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8)어디서 파리새끼가 앵앵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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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소민이와 나를 버릴 때조차, 버러지만도 못한 놈은 작별인사 한 마디 없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고대하던 버퍼가 왔음에도, 위압적이면서도 사나운 눈빛에 후회 한 줄 담지 않는 모습은 정말이지.
개 좆 같을 수밖에 없었다.
견장과 가슴팍에 자랑이라도하듯 온갖 휘장을 매단 채, 쇼파에 근엄히 앉아 나를 맞이하는 이강호.
군단장에 대한 예우는 고사하고, 놈의 맞은 편 쇼파에 앉아 다리를 꼬으며 거만하게 등을 기댔다.
보좌관이 그 무례한 자세에 무어라 질책이라도 하려했지만, 이강호가 손을 한번 드는 것으로 저지시켜버린다.
“다른 사람이 되었군. 늠름한 기백이 보기 좋아.”
“그쪽은 그대로군요. 역겨운 기색이 보기 좆 같네요.”
“…!”
나의 반응은 예상했다는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이는 군단장과 달리.
이사장실에 모인 나머지 두 명의 표정은 창백하리만큼 사색이 되었다.
보좌관과 배지민의 아버지인 이사장이었다.
둘 모두 이강호의 쇼파 뒤편에 공손히도 서있었는데, 나의 발언에 희번득하게 눈을 뜨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만큼, 군단장이라는 자의 위상은 감히 깎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드높은 것이었었다.
그래도 심기는 불편한지, 이강호가 눈썹 끝을 한 차례 떨고는 말했다.
“늠름한 건 좋다만, 나는 너의 아버지이자 상관이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거라.”
“아버지?”
순간 수년간 응축된 울분이 화산마냥 폭발할듯 치솟았다.
감히, 감히 누구 앞에서 그 단어를 꺼내느냔 말이다. 그것도 자신이 버리고서는 호적까지 파버린 자식 앞에서?
인정머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철면피일 줄은 몰랐네.
이제와 같잖은 아비 대접을 받고 싶다는 건가.
다리를 풀고.
상체를 당겨 무릎에 팔꿈치를 괴었다.
그리고 놈을 노려보았다.
확실히 사자 기백을 머금은 듯한 매서운 인상과 호전적인 눈빛은.
일반 헌터였다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지릴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내겐 그저 역겨운 면상판일 뿐이었다.
“아버지? 방금 아버지라 했습니까? 호적에서도 파버린 자식 앞에서 지금, 아버지라는 신성한 단어를 감히 입에 올린 겁니까? 무슨 자격으로요?”
“호적은 다시 등록하면 그만이다. 생물학적으로 어쨌든 넌 나의 아들이다. 내 피를 이어받았으니 초월급이란 위업을 이룩한 것 아니겠느냐.”
하, 씨발 진짜.
개 좆 같은 소리를 상판데기에 변동하나없이 지껄이네.
자신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각성 한번 못하는 변변찮은 쓰레기라며 힐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자신의 피가 있었기에 초월급을 이룬 것 아니냐고?
듣기 싫은 쇳소리 같은 궤변에 온 몸에 형언하기 힘든 거대한 분노가 퍼져 저릿해져왔다.
곧 터질 듯한 폭탄이 사시나무 떨듯 몸 속에서 요동치는 듯한 느낌.
맞잡은 손이 서로의 핏줄을 터뜨릴듯, 우악스레 쥐어진다.
개새끼.
지금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지 모르는 아둔함에 치가 떨린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제 위엄을 굽히기 싫은 것일 수도.
뭐가 됐든, 어찌되었든.
놈은 나와 소민, 그리고 어머니의 묘 앞에 비참하게 위엄을 굽히고 말 것이다.
한계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한숨과 함께 가라앉히고, 다시 등받이에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뭐가 웃긴 것이냐.”
“안 웃겨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데. 딱 맞는 말인 것 같아서요.”
“긴 말할 것 없다. 아카데미 졸업 후에 즉시 하얀 깃발 수호단에 입단하도록 해라.”
