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26화 (26/68)

EP.25)D2 산림 던전 레이드 (1)

오늘부터 바빠질 거란 유서윤의 선언과 같이,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 미리 잡아둔 A급 던전 토벌 스케줄에 우린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했다.

왜?

근처에 토벌 명령이 떨어진 A급 던전이 없어 중부지방까지 내려가야했으니까.

캐스터 장비들을 챙기고 있자 유서윤이 내게 뭔갈 건네었다.

“강준아, 이거 착용해.”

“네? 이거를요?”

“웅.. 혹시 몰라서 맞춰뒀던 거야. 비상용으로. 가벼운 거라 입어도 안 불편할 거야..”

그녀가 건넨 것은 다름아닌, A급 헌터들이 착용하는 장비였었다.

연금학자들이 마석으로 제련한 재료로 만들어진 헬멧과 메일, 부츠까지.

전투용 갑주들이었는데 서윤은 그걸 내게 건넨 것이다.

A급 던전용부터는 장비값이 어마무시해진다.

부츠, 건틀릿 같은 작은 피스도 천만원 단위는 우스우며 갑주나 메일, 헬멧 같은 것은 억 단위까지 천차만별이었었다.

내가 아는 가장 비싼 갑주가 3억 5천인가 그랬는데, 내측에 냉난방건조 기능에 중력감응장치, 피해흡수장치, 반동조절장치 등등.

어벤저스의 아이언맨에 비등한 여러 전자장치들이 달려있었었다.

뭐, 갑주하의에는 소변 처리 기능도 있다고 하던데.

한번 입고 싸보는 게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값비싼 장비들은 외관도 소위말해, 좆간지 였었다.

남자들의 로망을 그대로 디자인 해놓은, 개간지 갑옷들.

언제 한 번 꼭 입어보고 싶었는데, 각성실패로 꿈을 접어야했었지....

그 갑옷들의 무게는 각성 육체가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었으니까.

비록 휘황찬란한 갑옷은 아니더라도, 중세시대 기사들이 내측에 입었을 법한 얇은 미스릴 메일을 입어보았다.

미스릴 광석으로 만들어진 메일이라 믿기 힘든, 가벼움이었다.

마치 실오라기를 걸친 것과도 같았다.

“이건 부스터 슈즈야. 몸 전체를 가볍게 만들어줘.”

와… 옆에 작은 날개가 달린 슈즈라.

외관상은 조금 유치해보일 수 있지만, 기능은 확실히 돈값을 하는 것이었다.

신체경량화에 따른 기동성 대폭향상.

괴수와 근접하게 싸우는 근딜들이 쓰는 슈즈였는데, 소이현이 쓰던 슈즈가 3천만원짜리였으니, 그 하위호환 정도 되는 슈즈이지 싶었다.

“그, 근데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캐스터는 최후방이라 안전문제는 덜하잖아요? 그, 그리고 저도 메일하고 경량슈즈 정도는 있는데..”

출근길을 배웅하는 아내마냥 미스릴 메일을 펴주는 서윤에 말이 더듬어진다.

밀착한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체취는 당장 껴안고픈 욕망이 들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하, 이런 아내 배웅 받으면 매일 레이드 뛰고 싶겠다.

아니, 그보다 일개 캐스터인 나한테 왜 고가의 헌터 장비들을 빌려주시는 거지..?

메일과 슈즈, 헬멧이라 활동성에 제약없이 방어와 기동을 올릴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그래도 다치면 안 되니까. 초행길이잖아. 앞으로 레이드도 무진장 뛰어야하는데… 글구 나 때문에 캐스터 하는데 이정도는 해줘야지이.”

“꼭 누나…”

무의식 중에 나와버린 `누나`라는 단어에 일순간 얼굴이 붉어진다.

아, 이래서… 호칭은 확실히 해두려던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망한 듯싶다.

서윤이 수줍게 미소지었다.

그녀의 볼에도 나와 엇비슷한 붉은 색이 묻어나왔다.

“히, 누나라 부르니까 듣기 좋네.”

“…아니, 꼭 누, 누나 때문에 하는 거 아니라고요..”

“그래도, 내가 부탁한 일이니까 우리 강준이의 안전은 내가 신경쓰는 게 맞아.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입어줘. 너 다치면 나… 무지 속상할 거 같단 말이야.”

…누가 매니저고, 누가 헌터인지 모를 지경이다.

착해도 너무 착한 거 아니냐고.

속삭이듯 내뱉는 걱정에 씰룩이는 입술을 참느라 애를 써야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늘 입꼬리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상형이 농담이 아닐지도...?

'그냥 착하신 거야. 호의를 사랑으로 착각하면 안 돼.'

서둘러 준비를 마친 우리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빠진 장비와 포션이 없는지 확인한 후, 곧장 레이드 장소로 향했다.

**

대전 계룡 국립 공원에 있는 D2 던전.

