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5)이사벨라 영입! 졸업시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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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안 바꿨었네?"
"으응.. 바꿀 일이 딱히 없어서.."
조원 미팅이 끝난 카페엔 조원 대신 이사벨라가 나의 맞은 편에 앉아있었다.
만남을 거절하던 벨라에 소민이의 소식을 빌미로 꺼내들었고, 궁금하면 직접 들으러오라는 말로 기어이 벨라를 마주 앉히는 데에 성공했지만.
둘만 있으려니 역시나 어색하기 그지없다.
벨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소, 소민이는 괜찮아?"
"응. 회복하고 있어. 곧 수술도 진행될 거고."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뭐.. 그렇지. 그나저나 이거 너 얘기지?"
질질 끌 필요 없기에, 그리고 그녀 역시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짐작하고 있을 것이기에.
휴대폰으로 만평글을 켠 다음 보여주었다.
몇 글자 읽던 벨라의 눈에 당연하다는듯 슬픈 기색이 깃든다.
역시, 예상대로다.
저 만평글을 읽은 후부터 도저히 미팅에 집중이 되지 않았었다.
석연찮은 생각들이 자꾸만 맴돌기 시작했었으니까. 결국 미팅을 서둘러 끝낸 후,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를 검색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사벨라가 이별통보를 한 날의 일주일 전에 살인사건 뉴스가 하나 있었었다.
살인 현장 위치도 그당시 벨라가 살던 동천동이었고.
크게 이슈가 되지 않은 사건이라그런지 기사는 고작 2개가 다였는데, 그탓에 나도 모르고 지나갔었던 듯싶었다.
그리고 일전에 아직 C급 헌터로 전전하고 있는 연유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사정이 생겨 아카데미 졸업이 늦어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에 배지민에게 부탁해 이사벨라의 졸업 지연 사유에대해 알아봐달라 했었고, 사유 역시 짐작했던 대로 [ 생도 품위 위반 ] 이었었다.
품위를 위반한 조항 역시 [ 중범죄에 연루된 경우 ] 였었고.
기사에 보니 아버지는 유죄에 벨라는 무죄가 떴었는데, 재판에 소요된 시간 역시 벨라가 얘기한 공백기와 일치했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남자친구인 내게 함구하고는 이별통보를 했다?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부분에 차단해두었던 벨라의 번호를 풀고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었었는데, 그녀가 받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앞에 앉아 있었고.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 눈치를 자꾸만 살피는 그녀. 아무래도 만평글을 그녀도 본 모양이었다.
대형 언론사의 글이니 신경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겠지.
대체 내 주변엔 왜 이렇게 기구한 운명들이 판치는 걸까?
무당한테 손 좀 봐달라고 해야하나.
커피 탓일지 모를, 쓰디쓴 입맛을 한번 다신 후 벨라에게 물었다.
"…왜 그때 얘길 안 한 건데?"
과거를 탓하는 나의 질문에, 벨라가 흠칫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피해 끼칠까봐 그랬어."
"피해?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그런 일에 휘말렸으면 오히려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픈 게 남자라고. 근데 말 한 마디 없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난 진짜 바람핀 지 알았다고..!"
격앙하지 않으려했지만, 그날의 기억을 되짚을수록 언성은 고조되어만 간다.
벨라가 슬프게 고개를 떨궜다.
"너가 먼저 남자 생겼냐 물었을 때… 오히려 잘됐다 싶었어. 그렇게라도 나를 원망하고 미워해야.. 완전하게 끝맺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미안해."
"사과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날의 우리론 돌아가지 못하니까.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니 신경 안 써도 돼."
차라리 호의호식이라도 좀 하고 있던지.
그럼 남아있지도 않은 미련 한 톨까지 훌훌 털어버리고 남보다 못한 사이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굳은 표정으로 묵념하는 벨라에 짜증이 나려한다.
그에 막 다그치려던 찰나.
벨라가 자리에서 일어서려했다.
"...이런 꼴로 나타나서 미안해. 근데 진짜 신경 안 써도 돼. 사람 쉽게 안 죽는다잖아?"
시답잖은 농을 던지며 어색히 웃는 그녀.
가방끈을 어깨에 메는 그녀를 저지시켰다.
"앉아. 내 얘기 아직 안 끝났어."
"..."
단호한 나의 말에 군말없이 다시 앉은 벨라가 눈치를 살핀다.
짜증났지만, 이대로 그녀를 보내는 것은 내키지가 않았다.
어쨌든, 나를 대신해 소민이를 보살펴준 것과 환승이별이 아닌.
비록 잘못된 선택이었다할지라도 나를 위한 이별은 그녀가 가진 죗값을 한결 가볍게 만들기엔 충분했으니까.
마지막으로 물을 것이 하나 있었다.