지나가는 파리새끼를 잡듯.
손으로 한번 크게 휘적한 후 손바닥을 보며 중얼거렸다.
“좆또, 어디서 파리새끼가 앵앵거려. 우리 존귀하신 군단장님 앞에서.”
“이, 이강준 헌터님!”
“됐다, 그만.”
그런 나의 행동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란 걸 잘 아는지 이강호의 얼굴이 험상궂게도 굳는다.
보기 좋은 얼굴이다.
“진짜라니까요? 어, 여기 또 날아간다 이 씨발 파리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다시 한 번, 휙휙.
파리를 잡는 시늉으로 약을 올리자 이내, 이강호가 그 커다랗고 두툼한 입술을 닫으며 침음을 나직히 흘린다.
군단장 앞에서 욕을 하며 조롱하는 헌터라, 생각보다 너무 짜릿하잖아?
“장난이 심하군, 내 너를 그리 가볍게 가르쳤더냐.”
“누가 누굴 가르쳤단 겁니까? 제게 가르침을 주신 분은 어머니 뿐이십니다.”
익살스레 꼬은 다리의 발끝을 까닥이자, 이강호가 크게 한숨을 내쉰다.
아아, 너무 듣기 좋은 소리인걸.
“하.. 이러는 목적이 무어냐.”
“목적요? 그러는 그쪽은 저를 입단시키려는 목적이 뭔데요?”
ㅡ쿵!
“그쪽.. 그쪽! 그쪽!”
거듭된 모멸스런 호칭에 기어이 쇼파 팔걸이를 거세게 내려치며 맹렬한 노기를 드러내는 이강호.
그가 화낼수록, 나는 즐거웠기에.
미안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어차피 놈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테니까. 제 발로 이곳까지 친히 행차한 것이 그 이유를 대변하고 있었다.
“네이놈! 아비라 부르지 못하겠거늘, 군단장이라 부르거라!”
“알겠습니다, 군단장.”
“….”
“왜요? 군단장이라 부르라면서요?”
깐죽대길 수차례, 이강호의 얼굴에 붉은빛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는 분노에 동공을 떨며 나를 노려보았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 초월급 헌터가 되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느냐?”
“아, 당신한테 배운 게 있나봐요. 오만함?”
“…더 이상 쓸 데 없는 말은 삼가거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어쿠, 무셔라.”
그의 겁박에, 장단을 맞춰주듯 한번 어깨를 오싹이고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렇게나마 제 말을 듣는 것에 안주한듯, 놈이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길드를 차렸다던데, 길드를 키워 나와 어깨를 나란히 맞춰보겠다는 것이냐?”
“그 이상을 노리는 거죠.”
“가소로운 녀석. 작은 길드 하나 차렸다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아까 내게 목적에 대해 물었지. 내 목적은 널 수호단에 입단시킨 후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 파티로 마신 토벌을 하는게 숙원이다.”
아무렴요.
버퍼를 만들기 위해 돈을 쏟아붓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버퍼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던전과 마물의 출몰 이후, 시베리아 평야의 최북단에 나타난 중세시대의 성에 통칭 `마신`이란 존재가 강림했었었다.
그 마신의 성 인근은 던전이 아닌, 일반 평지의 설원임에도 불구하고 마나가 깔렸었고.
각종 전자류 기기와 무기들은 일절 마나장막을 넘어가지 못했었다.
세계는 그곳을 `북부 혈냉의 전선`이라 칭한 후.
각 나라는 그 북부 혈냉의 전선의 중심에 기거하는 마신을 토벌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쏟아붓기 시작했었다.
유일한 희망이었었다.
던전과 마물의 위협에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하지만 재래식 무기도 사용 불가 했었고, 혈냉의 전선을 떠도는 온갖 거대괴수들 탓에 대규모 헌터 군대를 움직이는 것도 불가했었다.
혈냉의 전선에 서식하는 거대괴수들은 S급 헌터들도 감당이 불가한, 강력한 괴수들이었으니까.
