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1)빡대가리 힐러님 추방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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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길드의 대표실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는다. 쇼파 팔걸이에 팔을 올린, 근엄한 자세로 앉아있는 길드장.
끝이 내려간 순한 백색 눈썹과 달리, 눈동자에 담긴 두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엔 일말의 자비심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 주어진 한 달이 지났다. 소이현, 너부터 읊어보거라. 한 달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소이현이 한 달간 어떻게 지냈는지를.
하우스에서 쫓겨나 돈이 있음에도 제 자신을 낮추듯 작은 원룸으로 보금자리를 만든 것부터, 한달 내내 헌터 동료들과 매니저들을 일일이 찾아가 사과한 것도.
하지만 그는 모른척, 그녀에게 물었다.
잔뜩 주눅 들어있던 소이현이 길드장을 쳐다보았다.
“제가 저지른 잘못들…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을 모두 반성하고, 뉘우쳤어요. 그리고 한분 한분 찾아가 사과드렸고요..”
숙제를 멋지게 해냈음에도.
그 숙제를 꺼내는 소이현의 작은 얼굴엔, 자신감이 없었다.
길드장이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잘했다. 업계에서 평판도 조금 회복한 듯하고. 다른 길드장들도 너가 개과천선한 것 같다며 칭찬하더구나.”
솔직히 소이현이 이렇게까지나 제 평판을 바꿔놓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자신이기에, 오늘만큼은 칭찬으로 그녀를 복돋아주기로 했다.
그에 소이현이 감격스레 눈물을 그렁이며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한달간 느낀 그 후회, 꼭 잊지 말아라. 알겠느냐.”
“네..! 잊지 않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허허, 그래그래.”
길드장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스런 웃음을 흘린다. 비록 S급 탱커를 잃었지만, 근딜러 중에서 원탑급 실력을 가진 소이현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라도 다행이라 여긴 길드장이 이번엔 신나희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일순간 싸늘하게 굳었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한달간 사과와 용서로 참회한 소이현과 달리.
신나희는 그러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시선이 곱게 나올리가 없었다.
“신나희.”
“네.”
“한달간 뭘 했는지, 읊어보거라.”
헌데 신나희는 숙제 보고 대신, 제 손에 쥐고 있던 작고 네모난 전자기기를 툭 테이블 위에다 놓았다.
“무어냐, 이게.”
“들어보세요. 제 결백을 증명해줄 테니까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 전자기기의 버튼 하나를 누르는 신나희.
잠시 후, 노이즈 같은 잡음들이 이어지다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사과해! 사과하면 꺼져준다고! 나한테 거짓말한 거 사과해! 유안나랑 사귄다며 유안나가 우릴 버릴 거라며!! 》
《 그 부분은 사과할게. 거짓말한 거 미안해. 》
《 이, 인정한다는 거지?! 》
《 …거짓말에 속으리라곤 예상치 못 했어. 너무 미안해. 》
녹음기였다.
그리고 그 녹음기에선 이강준과 신나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교묘하게 편집된 녹음본이었다.
소이현이 놀란 눈으로 신나희를 쳐다보았다.
“나, 나희야. 이게 뭐야?”
신나희가 콧방귀를 뀌고는 가소로운듯 말했다.
“들으면 모르겠어요? 우린 거짓말에 속은 것 뿐이에요. 이현씨가 전후사정 파악도 안 하고 사과만 하러 다닐 때, 제가 이강준에게 직접 받아낸 거죠. 후후.”
그리고는 길드장을 쳐다보는 신나희.
자신도 피해자였다는 걸 보란듯이 증명해낸 게 다소 뿌듯해도 보이는 그녀는 길드장의 구겨진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들으셨죠? 길드장님. 이강준 그 새끼가 거짓말을 했다구요. 저희는 거기에 속아서 안나 리더를 의심하게 된 거구요. 저희도 피해자라니까요? 이래도 저희가 잘못한 건가요?”
“….”
되레 자신의 사정도 모르며 호통친 것을 비꼬듯, 얄밉게도 어깨를 으쓱하는 신나희.
그에 길드장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이것은 분노다.
팔걸이에 편안히 올려져있던 그의 손이 안으로 굽으며 주먹을 쥐더니, 이내 떨리기 시작한다.
애써 분노를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이현을 부르는 길드장.
“이현아.”
“네? 넵.”
“내가 한달 전 너희한테 무어라했지?”
“…반성하고 이미지 쇄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랬지. 그랬었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흐르는 공기에 신나희의 엉덩이를 옴짝이며 다급해했다.
“…기, 길드장님! 저희도 속은 거라니까요!?”
그 언성에 결국 위태로이 목구멍에 차올라있던 분노가 대표실을 쩌렁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만ㅡ!! 내가 너희들이 속았다는 걸 입증해오라 했더냐!!”
“아, 아니 그치만…! 억울하다구요!”
“억울?! 이강준 매니저는 바보라서 억울함을 삼키며 너희들을 보살펴준 줄 아느냐!! 그렇게 생각이 없어?! 얼마나 무지 몽매하면 이 간단한 숙제도 이따위로 해오는 것이냔 말이다ㅡ!!”
