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36화 (36/68)

EP.35)안나의 후실 프로젝트!

ㅡ짠!

요즘들어 하우스에 자주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오늘 만큼은 `개인PT쌤`의 권한으로서 식단제한을 풀어주겠다는 서윤 누나의 아량에.

우린 시원한 쏘맥잔을 부서져라 부딪혔다.

흘러넘친 술이 카펫과 테이블을 더럽힘에도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우린 들떠있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국방부를 상대로, 각성석 경매에 성공했으니까…!

이는 단순히 구매성공 뿐 아니라, 이강호 그 개자식에 대한 복수까지 곁들인 터라 나 역시도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꺄아, 진짜 너무너무 잘 됐어! 강준아!”

술을 마신 서윤 누나가 기쁨에 겨워 온 몸을 베베꼬으며 좋아했고, 그런 누나의 옆에서 술을 홀짝이는 안나 역시 서윤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는지 힐긋 쳐다보며 웃고는 했다.

안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 악수에 미소짓고있던 안나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든다.

“돈 때문에 고맙다는 거 아냐. 그만큼 날 신경 써주고, 바뀌겠다는, 새사람이 되겠다는 약속 잘 지켜주고 있어서 고마워서그래.”

뭐, 따지고 보면 그녀의 20억 수표가 가장 고맙기는했지만.

이런 기쁜 자리에선 속물은 나 혼자 삼키기로 했다.

안나의 눈동자에 무언가 벅차오른다.

무엇일지 알기에, 묵묵히 어서 악수나 하라는듯 손을 흔들어 재촉했다.

“…고, 고마워.”

그런 그녀를 쳐다본 서윤 누나가 고까우면서도 고마운, 묘한 눈으로 안나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안나가 황급히 두 손으로 공손히 서윤의 술을 받는다.

“풋, 두 손은 뭐야. 언제는 S급은 귀족이라며 그러더니.”

“이젠 아니라구..”

“쨌든 고마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너 아니었으면 국방부에 뺏길 뻔했어. 근데 어떻게 알았대? 국방부에서 예산 확증까지 하면서 경매에 들어올지?”

“뻔하잖아. 지금 정부는 버퍼 만들려고 길드든 국방부든 산하기관이든 돈 뿌려가면서 각성석 사들이고 있는데, 뺏기려하겠어?”

오… 안나가 지능캐였나?

서윤 누나 역시 안나의 말에 `오~`하며 놀람을 표했다. 그에 안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래서 모아둔 돈하고 주택 한 채 정리해서 수표로 만든 거야. 예산 확증해봐야 두 배도 안 될 테니까. 두 배는 무슨, 이번 국방부장관이라면 일 점 오 배도 힘들 걸?”

명색이 국회의원의 딸이라 이건가.

국정 예산 확증 범위도 예측하는 그녀에, 왜인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불과 몇 주 전만해도 역겨운 해충으로만 느껴지던 안나가 이제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느껴지다니 말이다.

그런 그녀와 서윤 누나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진짜 두 사람 덕이에요. 내가 헌터가 될 줄이야. 각성하고도 두 사람한테 민폐 안 끼치게 열심히 할게요!”

“그럼! 우리 강준이라면 각성하자마자 에스급 가자앗!!”

“나, 낯 간지럽게…”

짠!

먹음직스런 갈색빛이 탄산방울을 쏟아내며 출렁인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0년 전의 일로 내게 은혜를 갚으려는 서윤과 자신을 새사람으로 만들어준 내게 은혜를 갚으려는 안나.

그간 나쁘게 살아왔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이런 과분한 은혜를 받을 정도로 잘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뭐, 착실하게는 살았다는 거겠지.

취기가 살 오르니 잡념이 머리를 지배한다.

아, 그러고보니.

서윤은 내게 대가 없는 은혜를 베풀겠노라 선언한 상태지만.

아무리 돈을 빌려준다한들, 부동산까지 정리하며 나를 도와준 안나는 뭔가를 바라지 않을까?

홍조마저 짙은 분홍빛을 띄는 안나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홱 피해버리는 그녀.

그 수줍어하는 모습이 예전엔 역겨웠는데 이제는… 제법 귀여워 보이려 한다.