설원에 깔린 태산만 한 거대한 덩치의 괴수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그것들의 눈을 피해 움직여야만 마신의 성에 도달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그렇게 각 국가는 서로간 협력을 통해 마신토벌에 수 없이 도전했고, 끝내 최초로 버퍼를 보유한 국가이던 미국에서 5인의 헌터 파티로 마신을 토벌하는데에 성공했었다.
하지만 세계의 기대와달리.
마신이 죽었음에도 던전과 마물은 사라지지 않았었다. 되레 5년이 지나자 마신의 성에 또 다른 마신이 나타나버렸었다.
그에 세계는 생각했다.
이제 지구는 던전과 마물을 배척하는 것이 아닌, 그것들을 활용해 새로운 혁명을 해야한다고.
그렇기에 협약된 일명 [ 서브게이션 프로젝트 ]
A급 이상의 버퍼를 보유한 국가들이 서로간 협약을 맺어 마신 토벌의 우선권한을 갖기로 한 서브게이션 프로젝트.
당연하게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는 A급 이상의 버퍼를 보유한 국가만 가능했었고, 현재 10개의 국가만이 협약을 맺고 있었었다.
이젠 11개의 국가겠지만.
여하튼 우선권한을 부여한다는 취지의 협약이 맺어진 이유는 다름아닌, 마신의 토벌 보상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이었다.
다차원 외계물질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강력한 암흑물질부터, 각성석, 오리하르콘, 이터널 프레임, 무한 에너지를 내제한 원석 등등.
온갖 희귀원석과 보석, 고대문서, 연구가치가 풍부한 물질들이 드랍된 탓에 세계는 질서를 지키기 위해 협약을 맺은 것이었었다.
마신이 드랍하는 보상은 국가발전에 지대한 거름이 되기에 충분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마신이란 존재는 세계 구원을 위한 트리거가 아닌, 황금 고블린마냥 드랍 보상이 막대한 최종 보스와도 같은 것이 되버린 것이다.
뭐, 토벌 난이도는 극악이었지만.
그렇기에 버퍼가 없는 헌터 파티는 사실상 자살특공대와 같았기에 협약에 버퍼 보유국이라는 제한을 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이강호는 자신의 재임기간 안에 대한민국을 마신 토벌 국가로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군단장의 재임기간은 8년.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년 뿐이었다.
그렇기에 절박할 터이고.
그렇기에 난, 여유로운 터이고.
더욱이 강림사이클인 5년 주기가 내년이면 돌아오는 해였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버퍼로 각성한 이상, 국가를 위해서라도 마신 토벌전에 참여하는 게 의무겠죠.”
“…그렇담 우리 하얀 깃발 수호단에 입단하는 것 또한 의무겠지.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들이 있으니까.”
마신 토벌 우선권한 획득 시.
정부는 최정예, 그리고 최강의 헌터 파티를 꾸리기 위해 토너먼트 대회에 국방부 산하 군단과 길드들을 참가시킨다.
공정성을 위해 협약국들이 지정한 토벌참가규칙이었었는데, 아무래도 마신 토벌 보상이 워낙 막대하다보니 서로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과도 같았었다.
여하튼 대한민국이 마신 토벌 우선권을 가지게 된다면 협약규칙에 따라 협약국들이 만든 토너먼트 대회장에 군단과 길드들이 자원참가해야했었다.
그곳에서 각 직업별 최상위 성적을 낸 랭커들로 헌터 파티를 꾸려 마신토벌에 임해야하는게 협맹이 정한 규칙이었고.
즉,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파티인 하얀 깃발 수호단의 단원들이 그 토너먼트에서 최상위 랭커들이 될 확률이 지대히 높았고.
놈은 나를 수호단에 입단시키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난, 거절했다.
“의무 따위, 거절합니다. 적어도 당신 같은 쓰레기가 군단장으로 즉위하고 있는 동안은요.”
토너먼트든 마신토벌이든 어쩌라고?
버퍼의 참가의무가 법적으로 명시되어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국가를 위한다는 도의적 의무만 있을 뿐.
그에 이강호의 낯빛이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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