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4)너가 왜 여기서 나와...?
두근두근두근.
콩닥콩닥콩닥.
심장 고동이 온갖 미사어구를 달아도 부족할만큼, 기분 좋게 뛴다.
기분 좋아, 너무 좋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준이의 향기는 너무 달콤하다못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품에 폭 파묻혀 그의 체취를 듬뿍 느끼고 있으니, 마치 방전 된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마저 든다고 할까나.
'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솔직히 이런 포옹까지도 바라지 않았었다.
그저, 언제까지만 더 기다려 달라는 고별만 주었어도 만족했을 텐데.
느닷없는, 그리고 강준이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남자다운` 포옹에 심장이 뛰다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기나긴 서러움도.
옅은 원망도.
부질없는 시샘도.
이 포옹 한번에 연기마냥 날아가버린다.
문득 `나, 너무 쉬운 여자 아냐?`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 걱정 역시 강준이의 박력있는 허그에 훨훨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좋아.. 너무 좋아…'
달빛이 축복을 내리는 것만 같고, 선선하게 부는 바람도 축하를 해주는 것만 같다.
“누나.”
“으응?”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겠다.
더욱 강준이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기새마냥.
“미안했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어..”
“아냐아냐. 괜한 소릴 했어.. 내가.”
강준이가 포옹을 풀고 어깨를 잡아 거리를 벌렸다.
쑥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나지만, 강준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퍼진다.
“괜한 소리를 한 거 치고는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뭐, 뭣? 아, 아니. 우, 웃는 거 아니거든.”
강준의 장난에 홍당무마냥 얼굴이 새빨개지는 나. 하지만 야속하게도 입꼬리는 주체할 수 없이 씰룩댄다.
“부, 부끄럽다고..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마.”
“그럼 다시 포옹이나 할까요?”
강준이 이렇게나 남자다웠던가?
지금 내 앞에서 능글맞게 웃고 있는 이강준이란 남자를 처음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헌터로 각성하면서 내면도 더욱 성숙하고 단단해진 것 같은 느낌.
어리게만 보이던 그의 품이 이다지도 넓을 줄 몰랐었다.
다시금 그의 품에 쏙 안겼다.
스읍, 하... 그 어떤 방향제, 향수, 피톤치드보다 더 감미롭고 힐링되는 향기다.
심신이 힐링되는 느낌과 콩닥대는 설레임이 가득한 그의 향기에, 잔뜩 응축시켰다가 힘들 때마다 꺼내 맡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좋다… 읍.”
그 향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나와버린 본심에 급히 입을 틀어막지만.
엎질러진 물마냥, 이미 튀어나온 말은 그의 귓 속으로 들어가고만다.
강준이가 기분 좋게 웃는다.
웃음과 함께 세어나온 콧바람이 머리칼을 하늘거리게 만드는 것조차 너무 좋았다.
“나도 좋아. 진작 안아줄 걸 그랬네. 늦어서 미안해, 누나.”
“아냐.. 이렇게라도 안아줘서 너무 고마워. 나 지금 무지 행복한걸.”
“누나한테 한 약속 안 잊었어. 단지.. 지금은 조심해야할 시기라 어쩔 수 없었어.”
“알아.. 근데 뭔가.. 불안했어. 너가 떠나갈까봐.. 나는 잊혀지고 있지 않을까…”
강준이 나의 고개를 잡아들었다.
양볼을 억누르자 붕어빵마냥 입술이 튀어나온다. 그 입술이 귀여운지 강준이 웃었다.
아잇... 부끄러운데.
“잊긴 누가 잊어. 지금의 나를 만든 게 누나인데, 어떻게 잊겠어. 누난 내 은인이라구.”
“…아, 알았어. 이제는 안 불안해. 그니까 이, 이거 좀 놔줄래..? 못 생겨 보인다구…”
“귀엽기만한데?”
훅 들어오는 멜랑함에 식은땀마저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그가 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4살이나 차이나건만, 되레 내가 동생이 된 것 같은 느낌.
헌데, 그 느낌이 싫지 않았기에 거부하지는 않았다.
단지 애교 섞인 투정만 부려볼 뿐.
“…모, 못나보인다구. 놔줘..”
“누나.”
“으응?”
“키스해도 돼요?”
“키, 키스..? 갑자기?”
심장에 파도가 철렁, 크게 친다.
