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47화 (47/68)

EP.46)두 여자의 속사정

30년은 더 된 듯, 허름한 상가 건물의 3층에 간판이 걸려 있는 로열티 길드 사무소.

세월의 풍파가 고스란히 보이는 건물과 달리 갓 뽑은 신상마냥 길드 간판은 깨끗했다.

그 간판의 아래, 창가에 서서 밖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성.

전형적인 조폭 형님을 연상케하는 기름진 올백머리에 깃을 벌린 하와이안셔츠와 골프바지, 그리고 운동과 살이 버물린 역삼각형의 덩치까지.

직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는 로열티 길드의 길드장이었었다.

그 세계 형님들이 죽고 못 사는 의리를 영어로 번역한 [ 로열티 ] 길드.

하지만 로열티 길드는 사회 초년생 헌터들에게 노예 계약서를 작성하게 만들어 착취를 하고 있었었다.

성인이 되면 의무적으로 받게 되는 자연각성식.

거기서 각성에 성공한 아이들 중, 세상사에 무지하다싶은 아이를 골라 노예 계약서를 들이밀어 계약 기간 동안 부려먹는 방식이었는데, 당연하게도 계약서를 끝까지 잘 읽어 본다면 피할 수 있는 계약이었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이 으레 그렇듯, 계약서를 면밀히 읽지 않았고, 중간 중간 숨어 있는 계약조항들로 인해 피를 보는 것이다.

그 노예 계약자 중 한명이 바로 이사벨라였었고.

ㅡ쿵쿵쿵.

페인트가 까져 군데군데 녹슨 부분이 드러난 문이 노크에 떨렸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부르셨나요.”

초췌한 낯빛에 붉은 보랏빛의 입술, 그리고 싱그러웠던 붉은 머리가 오늘따라 푸석해보이는, 이사벨라였다. 길드장 허창이 쇼파에 앉으며 손가락을 까딱였고, 이사벨라는 잔뜩 주눅든 채로 다가왔다.

“어제 일 도중에 뛰쳐 나갔다고?”

“네, 네… 급한 일이 생겨서요, 죄송합니다…”

“그래, 뭐. 급한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암. 난 관대하니까 이해해. 뛰쳐 나갈 수도 있지.”

고개를 끄덕이며 주둥이를 내미는 허창.

그 오리 주둥이마냥 튀어나온 주둥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이사벨라의 어깨는 더욱 움츠러든다.

“계약내용 다시 안 읊어줘도 되지? 이제 충분히 숙지했을 텐데.”

“네…”

알고 있었다.

계약 내용상, 접대 일을 하루 빠질 시 던전 레이드 수익금 2회 압수라는 것을.

하지만… 평소 친분을 가지고 지내던 간호사에게 소민이가 위독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었다.

그렇기에 접대 중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나왔다가 그대로 병원까지 달려갔던 것.

하지만 이사벨라는 항변하지 않았다.

돌아올 대답은 늘 지옥을 상기시켜줄 뿐이었으니까.

“잘하자, 좀. 그래도 엉? 2차 안 보내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 줄 아냐? 나 같은 사람 또 없다고~ 앙?”

“죄송합니다…”

“헌터인 너 한번 먹어볼라고 돈 갖다대는 좆대가리들이 몇 명인 줄 아냐? 오빠가 임마 그거 다 쳐내고 너 지켜주고 있는 거 아냐~ 그래? 안 그래?”

“맞습니다…”

“근데 이 씨발 접대 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 웃으면서 술만 따르면 되는 일 하나 제대로 못해?! 죽고 싶냐? 얼마나 싹싹 빌었는지 아냐고, 이 썅것아!”

결국 손을 올리며 본색을 드러내는 허창에 이사벨라는 눈을 질끈 감아야했다.

2차를 안 나가는 데다 몸에 터치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사실상 길드가 법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면책보험으로 벨라에게 호의마냥 베푼 것)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해도 옆에 앉아 억지로 웃으며 술을 따르는 일은 역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 그래도 우리 길드 간판님이신데 흠이 나선 안 되지. 그러니까 잘 좀 하자, 알겠어?”

“넵..”

“한번만 더 이딴 식으로 굴면은 힐러가 살인자 딸이라고 소문 쫙 내버린다. 알겠어? 글고 이제 우리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마무리는 잘 해야되지 않겠어?”

이사벨라의 뺨을 잡은 채 협박하는 허창.

