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D2 산림 던전 레이드 (4)
ㅡ황금 고블린이에요!! 그쪽으로 가요오ㅡ!!
저 멀리서 들려오는 서윤의 다급한 외침.
고요한 숲을 쩌렁하게 울리는 그 외침에 캠프에 앉아있던 수창과 배리도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뭐, 뭐? 지금 황금 고블린이라고 하신 거 아닙니까?!”
“저,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서로 쳐다보며 입가에 함박웃음을 짓고는 서둘러 전투 태세를 갖춘 수창과 배리가 소리가 들린 곳을 주시하며 움직임을 감지했다.
[ 황금 고블린 ]
던전을 이동하며 이것저것 수집하는 게 주 활동목적인 고블린으로 말 그대로, 온 몸이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폭풍간지 몬스터였다.
던전을 이동하는 비밀에 대해선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반짝이고 귀해보이는 것을 판독하는 능력이 뛰어나 등에 매고 다니는 보따리엔 어떤 귀중품이 들어있을지 몰랐었다.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보물상자라는 것.
당연하게도, 굉장히 희귀해 천 번 레이드하면 한 번 볼까말까했었다.
그 황금 고블린의 출몰소식에 바짝 귀추를 주목시키는 수창과 배리.
꿀꺽, 웨어울프를 잡는 것보다 더 강한 중압감이 캠프에 내려앉는다.
물론.
꽝일 가능성도 있었다.
텅빈 보따리거나 맛이간 황금고블린은 잡동사니 골동품을 모으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어쨌든.
꽝일 가능성을 알고도 로또를 사듯.
무조건 잡아야하는 몬스터라는 것이다.
ㅡ사사삭!
그때, 남쪽에서 낙옆과 풀을 빠르게 밟는 소리가 났고.
수창과 배리가 잽싸게 그곳으로 튀어갔다.
“강준씨 맞죠? 브로치.”
나를 지나쳐 쇄도하던 배리가 찡긋, 윙크를 하고는 황금 고블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운이겠지, 뭐.
브로치 찼다고 황금 고블린이 뜬다면 브로치를 보유한 캐스터의 일당이 더 쎄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ㅡ파바바박!
캠프에 홀로 남은 난, 자세를 낮추며 구르카를 손에 들었다.
미약한 미물이 나타났을 때, 구르카라도 휘둘러야지 않겠는가.
주변을 깨끗이 토벌했었기에 미물이 나타날 일은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저, 저기에요!”
“젠장! 뭐저리 빨라!”
“저쪽으로 먼저 가세요!”
ㅡ피윳! 슈욱!
ㅡ파바바밧!!
사방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들과 무언가 투척되는 소리. 그리고 황금 고블린이 달음박질 치는 소리가 그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 알려주고 있었다.
황금 고블린은 겁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반격보다는 무조건적인 줄행랑만 치는 몬스터라 퇴로를 차단만 하면 포획하기 수월할 텐데.
겁이 많은 녀석들이 으레그렇듯.
발이 허벌창나게 빨라 부스터 슈즈를 신은 근딜도 따라붙기 힘든 속도였었다.
아마 모든 몬스터들 중에 속도로는 탑일 것이다.
“음.. 나도 도울까?”
아니다.
괜히 어설프게 나섰다간 되레 방해만 될 수도 있었다. 저렇게 스킬까지 써가며 추격하는데도 단번에 포획하질 못하는 거 보면.
나 따위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거겠지.
숨소리를 낮추며 주변소리에 집중했다.
난 내 한 몸 건사시켜 황금 고블린에 집중하는 서윤 누나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의 일일 터다.
조용히 감각을 집중시키자 들려오는 발소리와 외침들. 황금 고블린과 헌터들이 내는 발소리는 달랐었다.
헌터들의 소리는 부츠로 인해 살짝 쇳소리가 가미된 소리라면.
황금 고블린의 소리는 커다란 맨발이 풀을 밟는 듯, 뭉툭한 소리랄까.
ㅡ파바바바밧!!
“어, 어디로 갔죠?!”
“여기 발자국! 저 쪽으로 간 거 같아요!”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그 발소리와 추격소리에 정신이 산만해질 지경이다.
헌데.
ㅡ파바바밧!
어…
ㅡ파바바밧!
황금 고블린 발소리가.
ㅡ사사삭!
ㅡ파바바밧!
이,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ㅡ파바밧!
ㅡ키엑! 키르륵!!
“옴마, 씨바.”
…어, 착각이 아니었네.
가까워지던 그 뭉툭한 발소리는 이내, 수풀을 가르며 존재를 드러냈고.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황금빛이 깜짝 놀라 멈춰서고는 나를 쳐다본다.
와… 황금 고블린은 눈동자도 황금색이었구나.
ㅡ키륵! 키르륵!
나와 마주한 황금 고블린이 작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그르렁댄다. 끝이 뾰족하지 않은, 다소 앙증맞기도 한 송곳니였다.
내 하반신까지 올 법한 작고 여리한 체구에 제 몸집만한 보따리를 매고 있는 고블린.
실전압축근육파인듯, 잔근육으로 무장한 녀석은 확실히 영상 속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생김새였지만 이상하게도,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짜 광기를 조우한 듯한 느낌이랄까.
털이 곤두서고 일순간 오한이 든듯, 몸이 잘게 떨린다. 제 아무리 공격성이 없는 작은 몬스터라지만.
무지성으로 짖어대는 치와와도 무섭듯.
황금색 눈동자가 나를 살필수록 오금이 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 느낌이 이상한데?
보통이라면 도망쳐야하는게 정상인데.
놈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 공격성이 없다는게 설마 헌터들한테만 없다는 거였나?
