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32화 (32/68)

EP.31)그날의 인연 (1)

여차저차 경매참가등록까지 마친 난, 서윤 누나를 태우고 하우스로 향하는 중이었다.

무거운 적막이 우리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된 어색한 침묵은 타이밍을 놓쳐버린듯, 언제 어떻게 깨야할지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20억짜리 각성석을 사준다는, 누나의 제안에 난 어떻게 반응을 하는 게 맞는 걸까?

마냥 좋아 해야 할까?

아니면 거절을 해야 할까?

아니면 싫어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의심이라도 해야 할까?

스무고개마냥 꼬리에 꼬리를 무슨 의문에 하우스로 향하는 30분이란 시간이 지금은 왜인지 길게만 느껴진다.

20억.

말이 20억이지, 일반인들은 평생을 모아도 어림 없는 돈이었다.

나조차도 서윤 누나의 전리품 수익 반띵이 아니었다면 평생 모아도 불가능할 금액.

2,000,000,000

숫자 0이 자그마치 9개다.

황금 고블린에 각성석이라는 기적의 확률, 더블히트가 떠서 파밍수익이 인당 5억씩 돌아간 것이지, 그마저도 이리저리 세금을 떼이고 나면 4억여원 될 것이다.

어쨌든 많은 금액이긴하지만 이번 레이드가 로또 맞은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특이케이스였고, 평균 A급 레이드 수익은 2~3천만원 수준.

20억이란 금액을 모으기 위해서는 서윤 누나가 100번을 레이드를 뛰어야한다는 것이다.

평균 A급 던전 토벌 횟수가 월 3~5회임을 감안한다면 25개월, 장장 2년을 한푼도 쓰지 않고 꼬박꼬박 레이드를 뛰어야 모을 수 있는 큰 돈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쉬이 웃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건 부담감을 넘어 살짝은 거부감까지 드는 일이었었다. 내가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린 것이다. 내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은 1리터짜리인데, 거기다 1,000리터 물폭탄을 부어버리는 것 같달까.

그리고 옛말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대가 없는 고기는 돼지고기까지라고.

소고기부터는 대가를 바라게 된다고.

솔직히 전리품 수익 반띵도 말이 안 되는 조건이었는데, 어떻게 20억을 덜컥 받겠냐는 말이다.

그리고 세상 어느 누가 아무런 대가 없이 20억을 주겠는가.

그건 마더 테레사 수녀님도 십자가로 이단들의 뚝배기를 깨고 다니며 성전(聖戰)을 일으킬만큼, 말이 안 되는 일인 것이다.

“….”

그렇게 무거운 적막 속에서 하우스에 도착한 우리.

서윤 누나는 나의 이러한 반응을 예상치 못했는지, 연신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이건 그녀가 착하다고 해서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은 어느덧 야심한 밤이 되었다.

거실에 앉아 오늘 있었던 던전 토벌 보고서 작성 및, 다음 스케줄을 점검하고 있었는데.

방에 들어가있던 서윤 누나가 나옴으로서, 모든 행동은 그녀에게로 쏠리고 만다.

아무래도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이유와, 그간의 일들에 대한 성토가.

잠시 방문 앞에서 쭈뼛대고 있던 누나가 내게 다가왔다.

“저, 그... 강준아.”

“네?”

“누나랑... 술 한잔 할까?”

그래, 이런 일엔 또 술만한 게 없지.

작성 중이던 서류를 저장한 후, 태블릿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안주 만들어올게요.”

“아, 으응.”

주방으로 들어간 난, 그녀가 좋아하는 안주들을 뚝딱 만들어 나왔다.

매콤달큰한 감바스에 마른 안주, 침대 과자에 참치와 치즈를 올린 별식까지.

술은 집에 있던 보드카 앱솔과 오렌지 주스, 토닉워터를 들고와 서윤 누나가 좋아하는 환상 비율로 섞은 다음 건네주었다.

“고마워.”

“넵. 그럼... 짠할까요?”

“..응!”

ㅡ짠.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잔이 서로 부딪히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꿀꺽꿀꺽, 어허... 술도 못하시는 분이 또또 원샷을.

하지만 이번엔 말리지 않았다.

지금부터 우리가 다룰 이야기의 주제는 왠지, 무거울 듯했기에 술의 힘은 꼭 필요했었다.

나 역시도 오늘만큼은 그녀에게 생긴 의문을 모두 풀어볼 작정이었고.

이미 우린 한 배를 탔고, 서로 끈끈한 유대감과 친밀한 파트너쉽을 가지기 위해서는 때로는 비밀이란 걸 공유해야 하기도하는 법이니까.

내가 먼저 그 포문을 트기로 했다.

“우선 그 제안해주신 거는 감사해요. 아깐 너무 당황스럽고 경황이 없어서.. 20억이라는 돈이 애들 장난감 살 돈이 아니잖아요.”

역시, 내가 포문을 트자 그녀도 기다렸다는듯 속에 품고 있던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알아... 나도 너가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서 말을 아끼고 있었어. 근데... 강준아.”

“네?”

“이번 만큼은 너한테 제안하는 거 아냐.”

“...네?”

“각성석은 제안하는 게 아니라구.. 제안이란 건 뭔가 대가를 바란다는 거잖아?”

“그렇...죠...?”

“이건 그냥...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어차피 오직 너를 위해서 준비해둔 돈이었었어. 그러니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뭐라고?

20억을 내게 그냥 선물로 주겠다고?

아니, 제안이든 선물이든 20억이란 돈은 넙죽 받기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차라리, 빌려주는 돈이니 갚으라고 한다면 모를까.

그리고 나를 위해 준비해둔 돈이라고...?

