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예비 장인어른(?)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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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를 각성실에 붙잡혀 테스트를 하는 건지, 당하는 건지 모를 테스트들을 마치고 나서야 각성 캡슐실을 빠져나온 우리.
테스트 결과, 내가 시전한 버프는 서윤과 안나의 공격력, 방어력을 말도 안 되는 수치로 상승시켰고.
그 수치는 대략 5분여 지속되었었다.
대신 마나의 사용량이 많아 마나핵의 용량을 키우는 훈련은 해야할 듯 했었다.
아니면 신비의 영약 같은 거라도 먹어야할 듯했고.
장거리 레이드에 사용했다간 마나물약값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듯했으니까.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각성실장에게 인사하고는 각성소를 빠져나왔다.
어찌나 테스트에 집착하던지, 계속 들어주다간 날밤을 지새울 기세였었다.
버퍼의 광역성, 상대의 실제효율성 등등, 자세한 것은 이곳이 아닌, 마나훈련장에서 해봐야할 듯했었기에 우선은 각성소를 빠져나와 길드로 향하기로 했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라온제나 길드의 소속이니 우선 보고가 원칙이니까.
헌데.
언제 들었는지, 국립헌터각성소의 중앙 출입구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서윤 누나가 그 장사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빠르네. 언제 모여들었대?”
“하여튼 거머리들.”
안나 누나 역시, 그 개미떼를 보며 반감을 드러냈다. S급 헌터 숙명상, 기자들에게 호감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난 우리 정실후실의 의견을 받들어, 악셀에 발을 올리고 클락션에 손을 올렸다.
“그러게요. 귀찮게. 그냥 가죠.”
ㅡ빵빵빵, 클락션을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며 악셀을 밟았고, 제 생명이 아깝기는한 건지 모세의 기적마냥 차앞길을 터주는 그들에 출입구를 편안히 빠져나왔다.
인간을 돈줄로만 보는 기자 따위들에게 할애해줄 시간은 없었다.
길드 보고에 헌터 등급 심사에, 헌터 협회 등록과 대헌터군단에 입단도 해야하고, 무엇보다 곧 있을 그 작자와의 대면식도 준비해야했었다.
등급 심사에서도 초월급으로 판명나게 된다면 아니, 이미 버퍼로 각성한 마당에 놈과의 대면은 불가피하게 되었으니까.
뭐 오히려 바라던 바다.
어머니와 우리에게 저지른 과오들을 드디어 청산시킬 수 있을 테니까.
우선 첫번 째 목적지인 라온제나 길드에 도착한 난, 안나 누나를 데리고 길드 건물로 들어섰다.
서윤 누나에겐 차에 있으라고 일러둔 터였다.
금방 돌아온다고.
헌데.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소식통 빠른 길드장이 버선발로 내게 다가온다.
마치 국가귀빈이라도 맞이하듯, 그의 옆엔 새까만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었다.
참, 황당할 노릇이다.
속물도 이런 속물은 난생 처음이다.
대체 저런 아비 밑에서 서윤 누나라는 귀인이 어떻게 자라난 걸까 싶을 정도로.
절벽에도 꽃은 핀다더니, 새삼 서윤 누나가 기특해지려한다.
그 속물스런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온 길드장 유강백이 팔을 벌리며 로비가 울리도록 외쳐댔다.
“어서오게! 이강준 매, 아, 아니. 헌터님 아니신가! 소식을 들었네, 허허허! 우리 라온제나 길드의 이강준 매니저가 초월급 버퍼가 되서 돌아왔다니! 자! 다들 박수치지 않고 뭐해!”
ㅡ짝짝짝짝!
일동 박수로 나를 환대하는 직원들.
다소 불신과 의심이 끼인 눈빛의 직원들도 있었다. 이해는 한다.
마나가 없는 이곳에서의 난, 그냥 평범한 이강준이니까.
박수갈채가 잦아들자, 길드장이 감격스런 표정으로 내 팔뚝을 잡는다. 그 손아귀에 힘이 과하리만큼 들어가있었다.
이 속물스런 행태들 또한 이해는 한다.
초월급 버퍼와 계약한 길드는,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최강의 길드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심사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F급 헌터가 되어 돌아왔다면.
그는 지금쯤 나를 외면하고 있었겠지. 그럴 줄 알았다며, 자네는 서윤이의 배필이 될 수 없다며 말이다.
어쩌면 차라리 일관적으로라도 대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적어도 반감은 생기지 않았겠지.
아무래도 그의 대표자질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그런 내 속을 모르는 유강백은 열심히도 내게 제 속을 토해낸다.
“허허허! 내 자네가 훌륭한 헌터가 될 거라 믿고 있었어! 말은 않았네만 사실 우리 서윤이의 배필감으로 자네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 단지, 조금은 걱정만 되었을 뿐. 혹시.. 내게 앙금이 있거나하지는 않지..?”
비굴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 피식, 비릿한 미소가 나왔다.
앙금 같은 건 없었다.
그렇기에 미련도 없었다.
“네, 없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딸 가진 부모라면 길드장님처럼 걱정하는 게 당연하겠죠.”
