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네? 제가 초월급 버퍼라고요?
…버퍼라.
정말 1의 예상도 못 했었는데.
개미눈곱만큼의 기대감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것도 초월각성 버퍼라니….
꿈을 꾸는 건가?
몽롱한 게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만약 진짜 버퍼가 됐다면, 아마 대한민국 최초겠지.
세계적으로도 군사강대국들과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버퍼를 보유한 국가가 없을 정도니.
버퍼의 희소성은 구태여 설명이 필요없을 터다.
그만큼 버퍼란, 국가전력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띄는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기뻐해야할 터다.
…헌데 각성 이후라 정신이 희미한 탓인지 이렇다할 감정이 들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달까?
진짜 버퍼가 된 것은 맞는 걸까?
[ 각성 캡슐이 열립니다. ]
ㅡ푸슈웃…
캡슐의 뚜껑이 열리며, 캡슐 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하얀 증기들이 풍선처럼 위로 흩날린다.
철크덕, 속박들이 풀리고.
심장에 연결된 굵은 케이블의 침들이 후퇴하며, 케이블이 빠진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오랜 시간 몸이 굳었던 것처럼, 뻑적지근하다.
마치 갑각류가 껍질을 탈피하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캡슐에서 빠져나와 몸을 살폈다.
흐음.
다행히 딱히 이상한 부분은 없는 듯하다.
아, 각성실의 대기가 마나로 치환된다고 했었지. 단전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마나코어에 집중했다.
주인의 의지를 인지한듯 고동을 시작한 마나코어는 혈류 속에 마나를 방출하며, 각성능력을 개화시키기 시작했다.
아직 스킬 이름도, 아니. 스킬이 무엇인지 구체화시키지 못했었기에 그저 방출되는 마나의 흐름에 집중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그냥, 뭔가 이렇게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따라 집중하는 것.
이내 손끝에 마력이 집중되는게 느껴져왔고.
주먹을 쥔 채로 들자, 한차례 붉은 아우라가 피어올랐다가 사라진다.
오오….
이게 스킬이라는 건가.
다시금 마나의 흐름을 따라가자, 이번엔 마치 공작새가 꼬리날개를 펼치듯 온 몸에 마력이 비산되는게 느껴져왔다.
유리창 거울을 쳐다보았다.
이번엔 푸른 아우라가 그옛날 드래곤볼 속 그것처럼, 전신에 피어올랐다가 사라진다.
찰나지만 느껴졌다.
방어력이 상승했다는 것이.
근데, 버퍼는 파티원들에게 버프 스킬을 사용하는 직업군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나는 자신에게 버프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걸까?
아, 특이 케이스라고 했지.
어쨌든 좋은 거네.
아니, 설마 자신에게만 사용할 수 있고 파티원에게 사용 불가한, 무쓸모 역전버퍼는 아니겠지?
ㅡ아아, 들리십니까?
상념에 잠겨 있던 내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정구석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ㅡ다행이군요. 저는 각성실 부실장입니다. 현재 이강준 님은 각성이 완료된 상태며, 이상 징후도 없는 안정적인 상태이오니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딱히 불안하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덤덤했다.
ㅡ좋습니다. 그럼 지금 문을 열고 함께 오신 헌터님들을 들여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각성하신 능력을 테스트해보시기 바랍니다.
흠, 테스트라.
버퍼니까 다른 헌터의 능력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라는 말이군.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리며 서윤과 안나가 부리나케 뛰어들어왔다.
“강준아아~!”
“강준씨ㅡ!”
…누가 보면 이산가족상봉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하여튼 두 누님들의 호들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내게 달려온 서윤과 안나가 감격스러운듯, 또는 기특한듯 눈망울을 그렁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얘기들었어..! 버퍼라며..!?”
“강준씨 초월각성까지 했다며?!”
“응. 그렇다고는 하는데, 좀 이상해. 버퍼는 자벞이 불가능할 텐데… 나 방금 자벞 쓴 것 같아.”
나의 말에 서윤과 안나의 표정에 충격이 깃든다.
“뭐, 뭐? 버프를 썼다고? 너한테?”
“응. 그냥 마나흐름을 따라가다보니 공격력이랑 방어력이 상승한 느낌?”
안나가 턱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몇 차례 끄덕였다.
“각성실장님이 그래서 일반 버퍼가 아닌 것 같다고 한 거구나.”