오늘 심장마비라도 걸리게 만들려는 걸까.
눈동자는 쏟아질 듯 커지고 얼굴은 홍당무가 되다못해, 머리뚜껑이 열리며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ㅡ쪽.
그렇게 나의 생애 첫 키스는.
고즈넉한 밤하늘과 아늑한 가로등 불빛 아래란 운치 있는 명소에서.
처음이란 풋풋함을 고스란히 느끼며 이루어지고 말았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맞닿고, 서로의 뜨거운 숨결을 주고 받는다.
**
다음 날.
조원 미팅이 잡혀있었기에 모두 잠든 하우스를 빠져나와 곧장 약속장소로 향했다.
나오기 전에 서윤 누나의 방에서 잠깐 기척이 느껴지기는 했었는데.
방에서 나오질 않는 것으로보아 어젯밤의 일이 부끄러운 모양인 듯해 딱히 장난을 치지는 않았었다.
“다들 일찍 모이셨네요?”
다행히 약속시간도 전에 조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일단은 다들 시간과 약속개념은 준수한 편인듯했다.
탱커인 조빛나.
근딜인 이아영.
힐러인 김태선.
그리고 버퍼인 나.
통상적으로 버퍼가 합류한 헌터 파티는 5인 체제로 운영된다.
하지만 특수교육 인원이 열외자 없이 4인 파티로 짜이게끔 즉, 40명으로 편성된 터라.
부득이하게 4인 파티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차피 E급 던전이니 큰 부담은 없겠지만.
우선 서로 다시 한 번 간략하게 인사를 나눴다.
“하하, 초월급 버퍼님과 레이드 뛰게 되서 영광입니다. F급 힐러 최대선입니다. 모쪼록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이는 20대 후반인데, 언뜻 봐도 동생일 내게 싹싹하게도 구는 최대선이었다.
그에 나도 공손히 받아주었고, 우린 본격적으로 E급 던전인 E34 던전에 대해 토론 겸 사전파악을 시작했다.
조장인 내가 먼저 포문을 터야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E34 던전은 미궁 타입으로 총 3층 지하 구조입니다. 보스는 다음 주 목요일 쯤 리젠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지하 3층, 이곳.”
태블릿 펜으로 미궁의 지도 구석을 짚었다.
“E34ㅡ12구역이 보스방입니다.”
졸업시험은 `무조건` 보스 클리어가 원칙이었었다. 그탓에 보스가 리젠되지 않으면 던전 변경을 통해서라도 원칙을 고수했는데.
우리가 클리어할 미궁 타입 E34 던전의 보스는 미궁의 단골손님, 스켈레톤 워리어였다.
스켈레톤이란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워리어란 호전적인 닉네임 탓에 B급 던전 보스 정도는 되보이지만, 일반 뼈쟁이에 조악한 투구와 견장, 그리고 검 하나 들고 있어서 워리어란 칭호가 붙은 보스였었다.
그냥, 검 든 스켈레톤이란 것이다.
일반 스켈레톤은 F급 마물이었고.
“스켈레톤 워리어라.. 벌써 긴장되는 거 같아요.”
조빛나가 몸을 으스스 떨며 말했다.
이아영은 커피를 쫍쫍 마시며 그저 토끼눈을 뜨고 있을 뿐이었는데.
초월급 헌터의 솔로캐리를 기대하는 듯도 보이는 눈치였다.
이아영을 쳐다보았다.
조금은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보였다.
제아무리 E급 던전이라해도, 나와 그들의 간극은 어떤 돌발상황을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한 파티원들은 모두 E급 혹은 F급이었으니까.
방심하단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전장에선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일인 법.
만에하나의 확률이지만.
돌발트랩이 발동될 수도 있었고.
“아영씨는 근딜이시니까 공격력이랑 민첩 쪽으로 버프 걸어드릴게요. 공격보다는 회피를 주로 신경 쓰시는 게…”
헌데, 커피 빨대만 입에 물고 있던 이아영이 테이블에 컵을 내리며 말을 끊었다.
“그정돈 알거든요. 그리고 뭐, 강준 씨가 하드캐리해주실 거 잖아요? 호호.”
“….”
아, 딱 느낌왔다.
이년 트롤로 흑화할 가능성이 높은 년이다.
역시 현자 지보로 센세의 격언은 틀림이 없는 법이로구나.