이미 한번 트라이된 던전이었는데, 최근 마물들이 늘어나 재토벌 명령이 떨어진 던전이었었다.

던전 속에 마물의 개체수가 늘기 시작하면 간혹 던전을 탈주해 민가를 습격하는 일이 생겨 이처럼, 국방부에서 던전 내부의 마물 개체수를 측정해 재토벌 공문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 공문에 길드들이 움직이는 것이고.

던전 앞 광장에 주차한 후, 장비들을 챙겨 내렸다.

탱커는 유안나.

딜러는 유서윤, 김배리.

힐러는 최수창.

어제 각 매니저와 길드에 재차 확인했었기에 다들 늦지 않게 도착할 터다.

뭐, 유안나는 모르겠다만.

길드에 알아보니 아직 전담 매니저가 없다고 했기에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었다.

“어, 다들 일찍 오셨나봐요.”

“그러게, 유안나도 있네?”

다른 멤버들의 이른 도착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유안나는 의외였다.

S급이라는 이유로 주인공마냥 출발 직전에 도착할지 알았더니만.

던전 앞 광장에 모인 우린 출발 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A급 딜러 김배리라고 해요. 유서윤 님하고 동일 포지션인데.. 약해도 너무 그러지 마셔용~”

“전 검은 깃발 소속 A급 힐러 최수창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맞다.

최수창 헌터는 검은 깃발 길드였었지.

가온 길드 바로 아래급 정도로 평가 받는 검은 깃발은 소속 헌터들의 군인급 절도 있는 행동과 언행이 특징인 길드였었다.

오늘 보니 딱 알겠네.

그만큼 소속 헌터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거겠지.

“저는 라온제나 소속 A급 딜러 유서윤이라고 해요. 여기는 제 매니저이자, 캐스터 일을 맡아줄 이강준이구요.”

“반갑습니다. 첫트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허리를 꾸벅 숙여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물론 유안나 쪽은 아니었었다.

고개를 들고 유안나를 흘금 쳐다보았는데.

딱히 의중을 읽기는 힘든 무표정이었었다.

그 무표정이 나를 쳐다보다 이내 파티원들에게로 향했다.

“반가워요. 저도 라온제나 소속 S급 탱커 유안나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려요.”

유안나의 정중한 인사.

그 나긋한 인사에 파티원들은 한번 서로를 번갈아보아야했다.

이미 항간에 미녀사총사 파티의 분열과 유안나의 변화에 대해서 소문이 도는 상태였다.

그 변화가 왜,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탓에 놀란 것이다.

S급이라는, 고귀한 귀족급 신분의 그녀가 `정중한 인사`라는 것을 하리라곤 상상지 못했을 테니까.

“그럼, 5분간 정비시간을 갖고 진입하도록 할게요.”

파티는 당연히 안나가 리더를 맡게 됐다.

던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비시간을 가지게 됐고, 서윤이 잠시 차에 갔다고 온다며 자리를 비웠는데, 기다렸다는듯(?) 안나가 다가왔다.

하지만 말을 붙이지는 않는 그녀, 마치 수줍음 타는 소녀마냥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에 한숨을 푹 쉬곤 물어야했다.

성가시다, 성가셔.

“…또 왜.”

“아, 아니. 그… 잘있었나해서.”

누가 보면 한달은 안 본 사이인 줄 알겠네.

“우리가 아직 안부 물을 정도로 살가운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그나저나, 포션은 잘 챙겨 왔니? 매니저도 아직 안 둔 것 같더만.”

안나가 무슨 007보따리라도 보이듯, 제 허리춤에 찬 작은 천보따리를 열어 은밀히 내게 보여주었다.

천 형식의 마나포켓이었다.

“여, 여기… 잘 챙겨왔어. 아무리 A급이라도 조심해야하니까. 혹시 몰라서 마나포션도 챙겨왔어. 부족한 사람이 생길지 모르니.”

“웬일? 혼자서도 잘 챙겨오고.”

“…이제라도 혼자 해보려구.”

“늦었지만 잘 깨달았네. 근데, 왜 새 매니저는 안 보여? 길드에서 바로 붙여줄 텐데?”

“…매니저는 공석이야. 길드장님한테도 필요없다고 해놨어.”

S급이 매니저를 두지 않는다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스님처럼, 스스로 고행길이라도 걷겠다는 건가?

뭐, 나와는 상관없을 일이기에 그냥 고개를 주억거려주었다.

그때, 서윤이 건틀릿 끈을 조으며 다가오는게 보였고.

안나는 뭐라 중얼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네 곁에 갈 때까지.”

뭐, 별 말 아니겠지.

**

던전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에게 신분증을 검사 받은 후, 동굴처럼 생긴 입구의 앞에 섰다.

푸른 소용돌이를 위에서 본듯한 마나막이 처진 입구. A급 던전은 초행이라 어제 소민이를 보고 하우스로 온 후, D2 던전의 트라이 영상과 정보들을 꼼꼼히 파악해두었었다.

