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아카데미 특수교육기간 등록 !
이사벨라가 흠칫한다.
그 반응에 들숨이 훅 들어온다.
진짜였다니, 아니 대체 언제부터?
“…미안해. 숨겨서.”
“어이가 없네… 어이가.”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나를 차버린 전여친이 나 몰래 동생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사실을 동생까지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었고?
이건 나를 완전 투명인간에 병신취급한 것과 같지 않은가.
물론 동생과 놀아주고 챙겨줬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특히 미녀사총사 파티에 묶여있을 때의 난 한 달에 한 번조차 동생을 보러오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해서 그녀를 옹호할 생각도, 고맙다고 말할 생각도 없었다.
“언제부터야.”
“…이 년 쯤 된 것 같아.”
머리를 쓸어넘기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어이가 없네. 대체 뭔데? 뭔데 니가 소민이를 챙겨주는 거냐고.”
“…미안해. 할 말 없어.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소민이 뭐라하지 말아줘..”
“뭐? 장난하냐 지금?”
순간 화가 울컥 치솟았다.
무자비하게 나를 걷어찰 때는 언제고, 이제와 내 동생에게라도 좋은 언니 타령을 하겠다는 건가?
그 노기에 이사벨라가 주춤하며 거듭 내게 사과했다.
“미, 미안.. 주제 넘었어. 사과할게..”
“미안하다고해서 끝날 일 아냐. 나한테 숨겨가면서까지 소민이를 챙겨준 이유가 뭔데? 단순히 좋은 언니 동생 사이라서?”
“…소민이한테 연락 왔었어. 보고 싶다고.. 그러면 안 됐는데.. 다시 얼굴 보고 난 후로 발길을 끊을 수가 없었어.. 미안해.”
결국 좋은 언니가 되고 싶어 그랬다는 거군.
울컥 솟은 화를 한숨과 함께 털어냈다.
화는 이성적인 판단만 흐릴 뿐이다.
미안하다해서 끝날 일이 아니듯, 화만 내서 끝날 일도 아니었다.
“나한텐 미안하니까 숨겼다, 그거네?”
이사벨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긴 미안한가보네.
이미 사과를 받기엔 늦어버렸기는하다만.
“고맙다는 인사 받을 생각일랑 접어둬. 너한텐 고맙다는 인사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 안 해. 감히 내가 무슨 인사를 받아. 오히려 미안한데…”
“염치는 있네. 근데 그땐 왜 그랬냐? 아니다, 이제 와서 무슨.”
일전에 그녀는 내게 `사정`이란 것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었었다.
하지만 당시의 안나 누나가 복도방뇨를 시전하며 기회는 무산되버리고 말았었지.
이제와 다시 그 기회를 주기엔 과분한 듯해, 기회는 수거하기로 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게. 미안해.. 본의 아니게 속여서. 소민이 잘 챙겨줘, 그럼 갈게.”
말을 마친 이사벨라가 도망치듯 걸음을 옮기려했다. 헌데, 알 수 없는 동정심 같은 것이 내 입을 열게 만들었다.
젠장, 왜 이렇게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드는 거야.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인가.
“..잠깐 기다려. 그 옷차림은 뭔데.”
5년 전의 그녀답지 않은 옷차림이 왜인지, 신경쓰였다.
짧은 원피스는 물을 뭍힌 한지마냥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매를 부각하고 깊게 파진 V넥은 가슴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다 굽 높은 하이힐에 짙은 화장까지.
적어도 5년 전의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색이었다.
조금 문란스럽고 퇴폐스러워 보였으니까.
나의 말에 멈칫하고 선 이사벨라가 고개를 숙였다.
“…신경 쓸 거 없어.”
“하, 끝까지 지 멋대로네.”
화가 났다.
참으려해도, 애써 참아보려해도 이사벨라는 뭔가 화를 참지 못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은 여자였다.
무례하고도 뻔뻔스럽달까.
“신경쓰이게 하기 싫으면 나타나지나 말던가. 눈 앞에 거슬리게 멋대로 나타나놓고는 멋대로 사라지시겠다? 진짜 미안하다면,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이나하고 꺼져야하는 거 아니냐?”
“…다신 안 나타날 테니까 이해하려 하지마. 나 같은 거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끝내 이사벨라는 내게서 도망치듯 멀어져갔다.
5년 전 그때처럼, 참으로도 모질고 이기적인 여자다.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없어.
…하, 근데 왜 일까.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생각이 든다.
젠장, 모르겠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약속했으니, 최소한 그 약속은 지키지 않겠는가.
미적지근하고 찝찝한 생각을 털어내고, 이사벨라와의 만남이 이것으로 끝이길 빌며 다시 병원으로 들어섰다.
우선은 우리 소민이의 안위가 최우선이었다.
**
“나희야.. 그만 울어.”
“흐아아앙! 흐아앙! 좆 같아! 기분 개 좆 같다고요! 흐아아아앙!”
결국 가온 길드에서 쫓겨난 신나희는 울면서 대표실을 뛰쳐 나왔고.
그래도 3년이란 시간 동안 들어버린 얄팍한 정 탓에, 소이현이 그녀를 따라와 다독이고 있었다.
눈물콧물 모두 쏟아내는 신나희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소이현이 휴지를 건네며 짧게 책망했다.
“그러니까.. 왜 그랬어.”
“흐아아앙! 좆 같잖아요! 억울하잖아요! 지고는 못 산다구요! 흐아아아앙!”