어차피 이사벨라가 레이드로 벌어오는 수익보다 접대로 벌어오는 수익이 더 많았기에 그의 입장에선 손해볼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헌터업계에서 매장시킨 후 남은 계약 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접대일을 시키는게 길드에 이득이 될 것이다.

이사벨라도 그것을 알기에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여야했다.

`이사벨라 헌터`라는 호칭은 제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으니까.

만약 살인자의 딸이란 이유로 헌터 업계에서마저 외면 받는다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만 같았으니까.

“알겠습니다..”

“큭큭큭, 그래그래. 이제 가 봐.”

“네..”

흥신소나 다름 없는 허름한 길드 사무소를 빠져나온 이사벨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변호 비용에 급전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앞뒤 분간할 여유만 있었다면.

이딴 길드랑 계약하지 않았을 텐데, 야속한 세상에 한숨의 깊이는 깊어만 간다.

그래도 이 짓거리도 이제 한 달만 참으면 끝이다. 계약 기간 만료로 로열티 길드의 족쇄를 벗을 수가 있을 터이기에 깊은 한숨 한번으로 회한을 털어냈다.

“하..”

이사벨라가 휴대폰을 켰다.

밝게 웃고 있는 아버지와 자신의 사진이 배경화면으로 설정되어 있었고, 액정 화면에 반사된 이사벨라의 얼굴은 우중충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안 남았어.. 힘내자, 벨라야.”

**

“후.”

그래도 부리나케 달려오기는 했는지, 마나 필드에서 내제된 마나를 운용하는 연습을 시작한 지 30여분 만에 도착한 박나영에 훈련은 잠시 중지해야했다.

헉헉대며 숨을 고르는 박나영.

시립 마나 훈련장이라해도, 각 등급에 맞는 섹터가 나눠져 있었는데.

S급 이상의 섹터는 없어서 S급에서 훈련중이었었다.

중대형 길드만되도 길드 전용 훈련장을 갖추고 있었기에 S급 훈련장에는 나와 박나영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빨리 왔네.”

“하아.. 하아.. 빨리 오래서.. 하아.. 달려 왔어.”

역시 오랜만에 보는데, 좆 같은 건 여전하네.

퇴원하자마자 염색했는지, 개나리마냥 샛노랗게 물들인 머리가 유달리 좆 같게 보인다.

이런 개나리 같은 년.

그래도 철판을 두툼하게 깔고 있던 면상이 불에 달궈진 듯 일그러진 건 그나마 볼만한 듯싶다.

가부좌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땀을 닦았다. 육체 단련이 아니었지만, 마나 흐름을 운용하려니 온 몸에 극한의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꿈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지, 진짜 초월급 헌터가 되버린 거야…?”

그런 나의 모습에 숨을 고른 박나영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대답해줄 이유 따위 없었다.

무시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좆 같은 질문하지말고. 사과하러 왔다며?”

“어? 아, 응..”

“그럼 사과나 하고 꺼져. 귀찮게 하지 말고. 바쁘니까.”

“아, 알겠어.”

흠, 생각보다 진심인 건가?

거듭된 무시와 명령에도 박나영의 얼굴엔 신나희의 것과 같은 반발심은 보이지 않았다.

가온 길드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걱정에 급 철이라도 든 건가?

하지만 아직 속단은 이르다.

내가 아는 박나영은 이렇게나 쉽게 제 잘못을 인정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소이현은 분위기에 휩쓸려 물 든 케이스, 신나희는 속에 광기를 숨겨둔 케이스였는데.

박나영은 그들과는 달랐다.

원초적이고 순수한 분노를 가진 미친년이었는데, 성격의 지랄맞음으로는 박나영이 단연코 그들 중 으뜸이었었다.

거기다 술도 좋아해 취기가 오르면 가벼운 폭력도 일삼았었고.

코인 폭락장일 때는 아주 살얼음판을 맨발로 걷는 듯한 기분이었었다.

헌데, 그런 나의 예상을 뒤엎듯.

박나영이 무릎을 꿇었다.

…뭐, 뭐야?

“미안해. 포션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해 서드키메라한테 복부를 꿰뚫리고나니, 너가 우리한테 해준 일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 진심이야. 무시하고.  모욕해서 정말 미안해..”

길드장이나 부모님한테 호된 꾸지람이라도 들은 건가?

아니, 그렇다해도 이럴 애가 아닌데?

하지만 박나영의 촉촉한 눈망울과 용서를 구하는 입술은 진심으로 보였다.

“…참회가 빠른데.”

“진심이야. 길드장님한테 얘기 다 들었어. 신나희가 쫓겨나고, 안나 언니가 너한테 용서를 구하고 지금 함께 있다는 것도.”

