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D2 산림 던전 레이드 (5)
“이, 이 미친 새끼가아악ㅡ!!”
황금고블린이 휘두른 둔기는 정확히 내 가슴팍에 꽂혔다. 육중하면서도 날카로운 타격은 마치 총알에 맞은 것 같았는데.
입에선 욕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프다.
좆나 아프다.
실전압축근육은 역시, 무시할 게 못된 다니까.
ㅡ키르륵! 보석! 보석!
20년 경력의 베테랑 노가다꾼마냥 잔근육이 솟은 고블린의 팔은 내 심장을 꿰뚫을듯 둔기를 짓눌러댔고, 광기 서린 금빛 눈동자는 희번득 빛을 낸다.
군침이라도 도는 건지, 으르렁대는 입가에서 진득한 체액이 흘러나온다.
나 맛 없는데.
아니, 그리고 고블린이 사람고기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 미친 새끼는 뭐가 그리 맛있어보이는지 연신 침을 흘려대며 내 가슴팍을 뚫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서윤 누나가 입혀준 미스릴 메일이 아니었다면 진짜, 여기서 비명횡사할 뻔할 정도로 강한 고통이 느껴져왔다.
다행히 미스릴 메일 덕에 조악한 돌부리는 내 가슴팍을 뚫지는 못했다.
이 미친놈은 보석만 수집할지 알지, 무기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애들 장난감 같은 둔기로 미스릴 메일을 어떻게 뚫겠다고.
차라리 저 뭉툭한 송곳니로 정수리를 내려찍는게 더 효과적이겠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럴 지능이 없는지 계속 돌부리만 짓눌러대는 놈에 정신을 차린 난 급히 구르카를 휘둘렀다.
하지만 발톱으로 내 복부를 타올라있던 놈이 잽싸게 뒤로 점프해버린다.
하여튼 기민성 하나는 최고라니까.
ㅡ키륵! 키르륵!
탐욕스런 금빛 안광을 뿜으며 나를 노려보는 황금 고블린은 언제든 공격해올듯 도약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니, 씨발 근데.
황금 고블린은 공격성이 없다면서요.
물론 인간도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듯.
황금 고블린도 제 각각의 특성이 있기는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첫트부터 이리 사나운 황금 고블린을 만나면 어쩌자는 건지.
운이 없는 건지, 많은 건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흐트러진 헬멧을 고쳐쓰며 구르카로 놈을 겨냥했다.
ㅡ키륵! 보석! 보석! 탐난다! 키륵!
뭐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한국 던전에서 짬밥 좀 찼다고 한국어도 구사하는 거냐?
“무슨 보석 새꺄!”
ㅡ키르륵! 키륵! 키륵!
나의 외침에도 재밌는지 연신 키득대는 황금고블린이 그 조악한 무기로 나를 가리켰다.
금색 안광이 내 가슴팍을 향해있었는데.
설마….
보석이라는 게…
희귀 브라카스 심장으로 만든 이 브로치 속 보석을 말하는 건가?
아니, 진짜 또라이새끼 아냐.
지금 제 목숨을 노리는 헌터들한테 쫓기고 있는 와중에 브로치 보석이 탐나서 나를 공격한 거라고?
역시.
황금 고블린이 괜히 황금 고블린이 아니구나.
그래.
네놈들에겐 목숨줄보다 보석이 더 중요하다는 거겠지.
가만.
그럼 헌터를 만날 때마다 도망치는 이유가… 설마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모아둔 귀중품이 아까워서였단 말인가?
목숨보다 보석이다 이건가?
아아, 이것이 찐광기(Real狂氣)라는 것이군.
아까 짐승의 `진짜 광기`를 조우한 것처럼 섬뜩하다 했더니, 내가 아닌 보석을 향한 광기였구나.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지 신기할 정도의, 아둔한 광기다. 그럼 황금 고블린 만났을 때를 대비해 값 비싸고 휘황찬란한 보석을 들고 다니면 되는 건가?
...굉장히 비효율적인 생각이겠지.
뭘 좋아할지 모르니 한 보따리를 싸들고 다녀야할 거고.
“강준아아ㅡ!”
존경스런 그 광기 섞인 집착심에 탄복하고 있던 그 순간, 서윤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황금 고블린의 두개골에 굵은 화살이 박힌다. 푸른빛의 화살대였는데 어느새 매복해 있던 배리가 쏜 것인 듯했다.
ㅡ콰직!
ㅡ크르륵! 죽음!
“앗싸! 명중!”
맥없이 쓰러지는 황금 고블린.
결국 내가 미끼가 된 듯한 묘한 상황이었지만,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제 활까지 팽개치며 뛰어온 서윤 누나가 나를 안는 바람에 묘한 상황은 더욱 묘해지고 만다.
나를 한번 꽉 끌어안은 후, 포옹을 풀고는 싸우고 들어온 자식을 돌보듯,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그녀.
“아, 누, 누나 괜찮아요, 괜찮아.”
“강준아 안 다쳤어!?”
“괜찮아요 누나, 안 다쳤어요. 이거 봐요, 누나가 준 미스릴 메일이 막아줬다니까요?”
