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헌터로 각성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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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장난도 정도껏 치게!”
예비헌터란 말이 참 어색하게도 입에 붙는다.
어쨌든 각성석의 실패확률은 없으니 예비헌터가 맞기는하지.
하지만 그 단어를 이해 못 한 길드장이 안나를 쳐다보며 노발대발해댔다.
어젯밤, 안나에게 길드장이 나와 서윤을 떼어놓으려는 것을 들은 이후로 어느 정도 반발은 예상했지만.
역시나 면전에서 나를 부정 당하는 일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불쾌한 기색을 눈치챈 건지, 길드장이 내게 주절주절 변명해댄다.
“아, 아니. 오해하지는 말게. 이강준 자네의 실력이라면 내 의심치 않아. 아마 대한민국 헌터 매니저 업계에서는 최고일 테지. 다만, 그, 우리 딸의 배필...”
“아빠! 그만하세요!!”
“어허! 넌 가만히 있거라!”
누가 보면 결혼 허락이라도 받으러 온 줄 알겠네. 서윤에게 소리치는 길드장에, 조금은 화가 나려 해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자네, 설마 우리 서윤이를 좋아하나?”
부정을 강요하는 길드장의 물음에 보란듯이 긍정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네. 유서윤 헌터님 사랑합니다.”
“뭬, 뭬야?! 사, 사랑?”
나의 그 고백에.
대표실에 모인 모든 눈빛이 놀라며 내게 쏠린다. 조금은 반발심 탓에 나온 급발진 고백이긴하지만.
어쨌든 서윤 누나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서윤 누나가 감격에 겨운듯 입을 가리며 나를 쳐다보았고, 안나는 부러운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난 멋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주어야했다.
안나가 흐뭇하게 입술로만 웃어보이곤 길드장을 쳐다보았다.
“길드장님, 화만 내시지 마시고 얘기는 들어보셔야죠. 이강준 씨는 곧 헌터가 될 사람입니다. 각성석이 있으니까요.”
안나가 이렇게 차분한 여자였나?
새삼 놀라운 모습이다.
“가, 각성석? 설마 이번 경매 낙찰자가 캐스터라더니. 이강준 자네였나?”
각성석이란 말에 반색하는게 영... 같잖네.
하지만 `아직은` 길드 소속 직원이기에 그 불쾌함은 피력하지 못했다.
“네, 접니다. 여기 두 헌터님께서 도와주신 덕에 낙찰 받았습니다.”
“뭐?”
길드장의 눈동자가 곧장 제 딸에게로 향한다.
“네, 제가 도와줬어요. 그날의 은혜를 갚으려고요. 아빠는 덮으려고 애썼던 그날의 일요.”
어떤 일인지 알기에.
길드장은 입을 꾹 닫고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날처럼, 그는 이번에도 회피하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뭣 같은 사람이네.
“...그래서, 자네가 곧 각성할 것이니 교제를 허락해달라고 날 찾아온 겐가?”
음... 굳이 허락 받자고 온 것은 아닌데.
하지만 길드장의 행태들이 보란듯이 날 인정하게끔 만들고 싶었다.
“네. 다만 당장은 아닙니다. 각성 후에 훌륭한 헌터가 되었을 때. 서윤 헌터님께 고백할 거니까요.”
길드장이 쇼파에 털썩 앉았다.
“그런가...”
그리곤 허망히 중얼거리더니 다시 서윤을 쳐다보았다.
“...이강준 매니저를 각성시키려, 이제껏 만남들을 회피했던 것이냐? 악착 같이 돈을 모은 것이고?”
“십 년 전부터 그는 제 마음 속에 있었어요. 아빠가 듣지 않았을 뿐이에요. 언제 제 얘기를 들어보려고는 하셨어요?”
“아니... 이 아비에게 각성시킬 거라는 언질 정도는 주면 좋았지 않느냐.”
퍽이나 들었겠다.
지금도 노발대발하다가 내가 각성석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고정하지 않았던가.
만약 나를 각성시키려 한다는 얘길 들었었어도 달라질 것은 없을 터였다.
