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까발려지는 민낯 (1)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텐가.”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은 한 집무실.
개인의 집무실이라 부르기엔 광활하기까지한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최종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엄중한 어투로, 이강호에게 물었다.
이강호는 새가슴처럼 상체를 내밀며 긴장한 채, 준비해둔 계획에 대해 읊었다.
“책임지고 이강준 헌터를 회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책임? 설마 이런 똥을 싸지르고 도피성 사퇴를 운운한다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무슨 짓을 해서든 그를 정부의 충실한 개로 만들겠습니다.”
대통령이 쇼파 테이블 위의 담배곽을 집어들자 이강호가 부리나케 라이터를 대령한다.
치익, 작금의 세태를 한탄하듯.
대통령의 뿌연 한숨이 세어나온다.
“후… 안 그래도 그놈이 인터뷰로 인권 타령해버린 바람에 협회에서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우선 협회부터 진정시킨 후에 조용히 그놈을 설득하도록 해.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난 인내심이 관대롭지 못한 놈이야. 대헌터군단장이란 빛 좋은 개살구를 차지하려는 놈들이 많다는 걸 명심해두게.”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대통령 직접 임명 직책인 대헌터군단장 자리에서 쫓겨날 거란 엄포에 이강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다.
오랜 숙원을 위해, 그리고 정부를 위해 더러운 시궁창에서 개처럼 굴렀던 자신이었기에.
대통령의 그 엄포가 삭혀둔 분노를 건든 것이다.
“알겠습니다. 충성!”
속으로 `더러운 개새끼`라고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강호가 뒤꿈치를 붙이며 거수경례를 하곤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보기 좋게 한 방 먹어버린 것이다.
제 버린 자식에게 말이다. 그리고 내쫓아버린 혈연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피바람을 이끌며 나타나버리고만 것이다.
그에 이강호는 생각했다.
그렇담 맞바람을 놓는 수밖에 없다고.
그가 나오자 보좌관이 내시걸음으로 다가왔다.
“괘, 괜찮으십니까.”
“…호로자식 같으니, 감히 아비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즉시 기자회견 준비하고, 정두식 명인에게 그럴 싸한 시나리오 하나 부탁해둬. 자식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절절한 시나리오로.”
“넵. 알겠습니다.”
#
헉헉헉헉.
한 여성이 한적한 오후의 거리를 긴박하게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참새들도 낮잠을 잘 법한 따스하고 아늑한 오후의 햇살이 거리를 내리쬐고 있건만, 여성의 눈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 제발…!”
택시에서 내려 달린지 어언 10분.
각성육체라면 2분도 안 걸렸을 거리에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만 간다.
타닥타닥, 전력질주 탓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고장난 것마냥 무거워져갔지만.
여성은 흑색 단발을 휘날리며, 미친듯이 뛰어갔다.
15분여만에 드디어 보이는 [ 레디컬 병원 ]
마나 후유증 치료에 정평이 나있는 병원이지만, 그녀가 향한 곳은 제 1 마나병동이 아닌.
일반 병동이었었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새도 없이 곧장 3층까지 뛰어올라간 여성이 303호 병실 앞에 뚝 섰다.
병실 문의 옆엔 [ 이지연 ] 이란 이름이 꽂혀있었다.
ㅡ드르륵! 탁!
정숙이 생명인 병실에 울려퍼지는 무례한 개폐소리. 하지만 여성은 그딴 것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어, 엄마!”
병실엔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 여섯 들어와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성에게 쏠렸고, 그 여성이 방금 사망한 환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잘 알기에.
의사를 제외한 모두가 시선을 숙연히 내리깐다. 하지만 궂은 일을 도맡아야하는 의사는 애도하는듯 슬픈 눈빛으로 여성에게 다가왔다.
해도해도해도.
적응되지 않는 선고의 시간이었다.
“이지연 환자분. 금일 13시 10분 경... 사망하셨습니다.”
“아아...!”
그 선고에 배지민의 얼굴에 지독한 절망이 깃든다.
뒤이어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리는 그녀에 간호사들이 급히 다가와 부축해주어야했다.
어머니.
자신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기어이 병환과의 오랜 사투 끝에.
생을 마감해버리고 만 것이다.
현실이 아닌 듯한 이질적인 느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예견된 일이 일어났을 뿐이니까. 하지만 예견하고 있었다해서 충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허망히 주저앉아있던 지민의 앞에 의사가 무릎을 꿇고 앉으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삐뚤삐뚤한 글씨.
대충 봐도 어머니가 정신을 차렸을 때 급히 쓴 듯한 글씨체였다.
병환이 깊지 않았을 때, 자주 편지를 써주었던 어머니였기에 그 글씨체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환자분의 유서입니다.”
그것을 받아든 지민이 어머니의 마지막 흔적을 읽기 시작했고.
이내 참고 참았던 눈물이 방울져 유서 위로 흘러내린다.
《 사랑하는 딸아 엄마가 짐이 되서 미안해 엄마 신경쓰이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이제 끝이 오는 거 같구나 부디 엄마때문에 슬퍼하지말고 씩씩하게 살아야해 엄마 먼저 가서 우리 지민이가 좋아하는 꽃다발 만들고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천천히 와. 사랑하는 엄마가 》
“엄마.. 엄마아..!”
그 짧은 흔적에, 결국 눈물 방울이 굵은 줄기가 되어 쏟아져내린다.