“허허허! 역시! 초월급 헌터님은 마음 그릇도 초월급이군그래! 그럼, 자세한 얘기는 근사한 곳에서 서윤이와 함께 나누는 게 어떻겠나? 내 이미 예약도 다 해두었어! 마음에 들 걸세! 허허허!”
아, 쇠뿔도 단김에 빼려는 건가.
초월급 헌터께서 행여나 다른 마음 먹을까, 족쇄라도 채우려는 모양인데.
미안하게도 그의 족쇄에 발을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이미 이곳에 오며 정실, 후실과 `미래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친 터였으니까.
그 미래계획에 애석하게도 라온제나의 이름이 낄 자리는 없었었다.
그에게 악수를 내밀었다.
유강백이 환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악수에 응한다.
비굴하기 짝이 없는, 모멸스런 미소다.
하지만 그 미소에 침을 뱉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서윤 누나의 아버지이니까.
그리고 사실상 내게 해악을 끼치지도 않았었다.
조금 지나치게 속물이었던 게 반발심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길드장으로서, 어쩌면 장인어른이 될 그를 존중하며,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뭐.. 뭐라고?”
그제야 상황파악을 한 유강백의 눈빛이 떨린다.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서윤 누나는 제가 기필코 책임지겠습니다. 걱정마세요. 다만, 라온제나에서의 이강준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맞잡은 손을 풀고.
정수리가 보일 만큼 허리를 굽혀 공손히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곧장 걸음을 돌려 건물을 빠져나왔다.
1층 로비에서 기다려주신 덕에, 인사가 빨리 끝났네.
그래도 계약파기 위약금은 넉넉히 드릴 테니, 그걸로라도 위안을 삼으시길 바래본다.
옆을 쳐다보자 안나 누나가 싱긋 웃으며 내 팔짱을 끼고는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멋졌어. 강준씨.”
그런 우리의 등 뒤로.
장인어른(?)의 절규 서린 부름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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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제나 길드를 정리한 후, 두번 째 목적지인 [ 헌터 등급 검사의뢰소 ]에 도착한 난 지체 없이 검사의뢰를 했다.
어웨이큰 리듬 수치가 110을 찍었기는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고 각성 상태를 알리는 수치일 뿐.
마나에 의해 각성된 나의 육체 능력과 마력의 상태를 평균적인 수치로 세밀하게 측정해 등급을 판정받아야 했고, 난 검사원들의 안내에 따라 검사실로 들어섰다.
검사는 별 것 없었다.
당연하게도 각개의 스킬은 등급에 영향을 주지 않았고, 스킬 사용 상태가 아닌 오로지 맨몸각성상태에서의 근력, 체력, 민첩과 같은 스텟치를 평가하는 것이었었다.
이렇게 평가된 나의 정보들이 헌터 데이터 베이스에 기록되어 `상태창`이라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었고.
최초 등록 이후로는 후두부에 심겨진 마나칩이 헌터의 정보를 데이터 베이스에 자동 업데이트를 한다고 했다.
이 마나칩이 개발되기 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인 평가를 받아야했다는데, 마나칩 개발 이후에 헌터 각성한 게 참 다행스러운 대목이었다.
“…이, 이강준 헌터님의 등급은 초월 등급이십니다.”
당혹감과 경외심이 공존하는 그 애매한 눈빛으로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네는 검사실장.
두툼하고 빳빳한 재질의 종이 한 장에는, 이제 헌터 협회에 제출하고 등록해야할 나의 스텟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 이름 : 이강준 ]
[ 등급 : 초월 ]
[ 종합 전투력 : 80,260 ]
[ 근력 : 300 ]
[ 체력 : 250 ]
[ 민첩 : 190 ]
[ 방어력 : 260 ]
[ 공격력 : 330 ]
내가 봐도 놀랄 수밖에 없는, 황당할 수 밖에 없는.
그 스텟들은 내가 진짜 `초월 등급 헌터`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왔다.
전투력은 자그마치 8만.
서윤 누나가 S급 진급 기준인 1만에 다다른 것과 안나 누나의 3만 수치를 더해도, 그 곱절인 전투력에 나조차도 황당할 지경이다.
내가 초월급 헌터라니.
이 정도면 A급 던전 솔플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겠는데?
검사소에서 받은 종이를 들고 나오자 서윤 누나와 안나 누나가 저마다 기뻐한다.
“저, 전투력이 8만이라고...? 그럼 버프 쓰면 10만이 넘는다는 말이야..? 이, 이게 말이 돼?!”
“...노, 놀라워. 8만이라니, 이게 가능한 수치야? S급 던전도 여차하면 솔플 뛰겠는걸? 강준씨 진짜 축하해!”
누군가 나를 위해 기뻐해주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 그렇기에 그녀들과 기쁨을 나누며 다시 차에 올라 세번 째 목적지로 향하려했다.
헌터 협회에 제출과 등록, 그리고 대헌터군단의 입단 신청까지.
헌터가 된 이상 자동으로 군단 소속이 되었기에 입단 신청은 형식적인 절차였다.
하지만.
그 일정은 아무래도 내일로 미루어야할 듯했다.
내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인해.
“...네? 소민이가... 위급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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