구급차 사이렌마냥 시끄럽게도 울어대는 신나희.
길드에서 추방된 힐러라는 이명은 앞으로의 헌터 생활에 큰 제약을 만들 것이란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강준에게 복수하지 못한 사실이 더욱 화가 났다
“분해요 너무 분하다구요! 개새끼! 감히 나를 가지고 놀다니..!! 꼭 복수해버릴 거에요!!”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지금이라도 길드장님한테 사과드리고 진심으로 뉘우쳐. 해보니까 어렵지 않더라. 할 수 있어. 오히려 기분 좋던데?”
진심이었다.
처음엔 사과를 하러 다니는게 너무 창피하고, 분했었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몇 번 하다보니 되레 용서를 받았을 때의 쾌감 같는 게 느껴졌었다.
좋은 사람으로 정화되어가는 것 같달까.
그 기분 좋은 느낌을 신나희도 느꼈으면해 권유를 해보았지만, 신나희의 그렁대는 눈빛은 표독스레 변할 뿐이었다.
“아뇨! 그 개새끼랑 유안나 썅년을 꼭 제 앞에 무릎 꿇게 만들겠어요!! 꼭 만들고 말 거라고요! 흐아아앙!”
“….”
아직도 사태파악을 하지 못한 채, 울면서 복수를 다짐하는 신나희. 소이현은 그런 그녀를 보며 한숨을 쉬고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갱생불가 노답년이라고.
더 이상 상종했다간 자신도 똑같은 인간으로 묶일 것이라고.
그렇기에 이현은 신나희를 손절치기로 결심했다.
**
다행히 소민이의 상태는 밤 중 안정을 찾았고, 한시름 놓은 난 다음 날 병원을 빠져나와 헌터 아카데미로 향했다.
헌터가 되지 못한 남녀가 국방의 의무를 지기 위해 군대를 다녀오듯, 헌터들은 각성 후 아카데미에서 필수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했는데.
대한민국 최초의 초월급 헌터인데다 버퍼인 나의 입학등록에 최고의 명문 아카데미로 꼽히는 [ 서울 헌터 아카데미 ]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야했다.
“아니, 그… 죄, 죄송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최고의 교수를 초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꼭 다른 아카데미에 가시지 마시고…!”
입학 등록을 하러 찾았을 뿐인데, 학장실로 오게 되었고.
아직 대한민국에 버퍼를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없다며 최대한 빨리 구할 테니 제발 다른 아카데미에 가지 말라는 학장의 부탁에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다른 아카데미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어차피 초월각성에 성공한 헌터들은 한 달 간의 필수 교육과 훈련만 받으면 됐었다.
F급부터 시작해야하는, 그리고 최대 A등급 던전에 대한 실무교육 커리큘럼 밖에 없는 아카데미에서 사실상 내가 배울만한 것은 거의 없었었다.
해봐야 던전과 마력을 다루는 기초 이론과 S급 마물들에 대한 정보 교육 뿐. 이건 안나나 서윤 누나에게 배워도 무방한 일이었었다.
만약 해외에서 기간강사로 버퍼를 초빙해온다면 교육 범위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학장이 열을 올리는 이유는 그 한달간이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하는 것이 아카데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로 `버퍼`를 졸업생으로 배출하려는 욕심도 한 몫하는 것이고.
“그럼 교육 일정이 잡히면 연락주세요.”
“네넵! 최대한 빠르게 잡아볼 테니 걱정마십시오..! 이강준 헌터님께 최고의 교육환경을 조성해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카데미 학장이란 고위관료가 내게 진땀을 빼며 자신을 낮추니, 왜 헌터들 중 기고만장하고 안하무인한 인간들이 많은지 알 것만 같았다.
그것들에게 시달렸던 나인데.
똑같은 인간이 될 수는 없지.
최대한 공손히, 허리 굽혀 감사인사를 드린 난 아카데미를 빠져 나왔다.
헌데 아카데미 정문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커다랗고 검정색의 대형 RV 차량이 세워져 있었고.
운전석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내렸다.
짙은 선글라스에 단정하게 넘긴 머리와 검정색 슈트차림까지.
대충 봐도 정부 사람인 것을 알리는 그 행색에 이곳에 차를 세워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운전석 문 쪽에 대헌터군단의 마크도 작게 붙어 있었고.
그는 다름아닌, 경매장에서 한번 마주쳤었던 대헌터군단장의 보좌관이었었다.
“잘지내셨죠? 헌터님.”
윗사람을 만난듯, 정장 자켓 단추를 잠그며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보좌관.
불과 며칠 전 경매소에서만해도 자신보다 낮은 급의 인간으로 대하던 불친절한 목소리가 꽤나 친절해져있었다.
하여튼 정부놈들이란.
“무슨 일이시죠.”
살갑게 나올 리 없는 대답이 그가 무안해지리만큼 싸늘하게도 나온다.
비즈니스용 미소를 장착하곤 내게 다가와 재차 목례를 하는 보좌관.
내가 흔한 헌터로 각성했다면 지금처럼 비굴한 친절로 다가오지 않았을 걸 알기에, 억하심정이 들었다.
“하하, 우선 각성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용건만 얘기하세요. 바쁘니까.”
군단장의 보좌관은 그의 전언을 전하는 직책이기도 하기에.
어찌 보면 나보다 상급자였다. 헌터들이 함부로 대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작자`를 대신하기에 내게 상급자로 인정 받을 수 없었다.
“아, 그럼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강호 군단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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