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어가이브 길드 출범
참 세상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각성 못했다해서 자식새끼를 무참하게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와 각성했다해서 제 시다바리를 부려 얼굴을 들이밀으라는 명령을 전한다고?
개 좆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아니면, 설마 아직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앉아있는 건가?
하긴, 그 작자 입장에서는 초월 버퍼의 신원따위는 중요하지 않겠지.
그저 대한민국에 버퍼가 탄생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어느새 들러붙은 기자들이 연신 셔터를 터뜨리며 웅성대고 있었다.
조회수에 혈안이 되어 나를 스토킹하듯 뒤쫓는 놈들의 얼굴도 보였다.
하여튼 거머리 같은 것들.
기자놈들을 경멸스레 한번 흘긴 후, 보좌관을 노려보았다.
“이강호 군단장이 저를 보자고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강준 헌터님의 경호는 저희 군단에서 지원해드릴 겁니다. 아무래도 일반 상태에서 피습을 당하시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건 정부차원에서 국가주요전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그딴 거 필요없습니다.”
“...네, 네? 아니, 이건 군단장님의 명입니다.”
“그러니까 필요 없습니다. 그 새끼에게 명령 받을 일도, 도움 받을 일도 없습니다. 돌아가세요.”
헌터가 된 이상, 이제 이강호 군단장 그 작자는 나의 상관이었다.
그것도 감히 쳐다도 보기 힘들, 하늘 같은 상관.
군대로 따지자면 참모총장의 보좌관에게 일반 병사가 욕을 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
보좌관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주변을 한번 살핀 후 헛기침을 했다.
“큼큼,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헌터님은 지금부터 대헌터군단 소속이자, 군단장님의 부하입니다. 그러니 군단장님을 욕보이지 마십시오.”
꽤나 진지하게 내게 부하로서의 예의를 요구하는 보좌관에 난 그저 콧방귀로 응수할 뿐이었다.
헌터가 되자마자 군단장을 업신여기는 일은 객기에 가까운 짓임을 알고 있다.
어떤 처벌이 올지, 어떤 제재가 내려질지 모른다. 아마 영창에 보내지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겠지.
그렇기에 일반 헌터였다면 두려워하는게 당연하지만 아니, 애시당초 이런 미친 짓을 하지 않겠지만 난, 놈이 원하는 버퍼였기에 이정도 객기는 객기 축에도 끼지 못했다.
어차피 함부로 처벌을 운운하지도 못할 것이다.
국방부장관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국방부장관은 야당대표인 안나 누나의 아버지와 절친한 사이라고 했었었다.
그런 내가 자식 버린 아비 새끼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니, 이젠 놈이 나를 두려워해야할 것이다.
“풋, 웃기고 있네.”
“이, 이강준 헌터님! 군단장님께서 헌터님께 극빈대우에 최정예 헌터들도 입단하기 힘든 `하얀 깃발 수호단`의 입단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 분께 이 무슨 망발이십니까!”
거듭된 조소에, 기어이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밝히며 언성을 높이는 보좌관.
하지만 내겐 1의 데미지도 없는, 그저 듣기 싫은 소음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하얀 깃발 수호단이라, 대한민국 최정예 중에서도 최정예군단인 그곳은 전투력이 높다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
종합적인 스킬 운용력과 전투 센스, 그리고 뛰어난 지성까지 골고루 겸비해야만 입단 신청 정도를 해볼 수 있는 곳으로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들이 있는 곳이었었다.
간혹 출몰하는 S급 이상의 던전 토벌 만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그들.
그곳에 입단한다면 그야말로 인생대역전극을 펼치겠지만, 그곳에 나를 입단시키는 것도 결국은 그 놈이 원하는 것이기에 결단코 응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에 다시 한 번 콧방귀로 응수했다.
“누가 입단한답니까? 그 새끼에게 전해주세요. 보고 싶거든, 직접 오라고요.”
“지, 진심이십니까? 군단장님을 욕 보인 것만으로도 헌터님께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세요. 그딴 처벌 두렵지 않으니까요.”
“시, 실수하시는 겁니다!”
“어휴, 어디서 하수구 냄새가 풍기네.”
같잖은 겁박을 해대는 꼴에 빡친 낙타새끼마냥 바닥에 침을 한번 뱉었다.
보좌관의 앞에서 침을 뱉는 모멸적 행위는, 결국 대헌터군단장에게 하는 것과도 같았다.
일반 헌터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기겁을 해야할 그 행위를 시원하게 해버린 난, 어안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는 보좌관에게 피식 조소를 날린 후 차로 향했다.
곧 이강호 그 새끼도 같은 얼굴을 할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전율이 샘솟는다.
참 엿 같은 운명이다.
버림 당한 자식이 대한민국 최초의 버퍼로 각성해버리고, 그 버퍼가 꼭 필요한 아비라니.
앞으로 부딪힐 일이 많을 것이고, 힘든 일도 생기겠지만.
어머니의 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참회의 눈물을 쏟게끔 만들기 전까지, 지독하게 놈을 짓밟아버릴 것이고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시작이니까.
**
“등록 완료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직원이 내미는 증서 한 장을 받아들었다.
놈에게 선사할 복수의 서막을 위한, 그리고 나와 서윤, 안나 누나의 새 보금자리가 되어줄 증서.
