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헌터로 각성하다! (2)
긴장된 마음을 추스리며, 무릎께 오는 타이트한 정장치마와 끝이 올라간 안경테가 잘 어울리는 여성의 안내를 따라 건물에 들어섰다.
“여기서 환복하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환복을 도와드릴 남직원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여직원이 가리킨 곳은 [ 각성의 환복실 ] 이란 명패가 붙어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웬 덩치 큰 남정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복을 도와드릴 김태한입니다. 우선 모두 벗어서 탈의함에 넣어두시면 됩니다..”
마초적인 인상에 짐승을 연상케하는 덮수룩한 가슴털이 V넥 위로 보이는 남성.
각성 전에 개통식(?)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죄송스런 걱정은 순식간에 넘어갔고.
그의 능숙한 손길에 따라 환복을 마쳤다.
...라텍스 재질인 듯한 스판식 쫄쫄이 의상이었다.
“우선 이걸 걸치시면 됩니다.”
다행히 남성이 내게 가운을 건네주었고, 나의 흉포한 물건은 가운을 졸라매 숨길 수 있었다.
20억짜리 각성에 라텍스 쫄쫄이라니....
환복하면서 듣기론 마나의 흡수율을 높이고 방출율을 낮추는 특수재질이라는데.
어쨌든 쫄쫄이잖아.
가운으로 숨겨도 뭔가 창피해 쭈뼛대며 환복실을 나서자 안나와 서윤이 내게 다가와 살핀다.
“가운이네?”
“꼭 호텔에 온 것 같네. 역시 강준씨는 고급진 게 잘 어울려.”
...언제는 싸구려가 잘 어울린다더니.
“각성실에 들어가기 앞서 주의사항 및 기타사항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운 속 쫄쫄이를 열심히 숨기며, 여직원들 따라가자 사각 판넬에 [ 각성실 ]이라 적힌 문의 앞에서 멈췄고. 여직원은 내게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충은 아는 내용들이었다.
각성은 대부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과 `본질`에 의해 결정되며, 특이 케이스도 있다는 내용이었었는데, 대체 신나희가 어떻게 힐러로 각성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었다.
각성 당시에만해도 수녀급의 인성을 가졌다가 타락해버리기라도 한 건가.
뭐, 모든 법칙에 예외가 있는 거랑 일맥상통하겠지.
여하튼 인격과 본성, 본질이란 것에 영향을 받는 각성이기에 [ 딜러 ] 직업군류가 많은 것이었다.
인간의 원초적 파괴본능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안전성`이 더 높은 [ 원거리 딜러 ]가 비율이 더 높은 이유이기도 하고.
그외에 봉사심과 리더십, 모험심, 그리고 살짝의 마조히즘(?)에 따라 탱커로 각성하게되고.
봉사심, 안전주의성, 이타주의성에 따라 힐러로 각성하게 된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탱커, 힐러 직업군 류가 귀한 것이고.
남을 돕는 것에서 기쁨을 얻고, 남을 위해 위험을 선봉에 서서 견뎌내는 것에서 기쁨을 얻는 사람은 드문 법이니까.
그외에도 각성 캡슐에 들어갔을 때의 안전사항과 주의사항을 교육받은 난, 드디어 각성실의 문 너머로 입장하게 되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마냥 애잔하게 나를 바라보는 두 여성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럼 갔다올게!”
“우리 강준이는 잘할 수 있을 거야, 화이팅!”
“나도 강준씨 믿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부디 무사히만 나와줘..!”
각자의 개성대로 나를 응원하는 그녀들에 제법 든든한 느낌이 든다.
한 차례 싱긋 웃어주자 우주선이 도킹을 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고, 난 여직원을 따라 각성실로 들어섰다.
각성을 진행하는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비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나를 맞이했다.
그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오늘 각성을 진행하게 될 각성실장, 이범태라고 합니다.”
“넵. 잘부탁드립니다.”
손을 맞잡으며 꾸벅 인사했다.
움푹 패인 볼에 왜소한 체구가 뭔가 신뢰감이 조금 떨어지기는 남성이었었다.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따라 들어오시지요.”
그가 나를 데리고 각성실에서도 사면이 통유리로 된 방으로 들어갔다.
그 중앙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우주비행사 동면용 캡슐 같은 게 있었고.
그 옆에 두툼한 케이블이 어지럽게도 연결된, 각성석이 담겼을 거로 추정되는 케이스가 보였다.