우린 불과 몇 주 전에 첫 대면한 사이인데...?

어지러운 머리에 나 역시 술을 원샷하곤 그녀를 쳐다보았다.

“...서, 선물이라뇨. 세상 어느 누가 20억짜리 선물을 줘요. 말도 안 돼요.”

“이해할 수 없겠지... 그치만 진심이라는 거 알아줘. 너한테 캐스터 제안한 것도 모두 각성석 때문이었었어.”

“네...? 각성석 때문이었다고요?”

“너도 알다시피, 각성석은 경매 경쟁이 워낙 심해서 일반인은 사지도 못해.”

그정도는 안다.

각성석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었으니까.

헌데 그게 캐스터랑 무슨 상관... 이라고 물으려던 찰나, 탄성이 대신 나오고 말았다.

“아... 설마 각성석 구매우선권 때문이었어요?”

“아는구나, 역시... 너라면 알 것 같았어.”

앞서 얘기했듯 각성석은 기업과 길드, 정부기관의 경쟁으로 일반인은 입찰조차 하기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캐스터 노조가 생긴 이후로.

일반인은 아니더라도, 캐스터로 정식활동한 이가 각성석 구매를 원할 시, 평균낙찰가에 도달하면 경매에 참가한 캐스터에게 구매우선권이 발효되는 법안이 통과되었었다.

물론 그렇다해도, 20억이란 돈을 모은 캐스터가 거의 없었는데다 있다 하더라도 20억을 써서 헌터가 되고픈 캐스터가 없었던 탓에.

법안이 생긴 이후로 아직 성사됐던 적이 없다고 봤었었다.

유명무실한 법안이라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캐스터의 제안 이유와 선물의 진심임을 안다고 하더라도.

20억이란 돈을 받을 수는 없었었다.

받기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그렇다해도.. 받을 수 없어요. 마음만 받을게요.”

“...그, 그치만 강준이 너 헌터가 되고 싶어 했잖아. 아버지 때문에라도...!”

“네...? 아버지요? 아니, 누나가 어떻게 그걸...?”

헌데 불현듯 그녀의 입술에서 튀어나온 `아버지`란 단어에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은... 그 쓰레기만도 못한 작자가 여기서 왜 나온다는 말인가?

아니, 그보다 대체 누난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나의 놀란 표정을 응시하던 서윤 누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재차 술을 들이켰다.

그리곤 무언갈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놓았다.

말 없이 나를 쳐다보는 그녀.

그런 그녀가 놓은 것이 무엇인지 쳐다본 난, 숨이 덜컥 멎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저희 어머니 손수건이잖아요...?!”

테이블 위에 놓인 손수건을 낚아채듯 가져와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이건 분명 어머니의 손수건이었었다.

헷갈릴 수도, 다른 손수건일 수도 없었다.

이 손수건은 어머니께서 늘 손수 만들어 쓰시던 것이었으니까.

동생과 내가 어릴 적부터, 늘 이 손수건을 만들어서 주셨었고 중학생까지 가지고 다니며 썼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어머니께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이후에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손수건이었었다.

그렇기에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 누나가 이걸 어떻게...?”

아버지란 작자가 어머니의 유품을 모두 태워버렸기에 손수건말고라도 그 어떤 유품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때도, 그 작자에겐 어머니의 유품은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았었으니까.

손이 떨리고,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S급 헌터인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이 되셨던 어머니. 국가전력양성이란 목적으로 헌터들에게만 합법화된 일부다처제는, 일반인인 어머니가 그 작자의 세 번째 부인이 되게끔 만들었었고.

나와 동생이 태어났었다.

하지만 아버지란 작자는 늘 어머니와 우리를 모질게 대했었다.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으며 한번 볼 때는 엄한 꾸중으로 일관했었으며, 헌터가 되어야한다며 강요만 해댔었었다.

그러다 내가 성인이 되던 해에 난... 각성에 실패했고, 이듬 해에 동생마저 마나장애까지 얻게 되며.

그 작자는 우릴 가차없이 버렸었다.

[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역시 그 어미의 그 자식이구나. 헌터가 아닌 자식은 내게 필요없다. 썩 꺼져. ]

언제는 우릴 자식으로 대해줬었나, 하는 회한이 들었지만 우린 아무 말 없이 놈의 손에서 벗어났었다.

어머니와 함께.

하지만 죄책감 탓이신지, 어머니는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하셨고 결국 우울증을 견디시다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시고 말았었다.

가시는 그날까지.

우리에게 아버지 대신 사죄를 고하며, 부모된 도리를 못 지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시던 어머니.

그 작자는 어머니의 별고소식에도 늘 그랬듯, 무자비하고 냉담한 얼굴로 어머니의 시신과 유품을 모조리 화장시키고는 우리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었다.

헌터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와 동생, 어머니는 처참하게도 버림받았던 것이다.

헌데.

어머니의 유품을 챙기지 못했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죄스러웠던 나의 앞에 그 유품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유서윤 헌터라는 사람에게서.

“누나... 이걸 대체 어디서...?”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에.

누나의 피사체마저 떨려댄다.

“...너가 흘렸었던 거야. 내가 주워서 고이 간직하고 있었고.”

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어머니의 손수건을 흘렸었다고?

손수건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는 들고 다닌 적이 없었었는데.

어머니는 계속 쓰셨었지만 말이다.

“제가.. 흘렸다고요? 중학생 이후로는 들고 다니지 않았었는데..”

“맞아, 중학생 때 흘렸었지..”

“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럼 누난 지금 10년도 더 된 손수건을 이제껏 간직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보다 그럼 우리가 10년 전에 만났던 적이 있다는 말이 되는 건가...!?

“...정말 나 기억 안 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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