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2)까발려지는 민낯 (2)
진짜 가지가지한다.
옥상 난간에 매달려 있는 걸 보니 극단적 선택이라도 하려는 건가?
설마 정액 나눔 안 해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 아냐?
그럼 진짜 삼진에바로 줄빠따칠 각인데.
합리적 의심이 드는 부분에, 팔짱을 끼며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여튼, 저런 건 정신병원에 가둬놔야하는 건데. 이사장이란 사람이 딸바보라도 되는 건가? 저런 딸조차 어쩌지 못해 사회에 풀어놓다니 말이다.
헤실헤실 웃는 꼴을 보아하니 제대로 사단이 날 것 같은 느낌인데.
“내려 와라. 진짜 좆 같이 굴래?”
“히히, 아냐~ 너한테 좆 같이 굴려는 거 아냐~ 그냥 뛰어내리기 전에 마침 너가 보여서.. 할 말도 있고.”
정자나눔에 이어 자살소동까지 일으키는 그녀에 당연하다는듯 모여드는 아카데미 생도들.
어느새 군중이라 일컬을 정도로 밀집해있었다.
저마다 수군거렸지만, 내 모든 감각은 배지민에게로 향해있었다.
측은지심? 아니, 그냥 불쾌하고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 바람이었다.
사정이 어떻든.
정신이 어떻든.
어쨌든 며칠 전에 있었던 정자나눔의 일이 그녀의 죽음으로써 끊임없이 회자될 테니 말이다.
끝까지 민폐네, 저 년은.
“미안했어. 진심이야. 변명하지 않을게. 사정이 어쨌든 너한테 저지른 건 범죄고. 너 말대로 실수 아냐. 아빠 얼굴에 먹칠하고 싶어서 그랬어. 널 희생양으로 쓴 거지.. 이 말하고 싶었어.”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
그래서 자살 장소로 아카데미 본관 옥상을 선택한 건가?
왠지 나와 동질감이 느껴지는 명분에 동정심이 살짝 들려던 것도 찰나.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허튼 소리 말고 내려오라고! 끝까지 민폐 끼칠 셈이냐? 내려와서 정정당당하게 용서를 빌던지! 비겁하게 거기서 그러지 말고! 이 미친년아!”
배지민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께름칙한 느낌이 점점 진해진다.
“용서 빌러는 거 아냐. 이유를 밝히고 싶었을 뿐이야. 혹여나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말길 바래. 내가 이러는 건... 전부 아빠 때문이니까.”
마지막 말은 작게 중얼거린 탓에 내게만 들려왔다. 생도들 모두 멀직이 뒤편에 서있었으니까.
부녀간에 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 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알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죄책감?
헛소리 지껄이고 앉았네.
지금 여기 있는 것도 단지,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기 싫을 뿐.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외쳤다.
“아오, 개소리하지 말고 내려오라고!! 죽으면 뭐가 달라지냐!? 복수가 하고 싶거든 살아서 해야지, 죽긴 왜 죽냐고!! 이 등신아!!”
“...”
어라, 귀찮게 하지 말라는 진심이 통한 걸까. 상념에 잠긴듯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배지민에 찰나의 해방감을 기대하려던 순간.
무리를 가르며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전에 이강호의 뒤편에서 알량대던 이사장이었다. 그가 내게 악수를 건네며 고개를 굽신거렸다.
“어휴,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저런 애가 아닌데... 군단장님껜 말씀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
...웃어?
제 딸이 자신 때문에 자살 소동을 벌리고 있는데, 웃어?
꼬락서니보니 내가 군단장의 자식이란 걸 안 후로 떡고물이나 하나 챙겨보려는 심산인 거 같은데.
그렇다하더라도 지금 딸이 죽을지 모르는 마당에 시답잖은 인사를 건네며 웃는다고?
탐욕이 깃든 역겨운 미소에 강한 구역감이 치솟는다.
그런 놈이 내게 굽신거린 후, 생도들에게 소리쳤다.
“얼른 처리하겠습니다. 노여워마십시오. 야! 너네들 뭐해! 기숙사서 얼른 이불 같은 거나 커튼이라도 뜯어 와! 어서!”
...처리?
제 딸의 자살소동을 귀찮은 돌발 상황쯤으로 여기는 말에 그간 배지민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살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것 같군.