“설마… 스스로 버프가 가능한 버퍼라고?”
그렇게 우리가 각성 축하와 버퍼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자, 스피커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이강준 헌터님.
놀랄 일이다. 내 이름 뒤에 `매니저`가 아닌, `헌터님`이란 직책명이 붙다니.
감개무량한 얼굴로 스피커를 쳐다보자, 살짝 상기된 각성실장의 목소리가 이어서 흘러나온다.
ㅡ현재 저희가 종합 판단내리기로는 이강준 헌터님은 S급 이상의 초월급 헌터이신 것 같습니다.
뭐?
초월급이라고?
들어본 적은 있었다. 아니, 헌터 업계 종사자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S급 이상의 랭크이자,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등급. 우스갯소리로 A급 던전을 솔플 뛴다는 그 전설의 등급.
그 등급이… 내 등급이라고?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꺄-! 어쩜 좋아, 강준이가 초월급 헌터라니!! 안나야아-!”
“미, 미쳤어어..! 내가 초월급 헌터의 후실이라니! 정실부인님 우리 잘해봐요오!”
ㅡ….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마냥, 얼떨떨한 나를 부둥켜안고 좋아하는 두 누님들.
그 호들갑이 마냥 싫지는 않았기에 딱히 만류하지는 않았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하지 않던가?
얼른 우리 동생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ㅡ큼큼, 아시다시피 이강준 헌터님의 직업은 한국 헌터 역사상 최초인 버퍼이십니다. 헌데… 이상하게도 스스로에게 버프를 사용하시더군요. 하여 지금 입장해 계신 헌터님들께도 버프가 사용 가능한지, 테스트 한번만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이강준 `헌터님`에 `역사상 최초 버퍼`에 `초월급`까지.
이 무슨 호사인가 싶을 정도로 각성 한 번에 용사 훈장마냥 따라붙는 칭호와 명예에 입꼬리가 씰룩이려한다.
하지만 이제 난 모두가 동경할 초월급 헌터.
근엄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경박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서윤과 안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끝에 마나를 담기 시작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배운 적도 없는 마나운용을 한 번의 느낌만으로 마치 이전부터 운용해온 것마냥 자연스럽게 손 끝에 담아내니 말이다.
뭔가, 진짜 오래 전부터 해오던 일인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버프 스킬이 제대로 사용됐는지는 어떻게 알지?
상태창 같은 거라도..
[ 상태창이 열람됩니다. ]
아, 이렇게 발동하는 거였구나.
그간 헌터 매니저 일을 하며 헌터들끼리 정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었다.
정부에서 허위, 불량 헌터들의 관리와 몬스터 정보 열람을 하기 위함이란 명목으로 마나칩을 이식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근데 생각에 반응한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었는데, 이렇게 편리하고도 즉각적으로 반응할 줄이야.
던전의 등장으로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은 알고있었지만.
이건 새삼 놀라운 기술이다.
당혹감에 빠진 사이, 그 무례한 소리를 끝으로 나의 시야 전방에 담긴 서윤과 안나의 머리 위로 글자들이 떠올랐다.
말로만 듣던, 상태창이란 것인 듯했다.
[ 이름 : 유서윤 ]
[ 등급 : A ]
[ 종합 전투력 : 9,580 ]
[ 근력 : 60 ]
[ 체력 : 40 ]
[ 민첩 : 80 ]
[ 방어력 : 50 ]
[ 공격력 : 80 ]
[ 특이 특성 : 이면보기 ]
[ 내 서방님이… 초월급 헌터라니!! 꺄♡ 이제 청혼 받을 수 있겠다앙♡ ]
어음…?
마나칩이란 게 정부에 등록된 헌터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알겠지만.
저.. 밑에.
이면보기 아랫줄에 적힌 낯뜨거운 문장은.. 설마 추가 특이 특성으로 발동된 것인가?
설마, 내가 상대 헌터의 생각을 읽을 수가 있다고?
자, 잠깐.
근데 그게 버퍼랑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하트는 왜 붙는 건데?
무슨 채팅창이야?
“강준아? 왜그래?”
“아, 아니에요. 적응이 안 되서.”
“우리 강준이라면 잘할 거야. 처음엔 서툴러서 다들 그래. 몸 속에 도는 마나흐름을 사용한다고 생각해봐.”
“넵.”