뜯겨진 푸른색 캐스터 상의에 의해 드러난 미스릴 메일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헌데 서윤 누나가 옷걸이에 눌린듯 살짝 파인 메일을 매만지다 십년감수를 한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울기까지할 일인가..?
“흐윽… 나 진짜 너 다치는줄 알았단 말이야… 너 다치면 나 어떡해… 죄책감에 어떡하라궁… 흐아앙…!”
“참… 누가 보면 죽는 줄 알겠어요. 진짜 괜찮아요. 그만 울어요, 그만.”
기어이 내 품에 안겨 우는 서윤 누나에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어야했다.
크게 떨리는 그녀의 어깨.
그 찰나의 순간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내게 전해져왔다.
하여튼, 착해서는.
그렇게 그녀의 등을 따스히 쓰다듬고있자, 안나가 불호령을 하며 최수창을 찾아댔다.
“아니, 최수창 힐러는 대체 어딜 간 거에요!! 복귀한다고 한 지가 언젠대…!! 강준씨 진짜 위험할 뻔했잖아요!!”
그 진노한 S급의 이갈이에 배리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최수창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으음… 아직 복귀를 안 한 거 같은데요? 아까 간다해놓고는… 어딜 간 거람.”
안나가 분을 삭히지 못해, 도끼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내, 수풀을 가르며 한 남성이 나타났다.
진즉 복귀하겠다고 추격대열에서 이탈했던, 최수창이었었다.
마치 액션영화에서 주인공이 악당을 쓰러뜨린 후, 저 멀리서 출동해오는 경찰차마냥.
상황이 모두 끝나자 쭈뼛거리며 다가온 최수창이 머리를 긁적이며 곤혹스러워했다.
아무래도 안나의 그 불호령을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메아리가 칠 정도로 전능한 목소리였지.
“아… 죄, 죄송합니다.. 길을 잃어버려서.”
…길치였구나.
**
결국 파티리더인 안나에게 호되게도 질책을 당해버린 최수창.
그래도 이전처럼 패악질을 부리는 것이 아닌, 잘잘못만 딱딱 집어 호통치는 안나의 모습은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져있었다.
예전이었다면 A급 헌터를 아랫사람으로 보고는 조인트를 깠을 텐데 말이다.
뭐, 그걸로 위안삼길 바래본다.
어쨌든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되었고.
파티원들의 이목이 모두 쓰러진 황금 고블린에게로 향한다.
꿀꺽, 얼마나 숨을 죽이는지 서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올 지경이다.
황금 고블린은 그 사체만으로도 돈이 되는 녀석이었었다.
일반 마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가죽은 그야말로 금보다 더 값이 나갔고, 머릿뿔과 등어리의 황금색 갈기와 눈동자, 손톱까지.
모든 게 돈인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보물 보따리를 등에 맨 채, 지금 눈앞에 쓰러져 있었고, 모두의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었었다.
약속이라도 한듯,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던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파밍의 권한은 캐스터에게 있었다.
캐스터 노조의 권한으로 인해 헌터들은 함부로 파밍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공정성의 문제도 있었고.
그렇기에 어서 까보라는 압박이 담긴 여덟 개의 눈동자에 구르카를 들고 황금 고블린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목에 고이도 조여놓은 보따리 매듭을 조심스레 풀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짬밥으로 봐서는, 지능도 제법 있는 듯했고 수집 경력도 오래 됐을 듯했기에 기대감이 치솟았다.
ㅡ두근두근.
예상대로.
보따리를 풀고 황금고블린의 사체를 옆으로 치우자, 휘황찬란한 빛깔들이 우리를 반긴다.
와… 이게 대체 다 뭐야?
언뜻 봐도 으리으리한 보물상자임을 직감한 파티원들이 저마다 기뻐하기 시작했다.
“꺄~! 이게 다 뭐야뭐야!”
“오오오…!! 대, 대단한 것 같습니다만!!”
“S급 던전에서 한번 잡아본 적 있는데… 그때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강준아. 각성석은? 각성석은? 없어?”
저마다 영롱한 빛을 내는 광석들과 보석. 그리고 낡은 종이도 보였는데 짬밥이 높다보니 이것저것 끌리는 대로 모아둔 모양이었다. 아마 낡은 종이도 범상치 않을 물건일 것 같았다.
연금협회에 검증을 받아보면 되겠지.
우선은 낡은 종이와 깨진 광석들을 조심스레 치우며, 서윤 누나의 말대로 각성석을 찾기 시작했다.
각성석은 붉은 빛깔의 돌이었다.
물론 평범한 돌이 아닌, 석회암처럼 거친 붉은 표면에 혈관마냥 얇은 푸른 마나맥이 흐르는 돌인데.
그 푸른 마나맥에선 은은한 빛무리가 드라이아이스처럼 흘러나와 언뜻 보아도 비범한 돌이란 걸 알 수 있는 외관이 특징이었었다.
“으음… 보자…”
아까부터 각성석을 찾는 듯한 서윤 누나에 갖가기 보석들을 헤집으며 찾기를 5초.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는 보따리에 낮게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그리고 서윤 누나의 아쉬운 날숨이 내 정수리에 닿으려던 찰나.
…눈을 뜨고도 믿기 힘든.
보따리의 깊은 아래에서.
은은한 푸른, 붉은 빛깔을 뿜고 있는 게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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