“신나희가 쫓겨나는 걸 보니, 아차 싶었던 거냐?”

“…부정하진 않을게. 솔직히 이렇게 되리라 상상도 못했었어. 근데, 이제 알겠더라. 길드에서 쫓겨난다는게 두려운 것도 있지만.. 너라는 사람한테 모질게 군 걸 이제야 깨달은 내가 더 경멸스러웠어. 그래서 이렇게 온 거야. 직접 얼굴 보고 사과하고 싶어서.”

짜여진 대본마냥 술술 사과를 읊는 박나영.

공손히 꿇은 무릎과 그 위에 맞잡은 채로 놓은 손, 끝이 내려간 입술과 잘게 떨리는 호흡까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사과 태도였다.

마치 내가 아는 박나영이 아닌, 누군가 그녀의 탈을 쓰고 사과를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에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녀에 대한 원망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면전에 두니 역하기는 했지만, 이제 행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내게 그날의 기억들은 무뎌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먼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언젠가 잊고 지낼 기억들이었었다.

하지만 박나영은 용서를 받고 길드장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내게 왔고.

그 태도에 거짓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응당 사과를 받아주는 것이 옳을 터다.

이제 박나영이란 존재는 내게 지나가는 똥개새끼나 다름없었기도 했고.

만약 나를 물어 뜯으려한다면 줘패야하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관심을 두지 않는, 딱 지나가는 똥개새끼와 다름없는 존재가 지금의 박나영인 것이다.

“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네. 솔직히 조금 놀랬어. 이때까지 나한테 사과하러 온 것들 중에 너가 제일 모범적이었으니까.”

박나영의 얼굴에 환희가 깃든다.

흠, 속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직 마지막 관문들이 남아있었으니까.

“근데.”

국어시간에 배웠듯, 긍정의 뒤에 부정을 알리는 접속사의 등장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꿔버린다.

환희를 띄던 박나영의 얼굴에 일순간 불안감이 깃든다.

“왜, 왜…?”

“너무 모범적이어서 진정성이 없어보인달까. 무릎 꿇는 게 너무 쉬웠어. 그래서 말인데, 도게자로 머리 박으면 용서해줄게.”

“…뭐, 뭐라고?”

잘못 들은 것마냥 고개를 사선으로 꺾으며 나를 쳐다보는 박나영.

하지만 팔짱 낀 채 그녀를 하찮게 내려다보는 나의 눈빛은 그녀에게 진정성이란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싫어? 아님 빡대가리라 도게자가 뭔지 모르는 건가?”

“아, 알아! 안다구..! 근데 그,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삼 년이야. 삼 년. 굳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삼 년의 기억을 잊어줬겠지만, 굳이 찾아와 삼 년의 기억을 상기시켜버렸으니 거기에 대한 죗값도 치뤄야 모든 용서가 끝나지 않겠어?”

단호한 나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는 박나영은 쉽사리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 정적이 생각보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알겠어. 그럼 도게자를 하면 용서해주는 거다.”

“그럼.”

“하…”

낮게 한숨을 내쉬곤 바닥을 내려다보는 박나영. 누울 자리를 살피듯, 신중히 바닥면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이내 도게자를 한다.

팔을 벌리고 엎드려 머리를 지면에 박을듯 숙이는 도게자.

“미안해..! 사과를 받아줘..!”

일본영화나 애니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자세에, 짜릿한 희열이 솟는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이 역시 최종관문을 위한 하나의 준비였을 뿐이다.

주먹을 쥐는 박나영을 내려다보며, 상태창을 발현시켰다.

마나 필드로 그녀를 부른 목적이었었다.

내겐, 특이 특성으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 이름 : 박나영 ]

[ 등급 : S ]

[ 종합 전투력 : 16,015 ]

[ 근력 : 90 ]

[ 체력 : 60 ]

[ 민첩 : 100 ]

[ 방어력 : 70 ]

[ 공격력 : 110 ]

[ 특이 특성 : 이면보기 ]

[ 씨발새끼! 개씨발새끼가 감히 나한테 명령을 해!? 한번만 더 지랄하기만 해봐!! 아주 뒷모가지부터 척추까지 그어버려줄 테니까!! ]

...역시.

내 예상을 벗어나질 않는구나.

이 씨발년은.

그나저나 이면보기 특성 아니었으면 진짜 속을 뻔 했네,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년이었었나.

헌터가 아니라 배우를 했어야했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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