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34화 (34/68)

EP.33)대헌터군단장, 이강호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의 아래, 괴수와 헌터들이 생겨난 후 새로이 창설된 [ 대헌터군단 ] 의 군단장, 이강호는 자신의 위상을 빛내고 있는 명패의 뒤에, 책상 위로 다리를 올리고 앉아 결재서류들을 훑고 있었다.

“쯧.”

하지만 이내, 한번 혀를 차고는 신경질적으로 서류결재파일을 집어던져버렸다.

오늘도 그가 원하는 결재서류는 올라오지 않은 탓이었다.

그나마 구미가 당기는 것은 올해 들어 6번째로 나타난 각성석의 소식과 거기에 입찰하기 위한 자금 결재 건 뿐.

책상 위의 고풍스런 거치대에 셋팅된 두툼한 시가(Cigar) 하나를 집어 물었다.

후우ㅡ 잠시 후 희뿌연 연기가 군단장실의 천정으로 피어오른다.

의자에 고개를 뉘이고, 멍하니 천정을 응시하는 이강호.

S급 헌터의 험난했던 과거를 알리는듯, 넙대하고 각진 얼굴엔 상흔이 가득했고.

입고 있는 제복에는 견장과 가슴팍에 각종 휘장들이 줄을 짓고 있었다.

스포츠컷으로 짧게 자른 흑발과 짙은 숯검뎅이의 일자 눈썹, 그리고 거칠고 투박한 인상이 잘 어울리는 그는 은퇴한 S급 헌터이자 국방부에서 장관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헌터군단장으로 휘하에 둔 6명의 자식들조차 헌역헌터로도 활동 중인 그야말로 헌터계의 대부와도 같았다.

그런 그에게 헌터의 삶이란 숙명이자 숙원과도 같은 것.

하지만 숙명에 따라 살고는 있었지만, 아직 숙원은 풀고 있지 못했었다.

그 숙원은 세계 최강의 헌터 파티를 만들어 마신 토벌에 성공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기에 불철주야 각 공공기관과 길드, 대기업들을 닥달하고 있는 그였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그 숙원이 이루어질 기미는 보이고 있지 않았다.

숙원을 이루기 위해선 버퍼가 필요했었다.

그렇기에 버퍼 특성에 잘 맞는 인간들을 섭외해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이렇다할 수확을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었었다.

“후... 언제쯤...”

시가 한 개피를 다 태웠을 무렵, 보좌관이 노크를 하고는 들어왔다.

“결과는.”

“...아직 뚜렷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지원자들이 없다고 합니다.”

“후... 씨발. 좁은 땅덩어리라고, 이렇게나 인재가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오늘 6번째 각성석에 대한 감정결과가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늦었군.”

보좌관이 건넨 파일을 받은 이강호가 다시금 책상에 다리를 올리며 심드렁한 눈빛으로 감정서류를 훑었다.

헌데, 그 심드렁한 눈빛은 서류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희번득한 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 눈빛을 읽은 보좌관이 흘러내린 안경을 *중지로 한번 올린 후, 보고를 올렸다.

“이번 각성석의 마나 함유량, 마나질이 이제껏 발견된 각성석보다 월등한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오.. 메타피스 수치도 상당히 높군.”

“네.”

이강호가 서류를 대충 책상에 던진 후, 시가를 하나 더 물었다.

급히 보좌관이 달려와 시가에 불을 붙인다.

“좋아, 진행시켜.”

“알겠습니다. 헌데...”

“뭔데.”

“이번 경매에 S급 헌터와 캐스터가 참가등록을 했다고합니다.”

“뭐?”

이강호가 시가를 손에 들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리는 그 진실의 미간에 보좌관은 쩔쩔매야했다.

“캐스터? 이제껏 경매에 짐꾼새끼들이 참가한 적이 있었나?”

“없었습니다.”

“설마 협회에서 움직인 건 아니겠지?”

“일단 등록인은 정식캐스터가 맞으나 협회에서 손을 댄 흔적은 없었습니다.”

“흐음... 짐꾼 주제에 돈을 좀 모았다 그건가? 젠장, 하여튼 도둑놈새끼들이 일을 귀찮게 만드는군.”

“어떻게 할까요?”

보좌관의 물음에 이강호는 책상에 팔꿈치를 괸 채로 관자놀이를 쓰다듬었다.

분명 장난삼아 등록한 것은 아닐 터다.

평균 낙찰가인 20억이 있기에 등록한 것일 터.