그 증서의 제일 윗 줄에는 누나들과 머리를 맞대고 만든 길드 이름이 적혀 있었다.
[ 어가이브 (agave) ]
실제로 백년에 한번 핀다는 꽃, 용설란의 영엇말로 서윤 누나의 추천으로 만들어진 길드명이었었다.
인터넷 고글에서의 정확한 발음으로는 어가비지만, 길드이름으로는 어가이브가 낮겠다하여 자체적인 번역(?)으로 탄생한 길드명.
여담으로 원 발음은 어게이브인데, 안나 누나가 게이 길드 같다며 어가이브로 바꿨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어제 서윤 누나와 안나 누나가 발품 팔아 찾은 사무실의 주소가 적혀 있었었다.
길드를 창설하는 데에 딱히 제약은 없었었다.
헌터 협회에 창설금 3천만원과 사무실 하나만 있으면 가능한 게 길드 창설이었었는데.
그덕에 난 안나 누나와 서윤 누나의 지원을 받아 자그마한 사무실에 [ 어가이브 길드 사무소 ] 현판도 달 수 있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적힌 [ 길드장 : 이강준 ]
초월급 버퍼와 S급 탱커, 준S급 딜러가 모인 신 길드의 탄생에 헌터 협회조차 들썩이고, 기자들은 불철주야 기사를 써나르기 바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 길드의 탄생이유가, 이강호 군단장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앞서 얘기했듯, 모든 헌터는 대헌터군단의 소속이고 대헌터군단은 길드들을 산하에 두고 헌터들을 관리한다.
대헌터군단은 하얀 깃발 수호단 외에도 직속 정예군단을 몇 개 거느리고는 있었지만 주 임무는 길드와 헌터를 관리하는 것이다.
간혹 S급 이상의 던전에서 서식하는 마물이 던전 바깥으로 나와 민가를 습격하는 비상시에 대비해 헌터의 육성과 자유 마나 필드 관리에도 관여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길드가 그중 하나인 헌터육성업무를 일권하고 있었기에 대형 길드장들은 준 참모와도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즉, 일반헌터들은 군단장의 말 한마디에 벌벌기며 절대복종을 해야하지만, 헌터라도 대형급 길드장이 된다면 수직상하구조에서 수평상하구조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난 길드를 창설해 길드장이 되었고, 서윤 누나와 안나 누나를 길드 헌터로 영입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길드 키우기에 들어갈 계획이다.
길드장이 초월급 버퍼인데다 창립멤버가 유서윤과 유안나이다?
헌터들이라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신 길드의 출범이기에 헌터 영입은 어렵지 않을 터다.
물론 당분간은 조금 좆소기업처럼 돈보다 열정이 우선인 멤버들을 찾아야하기는하겠지만.
그래도 안나 누나와 서윤 누나가 레이드로 번 수익을 길드가 안정될 때까지 회삿돈으로 굴려주기로 했으니 B급 헌터들의 급여까지는 무리없이 소화해낼 터다.
덤으로 사무직원들의 월급도.
당연히 길드장인 나도 `열정페이`이고.
그나저나 초월급은 대한민국 최초인데 정산배분이 어떻게 되려나 궁금하네.
곧 안나 누나와 있을 S급 던전 레이드에서 확인해보면 되겠지.
본래 헌터들은 최초 각성 후 아카데미 졸업 당시의 자기 급수보다 한 단계 낮은 던전부터 시작하게 된다.
논외로 F급은 F급부터 시작이지만.
여하튼 초월급인 난 S급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카데미의 특수교육기간이 끝난 후가 되겠지만.
왜인지 몸이 근질거려 죽겠다.
하루빨리 멋진 레이드를 뛰어보고 싶달까.
'어서 아카데미 졸업했으면.'
그렇게 난 아니, 우린 [ 어가이브 길드 ] 를 성공리에 출범시켰고.
기사들은 하나같이 대형 길드의 탄생이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곧 이강호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겠지.
그 표정을 눈 앞에서 보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
“네? 파티가 없어졌다고요?”
가온 길드의 대표실에 앉은 박나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길드장을 쳐다보았다.
노랗게 물들인, 이국적인 금발을 찰랑이며 들어온지 고작 2분만에 듣게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
평소 코인이 아니고서는 휴대폰도 보지 않아 항간의 소문은 듣지 못햇었었고, 퇴원 후 머리 염색을 하곤 곧장 길드로 온 터라 멤버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었다.
아니, 하지 않을 생각이었었다.
정신을 차린 후 곧장 퇴원했다고는하지만, 연락 한 통 없는 멤버들이 야속했었던 그녀였다.
헌데, 이제 와보니 연락이 없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파티가 없어졌다니.
파티가 없어졌다니..!
그런 박나영의 혼란을 진정시킬 생각이 없는 길드장은 근엄한 자세로 그녀에게도 숙제를 하달했다.
“그러니 너도 가온에 남고 싶거든, 헌터들과 매니저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광명을 찾거라. 무엇을 용서 받으란지는 너가 잘 알 테지. 마찬가지로 기한은 한달이다. 알겠느냐.”
박나영이 무슨 소리냐는듯, 눈살을 찌푸렸다.
“네? 용서? 저보고 지금 손이라도 빌라는 얘기세요? 저 박나영이에요, 박나영! S급 헌터인 제가 왜 하등한 놈들한테 용서를 구해야 되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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