“가운은 벗으시고 여기 누우시면 됩니다.”
각성실장의 지휘에 따라, 가운을 벗고 캡슐 속에 들어가 자세를 취하자 그가 이마, 손등에 얇은 선을 덕지덕지 붙이고는 굵다란 케이블을 들었다.
손목만한 두께였는데.
끝에 수 십개는 될 법한 뾰족한 침들이 있어 공포스러운 모양새였다.
“이걸 심장 부위에 연결할 텐데, 조금 아프실 수도 있습니다.”
환복을 다한 후, 심장 인근에 만들어진 단단한 원판에 구멍이 뚫려있는 게 뭐냐고 물었었고.
케이블이 연결될 부위다, 라는 답을 들었었었다.
...근데 그 케이블 침이 살갗을 뚫으리라곤 상상치도 못했지.
실장이 케이블을 냅다 꽂았고, 수십 개의 얇은 침이 살갗에 박히는게 느껴져왔다.
“으읍...!”
“괜찮습니다.”
지가 찔렸나.
뭔데 괜찮녜 마녜야.
드럽게 아프구만.
모든 케이블을 연결한 실장이 캡슐을 닫았고, 이 좁디좁은 공간엔 오로지 내 숨결만이 가득 차오른다.
“후읍, 후읍.”
심장을 옥죄이는 맹렬한 긴장감 탓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캡슐 천정에 게임 속 공지사항이 띄워지듯, 글자들이 스쳐지나간다.
[ 곧 각성이 시작됩니다. ]
위이잉.
무언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예열을 하듯 서서히 빨라진다.
[ 각성자 내면의 소리와 각성의 힘이 한글로 번역되어 이곳에 표기 됩니다. ]
지잉지잉지잉.
또 다른, 무언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 각성실의 전체 대기가 마나로 치환됩니다. 각성자는 각성 후, 각성실에서 곧바로 테스트가 가능합니다. ]
피슈웃...
공포스러울만큼 점점 고조되던 기계소리들이 증기기관차가 멈추는 것마냥,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멈춘다.
그 정적이 미칠 듯한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시작한다.
[ 각성자의 신체에 마나가 직접 주입됩니다. ]
드르륵, 꾸득꾸득.
묽은 액체가 관을 타고 흐르는, 다소 역겨운 소리가 들려온다.
두렵다, 미치겠다.
각성석으로 시행되는 각성에서 실패도 없었거니와 후유증, 장애가 생긴 사례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쏘의 게임에 걸려든듯.
미친 듯한 공포심에 사지가 떨려온다.
...수면내시경처럼 전신마취코스는 없는 건가.
[ 각성석의 마나추출이 완료되었습니다. ]
으읏, 무언가 내 몸 속에 주입되는 섬짓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원주민을 털어먹는 콜롬버스마냥, 무례하게도 혈관과 심장을 파고드는 마나라는 것이 온 몸을 유린하는 느낌이다.
“으읍...”
그 소름 끼치는 느낌에 굳게 닫힌 입술에서 침음이 비집고 나온다.
[ 마나주입... 10%... 20%... ]
씨발, 빨리 넣어주면 안 되나.
차오르는 퍼센트가 야속하리만큼 늦다.
저려오던 팔다리의 감각이 사라지고, 심장 박동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워터파크를 개장한 것마냥 무언가 혈류를 타고 빠르게 온 몸을 도는 듯한 느낌.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고.
공포심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공포심이 쌓이고 쌓이다 못해, 반쯤 생존을 포기해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 마나 주입 60%... 80%... ]
꾸득꾸득꾸득...
동생의 응급수술 때보다 시간의 흐름이 더 늦어진 듯한 기분이다.
초조하고, 애간장이 타 사지가 간지러워진다.
하지만 속박된 팔다리는 그 어떤 움직임도 허락치 않는다.
[ 마나 주입 90%... 95%... ]
이 씨발...!
주유소도 아니고, 막판에 왜 주입 퍼센트가 떨어지는 거야!
고통이 없음에도 온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오고, 오장육부에서 무언가 터지는 느낌이 산발적으로 들기 시작한다.
그 폭발이 서서히 위로 올라오더니.
이내 심장으로 향한다.
ㅡ두근두근두근!
이러다 터지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폭발적인 박동으로 혈류를 재촉하는 심장.
