단장님께서 똥줄 타시겠지.
아니, 똥줄 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친히 이곳까지 강림하신 것일 터고.
어제 13시경 E급 던전에서 학살하고 있을 때, 북부 혈냉의 전선 근처에서 마신 강림 전조 현상이 나타났다했으니까.
등 뒤에서 학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네?! 아니 이제 곧 졸업이신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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