하여튼, 가증스러운 것들.
이강호 개자식과 오버랩되는 이사장에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지고 있던 찰나.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위대하신 이사장님께서 오셨네~ 똑똑히 봐둬요~ 난 당신 때문에 죽는 거니까.”
말을 마친 배지민이 곧장 옥상 난간에서 뛰어내려버렸고, 아카데미 교정엔 온갖 비명이 난무한다. 안 되는데,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데.
단순 소동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자살로 이어지면 굉장히 복잡해진다.
우선 그날의 일로 접점이 생겨버린 난, 귀찮은 조사를 받아야할 것이고 무엇보다 아카데미 재학 중에는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는 건 결단코 사양이었었다.
더 생각할 것 없었다.
그리고 저 멍청한 년에게 복수는 어떻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한 수 가르쳐줘야할 듯 싶었고.
먼저 경험해본 선구자로써, 저런 인간은 자식이 죽든 말든 후회할 종자가 아니라는걸 알려줘야할 책임감도 느껴져왔다.
하여튼 모자란 년.
궤도를 유추해 낙하지점을 파악한 난, 곧장 그곳으로 쇄도했다.
당연히 내 몸을 충격흡수제로 쓸 생각은 없었다. 저 미친년을 구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졸업시험에 큰 차질이 생길 테니까.
그런 얼뜨기 같은 짓거리는 결단코 사양이었다.
고로, 내키지는 않지만.
국방부 끄나풀들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시간도 없었고.
내가 낙하지점으로 쇄도하자 무리에서 용수철마냥 튕겨져나와 내게 달려오는 경호원들.
`옥체보존`이란 절대적인 명을 수행해야하는 그들의 사명감은 아주 좋은 쿠션이 되어줄 것이다.
푹신하고 아늑한 쿠션이.
“위, 위험하십니다! 이강준 헌터님!!”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그쪽네들인데.
미안하게 됐수다.
어쩌겠어, 이강호 군단장의 끄나풀이 된 걸 탓하는 수밖에.
그래도 치료는 제가 책임지고 해드리리다.
세 명의 경호원들이 막 나를 감싸려던 찰나, 잽싸게 두 걸음 뒤로 물렸다.
읏짜.
ㅡ철푸덕!
“크헉!”
**
배지민은 추락과 동시에 정신을 잃고 말았고, 그 아래 쿠션이 되어 깔린 경호원들은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었다.
다들 운동신경이 뛰어난 모양이다.
하긴, VVIP경호원들이라는데 그정도 운동신경은 기본소양일 터다.
누군가 신고를 했었던지, 잠시 후 응급차가 도착했고 배지민과 그 보호자인 이사장이 함께 응급차에 올라 교정을 빠져나갔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세 미운 정이라도 들어버린 걸까, 혹시나싶어 응급차에 적혀있던 병원에 도착해 있자니 제 딸을 정신병원에 구금하려는 이사장을 목도하고만 것이다.
"아니, 씨발! 내가 누군지 몰라!? 나 서울 아카데미 이사장이야! 어서 정신병원으로 이송시키라고! 얘 안 다쳤다고!!"
"그, 그게 우선 환자가 회복해야 가능합니다..!"
"됐고! 여기 병원장 나오라그래!!"
하여튼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은 내 예상을 벗어나는 적이 없다니까.
걱정되겠지.
혹여 배지민이 허튼 소리로 제 명예를 실추시킬까봐 말이다.
자식을 제 이득을 위해 사용하는 물건 쯤으로 보는 역겨운 족속들.
자꾸만 이강호와 오버랩되는 이사장에, 왠지모를 복수심과 함께 배지민에 대한 동정심이 끼인다.
놈을 조용히 불러내 뇌까렸다.
“정자받이 시킨 거 함구해드릴테니 이쯤하시죠.”
“아아, 네넵. 그럼..! 가보겠습니다..!”
이사장의 행실을 보아하니, 정자받이의 원흉이 놈일 듯해 떠봤는데.
역시나 벌벌 기며 도망쳐버린다.
맹수는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먹잇감을 쫓기마련인데, 멍청한 새끼.
일단은 배지민의 회복이 우선이기에, 병실로 돌아와 병상에 누워있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나와 같은 기구한 운명이다.
부모에게 자식대접은커녕, 물건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비참한 운명.
어쩌면 내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며 접근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도 느꼈던 걸까?
