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7)E급 던전에 초월급 강림이시다, 이 개새끼야
"꺄아아악!"
고요한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그 소리를 시작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세 명의 헌터들이 눈을 뜬다.
그리고 재빨리 제 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안도의 숨을 내쉰 조빛나가 괜스레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아.. 이, 일단 저는 무사합니다."
"아…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배지민이 주변을 살피며 자세를 낮췄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죽지도, 중상을 입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현 소재지에 대한 파악이 우선이었기에, 주변을 살폈는데..
두꺼운 쇠창살이 그들을 반겼다.
"뭐야..?"
3면은 미궁벽으로 되어있고, 전방은 쇠창살로 이뤄진 전형적인 미궁 감옥이었다.
쇠창살의 틈 사이로 넓은 공동이 보인다.
당장의 위협이 없음을 확인한 배지민이 파티원들을 아우르며 말했다.
"일단 다들 괜찮으셔서 다행이네요. 위기상황 발생으로 인해 전두지휘권은 제게 생깁니다. 포션부터 확인해두세요."
""넵.""
헌데, 명령을 이행하려던 그들의 행동이 멈춘다. 뒤편에서 비명을 질렀던 이아영의 상태가 심상치않았다.
배지민이 급히 이아영에게 다가갔다.
[ 참관 헌터 ]는 졸업생도들이 중상을 입지 않게끔 만들 책임이 있었다.
지금과 같은 돌발행동으로 인한 트랩 발동은 어쩔 수 없었지만.
"아, 아영씨! 괜찮으세요!?"
"끄으윽…"
비록 파티를 위기에 빠뜨린 원수와도 같은 년이었지만, 책임과 의무를 위해 아영을 살피는 배지민.
하지만 낯빛이 점점 어두워져간다.
다리 한 쪽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트랩 발동자에게 패널티가 크게 간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E급 던전의 트랩 따위에 실족한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지민이 급히 최대선을 찾았다.
"대선씨 어서 힐이랑 리커버리요!!"
"아아! 네, 넵!"
잘려나간 다리에서 쏟아지는 피분수에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서있던 대선이 급히 지팡이를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스킬이 시전되지 않았다.
"어? 이, 이상한데요..!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네?!"
그에 지민이 급히 마나를 느껴보지만, 그의 말대로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서, 설마…! 마나 브레이커 주술인가…!?"
지민의 말에, 빛나와 대선의 얼굴에 경악 그 이상의 것이 강타한다.
일명 마나 브레이커 트랩.
던전 등급을 막론하고 발동하는 트랩 중, 헌터들에게 가장 까다롭고 곤란한 트랩이 바로 `마나 브레이커 트랩`이었었다.
마나를 없앤 공간에 헌터를 가두는 트랩인데, 보통 며칠이 지나고 나면 주술이 풀려 마나가 다시 흐른다지만.
마나가 없으면 일반 인간인 헌터들에겐 상당한 심적 압박감을 주는 트랩인 것이다.
더욱이.
중상자가 있으면 더더욱.
"젠장…! 하필 마나 브레이커라니..!! 대선씨 빛나씨! 뭐 묶을 거라도 찾아보세요! 지혈하지 않으면 위험해요!"
참관 헌터로써 위기상황에 대비하는 훈련을 해두었던 지민이 그들에게 명하며 급히 아영의 잘려진 다리의 끝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손 두개의 둘레가 넘는 허벅지는 같잖은 지혈 따위를 윤허하지 않는다.
ㅡ피슙..
계속해서 뿜어져나오는 붉은 선혈.
아영은 이미 실신에 이르렀고, 서둘러 막지 않으면 진짜 위험한 상태였다.
"여, 여기요! 포켓에 찾아보니 붕대 챙겨온 게 있었어요!"
천만다행으로 빛나의 포켓에 붕대가 있었고.
그것을 받은 지민이 능숙히 허벅지를 압박하며 동여매 피분수를 멈추었다.
지민이 인중에 맺힌 식은 땀을 닦으며 철퍼덕 주저 앉았다.