절규 서린 부름이 병실을 가득 메우고, 지민은 속에 든 울분을 비명과 함께 한동안 토해냈다.
303호 병실의 모든 이가 눈물로 그녀의 슬픔을 나누어 위로해야했다.
#
인터뷰는 역시나 성공적이었다.
그렇잖아도 대헌터군단이 헌터에게 맛 좋은 사료를 배부르게 처먹이며 개처럼 굴린다는 민심은 내 인터뷰를 장작삼아 활활 불 타기 시작했고.
여론은 특히 그 우두머리인 이강호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어났다.
[ 자식마저 버리는 대헌터군단장의 악행은 어디까지인가? ]
[ 마나 후유증으로 생사를 오가는 자식을 모르쇠하는 대헌터군단장, 이대로 괜찮은가? ]
[ 대헌터군단장이 앗아간 목숨과, 남겨진 목숨들의 애환 ]
[ 대헌터 시대, 이강준 헌터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나. ]
자극적인 기사 제목들에 조회수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다.
역겨운 기자놈들이 이럴 땐 또 도움이 될 줄이야. 세상사 참 한 치 앞을 모른다니까.
그렇게 이강호에게 맛 좋은 빅엿 하나를 선사한 난, 아카데미로 돌아와 얼마남지 않은 최종실기시험을 합격하기 위해 여타 날과 다름없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뭐, 메인 공중파 뉴스에 출현하는 바람에 이젠 아카데미 전교생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야했지만.
다들 살짝 나를 헌터 시대의 선구자, 같은 걸로 바라보는 눈치였다.
부담스럽게.
ㅡ군단장 아들이었다니.. 사실상 세계관 최강 빽 아니냐.
ㅡ그러게, 군단장도 S급 출신이라며? 역시 유전영향이 큰 건가. 이러니 배지민 그 미친년이 씨받이를 자처하고 나서는 거겠지.
ㅡ나도… 첩이나 되볼까?
ㅡ하긴 F급 헌터 정실이 되느니 초월급 헌터 101번째 후실이 나을듯?
ㅡ쿡쿡쿡. 맞아맞아.
…이러다 초월급 하렘국가라도 건설할 기세다.
우스갯소리로 못생긴 찌질남의 첫번 째 부인이 되느니, 잘생긴 쾌남의 100번 째 부인이 되겠다는 인터넷썰의 당사자가 되버리다니 말이다.
그 과분한 관심에 몸둘 바를 모르며.
나름대로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최종실기시험 조 추첨이 시작되었다.
특수교육기간도 정규교육기간과 같은 졸업시험을 보았다.
비슷한 전투력끼리 파티를 맺어 하급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하는 것.
물론 상급 현역 헌터가 후방에 참관한 채로 치뤄지는 시험이었다.
혹여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해두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자들은 촬영용 캠을 가슴팍에 달고 치루는 시험이라, 전투 센스 뿐 아니라 협동심과 위기관리능력도 평가에 반영됐었고, 종합 평가 점수가 100점 만점에 70점이 되지 않으면 졸업이 불가했었다.
제 아무리 이론 마스터라해도, 졸업 후 실전에 투입되는 헌터들이기에 실기 점수가 제일 중요한 것이다.
뭐, 파티의 평균 등급보다 한 급수 낮은 던전을 레이드하는 것이기에 아카데미 역사를 통틀어 유급된 헌터는 손에 꼽는다고 했지만.
어쨌든 조만간 난생처음 던전 레이드를 뛴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설레기 시작했다.
“1조. 이강준, 조빛나, 이아영, 김태선.”
당연하게도 초월급도 그 졸업시험을 프리패스할 수는 없었고.
각 E,F,F등급의 헌터들과 시험조로 맺어졌다.
아무래도 초월급이다보니 평균을 맞추기 위해 교육생도들 중 가장 낮은 등급의 생도들을 붙인 듯했는데, 그래봤자 결국은 조원 중 가장 낮은 등급보다 한 등급 이상 높은 던전에서까지만 시험이 가능했기에.
E등급 던전이 최종 시험 던전 등급으로 선정이 되었었다.
초월급에 E, F, F등급을 평균 내면 대략 B에서 C등급은 되겠지만, 규정상 조원 중 가장 낮은 등급에서 한 등급 위가 상한선이었기에 E등급이란 하찮은 던전이 선정되버린 것이다.
적어도 B등급 쯤에서 실전능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내겐 아쉬운 등급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던전 레이드는 협동과 희생이 중요한 법이고, 이제껏 그리 가르침을 받았으니 군말없이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이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조가 짜여지는 즉시 시험이 시작되는 시스템이라, 팀원들 간 불화가 없어야 무사히 졸업이 가능했기에 조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난, 하굣길에 올랐다.
조장은 당연히 내가 맡게 됐는데, 우선 E등급 던전에 대한 공부와 각 테마별 전략을 짜기 위해 주말에 조원들과 미팅 약속을 잡아둔 터였다.
제발.
정신 나간 사람만 없기를.
인간이 5명 모이면 1명은 쓰레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뭐, 조원은 총 4명이긴하지만 참관 현역 헌터까지 합치면 5명이 되니, 부디 유별난 인간이 없기를 빌며 그렇게 하굣길에 올랐는데.
별안간 교정이 떠나갈 새라,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ㅡ!! 이강준ㅡ!!”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에 예수님이 부르나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아카데미 본관의 옥상 난간에 한 여성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하아....
배지민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