자신과 같다는 동질감을.
뭐, 그렇다해도 성희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알량한 이해 정도는 해줄 수도 있겠지.
물론 죗값에 대해선 물어야겠지만.
“....”
큰 외상은 없기에 내일 쯤이면 깨어날 거라 했으니, 굳이 병실에 남아줄 필요는 없을 터다.
피차 우리가 간병을 해줄 정도로 살가운 사이도 아니고.
그렇기에 자리에서 일어서 막 병실을 나서려는데, 한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40대 중반쯤 되보이는 단아한 차림의 여성이었는데, 어머니는 오늘 돌아가셨다했으니 배지민의 친척쯤 되는가 싶어 목례를 하고는 병실을 나오려했다.
헌데.
“저, 헌터님? 드릴 말씀이..”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작은 USB 하나가 들려있었다.
**
다음날, 신문엔 대서특필로 뉴스엔 특보로 보도된 배석두 이사장의 추악한 진실.
녹화영상에 녹음까지, 반박할 수 없는 증거자료들에 기사는 복제되듯 늘어났고.
배석두 이사장은 곧장 기자회견장을 열어 대가리를 박았음에도 성난 여론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나를 찾아온 한 여성.
자신을 가정부라 소개한 그녀는 사모께서 돌아가신 마당에 더 이상 지민이가 괴로워하는 걸 볼 수 없다며 내게 유에스비 하나를 건네주었었다.
처음엔 거절했었다.
이 또한 귀찮은 일에 연루되는 꼴이었으니까.
하지만 배석두가 분명 자신을 죽일 거라며 내게 거듭 간청하는 탓에 결국 난 USB를 받고 말았었다.
배석두 같은 놈이라면 지옥 끝까지 쫓아가 복수를 할 놈이긴했었으니까.
그 대상이 더욱이 가정부라는 나약한 존재라면 물고 뜯고 찢으려 발악을 해댈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헌터라면 얘기는 달라질 터.
결국 난 USB를 방송사에 보냈고, 배석두의 몰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헌데 도저히 실드가 불가능한 자료들 탓에 언론사들 역시 그를 쳐내기로 결심했는지, 온갖 재단 비리 보도들까지도 쏟아져 나왔었다.
거기엔 아카데미 생도들을 파렴치하게 성폭행한 사실까지 있었다.
결국 기사회생이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불가능할 정도로 궁지에 내몰린 배석두 이사장은 그날 늦은 오후, 아카데미 이사장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민의 어머니를 자신이 이용하고 있다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지민의 어머니가 자신의 방패였던 것이다.
그녀가 작고하자마자 그는 몰락해버렸으니까.
아마 그녀가 작고하지 않았다면 USB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민이를 위해 이사장을 저승길 동무로 끌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모성애란 대단한 법이지 않던가.
때론 초인적인 힘을, 때론 작열통도 견뎌내는 것이 모성애니까.
뭐, 여하튼 끝이 너무 쉽게 나버려 아쉬웠지만, 이정도면 버림 받은 동지로써 건네는 퇴원선물로 아쉽지는 않을 터다.
그 이튿날 정신을 차린 배지민에게 하루 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해주었고, 그녀는 한참을 새하얀 이불보를 적시며 울어댔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평생 감사하며 살게. 엄마도 분명 기뻐할 거야.”
감사인사는 감사인사고, 성희롱과 자살 소동으로 성가시게 만든 것에 대한 죗값은 물어야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과거의 앙금은 확실하게 풀어두어야만 하는 법이니까.
지민은 환자복을 입은 채로 내게 절까지 하며 속죄를 했다.
“무슨 일이든 할게. 너가 하라는, 아, 아니... 오빠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그렇게라도 잘못한 거 뉘우치고 싶어..”
“이제 새사람이라도 되겠다는 거냐?”
“염치없지만... 그러고 싶어. 엄마도 분명 그러길 원하실 거 같아서...”
“흠, 무슨 짓이든 한다라.”
감회가 새롭네.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안나 누나도 같은 얘기를 했었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탓인지, 피식 실소를 내뱉으며 배지민을 쳐다보았다.
눈물콧물 범벅인 얼굴인데도 미모는 여전하네.
“그럼 너, 우리 길드 와서 개처럼 일해라.”
음, 표현이 조금 거칠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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