“흐음... 우선 그놈이랑 컨택해서 낙찰가보다 비싸게 되팔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고, 당장 현역 캐스터 한 놈 구해와.”

“네...? 현역 캐스터를요?”

이강호의 눈빛이 그옛날 던전을 호령하던 것처럼 날카로이 뜨이자 보좌관이 차렷자세로 굳어버린다.

“멍청한 녀석. 눈 뜨고 각성석을 뺏길 것이냐. 놈이 되팔 의향이 없다면, 우리가 낙찰을 받아야 겠지.”

“하, 하오나.. 캐스터의 낙찰조건이 절대적으로 각성에 사용한다는 것이 원칙이라.. 자칫하다간 돈과 각성석 모두 날릴 수가...”

보좌관의 관자놀이엔 식은 땀이.

이강호의 관자놀이엔 굵은 핏대가 솟아오른다.

“그건 내가 조율할 터이니, 넌 닥치고 진행이나 해. 당연히 극비리에 움직이고, 알겠나? 그리고 이번 경매 참가 예산을 두 배 올려서 결재서류 새로 작성해.”

“두, 두배나 말입니까? 장관님께서 용인하실지...”

이제껏 경매 예산 편성이 낙찰가 근처였던 것을 알기에 보좌관이 난감해했지만, 이내 그의 노기서린 눈빛을 받고는 급히 거수경례를 올려야했다.

“네, 넵! 알겠습니다! 충성!”

그리고 보좌관이 도망치듯 나가버렸고, 집무실엔 시가 연기가 자욱하게 끼인다.

후ㅡ

“하여튼 도둑놈새끼들... 어딜 감히 훔쳐가려고.”

**

ㅡ대체 왜 저 같은 놈을 좋아하시는 거에요?

ㅡ말했잖아, 넌 내 이상형이라고.

ㅡ헌터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인 제가요?

ㅡ응!

ㅡ아니...

취기가 오른 탓에 그녀의 발랄함은 더욱 잔망스러워져갔고, 이내 나는 말을 잃고 말았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A급 미녀헌터가 각성석을 사줄 테니 사겨달라고 한다?

인터넷에 올렸다간 뭇매나 맞을 허무맹랑한 이야기임을 알기에.

난 선뜻 승낙할 수가 없었다.

기분은 좋았다.

A급 미녀 헌터에게 고백 받은 남자, 라는 수식어는 나의 자존감을 한껏 북돋아주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고, 기분 좋은 일이라고해서 일단 저지르고 보는 동물은 아니었다.

물론 뭐, 동물 같은 놈들도 있겠지만은.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ㅡ농담이야, 농담. 아까도 얘기했듯 10년간 간직한 얘기를 이제 꺼냈는데, 다짜고짜 사겨달라는 건 진짜 이기적이잖아. 혼란스러울 텐데.

ㅡ...근데 왜.

ㅡ그냥, 술김도 있고... 10년간 간직한 얘기를 꺼냈듯이.. 10년간 간직한 마음도 꺼내고 싶었어. 이제 속 시원하당, 히히.

다행히 그녀 역시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그 고백은 거둬들였었다.

대신, 자신의 마음만 알아달라는 것.

그정도면 각성석에 대한 대가로 충분하다며, 대가 같지 않은 대가로 마무리지었던 그녀는 슬픈 얼굴을 애써 감추며 술을 들이켰었다.

결국 내가 그 대가를 제시하는 수밖에 없었었다.

ㅡ그럼 이렇게해요. 각성석으로 각성해서 훌륭한 헌터가 되면, 그때 제가 고백할게요.

ㅡ저, 정말...?

ㅡ누나 같은 사람을 싫어할 남자가 세상에 어딨겠어요. 단지.. 아직은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고. 누나의 옆에 서기엔 제가 부족해보여서요.

ㅡ아... 부족하지 않은데...

ㅡ기다려줄 수 있죠?

ㅡ그럼! 10년을 기다렸는데 그쯤이야 내가 못 기다리겠엉?!

ㅡ오케이! 그럼 내일부터 누나랑 같이 운동해도 돼요?

ㅡ나야 좋치!

그렇게 우린, 어색해질 뻔했던 분위기를 멱살 잡고 이끌어 화기애애하게 마무리지었고.

지금 헬스장으로 향하는 중이었었다.

흐흐흥~ 이제 뒷좌석이 아닌, 조수석에 앉겠다며 고집 부린 서윤 누나를 옆에 태운 채로 말이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에 나 역시도 기분이 들뜨는 듯했다.

