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28화 (28/68)

EP.27)D2 산림 던전 레이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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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를 이끌고 캠프에서 먼발치까지 떨어진 서윤. A5 구역부터는 휴식 중에도 장비 착용을 권장하는 게 선발대의 코멘트라, 둘 모두 장비를 착용한 상태였었다.

파티원들이 뒤쫓아온 것은 아닌지, 확인한 서윤이 안나를 쳐다보았다.

불쾌한 심정이 눈빛으로 드러나있었다.

“유안나.”

“왜?”

“그만 좀 쳐다봤으면 좋겠는데.”

“뭘?”

“강준이, 그만 좀 쳐다보라고.”

“…뭐라고?”

안나가 황당하다는듯 헛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지지 않는 눈빛으로 서윤을 쳐다보았다.

눈빛에서 쏘아진 레이저들이 서로 맞닿아 스파크가 튀기는 것만 같았다.

“사람 불러놓고, 뜬금 없이 무슨 소리야.”

“계속 강준이 훔쳐보는 거, 그만하라고. 설마 너 강준이 좋아하니?”

제 속마음을 꿰뚫는 듯한 서윤에, 안나의 기세가 잠시 주춤한다.

좋아한다, 이게 좋아하는 마음일까?

안나는 아직 확신하고 있지 못했었다.

흠모일지, 연모일지, 아니면 동경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집착일지.

아직까진 그의 곁에 가고픈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단정짓지는 못하고 있었었다.

용서 받았다하더라도.

3년간 저지른 악행은 그에게 상처로 남아있을 테고.

그에 조심스러운 마음 뿐이었었다.

“좋아한다…는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왜 그를 쳐다보는지, 틈만 나면 그때의 일들이 생각나는지.”

“그때의 일?”

“그에게 용서 받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 평생 그런 적 없었으니까.”

이번엔 서윤이 황당하다는듯 헛숨을 내쉬었다.

비록 레이드 명단에 고정리더로 올리기는 했지만, 그건 오직 각성석을 얻기 위함일 뿐이었고 강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었다.

실력은 모자라더라도 S급 탱커가 A급 던전의 최전방을 맡아준다면 강준의 안전에 더 신경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레이드 내내 강준을 바라보는 안나의 시선은 분명 뭔가를 갈망하고 있었었다.

같은 여자로서 볼 때, 그 눈빛은 용서와 인정,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또 기다려 얻은 소중한 사람인데.

절대 뺏길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다음 레이드 때부터 안나를 빼버리고 싶었지만.

그전에 먼저 선을 그어둘 필요가 있었다.

만약 그 선을 지키겠다면 그의 곁에 두겠지만, 넘겠다면 오늘이 그녀와의 마지막 레이드가 될 터였다.

“그래서, 지금 나랑 해보겠다는 거야?”

안나가 눈꼬리를 접으며 실눈을 떴다.

“흐음… 설마 너, 강준씨 좋아하는 거야?”

숨길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안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 자체가 이미 그를 좋아한다고 알리고 있는 것이었기에, 서윤은 부정하지 않았다.

“응. 나 강준이 좋아해.”

“…진짜였구나.”

“그럼 누가 너처럼 가짜로 사람 좋아하겠어?”

“…옛날의 나는 그랬었어. 사람 가지고 노는 게 재밌고, 그래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었어.. 근데, 이제야 깨달았지. 강준씨가 내게 가르침을 준 거야.”

서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십분 후면 A6 구역으로 토벌하러 갈 시간이기도 했고.

그녀의 고해성사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었다.

“가르침을 준 남자가 강준이가 처음이니까, 좋아하게 됐다라.. 참, 넌 끝까지 이기적이구나.”

“뭐, 뭐라고..?”

제 변화를 부정하는 서윤의 말에 안나가 섭섭함을 표했다.

그것만큼은 진심이었었다.

물론 사람이 한순간에 바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금도 화가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너가 날 싫어하는 건 이해해.. 그치만.. 사람이 바뀌려 노력하고 있는데 좀 도와주면 안 돼?”

“도와줘? 강준일 그렇게 힘들게 한 널 도와줘? 가해자가 자기 개과천선했다고 꾸역꾸역 찾아와 사과 받으라고 멱살 잡는 거랑 뭐가 다른데?”

“다, 다르지 그거랑은…! 용서는 이미 받았다고..! 난 그저 강준씨에게 더 인정 받고 싶을 뿐이야..! 내 진심을!”

서서히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둘.

서윤이 주변을 훑었고, 강준과 파티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입을 열었다.

“하, 정말 너란 여자 진짜 최악이야. 3년간 강준일 괴롭히는 너네들 보며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알기나 해? 찢어졌어. 그럼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아? 근데 이제 와서, 용서 받았다고 강준일 좋아한다고? 장난해?”

서윤의 가시 돋힌 말에 안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3년간 우릴 지켜봤다는 거야?”

“지켜보고 말 것도 없었어. 매일 같이 들려왔으니까. 세상에 넌 염치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용서 받으면 3년의 일이 없어지기라도 한대?”

“그, 그건 아니지만… 3년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구.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아니, 때론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좋을 때도 있어.”

“아니, 난 걔네들처럼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강준씨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빌고 또 빌 거야.”

“하… 안 되겠네. 널 파티에 끼운 게 실수였나봐.”

한숨을 내쉰 서윤이 안나를 쏘아보았다.

결국 선을 넘겠다는 그녀의 선언에, 인내심이 동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다음 레이드 때부터는 새 탱커를 구해야할 듯싶었다.