머리털이 곤두설 것처럼 날카롭게 뻗치는 그의 노기에 소이현은 제 잘못이 아님에도 딸국질을 해야했다.
하지만 그 노기의 당사자인 신나희는 아직도 억울한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자, 잘못한 건 이강준 그 새끼잖아요! 거짓말만 안 했어도 저희가 의심하지는 않았을 거라구요! 그러면 안나 리더도 탈퇴하지 않았을 거라구욧!!”
“나, 나희야 그만해..!”
결국 소이현도 나서서 그녀를 만류하지만.
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신나희의 어리석은 땡깡은 멈추질 않았다.
“너무하세요! 이강준 그 새끼를 왜 그렇게 감싸고 도시는 건데요! 저희가 피해자라고요! 근데 왜 죄인 취급을 하시냐구요!!”
그에 길드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상 이상이었다.
신나희의 빡대가리는.
후ㅡ 길게 한숨을 내쉰 길드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신나희를 얕봤던 자신의 잘못인 듯했다.
“긴 말할 것 없다.”
비록 귀한 S급 힐러를 잃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지만은.
아무도 레이드에 데려가주지 않을 쓸모 없는 S급 힐러를 길드에 두는 것이 더욱 마음 아픈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헌터가 레이드를 뛰지 못하는데 길드에서 거둬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녀가 스스로 마지막 기회를 걷어찬 것이니, 길드장으로서 존중을 해줘야겠지.
결정을 내린 길드장은, 신나희에게 작별을 고했다.
“신나희. 넌 가온 길드에서 추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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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긴 한숨이 세어나왔다.
우리 소민이가 응급실로 들어간지 이제 3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아직 별다른 기별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약물로 간신히 막고 있던 장기 손상이 급작스레 진행되며 응급수술에 들어갔다고 전해들었기에, 초조함은 중첩되어간다.
마치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초월급 버퍼가 됐다는 기쁨에 취해있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하, 이 버프로 소민이의 병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마나로 인해 장기손상이 되었기에, 내 버프는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믿음과 홀로 깊은 한숨만 내쉬는 것 뿐.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가는 깊은 절망감에 허덕이고 있던 내게 다급한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정숙해야할 병원에 웬 구두소리란 말인가.
그 무례한 소리에 짜증스런 표정으로 소리의 진원지를 쳐다보았고.
몸에 착 달라붙는 야시시한 분홍빛 원피스와 하이힐을 신은 채, 풍성한 붉은 머리칼이 어지러이 휘날린 한 여성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뭐, 뭐야.”
“아… 가, 강준아…”
그녀는 다름아닌, 이사벨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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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또각또각!
타닥타닥타닥!
무슨 신데렐라냐고…!
하이힐을 또각대며 오질나게도 도망치는 이사벨라에 난, 난데 없는 추격전을 벌여야했다.
다행히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응급실의 불이 꺼지며 의사가 나왔었고.
《 고비는 넘겼습니다. 》
라는 말을 들은 난 부리나케 도망치는 이사벨라를 쫓아 현재 병원 바깥 도로까지 나온 상태였다.
젠장, 각성 육체였으면 금방 따라잡았을 텐데. 무슨 여자가 저렇게 다리가 빠른 거야.
각성을 힐러가 아니라 근딜로 했어야할 것 같은데?
“벨라! 잠깐만!”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그녀를 부르고 말았다.
오늘 그녀를 놓치게 된다면, 이곳에 나타난 이유에 대해서 영영 듣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꺄악!
다행히(?) 대답 대신 그녀는 발목을 접지르며 인도에 철푸덕 넘어지고야 만다.
“야.. 괜찮아?”
우선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괜히 내 부름 때문에 넘어진 것 같아 미안해졌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이거 놔..”
이사벨라가 부축하고 있던 내 손을 뺀다.
그리고는 까진 손바닥에 묻은 흙먼지와 돌가루를 털어내는 그녀.
“아야…”
언뜻 봐도 핏물이 베어나오고 있는 게 제대로 까진 모양이다.
젠장, 그러게 좀 멈출 것이지.
대체 도망은 왜 친 거야.
아니지… 도망치는 게 맞는 건가?
모르겠다, 우선은 그녀를 병원으로 이끌기로 했다.
“가자. 바로 앞이 병원인데 소독 정도는 하고 가. 어차피 너랑 나랑 나눠야될 얘기도 있는 것 같은데.”
“…아냐. 난 괜찮아. 그러니까 제발 그냥 가줘.”
싫다는 사람 굳이 끌고갈 생각은 없었다.
더욱이 그녀와 나는, 남보다 못한 전 애인 사이니까.
고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고, 소민이가 위급한 건 또 어떻게 알고 온 건데. 사실대로 말해. 소민이를 추궁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
그녀도 알 것이다.
어쭙잖은 변명 따위로 모면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핏물이 베어나온 손바닥을 매만지며, 잠시 말 없이 서있는 이사벨라.
미안하지만 한가하게 침묵을 즐길 시간이 없었다.
그에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를 먼저 꺼내기로 했다.
“…소민이가 얘기하던.. 챙겨준다던 간호사 언니가 너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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