"하아.. 하아.. 일단 임시처치는 했는데.. 이대로면 얼마 못 버틸 거에요."
"그치만 힐이 안 되니… 게다가 각성이 풀려서 체력 포션도 소용이 없잖아요?"
모든 포션류는 각성 육체에만 작용한다.
마나가 없어진 지금의 상태에선, 그저 맛 없는 물일 뿐.
절망적인 상황에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지길 1분여, 정신을 차린 지민이 쇠창살 쪽으로 다가갔다.
"넋 놓고 있을 시간 없어요.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하니까 주변 좀 살펴보세요. 다른 장치 같은 게 있을 지도 몰라요."
"넵."
보통의 트랩들은 벗어날 장치 같은 게 존재했다. 일종의 방 탈출 게임처럼 숨겨진 장치를 찾아 작동시키면 트랩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통상적으로 마나 브레이커 트랩은 바닥 쪽에 장치가 숨겨진 경우가 많았었다.
그에 백사장에서 바늘이라도 찾듯, 세 명 모두 바닥을 살펴보지만..
애석하게도 보이는 거라곤 잡벌레나 돌가루들 뿐이었다.
"하… 큰일이네."
"그러게요.. 교묘하게 숨긴 것 같아요. 지능적인 놈인가본데.."
"보스가 설치한 걸까요? 헌터들을 무력화시키려고?"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E급 던전에서 이정도 트랩이면 분명 스컬 메이지일 거에요. 주술 트랩 구사가 가능한 놈이니까."
ㅡ키르륵.
한국엔 그런 속담이 있다.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
절망에 빠진 그들의 귓구멍으로 보스, 스컬 메이지의 구역질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카데미 계단 난간의 쇠고리를 가는 것만큼이나 소름 끼치는 소리에 일제히 쇠창살로 시선이 향했고..
구울과 스켈레톤이 합쳐진 듯한 외형과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스컬 메이지가 스산스레 웃는 모습이 포착된다.
"아…"
예상대로, E급 중에서도 최고등급인 E10등급의 스컬 메이지였다.
누더기진 로브와 뱀대가리로 조각된 지팡이를 든, 스컬 메이지의 까만 동공이 쓰러진 아영에게 향한다.
곧이어.
아영의 아래 자그마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아, 안 돼! 마나도 없는 공간에서 어떻게 마법진을..!"
지민이 급히 마법진 바깥으로 아영을 끌어당기기 위해 움직였지만.. 비웃듯 마법진은 아영의 형체를 삼키며 사라져버린다.
"아, 아영씨!!"
찰나의 일이었다.
ㅡ키르륵, 키득!
**
"하… 뭐야."
커다란 마법진이 사라지고, 그 위의 모든 것들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나를 보며 웃던 지민의 얼굴이 잔상처럼 남아 마음을 괴롭힌다.
젠장…
뭐가 좋다고 웃고 난리인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진이 그려졌던 반경으로 다시 들어섰지만 예상대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라졌다고는하지만, 증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껏 트랩으로 인해 즉사한 헌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수 개월이 지나 후발대에 반 미이라가 되어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말이 씨가 된다했지.
고개를 털어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곤 우선 미니맵을 쳐다보았다.
트랩 발동 시 비산되는 마나의 양이 상당했었기 때문에 어쩌면 미니맵에 미미한 변화가 생겼을 지도 모른다.
마나트랩은 결국 마나를 운용하는 트랩.
즉, 미니맵에서 마나의 흐름이 변화된 곳이 마나 트랩의 종착지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보스방인가."
미니맵을 살펴보니 보스 방의 마나 밀도가 크게 증가해있었는데, 아무래도 마나 트랩의 종착지가 보스방인 듯했다.
고개를 돌려 겁에 질린 캐스터를 쳐다보았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이만 나가보셔도 됩니다.
오는 길에 잔몹까지 모두 처리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되구요."
"아, 네넵."
캐스터의 낯빛에 안도감이 깃든다.
제 아무리 초월급 헌터와의 동행이라하더라도, 불안하겠지.