잠시 그녀를 쳐다보던 서윤이 활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화살을 걸고 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

뜨드득, 시위가 늘어나며 활대가 크게 꺾인다.

삼각근과 전완근에 힘을 강하게 주고, 한쪽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가늘고 길게 내쉬며, 조준했다.

화살촉은 안나에게로 향해있었다.

그 느닷없는 겨냥에 안나는 주춤하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짓이야…! 유서윤…!”

시위를 당긴 손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서윤이 낮게 속삭였다.

“조용히해. 그리고 가만히 있어.”

일촉즉발의 상황.

일시정지라도 한듯, 호흡을 멈춘 서윤의 손에 희미한 보랏빛 마력이 감돌기 시작했고, 이내 시위를 당기고 있던 손이 그립을 풀었다.

화살촉이 첨예한 파공음을 내며 쏜살같이 날아간다.

ㅡ피윳!

**

“음? 서윤 씨하고 안나 씨는 어디 갔어요?”

식사에 열중하다 고개를 든 김배리가 물었다.

여리한 체격인데 생각보다 먹는 양이 상당한 그녀였다.

아니면 배가 무진장 고팠다거나.

둘의 기척이 사라지는 걸 몰랐을 정도면.

“아, 화장실 간다고 저쪽으로 가던데요?”

적당히 둘러대주었다.

서윤 누나의 싸늘한 어조가, 왠지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라는 듯했으니까.

헌데 둘이 없어진 걸 확인한 배리가 내게 다가왔다.

“저기, 강준씨.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네.”

뭐지?

설마 여자의 촉으로 분석한 관계를 물어보려는 건가.

“아니, 처음 봐서요. 말만 들었었는데 그 브로치, 진짜에요?”

…질문의 요지가 안나와 서윤의 삼각관계 쯤을 예상했던 내가 무안해지리만큼.

평범한 질문이었다.

가슴팍에 꽂아둔 브로치를 괜스레 매만졌다.

캐스터 상점에서 천만원 가량을 일시불로 지르며 직원에게 받았던, 희귀 푸른 브라카스의 보석이 박힌 브로치였다.

“이거요?”

“네네. 그거 진짜 희귀 브라카스의 심장으로 만든 브로치 맞아요?”

“뭐… 진짜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은 캐스터 상점에서 직원 분이 주신 거에요.”

“와… 그럼 진짜겠네요. 그 브로치 진짜 귀하다던데. 캐스터 협회에서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준다고 하더라고요. 돈으로도 못 사는 거라던데.”

그정도인가?

근데 왜 나한테 준 거지.

직원이 시력이 안 좋았나.

크게 감흥은 없는 터라, 심드렁히 대꾸해주었다.

“그래요?”

“네네, 그럼요! 그 브로치 받은 캐스터가 각성석 두 개나 한번에 파밍한 거는 유명하잖아요!”

알고는 있었다.

그 일로 인해 한때 희귀 푸른 브라카스 브로치가 실검1위를 달성했었었으니까.

각성석 외에도 오리하르콘, 절대마력석, 만드라 등 최고급 전리품 획득에 브로치를 착용한 캐스터가 있었다며, 영험한 힘이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었지만.

가품 브로치가 인터넷에 판매되며 그 신빙성은 추락하고 말았었다.

판매가가 만 오천원이었나.

여하튼, 네잎클로버와 같은 행운의 상징인 것은 맞았지만.

행운을 위해 유사품을 착용하고 다니는 캐스터들이 많았기에 상징성은 하락한 터였다.

나 역시 막연한 기대감만 있을 뿐.

이걸 착용했다해서 각성석이 뜰 거란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었다.

배리가 브로치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흐음… 확실히, 강준씨거는 다른 브로치들하고는 다른 거 같아요. 보석이 빛이 난달까?”

“…그런가요.”

“진짜라니까요? 가짜들은 자세히 보면 탁한 색이거든요. 근데 이건 보석 속에서 뭔가 빛이 나는 느낌이네요.”

…부담스럽게 왜 이런담.

단답식으로 답하고 있단 걸 모르는지, 계속 말을 붙이는 그녀에 큼큼 헛기침을 해주었다.

다행히 우리의 거리가 샴푸내음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걸 알아챈 배리가 급히 상체를 당기며 거리를 벌렸다.

“아앗, 죄, 죄송해요. 신기해서 그만.”

“괜찮아요.”

“히히, 이번 레이드에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드네요.”

기분 좋게 히죽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는 배리.

그녀가 돌아가자 확보된 시야에.

최수창의 시샘어린 눈빛이 내게 쏘여지고 있는 게 보였다.

…으음,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그렇게 쳐다볼 필요까지야 있나…

본의 아니게 여성들의 관심을 독차지해버린 듯싶었지만 뭐 어쩌겠어.

브로치가 좋다는데.

“슬슬 출발할 때가 됐는데..”

서윤이 안나를 데리고 갔던 길을 보며 괜히 중얼거렸다.

파티리더인 안나가 공표해둔 휴식시간은 40분. 이제 5분여가 남았는데, 둘이 간 지가 벌써 15분이나 흘렀기에 살짝 걱정이 되었다.

설마…

둘이 치고박고 싸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육체각성자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고래싸움에 새우등 줘터지기는 싫었지만,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갔기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만에하나 그런 상황이라면 김배리나 최수창이 보기 전에 내가 수습하는게 차라리 나을 테니까.

그에 자리에서 일어서 둘이 향한 길로 막 걸음을 떼려던 순간, 먼발치에서 다급한 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금고블린 떴어요ㅡ!!”

뭐...?

화, 황금 고블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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