길드 전용 헬스장에 도착해 등록을 마치고, 가뿐한 기본 운동으로 몸을 예열시킨 후.

어느 식당에 도착했다.

오늘부터 각성 전까지 나의 식단관리까지 해주겠다 선포한 누나 덕에 건강식 전문가게였었다.

샐러드를 비롯한 메뉴들을 주문하고, 괜히 어깨를 만지며 팔을 돌렸다.

“휴, 진짜 오랜만에 운동한 거라 온 몸이 다 아프네요.”

“그래도 잘하던 걸? 글구 트레이너쌤도 기본 근육량이 좋아서 금방 근육몬이 될 수 있겠다더라, 호호호.”

마나를 이용해 각성되는 신체의 스펙은 기본적으로 일반 상태의 신체에서 비롯되었었다.

기본 스펙이 좋으면 각성 스펙도 좋아지는 것.

그렇기에 길드에서 레이드가 없는 날에 헌터들이 꾸준히 운동하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이었었다.

“열심히 해봐야죠. 누나가 저한테 기회를 주신 만큼, 죽어라 할 거에요.”

“부담 안 가져도 돼. 그러라고 사주는 거 아니니까. 대신 헌터 됐다고 누나 안중에도 없고 그러면 안 돼~?”

“그럴 리가요, 제가 누나 은인이듯, 이젠 누나도 제 은인인 걸요.”

“히히.. 듣기 좋당. 이제 마음의 짐이 조금 내려간 거 같아.”

“마음의 짐이라뇨. 누나가 뭘 잘못했다고.. 하여튼 누난 좀 세상을 모질게 살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나의 말에 서윤 누나가 메롱하듯 혀를 샐쭉 내밀었다.

“피, 너한테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모질게 안 할 거거든?”

“...아무렴요. 어, 나왔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고 있자 주문했던 메뉴들이 나왔고, 건강식 위주의 식사를 시작했다.

풀.

풀.

풀.

또.

풀.

콩고기.

곤약.

또.

풀.

풀.

어욱, 처음부터 너무 과하게 시킨 건지.

입맛이 싹 사라졌지만 시킨 게 아까워서라도 꾸역꾸역 입에 쑤셔넣었다.

서윤 누나는 그런 내가 귀엽다는듯 미소지었다.

“호호, 이런 식사는 처음이지?”

“어우... 넵. 근데 먹을만 하긴 해요.”

“정말? 그럼 이것도...”

나의 접시에 제 것을 덜어주려는 누나에 황급히 접시를 사수해야했다.

“아, 아니. 배불러요. 누나 드세요, 누나.”

“호호호, 역시 귀엽다니까.”

...날 놀리는 게 그렇게나 재밌을까.

언젠가 소소한 복수를 하겠노라 다짐하곤 그 풀데기들을 싹싹 비워내고는 가게 바깥으로 나선 우리.

각성대비라는 명목으로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 듯한 상황이 썩 나쁘지 않았다.

이제 곧 각성할 텐데.

길드장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그니까 앞으로 각성 전에는 금주에 내가 주는 것만 먹어야돼, 알겠지?”

뭐... 귀찮은 극성트레이너가 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각성석의 힘을 견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관리가 필요한 것을 알기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대신 합장을 하곤 익살스레 대꾸해주었다.

“네넵,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분부대로 따르겠슴돠.”

“피, 나 지금 진지하거든?”

“저도 진지합니다만...?”

헌데, 가게 앞에서 우릴 쏘아보고 있는 한 여성에 의해 우리의 웃음은 뚝 끊기고 말았다.

여리한 체구에 먹물을 뒤집어쓴 듯, 새까만 흑단발과 매서운 눈빛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는 여성이었는데.

씩씩대는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신나희였다.

“우릴 망가뜨려놓고 아주 하하호호 살 판 나셨네? 이강준 이 개새끼야!?”

어휴, 소이현은 그래도 여기저기 용서를 빌러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이 미친 게임광년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정신 차리든 말든 상관할 바는 아니기에 누나의 손목을 잡고 신나희를 지나치려했다.

저 독기 서린 눈빛은 분명 뭔가 께름칙한 일을 저지를 것만 같기도 했고.

등 뒤에서 우릴 쫓아오며 악을 써대는 신나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이 비겁한 새끼야! 감히 도망쳐? 사과 안 해? 사과하라고!”

뭐? 사과를 하라고?

하....

역시....

사람 진절머리나게 만드는데는 재주가 좋은 것들이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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