ㅡ쫍쫍쫍.
얄밉게도 빨아대네.
**
이아영을 쳐다보는 눈빛에 일순간 싸늘함이 스쳐간 것을 눈치챈 건지, 최대선이 잠시 휴식타임을 제안했고.
대선과 아영이 담배를 피러 나갔다.
사실 누가 트롤짓을 하든 상관은 없었다. 위기상황을 만들어도 솔직히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단지 걱정되는 건 이아영 저 것이 E급이란 하급 던전에서조차 제 한 몸 건사시키지 못할까 걱정인 것.
혹여 중상자라도 나오면 체점할 것 없이 그대로 유급 당해버리기에 두루뭉술하게 흘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포지션도 `근딜`이다.
시험자들은 모두 가슴팍에 소형캠을 달고 시험에 임하고, 소형캠에 녹화된 개인영상과 참관한 현역헌터가 촬영한 전체영상을 토대로 시험체점이 이뤄진다.
즉, 나 홀로 캐리를 해도.
각 파티원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활약하는 적극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체점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영씨가 좀 심했어요, 이해해주세요. 강준 씨.”
어색하게 둘이 남아 커피만 홀짝이고 있자, 조빛나가 내게 말을 붙였다.
“이해합니다. 단지 던전에서 다치시진 않을지 걱정이죠.”
“호호, 다치기야하겠어요? 12번 트라이되서 마물도 얼마 없을 거에요.”
“그렇담 다행이겠죠..”
“그렇겠죠..?”
“그럴 거에요.. 하하.”
어색한 여성과 말을 이으려니 쉽게 이어지지가 않는다. 묘하게 끝나버린 마지막 말을 끝으로 찾아오는 숨 막히는 적막. 인싸 최대선이 얼른 들어와주길 고대하며 카페 밖을 쳐다보았지만.
아직 담배를 태우느라 열중이다.
끄응.
조빛나 역시 말주변이 그리 풍부하지는 못한지 이내 휴대폰을 꺼냈고.
나 역시 자연스레 휴대폰을 봐야했다.
딱히 휴대폰으로 하는 게 없는데..
하지만 휴대폰에서 눈을 떼는 순간 또 어색해질 것만 같아 닥치고 휴대폰에 눈을 박아두었다.
둘이 있는 것과 셋이서 있는 건 천지차이인 것 같다. 셋이 있을 땐 호형호제하던 것이 둘만 되면 누구세요? 가 되버리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고개를 쳐박고 있는데.
조빛나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 행동의 의미를 물어봐달라는 듯한 느낌에 어쩔 수 없이 물어보아야했다.
“..왜 그러세요?”
그녀는 여전히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세상 말세네요.”
“왜요?”
“이거 보세요, 살인자 딸이 현역 힐러래요. 미친 거 아니에요? 여차하면 일부러 힐 안 줄듯. 으으, 나라면 같이 레이드 못 뛸 거 같은데. 어떻게 살인자 피가 흐르는 사람한테 최후방을 맡기겠어요. 소름 끼쳐.”
“네..?”
조빛나가 보여준 휴대폰 화면에는 만평글 하나가 떠있었다.
...이런 따분한 걸 좋아하다니, 의외인 걸.
보여주니 안 볼 수 없는 노릇, 위의 제목부터 읽어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살인자의 딸이 힐러로 활동해서 되겠는가? 라는 만평 제목이 보였다.
고개를 주억였다.
솔직히 생사를 나누는 헌터가 살인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께름칙할 것 같기는 했다.
다른 포지션도 아니고, 힐러는 조금 그렇지 않은가. 차라리 딜러 계열이면 상관.. 아니지, 딜러가 오히려 더 이상하겠는걸?
뭐가됐든, 목숨이 오고가는 전장에 살인자의 후손이 있는 건 조금 신경쓰이긴할 것 같았다.
뭐, 실수로 인해 혹은 대의나 타인을 위해 그런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은.
조빛나의 표정처럼 조금은 미간을 찌푸리며 예의상 만평글의 몇 문장을 읽어보았는데.
나의 입에선 탄성 하나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어..”
몇 문장 만에 튀어나온, [ 이사 모씨 ] 라는 주어 때문이었다.
...현역 헌터 중에 성을 `이사`로 쓰는 헌터는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는....
이사벨라 뿐이었으니까.
뭐야... 너가 왜 여기서 나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