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6)트랩 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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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졸업생인 헌터가 참관하는 게 일종의 서울 아카데미만의 풍습이야."
라고 얘기한 지민이는 나를 놀래킨 게 뿌듯하기라도 한 지 쿡쿡 웃으며 파티의 최후방에 캐스터 한 명과 배치되었다.
캐스터를 보니 새삼 옛 생각이 떠오르네.
광석이랑 마물사체 채집하는 게 썩 재밌긴 했었는데. 하지만 이젠 더 재미난 게 눈 앞에 펼쳐진 이상, 쓸 데 없는 추억은 거두고.
시야의 좌측 상단에 표시된 미궁 맵을 쳐다보았다.
마치 RPG 게임의 미니맵 마냥 간략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표기된 지도는 꼭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도 일으켰다.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마나칩의 기술력은 진짜 대단하다니까. 아마 던전과 마나의 출몰 이후 세계 최고의 발명이 아닐까 싶다.
출발에 앞서, 정비 중인 파티원들의 뒤편에 서서 [ 이면보기 ] 능력을 운용했다.
[ 조빛나 ]
[ 후.. 긴장된다. 잘 해낼 수 있겠지? ]
[ 최대선 ]
[ 잊지말자. 대선아. 힐러는 마나관리하면서 힐만 잘 주면 돼. ]
흠, 예상대로 조빛나와 최대선은 레이드에 앞서 마음가짐을 다잡는 듯했다.
시선을 이아영에게로 돌렸다.
[ 이아영 ]
[ 흐암~ E급이니까 두 시간 정도면 끝나겠지? 얼른 끝내고 데이트 신청이나 해봐야지~ ]
…진짜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네.
그리고 데이트 신청?
설마 그 신청을 받아주리라 생각하는 건가.
하여튼 얼척이 없는 년이네.
"다들 준비되셨나요?"
""네!""
"어서 가요~"
조빛나와 최대선이 마지막으로 장비 점검을 할 동안 미궁 던전에 흐르는 마나가 왠지 모르게 찝찝하다며 투덜대던 이아영이 호기롭게도 출발을 종용한다.
마음 같아선 죽빵을 날려 추파춥스인지 강냉이인지 모를 파편을 쏟아버리게끔 만들고 싶었지만.
헌터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도덕적 잣대기에 레이드 중 파티원 간 폭력사태를 일으킨 헌터는 사유불문하고 중징계에 처하게 된다는 것은 그 욕구를 분출하지 못하게끔 만든다.
아마 그걸 알고 저리도 깐죽거리는 거겠지.
하여튼 약아빠진 년.
"그럼 1구역부터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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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키륵.
ㅡ크드득.
1구역 2구역은 마물이 아닌, 일종의 던전 속 파충류와 같은 레드 프로그와 갈기 사마귀만 있었는데.
크기도 실제 파충류와 비슷해 전투력이라곤 1도 없는 녀석들이라 대충 처리한 후 어느덧 도착한 3구역.
드디어 마물이라할 수 있는 머미 2마리와 스켈레톤 1마리가 전방에 보인다.
덜 떨어진 좀비마냥 기동성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공격력은 높은 머미.
그리고 기동성은 높지만 방어력이 장난감보다 못한 스켈레톤인데, 특히 관절 쪽 취약성은 그야말로 딱밤으로도 부러뜨릴 수 있는 정도였다.
아, 물론 초월급인 나만.
"다들 여기로."
우선 기척을 숨기며 미궁 모퉁이에 숨은 우린 긴장감을 나누며 3마리의 마물처리에 대해 논의해야했다.
물론 내겐 방금전의 레드 프로그와 다를 바없는 허접스런 녀석들이지만, 이렇게나마 긴장감을 조성하고 첫 마물 토벌에 대한 신중을 기하기 위해.
굳은 표정으로 낮게 속삭였다.
"우선 스켈레톤이 후방에 있으니까 머미 2마리를 먼저 처리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탱커님께서 조용히 어그로 끄시는게 관건입니다."
조빛나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알 것이다.
초월급인 내가 그냥 망치 하나 들고 뚝배기 3번이면 끝날 거라는 걸.