"...그때 병원에 나타났을 때, 옷차림이 지금하고는 많이 다르던데. 화장도 그렇고."
지금의 그녀는 수수한 여대생처럼 흰색 가디건에 청바지, 그리고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때와는 정반대의 모습.
의중을 파악한 벨라가 제 모습을 둘러보며 자조적인 목소리로 읇조린다.
"아... 그런 일이 있었어. 그때 워낙 급하게 오는 바람에..."
"데이트는 아닌 것 같고.. 설마 그런.."
"아, 아냐!"
뭔가를 짚는 듯한 말에 대뜸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젓는 그녀.
`그런`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한 모양이다.
"그럼?"
"...그.. 접대 일을 좀 했었어..."
벨라가 접대란 단어가 나오자 얼굴을 붉히며 대역죄인마냥 고개를 푹 숙인다.
생기 넘치던 붉은빛 머리칼이 오늘따라 푸석해보인다. 처량해보이기도 하고.
젠장, 왜 이렇게 불쌍해진 거야?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나저나 접대라.
접대란 단어를 내뱉으면서도 `그런`이란 단어는 부정한다는 건 웃음팔이 정도의 접대였단 건가.
벨라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절대 비밀로 해줘.. 길드에서 알면 가만 있지 않을 거야."
"길드? 설마 접대일을 한 게 길드 때문이란 거냐?"
"...계약서를 잘못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 아빠 영치금이랑 출소 후에 살 집을 마련하려면 열심히 벌어야했거든.."
그말인즉슨, 부당계약으로 인해 접대일까지 했다는 건가.
그리고 몸을 파는 짓까진 하지 않았다는 거고.
뭐,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잖아도 힘들 테니까.
물론 그날의 선택으로 인해 난 바람 맞은 남친으로써 무능함과 비참함의 끝을 맛 보았었지만, 어쨌든 바람 맞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그 비참했던 기억의 편린을 조금이나마 다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록 나를 속였었지만, 소민이를 몇 년간이나 돌봐준 사실은 고마운 일이기도 했고.
그덕에 우리 소민이도 따분하고 버거운 병원생활을 그렇게나 활기차게 이겨냈을 것이다.
그건 확실히 그녀에게 감사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뭐.. 알아보는 중이야."
"보아하니 이 만평글도 길드에서 사주한 거 같은데.. 며칠 후면 업계에 소문 쫙 퍼질 거고, 그럼 업계에서 외면 받게되겠지. 그걸 길드는 노리는 것일 테고."
벨라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처럼 괜찮은 척을 하느라 웃어보인 거겠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녹록치 않을 거란 건 그녀가 제일 잘 알 것이다.
"...알아, 어떻게든 해볼 거야."
"세상 물정 모르고 사니 그런 일이나 당하고 살지, 쯧."
"...미안."
"그놈의 미안하단 소리 좀 그만 안 할래?"
벨라가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5년전부터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저 우직한 모습에 이젠 짜증이 난다.
...마치 내 모습같기도 해서 그런가.
"아... 미, 미안.. 아니.. 그게 아니라.."
나의 짜증에 쩔쩔매며 횡설수설해대는 벨라.
5년 전의 당차고 쾌활하던 그녀가 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나 변해버린 걸까.
측은지심이 가슴을 후벼판다.
"하.. 얘기는 들었지? 각성한 거."
"아, 으응. 들었어. 축하해. 진짜루. 선물 주고 싶었는데.. 상황이 그렇다보니..."
"선물은 무슨. 좀 너나 챙겨라. 진짜 짜증나게."
"어..?"
"주변 챙길 생각하기 전에 너나 좀 챙기라고, 지금 니 꼴을 봐. 주변 챙길 처지야? 그러니까 이용 당하고만 사는 거 아냐."
짜증 섞인 질책에 벨라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보통 저런 부류의 성미는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착한 사람 증후군 따위로 이름 붙여진 성미.
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 때문에 자신보단 늘 타인을 위하다보니 스스로 어떤 처지인지 모를 것 같지만.
사실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강박관념 탓에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것뿐.
"...이용.."
벨라가 허망한 눈으로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울적한 듯 들리는 목소리.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파고드는 질책에 이제야 깨달은 듯도 보였다.
"그래, 대체 왜 그렇게 사는 거냐. 남 생각하기 전에 너도 좀 돌봐가며 살아. 하, 답답하게 진짜."
벨라가 우물쭈물하며 어떤 항변도 하지 못했고, 결심한 난 그녀에게 제안했다.
소민이를 돌봐준 것에 대한 보답 겸, 나를 속인 죗값에 대해 묻는 제안이었다.
"이제 같은 헌터도 됐고, 싫든 좋든 계속 니 얘기가 귀에 들려오겠지. 그럼 난 계속 거슬릴 테고. 그게 짜증날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야."