그나저나 알면 알수록 참 속물인 인간이네.
그런 그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언제 각성인가?”
“삼일 후에 예정입니다. 정확한 것은 내일 통보가 올 거고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길드장이 다리를 꼬으곤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태세를 변환했다.
제 이득을 찾기 위해 교섭을 시도하는, 전형적인 장사치의 태세였다.
“내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것은 아닐세. 아니, 오히려 감사하지. 자네의 매니저로서 실력과 인성은 인정하는 바이니까. 단지, 아비로서 좋은 배필감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해주게나. 다만...”
오늘따라 부정 접속부사의 사용이 많으시네.
“자네가 각성한다고해서, 내 뜻을 굽힌다는 것은 아니네. 각성석으로 각성한다해서 곧바로 우리 딸을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한 헌터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뭐.. 초월각성이라면 모를까 말일세.”
역시 한 길드의 수장 아니시랄까봐, 머리 굴리시는 속도가 슈마허급이시다.
그말인즉슨, 내가 최소 A급 이상의 헌터가 되어야 받아주겠다는 말이 아닌가.
딸을 가지고 장사하는 듯한 꽤나 불쾌한 제안이지만, 서윤 누나라면 그럴 값어치가 충분한 여성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가능성은 열린 거니까.
헌데 만약 내가 초월각성을 하고도 라온제나 길드에 머물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안나가 라온제나 길드에 들어온 것이 나 때문임을 잊고서는, 그리고 안나가 가입했다해서 대단한 길드라도 된 거라 착각하는 모양이다.
매스컴에 기사 좀 났다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안나가 위약금을 물어서라도, 어디든 나와 함께 하겠다는 선포를 한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그와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왜 서윤 누나가 아버지에게 말을 아끼는지 알 것만 같았다.
실리만 찾으려는 속물에, 실리를 찾기 위해 눈알을 굴리는 게 겉으로 티가 나니 어찌 진정성 있는 대화가 오갈 수 있겠는가.
역시 사람은 오래 겪어봐야 안다더니.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는 점잖고 올곧은 사람인 줄 알았건만, 이런 속물이었을 줄이야.
아무래도 우리 서윤 누나와 안나를 이곳에서 탈출시켜야할 듯싶다.
그녀들이 바라는 일이기도 했고.
뭐...
초월각성에 실패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하겠지만.
초월각성은 각성석으로만 이루어지는 각성으로, 말 그대로 단계를 초월해 곧바로 A급 이상의 각성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탓에 각성석이 수십억을 호가하는 것이기도 하고. 초월각성은 오로지 자연각성에 실패한 자와 각성석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물론 그 확률은 전세계적으로 집계해봐도 고작 1퍼센트도 되지 않았었다.
그걸 알기에 서윤 누나가 버럭 화를 냈다.
“아, 아빠! 진짜 적당히 하세요!”
“말했지않느냐, 내가 찾는 너의 배필감은 그냥 헌터가 아니라, 너를 지켜줄 수 있는 강한 헌터라고 말이다.”
“제 몸은 제가 지킨다구요! 끝까지 이러실 거에요!?”
“헌터님.”
나를 무시하고 가늠하는 듯한 길드장의 태도에 서윤이 화를 내는 것은 이해하지만.
화만 내서는 일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부르자, 서윤이 노기를 거둬들인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그가 강한 헌터를 원한다면, 응당 그렇게 해주면 될 터다.
그리고 계속 있었다간 나 때문에 부녀지간이 의절해버릴 듯 했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기다렸다는듯 따라 일어선 안나가 가벼운 목례로 최소한의 예우를 갖췄고.
서윤은 발을 구르며 곧장 대표실을 빠져나가버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길드장에게 인사를 한 후, 안나를 데리고 대표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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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헌터전문병원의 중환자 병실.
항온항습 조절장치가 24시간 돌아가며 희뿌연 증기를 뿌리고 산소마스크는 제 사명을 다하기 위해 환자의 폐부에 열심히도 산소를 공급한다.