하지만 실전이라는 중압감과 개인캠에 기록될 영상들에 다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이아영도 추파춥스를 빼고 꿀꺽, 침을 삼켰다.
제 아무리 하급 던전이라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 던전이란 곳이다.
여기저기 설치된 트랩 또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이유기도 했고.
"그럼 제가 선두에 서서 갈게요."
조빛나를 선두로, 멀찍이 거리를 벌린 우린 그녀의 첫번 째 활약상을 숨 죽여 지켜본다.
슬금슬금, 발 끝으로 은밀히 움직여 머미에게 다가가는 조빛나.
그 뒤에서 조용히 물리방어력 상승 버프 [ 아머 폴리모프 ] 를 사용했다.
머미와 스켈레톤 모두 물리공격타입이기에 마나를 아낄 겸 물리방어만 상승시킨 것이다.
초월급의 버프기에 사실상 얻어맞으면서도 뚜까패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모든 버프는 헌터의 고유능력에 퍼센트로 부여된다.
즉, 방어력 10인 탱커에게 버프를 부여해도 고작 방어력 20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것은 즉, E급 던전이라하더라도 주의를 해야한다는 것이었고.
잠시 후, 머미가 조빛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급히 백스텝으로 머미를 유인하며 후방의 스켈레톤과 거리를 벌리는 조빛나.
그 능숙한 스탭에 머미들이 홀린듯 따라오기 시작했다.
ㅡ그륵.
ㅡ끼륵.
"지금입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려졌다 판단되는 순간, 나의 작은 호령과 함께 이아영이 치고 나간다.
짜식, 그래도 실전에는 강한 타입이다 이건가.
쇄도하는 이아영에게 공격 상승 버프인 [ 어태커 인크리즈 ]를 걸어주었다.
지금은 실전 레이드다.
단순히 미운 감정이 있다는 것만으로 버프에 소홀히해서는 안 됐다.
"사이드 슬래쉬!(Side slash)"
스킬명 호령과 함께 이아영이 휘두른 검에서 초승달 모양의 검기 하나가 쇄도해 머미에게 적중한다.
ㅡ끼에엑!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한 마리 절명. 뒤이어 최대선이 힐을 머미에게 사용했고.
언데드 효과 탓에 신성력이 담긴 힐은 머미의 체력을 크게 깎았고, 마저 남은 딸피는 탱커 조빛나가 둔기 공격으로 마무리한다.
완벽하고 간결한 전략적 공격이었다.
ㅡ끼엑!
ㅡ사르륵.
ㅡ키르륵!
ㅡ달각달각달각!
죽은 머미들이 잿가루가 되어 사라지자 이내 스켈레톤이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썩어빠진 해골주둥이를 벌리며 뛰어온다.
관절이 달그닥대는 소리가 왜인지 처량하게 들려오는걸.
이미 머미를 처리한 우리에게, 스켈레톤 한 마리의 공격은 아가놀음 수준이었으니까.
"쉴드 오버!(Shield over)"
딜러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탱커 조빛나가 제 몸만 한 방패를 몸 쪽으로 당긴 다음, 스켈레톤을 향해 돌진 했고.
ㅡ쿠웅!
ㅡ빠각!
방패 공격에 정통으로 충돌한 스켈레톤이 마치 부서지는 장난감마냥 각개의 뼈들을 휘날리며 3미터가량 날아간다.
공격형 탱커인가.
제법 쓸만한 공격인데?
"으라압! 죽어랏!"
뒤이어 이아영이 검을 거꾸로 잡으며 하체를 잃은 스켈레톤의 갈비뼈 사이, 심장에 검을 박아넣음으로써 총 3마리의 토벌 공격은 손 쉽게 마무리된다.
이거, 뭐.
내가 끼어들 틈이 없는걸?
물리방어, 물리공격 상승 버프 2번 시전 외엔 관전모드마냥 뒤에서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꺄, 첫 토벌 성공!"
"대, 대단했습니다! 탱커의 방패 공격이라니..!"
"힐을 역이용한 공격도 최고였어요!"
고작 3마리 토벌이었을 뿐이지만, 생애 첫 실전 토벌 완수에 각자 상기된 표정으로 기쁨을 표한다.
나 역시 가슴이 두근대왔다.
