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24화 (24/68)

EP.23)이사벨라와 소민, 그리고 시작된 쟁탈전!

대한민국에서 인공 장기 이식수술로는 정평이 나있는 레디컬 병원.

그중에서도 마력장애에 의한 장기손상을 치료하는 기술로는 세계적인 유명세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수술비용과 입원비용, 치료비용 등이 비싸기로도 유명했었고.

그런 병원에서 벌써 2년 반을 입원해있는 소녀가 있었다. 아니, 소녀였던 여자가 있었다.

청소년으로 입원해 이젠 성인이 되어버렸으니까.

경비가 느슨해진 틈을 타 F급 던전에 들어갔다가 마력장애로 인해 장기손상을 입은 그녀는 현재 인공 장기 이식 수술을 기다리는 중이었었다.

그때의 일이 후회스러웠지만, 성인이 되면 어차피 각성 테스트를 해볼 생각이었고.

같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일어날 일이 일찍 일어난 것일 뿐.

단지…

자신을 위해 죽어라 일을 하는 오빠에게 미안했다.

병원에서도 가장 넓고 호화스런 병실인 특실에 꼭 있으라며, 꾸역꾸역 자신을 밀어넣은 오빠.

일반 병실도 괜찮다며 수도 없이 얘기했지만, 오빠는 단호히 거절했었었다.

돈 대는 사람 마음이라며.

넌 그저 거기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라고.

인공마력이 유지되는 병실의 한달 입원비만 해도 500만원은 드는 듯했었는데, 약값 역시 입원비 만큼은 들어가는 듯했었다.

게다가 수술 비용도 어마어마한 듯했었고.

이식할 장기가 두 개였으니까.

그렇기에 어서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 오빠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야속하게도 인공 장기는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치료를 포기하고 인공 장기 이식 결정을 한 지 꼬박 13개월이나 지났다.

마력 장애로 인해 손상된 장기는 일반 인공 장기로는 이식이 불가해 맞춤 제작을 해야한다는 건 이해한다만, 속이 타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었다.

“힝, 어서 수술하고 싶어.”

창백한 피부와 수척해진 얼굴임에도 앳된 미가 남아있는 이소민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투덜거렸다.

병상에 누워 있는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여성이 말을 받았다.

“다음 달이 수술이잖아. 오래 기다린 만큼, 꼭 잘 될 거야. 너무 조급해 말아.”

“그치만… 오빠가 고생하니까..”

“오빠는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언니가 좋은 소식 들고 왔는걸?”

“왱? 뭔뎅뭔뎅?”

“그 나쁜년들한테서 드디어 탈출했더라? 그리고 굉장히 좋은 헌터님 만난 거 같던데?”

“정말? 진짜야?”

“응~ 언니가 두 눈으로 봤어.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났거든.”

환기차 열어둔 창문에서 바람이 들어왔고, 붉은빛 머리칼이 한번 찰랑였다.

소민이 간만에 눈을 초롱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헐, 대박! 어, 어떻게?”

“이번에 B급 레이드 갔었는데 거기 A급 헌터님 매니저로 왔더라구. 캐스터 일도 하던데?”

“뭐야뭐야, 그런 일이 있었어? 오빤 참 진짜. 일 얘기는 아예 입도 뻥긋 안 한다니까?”

“혹시나 너가 걱정할까봐 그런 거겠지. 그리고 걔네들한테서 탈출하자마자 이직한 거 같던데? 바빠서 말 못했을 걸?”

“피, 안 바빠도 일 얘기는 안 해줄걸. 그나저나 A급 헌터님은 어떤 사람이야? 착해?”

허리춤까지 오는 붉은 머리칼이 탐스러운 그녀, 이사벨라가 그날을 회상하며 미소지었다.

그녀의 곁에 서있던 강준은 확실히, 행복해보였었다.

“그럼, A급 중에서 실력도 좋으시고 착하시기로 유명한 분이야.”

“아아… 정말 다행이다! 진짜, 흐잉…”

마음의 짐이 조금이나마 덜어진 듯해 소민의 눈동자에 물기가 서렸다.

자신을 위해 그 나쁜 년들에게서 3년간이나 버틴 오빠. 전화할 때마다 힘이 들어도 애써 힘을 내는 목소리는 늘 마음을 아프게 했었었다.

돌이켜보니 어제 전화했을 때는 꽤나 밝은 목소리였었지.

“다행이다.. 정말.”

“그럼~ 그러니 걱정마시고 수술 준비나 잘하세요~ 그리고 직접 그 헌터님 보니까 엄청 예쁘시더라. 오빨 조금 좋아하는 느낌도 있고?”

“저, 정말? …언니는 괜찮아..?”

물음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에.

이사벨라는 슬픔을 지우려 애써 웃었다.

병실에 오래 있어서 그런가.

이 지지배는 사람 슬프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다며 속으로 핀잔을 준 그녀가 소민의 손등을 괜히 살짝 때렸다.

“쓸 데 없는 소리할래? 언니가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너희 오빠만 행복하면 언닌 진짜 괜찮다니까?”

“그치만… 오빠 일부러 피해다녔었잖아. 병문안도 꼭 오빠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고 오고.”

“자꾸 쓸 데 없는 소리하면 점심에 밥알 하나까지 다 먹는지 체크할 거야.”

“…그, 그건 심하잖아..!”

“어허, 진짜 체크한다?”

“...아, 알았다궁.”

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진 제 오빠의 동생 아니랄까봐. 포기하는 듯하면서도 집요하게 물어보는 소민이었다.

“그럼… 그것도 얘기 안 한 거야? 만났을 때?”