죽을 것만 같은 그 께름칙한 느낌에 발작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손과 발이 떨리고.
흡흡흡흡!
호흡은 비정상적으로 빨라져간다.
[ 마나 주입 99%... 100%... ]
[ 마나 주입이 완료되었습니다. ]
[ 각성이 시작됩니다. ]
...이 씨, 씨발?
아직 각성 시작도 한 게 아니라고...?!
“...끄아아악ㅡ!!!”
문구가 사라지고.
일순간 온 몸이 작열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에, 입에선 육두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눈두덩을 내려친 것마냥 시야가 깨지고, 입에선 게거품의 꽃이 피어오른다.
근육이 불 타는 듯한 통렬한 고통에 이어 이번엔 심장이 누군가의 아귀에 쥐어짜였다 펴지는, 정신 나간 고통이 엄습한다.
캡슐은 내가 분출한 습기로, 외부가 보이지 않을 만큼 희뿌얘지고.
시야는 점점 어둑하게 꺼지기 시작한다.
“씨바아아알ㅡ!!”
이내 그 단말마를 끝으로 시야가 암전된다.
근육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도.
심장이 옥죄이던 통각도.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던 공포도.
모두 사라진다.
[ 각성에 성공하였습니다. ]
흐릿하게 보이는 저 글귀를 끝으로.
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바이탈 수치가 불안정합니다!”
“메타포스 수치가 불안정합니다!”
“시, 실장님! 어웨이큰 리듬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뭐?”
캡슐실을 바라보는, 각성실의 모든 연구진들이 춤을 추는 수직 그래프에 저마다 급박하게 외쳐댄다.
경고음까지 울리기 시작하는 일부 기계 수치들.
그에 이제껏 길드의 의뢰로 수십 번의 각성을 진행했던 각성실장도 진땀을 흘려야했다.
각성실의 위, 기계 종합 수치가 띄워진 모니터를 쳐다보는 각성실장의 입이 벌어지고, 안경은 흘러내린다.
“이, 이럴 수가...!”
모든 수직 그래프가.
말 그대로 정점을 찍으려는듯 치솟고 있는 기이한 현상.
기계 오류라고 믿을 수 밖에 없을 그 현상에 실장은 연구진들에게 소리치지만.
들려오는 회신은 저 수치가 진짜임을 알려왔다.
“어웨이큰 리듬.. 80 돌파...!! 85 돌파...!!”
평균 어웨이큰 리듬의 수치는 50.
시작부터 60으로 치솟은 수치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계속 치솟는다.
“바이탈 수치가 너무 위험합니다! 실장님!”
“메타포스 수치도 등락폭이 너무 큽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급박한 외침.
혼비백산이 되버린 각성실, 그 수장을 맡고 있는 실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무어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수직 그래프가 빨갛다.
노랗고 푸르러야할 그래프까지 모조리 시뻘겋게 물든 초유의 상황에 실장은 그저 흘러내린 안경을 올릴 뿐이었다.
그러다 일순간.
거짓말처럼 그래프들이 내려간다.
“바이탈 수치가 안정되고 있습니다!”
“메, 메타포스 수치도 안정되고 있어요!”
“어, 어웨이큰 리듬은 계속 상승합니다! 88! 89! ...구, 구십 돌파했습니다!! 실장님!”
안정감을 찾을 새도 없이 각성실장의 벌어진 입의 끝이 올라간다.
말도 안 되는, 믿을 수 없는 그래프의 수직향연에 그는 마른 입술에 침조차 바를 수 없었다.
“어웨이큰 리듬 91...! 92...! 시, 실장님 이제 멈춰야합니다! 위험해요!”
“안 돼! 가만히 놔두게! 여기서 멈추면 오히려 더 위험해!”
“시, 실장님!!”
절체절명의 순간.
이런 상황을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었기에.
그 누구도 속단할 수 없기에.
십 수 명의 연구진들은, 손을 놓은 채 그래프가 안정되길 기다려야 했고.
이내.
그래프가 안정화되고 바이오 리듬을 나타내는 곡선 그래프도 안정적인 흐름을 되찾기 시작하자 한숨과 탄성들이 터져 나온다.
실장이 떨리는 동공으로 그래프를 쳐다보며 물었다.
“최, 최종 어웨이큰 수치는..!”
“배, 백 십입니다!!”
한 연구원의 외침에 각성실엔 환희에 찬 경악들이 깃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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