"응...? 무슨 얘기?"
"너도 우리 어가이브에 들어와.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성가시게 만들지 말고."
벨라의 붉은빛 동공이 확장된다.
"어? 아, 아니. 난 괜찮아. 나 때문에 피해 입히기 싫어..."
"하, 말귀 못 알아듣네."
"어? 왜, 왜..."
"니 얘기가 내 귀에 안 들릴 것 같냐? 등신처럼 이용 당하는 얘기 듣기 싫으니까. 그게 싫어서 제안하는 거니까 어가이브로 들어와."
짜증 섞인 어투지만, 그 속에 든 본심을 전해들은 벨라의 확장된 동공 속에 공허함과 슬픔 따위가 걷히고.
곧, 눈물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마음 고생 심했을 거다.
그걸 알기에, 난 묵묵히 테이블 위의 티슈를 대충 밀어주었다.
"울지 마라. 괜한 구설수 오르기 싫으니까."
"...고마워. 정말 고마워..."
"고맙단 소리 못하게 개처럼 굴릴 거니까 각오하고 오는 게 좋을 거야."
농담 섞인 으름장에 벨라는 웃는지 우는지 모를 얼굴로 눈물을 닦는다.
그래, 단지 성가신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일 뿐이다.
그리고 뭐..
겸사겸사 찝찝하게 남아있던 5년 전의 기억을 이제야 깨끗이 씻어버리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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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사벨라까지 길드에 추가영입시킨 난, 누나들에겐 나중에 만나서 자초지종에 대해 얘기하겠다며 둘러댔고.
어느덧 일주일이 흘러 졸업 시험 날이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길드장에 아카데미 졸업 준비에 대한민국 최초라는 타이틀 탓에 생기는 부수적인 일들까지.
여러모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난, 그래도 8조의 조장으로써 졸업시험에 차질이 없게끔 준비를 마쳤고, 세종시청이 있는 보람동의 E34 던전에 도착해 있었다.
조장이기에, 조원들 것까지 여분의 포션과 장비들까지 챙겨 기다리고 있자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하는 조원들.
저마다의 도착시간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비장하고 긴장감 넘치는 표정이었는데.
딱 하나, 이아영은 그날도 그랬듯 다소 심드렁한 표정으로 추파춥쓰 하나를 물고 있었다.
하, 별 일 없겠지.
고작 E등급 던전인데.
"그럼 다 모이셨네요. 모두 포션이랑 장비 점검 한번 하겠습니다. 아직 참관 헌터가 도착하지 않으셨기도 하고요."
참관 헌터에 대해선 그 어떤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다. 아카데미측에서 철저히 비밀로 붙이는데, 참관 헌터에게 특혜를 받아보려는 술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였었다.
그렇기에 참관 헌터를 기다리며 포션과 장비점검을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아영 이 정신 나간 년은 포션을 고작 세 개 밖에 챙겨오지 않으셨다.
"...아영씨. 졸업시험인데 포션을 이것 밖에 안 챙겨오면 어떡해요?"
조빛나가 불편한 심기를 비췄지만, 이아영은 추파춥쑤를 빼곤 대수롭지 않은듯 말했다.
"아니~ E급 던전이잖아요. 초월급이 계신대 굳이 필요할까해서 그랬죠~"
"하... 진짜. 아니 그래도 개인평가도 있는 거 몰라요?"
"풋~ 전 E급 헌터라 이정도면 충분하거든요~?"
아, 씨발.
오랜만에 욕 나오네.
하지만 조장으로써 이런 변수 쯤은 진작 예견했었기에, 마나포켓에서 포션 몇 개를 빼내 이아영에게 건넸다.
"여분 챙겨왔으니 이거라도 챙기세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후훗, 초월급께서 겁도 많으셔라~ 포션은 감사히 받을게요~"
저 년 분명 부모에게 받은 포션값을 삥땅친 게 분명해보였지만, 졸업시험에 구태여 귀찮은 언쟁을 하기 싫었던 난 별 말 없이 그녀에게 포션을 건네주었다.
하, 죽빵 갈겨버리고픈 여자는 이 년이 아마 처음일 거다.
"감사해용~ 끝나고 나면 밥 한 끼 사드릴게용."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
너랑 쳐먹느니 지나가던 똥개랑 겸상하는게 더 밥이 잘 넘어갈 것 같은데.
마음 속 욕지거리가 튀어 나오려던 순간, 등 뒤에서 인삿말이 들려왔다.
근데.
낯 익은 목소리였다.
"반갑습니다~ 8조 참관 헌터로 배정된 배지민이라고 합니다~"
어?
배지민?
너가 왜 여기서 나와?
급히 돌린 시선에 잡힌 배지민이 싱긋 웃어보이며 손인사를 한다.
"안녕, 오빠!"
...별 일 없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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