설마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 약한.
약강강약의 호로쌍새였단 말인가?
그 의문들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금 고블린이 쏜살같이 쇄도해 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에 뾰족한 돌을 묶은 원시적이고 조악한 둔기를 내게 휘둘렀다.
실전근육압축파 답게.
미처 피할 틈도 없는 민첩한 공격이었었다.
ㅡ휙!
ㅡ파악!
“끄아아악ㅡ!!”
**
갈색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황금 고블린을 쫒는 서윤과 분홍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그녀의 옆을 달리는 안나.
“미리 말을 하던가.”
“미안.”
방금의 시위겨냥에 불만을 표출하는 안나에 서윤이 조소를 머금었다.
일종의 경고사격과도 같았던 발사였다.
때마침 황금 고블린의 안나의 뒤에서 발꿈치를 들며 사뿐히 도망치는 게 보였었고.
별다른 설명 없이 시위를 겨냥한 것이니까.
그 경고사격이 제법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서윤이 보따리를 흔들대며 잽싸게 도망가는 황금고블린의 뒤통수를 겨냥했다.
하지만 달리는 중이라 초점을 맞추기 어려웠다.
결국 쏘아진 화살은 고블린의 옆, 나무에 박히고 만다. 화살을 회수한 서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칫, 잡아야하는데..!”
“저희 왔습니다!”
“어디, 어디있어요!?”
잠시 후, 김배리와 최수창이 추격전에 합류했다.
헌데 서윤의 눈빛이 일그러진다.
“아니, 강준이는요?”
둘에게 향한 물음에 배리가 답했다.
“캠프에 있죠?”
“아니, 그러니까 다 오시면 어떡해요...! 한 분은 남아계셨어야죠!”
길드와 캐스터 노조 간의 암묵적인 규율이 있었다.
황금 고블린이 나타나든, 여타 무엇이 나타나든.
캐스터의 안전을 위해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었는데.
그렇기에 당연히 둘 중 한명만 아니, 대부분의 상황에선 민첩한 원딜과 근딜이 추격에 붙고 탱커나 힐러 중 한 명이 캐스터의 안전을 맡는 게 일반적이었었다.
최초발견이 자신과 안나였기에 힐러인 수창이 남아있어야 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이제야 그 규율이 생각난 모양이다.
“아앗! 죄, 죄송합니다! 황금 고블린은 처음이라 그만 흥분해버렸습니다. 바로 캠프로 복귀하겠습니다!”
물론 구역 토벌이 이뤄졌기에 저 황금 고블린의 꽁무니만 잘 쫓는다면 위협이 될만한 것은 없을 테지만.
무슨 사고든 방심하는 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아는 서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추격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가장 민첩한 사람은 자신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각성석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잡아야했었었다.
다행히 수창이 토를 달지 않고 추격대열에서 이탈해 캠프로 복귀해주었다.
“안나, 배리씨 흩어지죠. 삼각형으로 에워싸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달리기만해선 답이 없어요.”
“넵!”
서윤의 명이 못마땅한지, 안나는 말 없이 대열의 좌측으로 빠져 간격을 벌렸고.
배리는 우측으로 빠져 삼각형을 이루었다.
“제발…!”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에 속이 타는 서윤이 어금니를 씹었다.
던전의 로또라 불리는 황금 고블린이라면 각성석을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뛰는 보따리가 제법 크게 출렁이는 걸로보아 파밍을 착실히 해놓은 황금 고블린인 듯했고.
그렇기에 절대 놓칠 수 없었었다.
지구 끝까지 쫓겠노라 다짐한 서윤은, 이를 깨물고 화살을 쏘아댔다.
'한발만, 제발 한발만 맞아라…!!'
**
“하악.. 하아.. 하아… 어디로 간 거죠?”
“하아… 하아… 잘모르겠어요. 녀석 진짜 날쎄네요. 눈앞에 있다가 순식간에 없어져버렸어요.”
단거리 질주를 한 선수마냥,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허덕이는 서윤과 배리와 달리, 탱커 특유의 높은 체력 탓에 낮게 숨을 고르던 안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금 고블린의 발자국과 흔적을 쫓으며 건틀릿의 버튼을 눌러 홀로그램창을 띄웠다.
그리고 지도를 사용해 발자국이 어디로 갔을지 추적하는 안나.
황금 고블린의 경우 몸집이 워낙 작은 탓에 식별기에 인식이 안 돼 홀로그램 지도에 표시가 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지나온 길과 발자국 방향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었는데.
안나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홀로그램창을 끈 안나가 남쪽 방향을 쳐다보았다.
“…캠프 쪽인 거 같은데.”
“뭐..?! 가, 강준이가 있잖아..!”
“걱정마셔요, 수창씨가 있으니 안전할 거에요. 우선 추적해보죠.”
아연실색하는 서윤의 어깨를 토닥인 배리가 쏜살같이 달려갔고.
이내 안나와 서윤도 급히 그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울려퍼지는 남자의 비명소리에.
둘의 안색은 창백해지고야만다.
ㅡ끄아악!!
이 소리는 분명.
이강준의 비명소리였었다.
그에 쇄도를 멈추지 않으며 서로를 쳐다보는 서윤과 안나.
불길함을 감지한 둘의 쇄도가 더욱 빨라진다.
황금 고블린을 쫓을 때보다 훨씬 빠른, 한계에 다다른 속도였다.
“강준아…! 안 돼에…!”
“젠장! 최수창 힐러는 대체 뭐하길래!!”
다소 절망적으로 절규하는 서윤과 그의 안전을 맡은 최수창을 호통한 안나는.
그렇게 다리에 무리가 갈 정도로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속도로 캠프를 향해 내달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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