아무리 E급이란 하급 던전이지만 실전은 실전이다.
동경하고 꿈 꿔오며 부러워했던 헌터들의 멋진 레이드를 직접 뛴다는 현실감은, 중추신경계에 불을 놓았나 싶을 정도로 온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멀뚱히 서있는 이아영의 팔뚝을 톡톡 치며 칭찬해주었다.
"아영씨도 잘하셨습니다. 제법 합이 잘맞는 공격이었어요."
"호호, 이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구요."
하긴 초입 쪽 마물은 던전 내부에서도 최약체들 뿐이었다.
보스 구역으로 접근할수록 마물 세부등급이 올라가니까.
아마 머미나 스켈레톤은 E급 중에서도 하급인 E1 급 정도 될 것이다.
총 10급으로 나뉜 세부 등급에서 최하급인 1급이니, 보스 구역 인근 마물은 최소 5급 이상으로 올라가겠지.
그렇기에 축하하기엔 이르지만.
뭐, 잠시 쉬어가기로 했으니 굳이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럼 4구역 출발에 앞서 10분간만 쉬었다갈게요."
"네에~"
"휴, 조금 쉬면서 진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휴식 선언입니다. 파장님."
"하아, 긴장이 조금 풀려서 그런가 쉬 마려워요. 얼른 휴식 구역으로 이동하죠."
"넵. 3구역 4구역 사이에 있는 휴식 구역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때만해도 몰랐지.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우린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었으니까.
*
*
10여분간 주어진 짧은 휴식시간.
이번 휴식시간 후, 8구역까지 단번에 진행한다했었기에 작은 물티슈 하나를 손에 쥔 아영이 휴식구역의 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 짜증나. 간이화장실 같은 건 왜 개발이 안 된 거야?'
속으로 투덜대며 마땅한 자리를 찾는 아영.
파티원들이 보이지 않게끔 으슥한 곳까지 걸음을 옮긴 아영이 주변을 살폈다.
휴식구역은 아무렇게나 선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토벌 완료된 구역과 진입해야할 구역의 경계, 그리고 진입해야할 구역의 마물들이 넘어오지 못하는 구역을 휴식 구역으로 선정하는데.
그렇기에 한번 주변을 살핀 아영이 바지와 속옷까지 내린 후 쪼그려 앉았다.
ㅡ쉬이이...
'하~ 살 거 같다.'
첫 토벌에 나름 긴장하고 있었던 건지 제법 많은 양을 미궁 바닥에 싸지른 아영이 엉덩이를 두어번 흔들어 잔여물을 털어냈다.
ㅡ바스락.
그리고.
물티슈를 잡아 비닐캡을 열었다.
아마 몇 장 남아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썼을 때 한꺼번에 부욱 빠진 물티슈들을 대충 우겨넣었었으니까.
"아..."
하지만 뜯겨진 비닐캡은 야속하게도, 텅빈 속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잇.. 씨발..."
빈 물티슈 비닐곽을 던져버린 아영이 욕을 뱉으며 이마를 짚었다.
짜증지수가 솟구친다.
마음 같아선 비명 어린 포효로 짜증을 토해내버리고 싶지만 여긴 미궁 던전.
그 포효를 들은 4구역 마물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그랬다간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로 마물과 조우해야할 터고.
"하... 씨발 어떡해."
이 꼴로 파티원을 부르기는 싫었다.
아니, 어떻게 부르겠는가.
그리고 이 상태에서 절대 팬티를 입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찝찝함 탓에 레이드를 망쳐버릴 것만 같았다.
입술을 잘근 씹으며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아영. 헌데 옆에 휴지 두루마기가 있었다.
"엥? 이게 웬 꿀이야."
난데없는 구원주 등판에 그녀가 화색을 띄며 두루마기를 들었는데.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아영의 낯빛이 창백하게 굳는다.
ㅡ찰각.
어떠한 장치가 작동되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영은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 특히 미궁 던전의 경우 트랩 발동 장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한다 ] 는 교육내용을 떠올리며 비명을 질러야했다.
"꺄아악ㅡ!!"
**
"바, 방금 무슨 소리죠!?"