각종 보조장치가 전자기소리를 내고.
심박수를 체크하는 그래프는 안정적인 횡보를 하고 있었다.
“으음...”
2주 전 가동되기 시작한 각종 전기장치들의 소리만이 가득했던 병실.
그 병실에 드디어 사람 목소리가 산소마스크 아래서 낮게 흘러나온다.
뿌리염색이 시급한 투톤의 카키색 머리칼을 옆으로 퍼뜨린 채 누워있는 여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침음을 흘렸고, 낮은 폭으로 횡보하던 심박수그래프가 큰 폭으로 뛰기 시작한다.
잠시 후, 그 생체반응을 확인한 의사와 간호사 두 명이 다급히 병실로 들어왔다.
“박나영 씨, 박나영 씨 정신이 드시나요.”
“으음...”
미간을 찌푸린 채, 연신 앓아대던 박나영이 병상에 드러누운 지 어언 이 주만에 눈을 떴다.
담당의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박나영씨 여긴 병원입니다. 큰 부상으로 수술을 마친 후에 깨어나신 겁니다. 조금만 빗겨갔어도 진짜 위험할 뻔했어요.”
박나영의 힘 없는 흑색 눈동자가 천정과 제 몸을 살피며 상황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내 한숨이 세어나오며 산소마스크에 습기를 끼운다.
“하... 벗겨주세요.”
의사가 산소마스크를 벗겨주었고.
박나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얼마만에 깨어난 거죠?”
“십 사일 됐습니다.”
“아... 오래됐네요.”
그러다 번뜩, 그녀의 풀렸던 흑색동공에 힘이 들어갔다.
그에 의사가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러시죠? 어디 불편하신가요?”
“...코인, 비트코인은 지금 얼마죠...?!”
병실에 모인 의사와 간호사는, 다른 의미로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응급실로 실려오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코인매도, 코인매도를 중얼대더니.
이정도면 퇴원 후 정신과에 입원을 해야할 듯싶었다.
간호사 한 명이 능숙히 코인 어플을 켰다.
“현재 8천 2백입니다.”
나영의 창백한 안색에 절망이 깃든다.
그녀의 매수평단가는, 최고점인 9천 9백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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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망의 DㅡDAY.
그간 식단조절과 S급 A급 헌터님들의 도움으로 고강도의 운동을 완수해내며 나름대로 몸도 만든 난, 나보다 더 긴장한 듯한 서윤과 안나를 데리고 [ 국립헌터각성소 ]로 향하는 중이었다.
늘 나와 서윤의 온기만 가득했던 차량에 이젠, 안나의 온기도 차오른다.
어느덧 우린, 한 식구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친밀해져 있었다.
오늘을 준비하며 앙금이라곤 분자단위로 쪼개 모두 풀었으니까.
안나가 마른 입술을 오므리며 손을 비볐다.
“으으, 긴장돼. 너무 떨려.”
서윤이 그런 안나를 쳐다보며 손을 잡아주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잘못 되는 건 아니겠지?”
“실패 가능성이 제로라고 하니까, 분명 잘 될 거야. 혹시 알아? 초월각성이라도 할 지.”
...누가 보면 큰 수술이라도 하러 가는 줄 알겠네.
나의 정실과 후실이 나누는 대화에 나조차도 긴장되는 것만 같다.
아니, 긴장되고 있었다.
솔직히 초월각성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무사히 각성에 성공하고, 또 조금은 높은 등급으로 시작할 수 있기만해도 대성공일 테니까.
그리고 뭐....
남을 보필하고 돕는 것에 특출한 재능이 있으니 힐러가 될 가능성이 높긴했지만, 기적의 확률로 버퍼가 된다면 더 좋겠지.
ㅡ끼익.
[ 국립헌터각성소 ]
커다란 현판이 붙은 출입구에서 엄중한 경비들의 수색과 검문까지 받은 우린, 드디어 각성소에 입성하였다. 그리고 안내에 따라 곧장 [ 각성연구소 ]라 적힌 건물로 향했다.
하, 부디 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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