"대신 하루가 지나도록 출구로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면 구조대 요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서, 설마 혼자 가시겠다는 겁니까?"
"네. 구하러 가야죠. 보아하니 보스 룸에 붙잡힌 듯하네요."
"아… 그럼 부디.."
경외스레 나를 쳐다보던 캐스터가 이내 고개를 조아리며 무운을 빌어주고는 부리나케 짐을 싸들고 왔던 길을 돌아간다.
캐스터는 함부로 파티를 이탈할 수 없었다.
규칙상 파티의 전멸, 혹은 후퇴 명령 또는 파티의 과반수 이상의 동의 하에 이탈이 가능했었는데.
지금처럼 파티원이 1명 남은 상태에선 1명이 과반수 이상이기에 이탈이 가능한 것이다.
뭐, 내가 이탈을 불허한다해도 생명부지를 위해 도망칠 게 뻔했지만.
"후, 가볼까."
졸지에 생애 첫 던전 레이드를 홀로 뛰게 된 난, 새까만 미궁의 끝을 보며 마음을 다진 후.
이내 걸음을 옮겼다.
무기랍시고 포켓에 담아왔던 단검 하나를 손에 쥔 채로.
**
"흠."
어느덧 보스 방 출입구.
손목시계를 흘금 쳐다보았다.
"한 시간 쯤 걸렸나.."
미궁은 총 2층으로 이루어져있었는데, 마나 트랩이 발동됐던 3구역과 4구역 사이의 휴식 구역부터 보스 룸이 있는 34구역까지 단 한 시간만에 주파했다.
슥 고개를 돌려 뒤편을 보았다.
보스 구역 쯤 되니 E등급 중에서도 상등급인 레드 스컬과 커다란 박쥐와도 같이 생긴, 상당히 성가신 몹인 블랙 컴벳이 있었는데.
모두 곤죽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자버프까지 써서 방어력을 극도로 끌어올린 덕에 놈들의 공격은 일절 내게 데미지를 입히지 못했었고, 극대화된 공격력은 놈들에게 스치기만해도 죽음을 선사했다.
내심 쫄았던 게 무안할 정도로 말이다.
"들어가볼까."
손을 탁탁 털고, 마나 포션을 한병 들이켰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크... 맛있게 좀 만들면 안 되나.."
녹인 고무를 마시는 듯한 식감은 영 적응이 안 된다. 빈 병을 다시 포켓에 넣은 후, 포탈에 발을 올렸다. 제발, 지민이가 있기를 빌어본다.
ㅡ후웅.
**
"꺄아악!"
포탈 이동 후, 눈을 뜨기도 전에 들려오는 여성의 비명소리.
소름 끼치는 그 소리에, 무뎌졌던 감각이 날카롭게 깨어난다.
낯익은 비명소리였다.
불과 1시간 전에 들었던 그 비명소리였으니까.
눈을 뜨고 곧장 전투 태세를 갖춘 다음, 비명이 들렸던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다리 한 쪽을 잃은 이아영이 속수무책으로 머미들에게 겁탈당하고 있었다.
오...
머미들 발기가 되는 거야?
자지도 껍질이 다 벗...
끔찍한 상상에 급히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내게 급한 건 이아영의 구조따위가 아니었다.
지민이를 찾는 것.
돔 형식의 보스 룸을 둘러보던 시선에 곧, 쇠창살 감옥에 갇힌 지민이와 일행들이 보였다.
"지민아! 괜찮아!?"
동시에 보스로 보이는 스컬 메이지도 보였다.
E급 보스 중에서도 주술력 탓에 공략이 까다로운 녀석이었는데, 마나 트랩도 놈이 설치한 것인 듯했다.
"오, 오빠아! 조심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ㅡ키륵..!
헌데, 이아영이 겁탈 당하는 걸 히죽대며 관람하고 있던 스컬 메이지가 나를 쳐다보고는 기겁하며 굳는다.
초면인데 왜 그러시나.
짐승적 본능이 죽음을 직감케라도 한 건가.
어쨌든 좋은 표정이네.
E급 던전에 초월급 강림이시다, 이 개새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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