머리도 핑크색으로 물들여서는.

참 내가 무슨 생각을.

취한 건가.

“안나.”

“으응?”

“돈 빌려주는 거 고마워. 진짜로. 근데, 그 이유가 뭐야?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의심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이젠 그녀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으니까.

“아, 음… 이유라..”

“맞네맞네! 그러고 보니 강준이를 이렇게까지나 도와주는 이유를 안 물어봤었네!”

서윤 누나 역시 궁금했는지 술잔을 놓고는 안나를 쳐다보았다.

술잔을 굴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 안나가 이내 입을 열었다.

“...헌터가 되면 일부다처제니까.”

“뭐, 뭐...? 그게 이유라고?”

그말인즉슨.

내가 헌터가 되도록 돕는 이유가.

나의 `처`로 들어오기 위함이란 말인가...?

“그, 그러니까 두 번 묻지마. 부끄러우니까...”

그 고백을 하고는 술을 들이킨 안나가 쑥스러운 낯빛으로 애써 내 시선을 무시하며 안주를 입에 머금는다. 서윤 누나와 처가 되기 위한 대결을 펼치겠다는 그 선포에.

서윤 누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야... 유안나. 그럼 지금 강준이랑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거야?”

“...내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은 강준씨가 처음이니까. 물론 돈 빌려준 대가로 그걸 바라는 건 아냐. 단지... 그건 그냥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야. 그, 그리고 너 자리를 뺏을 생각은 없어.”

“자리? 무슨 자리?”

“그... 정실은 너 하라고. 아, 아니...! 물론 모든 결정은 강준씨가 하는 대로 따를 거야.”

서윤 누나가 응큼한 미소를 지으며 실눈을 떴다.

“뭐야, 너 강준이 좀 도와줬다고. 지금 두 번째 아내자리를 노리겠다는 거야?”

아니, 첫 번째 자리는 당연히 누나 거라는 겁니까?

“아니, 구, 굳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만약 자리가 빈다면... 그리고 강준씨가 날 받아준다면 그때...”

아니, 굳이 그렇지 않다면서 이유를 꺼낸 이유가 뭔데?

“뭐~ 너가 진짜 미웠었는데. 오늘은 진짜 잘 해줬으니까.. 강준이만 좋다면 두 번째 자리 정도는 이해해줄게.”

“지, 진짜? 그래도 돼?”

아니, 잠깐만요.

이 여자들이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아직 결혼 생각도 없는 내 앞에서 정실? 후실? 을 정한다고?

그러니까 난 지금 헌터만 되면 S급(진) 정실아내와 S급 후실아내가 생긴다고?

이러다 아내들로 헌터 파티 꾸리겠습니다?

정실(?)의 윤허에 안나가 굳은 의지를 다지기라도 하듯.

미간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럼 우선 내일 할 일이 있어.”

**

라온제나 길드의 대표실.

결재서류도 마다한 채, 거울을 통해 용모를 점검한 강백이 쇼파 상석에 앉았다.

잠시 후, 노크와 함께 서윤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세요?”

“일단 앉거라.”

“무슨 일이신데요.”

아직 일전의 앙금이 남아있는 서윤이기에 아버지의 명에도 꼿꼿이 서서 호출이유에 대해 물었다.

호출이유의 납득여부에 따라 자리에 앉겠다는.

그 무언의 저항에 강백은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이쪽에 앉거라. 이유에 대해서는 얘기해줄 테니.”

강백이 자신의 오른편 쇼파를 가리키며 재차 말했고, 서윤이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신데요.”

“...아비가 꼭 일이 있어야 너를 부를 수 있느냐?”

제 딸의 거듭된 날선 태도에 강백이 기어이 연한 노기를 드러낸다.

“아뇨, 그건 아닌데.”

“조금 있으면 유안나 헌터가 너의 배필감을 데려올 게다.”

딸이 화낼 것을 알기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지만, 역시나 딸은 이글대는 분노를 표출한다.

“아빠! 진짜 이럴 거에요? 제 배필은 제가 찾는다구요!”