우선 저 이면보기 특성은 차후 다시 짚기로 하고, 손끝에 모인 마나를 전달하듯, 서윤에게로 손바닥을 펴자 붉은 기운이 스르륵, 그녀에게 흐른다.
그리고.
붉은 기운은 서윤의 몸 속으로 흡수되듯 사라졌고, 서윤의 상태창의 [ 근력 ] 과 [ 공격력 ] 그리고 [ 종합 전투력 ] 탭에 변화가 일어났다.
헌데…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 근력 : 60 ] + [ 60 ]
[ 공격력 : 80 ] + [ 80 ]
[ 종합 전투력 : 9,580 ] + [ 6,200 ]
“뭐, 뭐야.”
탭의 뒤편에 추가되는 숫자들.
그 숫자들에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냥 느낌따라 살짝 마나만 흘려줬을 뿐인데…
공격 관련 수치들이 2배로 펌핑되어버린다고?
아니, 버프 이거.. 맞나?
**
[ 대헌터군단장실 ]
늘 이곳을 들를 때면 욕 먹을 각오와 호된 꾸중을 감내할 각오를 다져야했던 보좌관.
오늘도 그 문 앞에 선 그는 손잡이를 잡은 채 심호흡을 한번 내뱉었다.
헌데 오늘은 심호흡을 내뱉는 입술이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ㅡ똑똑.
들어오라는 명에 절도 있는 입장으로 들어선 그는 우선 거수경례를 올린 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시가를 물고 의자에 반쯤 누워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있는 군단장 이강호에게로 다가갔다.
“군단장님, 보고 드릴 게 있어 급히 왔습니다!”
제 상관에게 칭찬 받을 생각에 들뜬 듯도 보이는 보좌관.
하지만 상관의 심사는 아직 뒤틀려 있었었다.
이강호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동공을 올려 보좌관을 쳐다보았다.
경매 예산을 1.5배로 삭감해 결재해버린 국방부장관 탓에 일주일 전, 각성석을 뺏겨버린 그는 지금 몹시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었다.
그렇기에 보좌관이 내뱉을 보고 내용이 시답잖다면은, 줄빠따로 이 답답한 심기를 풀 것이라 생각한 이강호는 보좌관의 보고 내용에 뉘었던 상체를 일으켜야했다.
“뭐, 뭐?! 버퍼가 각성했다고?!”
“네! 금일 열 시 경에 국립헌터각성소에서 버퍼가 각성했답니다!”
“제대로 알아본 것 맞아?! 갑자기 버퍼라니! 설마, 설마 그 캐스터 녀석이!?”
“네! 맞습니다!”
이강호의 흑색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듯, 떨려댄다. 입에 물었던 시가가 떨어지고, 보좌관이 급히 주워 재떨이에 갖다놓았다.
이강호가 책상을 짚은 손을 불끈 쥐었다.
“드, 드디어! 드디어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버퍼가 생겼군그래!! 어서 그 캐스터, 아, 아니지. 그 헌터를 데리고 와!”
실로 오랜만에 보는 제 상관의 웃는 얼굴에, 보좌관은 잔뜩 신난 얼굴로 보고를 이어갔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버퍼의 각성등급이 `초월 등급`이라고 합니다!”
“뭐, 뭐라?!”
버퍼다 못해 초월 등급이라는 말에 이강호의 큰 입은 한껏 벌어지고, 한껏 말아쥔 두 주먹은 떨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간 길드들에 돈을 발라가며 버퍼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매진했었던가.
그 노고의 끝이 난데없는 곳에서 성취를 이룩했지만, 그에겐 아무렴 상관없었다.
대한민국의 마신 토벌 성공이라는 오랜 숙원만 이룰 수 있다면, 모로 가든 도로 가든.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그는 몇 년만일 지 모르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제 보좌관에게 지시했다.
“허허허! 초월 등급의 버퍼라니! 그 헌터를 지금부터 극빈으로 대우하도록 해! 그리고 어서 하얀 깃발 수호단으로 입단 추진하도록 하고! 알겠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직속산하단으로 영입해야해!!”
“넵!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보좌관이 칼각의 거수경례를 하곤 집무실을 빠져나갔고.
홀로 남은 이강호는 어린 아이의 얼굴 크기만한 주먹으로 책상을 한번 내려치며 기쁨을 포효했다.
ㅡ쿵!
“크하하! 드디어 내 숙원이 풀리겠구만!”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 초월급 버퍼가, 자신이 내다버렸던 자식이리라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