뭐, 그럼에도 첫경험이란 건 늘 떨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전방에 선 유안나란 S급 탱커의 존재에 확실히 긴장감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다.

이러니 A급 토벌 신청 파티 목록에 S급 유안나를 파티 리더로 지정하자 벌떼 같이 신청서가 몰려들지.

그리고 인성파탄자란 별칭도 참회와 회개를 통해 서서히 없애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듣자하니, 그간 마주쳤던 헌터들과 매니저들에게 사과하고 다닌다던데.

열심히 하는 모습은 뭐, 보기는 좋은 듯싶다.

아직 반성도 안 하는 년들과는 확실히 다르니까.

그 유안나가, 초입의 마나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출발할게요.”

두번 째 트라이임에도 살짝은 전운이 감도는 파티.

곧, 지잉하는 전자파소리와 함께 마나막을 통과했고.

우리는 어느 수풀이 우거진 산림지역에 도착했다.

D2 던전의 컨셉은 산림지역이었었다.

그렇기에 캐스팅 장비도 광석 채집류가 아닌, 식물 채칩류가 주였고.

어젯밤에 벼락치기로 산림 던전에서 채집되는 식물류를 공부하느라 진땀을 뺐었었다.

광석과 달리 식물류는 분간이 힘들었었으니까.

선두에 선 유안나가 제 몸만한 커다란 방패를 들었다. 마나가 흐르는, 던전의 내부에 들어와 육체각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으음, 그녀와 최대한 떨어져야겠는걸.

지금의 그녀라면 `날 모욕한 대가를 치루게해주마!`라며 방패로 날 때려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은.

“그럼 A1 구역으로 출발할게요.”

““네!””

유안나의 명에.

우린 정글과 같은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진 산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나의 건틀릿에 떠오른 홀로그램창을 지도삼아 빠르게 토벌을 이어가는 파티.

이미 한번 트라이되며 구역별 정보와 지도, 그리고 마물의 리젠 위치가 홀로그램 창에 표시됐었기에 큰 위협은 없었었다.

그리고 제 아무리 하위랭킹이라도 S급 탱커가 전방을 지휘하는데, 위험할 게 뭐있겠는가.

그덕에 난 그들의 뒤를 따르며 편하게 희귀약초를 채집할 수 있었다.

확실히 돔 형식이나 미궁 형식의 던전보다 산림 형식의 던전이 캐스팅하기엔 편했다.

대신, 반짝이며 자신을 캐라고 알리는 광석들과는 달리 일반 풀잎과 꽃처럼 생긴 식물들에 분간하느라 애를 쓰기는 해야했지만.

“여기서 잠시 쉬었다갈게요.”

어느새 도착한 A3 구역.

D2 던전의 경우 A10 구역까지 있었기에 A3 구역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 우린, 수풀로 우거진 공터에 앉아 불을 피웠다.

그리고 도란도란 둘러앉았는데, 마치 캠프파이어를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A5 구역에서 밥을 먹을 계획이었기에, 난 마나포켓을 열어 각 매니저들이 전해준 간식류를 해당 파티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대부분 프로틴바나, 견과류바 같은 섭취가 편하고 영양가 있는 간식류들이었다.

“고마워.”

내가 건넨 프로틴바를 받은 서윤이 싱긋 웃었고, 나 역시도 같은 프로틴바를 먹었다.

헌데, 가만히 앉아 모닥불을 응시하는 안나가 눈에 들어왔다.

앞서 얘기했듯, 캐스터들이 대용량 마나포켓을 이용해 매니저들, 혹은 헌터들이 직접 챙겨온 식사와 간식거리들을 보관한다.

하지만 유안나에겐 받은 적이 없었다.

아까 은밀히(?) 내게 보여준 작은 마나포켓에 섭취할만한 것도 보이지 않았고.

끙, 포션류랑 장비들을 챙기다보니 먹을 걸 챙겨오지 못한 건가.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유안나.

“누나, 유안나한테도 좀 나눠줄까요? 안 챙겨온 거 같은데.”

“응, 난 괜찮아.”

그에 프로틴바 하나를 꺼내 유안나를 불렀다.

“유안나.”

“으응?”

이와중에 S급의 여유란 건가, 불멍을 때리던 안나가 대답했고, 프로틴바를 던져주었다.

“먹어둬. A5 구역까지는 시간 오래 걸리잖아.”

프로틴바를 받은 안나의 눈빛에 알 수 없는 뭔가가 차오른다.

...이사벨라부터해서 요즘 왜 이렇게 불쌍해보이는 것들이 눈 앞에 채이는 건지.

“아... 고, 고마워.”

“나한테 인사할 게 아니라 서윤 누나한테 해.”

안나가 서윤을 쳐다보았다.

“...누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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