“어허, 유안나 헌터가 너에게 딱 맞을 사람이라며. 너가 무조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남자가 있다지 않느냐. 게다가 실력도 좋고 인성도 좋다니. 이 아비가 어찌 거절하겠느냐. 너를 잘 지켜줄 게다. 그러니 한번 인사라도 나누거라.”

결국 또 주선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강백은 개의치 않고 그녀에게 만남을 구걸했다.

비록 얼마 전에 개과천선했다고는하나, S급 헌터가 칭찬하는 남자인데.

그 역시도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었었다.

하지만 곧이어 터져나온 서윤의 말에, 그는 굳을 수 밖에 없었다.

“거짓말을 하려면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하세요! 아빠는 그냥 강준이가 마음에 안 드는 거잖아요! 헌터가 아니니까! 헌터 집안에 일반인이 들어오는 게 싫은 거잖아요! 모를 줄 알았어요?!!”

“뭐... 뭐라고?”

“저를 지켜요? 아빠는 그냥 저를 가지고 장사하고 싶은 생각 뿐이잖아요!!”

대표실을 쩌렁하게 울리는 서윤의 울분.

이제껏 삭혔던 울분이 육성으로 터질수록, 그녀의 짙은 갈색빛 동공은 물에 잠기듯, 일렁인다.

배신감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자신을 이용해 명문 헌터 집안과 사돈을 맺고, 더 나아가 라온제나 길드를 명문 길드로 만들려는 아버지의 욕심에 서윤은 이제껏 참아왔던 울분을 드디어 터뜨리고 만 것이다.

진작 알고 있었었다.

울분을 터뜨릴 `때`를 기다렸던 것 뿐.

하지만 이제 곧 강준이 각성을 할 것이고, 더 이상 울분을 삭히고 있을 필요가 없었었다.

그에 강백이 입을 벌린 채.

무어라 항변도 못하고 있었다.

제 딸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 줄이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었다.

단지 딸의 말대로, 헌터 집안에 일반인이 들어오는 게 달갑지 않을 뿐.

금지옥엽으로 키운 제 딸을 한낱 일반인에게 주기엔 너무나도 아까웠던 것이다.

겸사겸사, 라온제나의 부흥과 명문 헌터 집안이란 구색을 갖추고 싶기도 했었고.

그 욕심을 간파당한 강백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너를 지키고픈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길드장인 내가 길드의 부흥과 가문의 가주인 내가 가문의 부흥을 이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겠느냐.”

“역시...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시네요. 아버지란 사람.. 진짜 저질이에요!!”

결국 본심을 드러낸 강백이 쇼파 팔걸이를 내려치며 호통을 쳤다.

“네이놈!! 아비의 마음을 더 이상 무시하지 말거라! 특히나 이번 만남은 유안나란 S급 헌터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혹여 그르치는 날에는 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야!!”

더 이상 구걸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강백은 제 딸을 겁박하기 시작했고.

이제 예전의 살가웠던 사이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급발진을 시작한 차를 멈출 수 없듯.

이제 자신의 욕심은 멈출 수 없고, 길드장으로서, 가주로서의 책임을 위해서라면.

강제로라도 만남을 성사시키리라 다짐한 강백이 대표실 문을 쳐다보았다.

이내, 비서의 개문과 함께 남녀 한쌍이 들어왔다.

그가 노기서린 표정을 풀고는 지그시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허, 어서오시게...?”

하지만 인사는 물음표로 끝났으며, 미소짓고 있던 입꼬리는 실망한듯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그가 안나의 옆에 서있는 이강준을 쳐다보았다.

“자네가 왜...?”

그리곤 안나를 쳐다보았다.

“아, 아니. 실력 있는 헌터는 어디에...?”

안나가 콧방귀를 뀌며 강준을 데리고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강백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언제 헌터라고 했나요? 실력 좋고 인성 좋은 남자라고 했지요. 서윤 씨가 좋아할만한 남자이고, 그녀를 꼭 지켜줄 수 있는 남자라고.”

“아, 아니! 이, 이건 말이 다르지 않은가!”

강백의 올백머리 끝이 떨리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잔뜩 기대해서는 제 딸을 겁박까지도 했건만. 정신머리가 아찔해지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쇼파에 앉은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강준이 자리에서 일어서 강백에게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길드장님. 예비헌터 이강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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