돌부리에 앉아 지팡이를 매만지고 있던 최대선이 벌떡 일어서며 불안한 목소리로 외쳤다.
일제히 소리의 진원지로 시선이 쏠린다.
방금의 비명소리, 분명 이아영의 목소리였다.
싸하다.
이런 하급 던전에서 그것도 휴식 구역에서 비명을 지를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소변을 누다 벌레라도 본 걸까?
하지만 헌터라면 담력 훈련 이수도 필수교육이기에 고작 그런 일로 비명을 지르진 않을 터다.
설마 대변을 누다 다리가 저려 주저 앉아버린 건가.
음, 일리 있는 추론이다.
"어, 어서 가보죠! 위험할 지도 몰라요!"
이아영이란 여자의 비명 탓일까.
딱히 구조 생각이 들지 않던 난 조빛나의 말에 화들짝 상념에서 깨곤 비명의 진원지로 향해야했다.
"아영씨!"
헌데.
진원지에 가까워질수록 께름칙한 소음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계 장치, 혹은 마나 장치 같은 것이 발동되는 듯한 소리.
너튜브에서 컨텐츠랍시고 [ 하급 던전 트랩 ] 만 찾아 다니며 발동시키는 상위급 헌터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탓에 자주 들어봤던 소리였다.
트랩 발동 소린 대게 비슷하니까.
아무래도 좆된 것 같다.
너튜브에서 하급 던전 트랩 발동시키기 따위가 인기 컨텐츠로 군림하는 이유는 바로.
다양하면서 무작위적인 발동 테마에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파장력 때문인데, [ 상급 ] 던전 트랩은 컨텐츠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기도 했다.
하급 던전 트랩만 되도, 소위말해 운빨좆망되면 상위랭크 헌터라도 사망각이 뜰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발동 난이도에 따라 위험 수위는 현격하게 높아지고.
만약 발동 난이도가 황당할 정도로 쉬운 것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트랩 위험도는 미친듯이 높다는 것이다.
씨발..!
이아영 개 같은 년 진짜 뭘 건든 거야...!
휴식 구역 따위에서 발동될 정도면 난이도 폐급 트랩인 거 같은데, 제발. 제발 똥이나 깔아뭉개고 지른 비명이길 바래본다.
"아영씨! 무슨 일이에요!"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박살난다.
쌩뚱맞은 두루마기 휴지를 들고 있는 채로 사색이 된 아영의 얼굴은, 똥이나 뭉개고 비명을 지른 것이 아님을 알려왔으니까.
곧이어 기다렸다는듯.
아영의 주변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형성되었고, 피하라는 호령할 새도 없이..
마법 트랩이 발동되었다.
ㅡ파즈즈즉!!
아... 두루마기 휴지가 트랩 발동 트리거라면, 아무래도 트랩 위험도는 극악을 자랑하는 거겠지?
좆 같은 인생은 첫 실전 레이드에도 좆될 수도 있구나.
아니, 씨발.
쪼그려 앉아있을 시간에 쳐 도망이나 가던가. 무슨 트랩 발동 NPC마냥 마법진 중앙에 앉아서 쳐 울어대고 있는 거냐고.
아니다, 이 모든 원흉은 조별과제란 좆 같은 문화를 만든 십새끼일 거야. 애니메이션 캐릭터보다 못한 통찰력으로 조별과제를 만든 희대의 십새끼에게 막 욕을 내뱉으려 했는데.
그 순간 둔중한 충돌이 내 옆구리를 강타했고, 뜨헉!?하는 등신 같은 소리를 내며 마법진 바깥으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아프진 않았다.
이곳에서 초월급 방어력을 꿰뚫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놀랐을 뿐.
고개를 틀어 급히 나를 쳐낸 충돌체를 쳐다보았는데 다름아닌, 배지민이었다.
"지, 지민아!!"
부를 새도 없었다.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마법진이 발동되며 모두가 사라져버리고 말았으니까.
진짜.
눈 깜짝할 사이였다.
ㅡ파즛!
그리고 사라지기 직전, 지민이 뭔갈 말하는 듯했는데.
전기적 트랩 발동 소리에 그 말은 내게 닿지 못했다.
"이걸로 감사 선물은 퉁치자, 오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