“어휴, 끈질기다 끈질겨. 그렇게 궁금해?”

“당연하지..! 난 무조건 언니랑 오빠랑 결혼하길 바란다고..!”

“풋, 농담도 참..”

이사벨라의 뇌리에 그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얘기할 뻔 했었었다.

집 앞에서 소변을 지리는 여성만 아니었다면.

하지만 그탓에 쫓겨나버렸고, 얘기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었다.

대체 유안나 헌터와는 무슨 사이인 걸까.

며칠간 생각해봤지만 집 앞에서 소변을 지리는 사이는 무어라 형언하기가 힘들었었다.

그에 기억을 다시 덮어두기로 했다.

“때가 되면… 얘기할 거야. 어쩌면 안 할 수도 있고. 아니, 안 할 가능성이 높아.”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다 늦으면 어떡해. 때를 만드셔야죠, 언니님아.”

“어차피 늦었어. 오빠랑 난 다시 예전으로는 못 돌아가. 5년이란 시간은 기니까. 그러니 헛물은 그만 켜세요.”

“…내가 얘기해볼까?”

“쓰읍, 비밀로 하기로 한 거 약속지켜야지? 안 지키면 언니 안 온다고 했어.”

“알았엉…”

이사벨라의 으름에 금세 풀이 죽어버리는 이소민. 그 모습이 짠했는지 이사벨라가 싱긋 웃으며 손등을 따스히 쓰다듬었다.

“내일 오빠 온다고?”

“웅!”

오빠의 방문이 기대되는지, 울적한 얼굴에 일순간 꽃이 활짝 핀다.

그만큼 소민에게 오빠는 소중한 존재였었다.

“좋겠네, 우리 소민이는.”

그런 소민을 보며 내뱉는 한탄 섞인 이사벨라의 말.

`좋겠네`라는 단어에 부러움과 슬픔이 담긴 것을.

소민은 알 수 없었다.

“그럼~ 오빤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멋진 오빠인걸!”

**

라온제나 길드의 대표실.

불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에 강백이 창가에 서서 사색에 잠겨있다 고개를 돌렸다.

제 집무실을 노크도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사랑스런 딸 유서윤이었다.

그에, 마침 잘 됐다며 그녀를 쇼파로 안내했고.

우선 그녀가 먼저 용무를 꺼내기를 기다렸다.

패는 아껴두는 게, 필승전략일 테니까.

“우리 딸이 어쩐 일로 방문하셨을까.”

애정이 꿀처럼 뚝뚝 떨어지는 자애로운 목소리로 딸을 부르는 강백. 하지만 유안나와의 만남으로 날이 선 서윤은 그 목소리에 화답해주지는 못했다.

느낌이 불길했다.

사실 제 아버지에게 `볼 일`같은 것은 없었었다.

그저 강준과 떨어지기 싫어서 부려본 고집이었는데, 유안나를 마주한 이상.

그 `볼 일`이라는 것이 생기고 만 것이다.

“유안나... 설마 우리 길드에 가입하는 거에요?”

“허허허! 벌써 소문이 도는 게냐? 가온 길드를 탈퇴하고, 새출발을 하기 위해 우리 길드를 선택했다는구나.”

유안나의 눈썹이 움찔했다.

황당했다. 라온제나 길드가 좋은 길드인 건 사실이나, S급을 영입할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녀였다.

아버지에겐 미안하지만.

그렇기에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 말도 안 돼요!”

“허허, 나도 믿기지 않아 몇번이고 물었고, 방금 계약서까지 사인했단다.”

“그, 그럴 수가...! 아니 대체 왜 저희 길드라는데요? 가온 길드 아니더라도 검은 깃발이나 하얀 늑대들 같은 명문 길드들도 있잖아요..!?”

“어허, S급을 영입했다는 건 축복할 일이지 않느냐?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다만, 성격도 바뀐 것 같고 말이야. 나한테 그간 결례가 심했다며 사과를 다 하더군, 깜짝 놀랄 일이지? 허허허!”

좋은 일이다.

길드 차원에서는.

하지만, 강준과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었다.

여자의 촉으로서, 유안나는 지금 강준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했으니까.

방금 전만해도 어울리지도 않는 수줍음 타는 모습은.

확실히 이전의 그녀가 아니었었다.

“하... 갑자기 이게 무슨. 대체 이유가 뭐라고 하던가요? 진짜 이유요!”

“흐음... 그건 유안나 헌터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선 캐고 다니지 마, 알겠어?”

“아, 아빠! 전 딸이잖아요!”

“어허, 넌 내 딸이기도 하고 우리 길드의 유망주 헌터기도 하잖느냐. 공과 사는 구분하도록해. 그리고.. 유안나 헌터가 너와 함께 레이드하고 싶다더구나. A급 던전에서 말이야.”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걔랑 왜 레이드를 해요! 아빠도 걔 아시잖아요. 탱킹하다 불리하면 도망갈 사람이란 걸요..!”

강백이 표정을 엄하게 굳히며 고개를 저었다.

세월의 눈으로 봤을 때, 유안나는 진심이었었다.

유서윤을 돕고 싶다며, 타 S급 헌터들과 S급 던전을 돌면서도 그녀의 안위를 위해 A급 던전도 탱커 용병을 해주겠다는 제안은 진심이었었다.

그의 입장에선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었다.

S급 헌터가 제 시간을 할애해 딸의 탱킹을 보장하겠다는데.

어찌 거부하겠는가.

그렇기에 단호히 말했다.

“어허. 그간 레이드 영상 기록들을 보니 유안나 헌터가 탱커의 의무를 저버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었다. 마지막 레이드에서도 부상을 입으면서까지도 보스 어그로를 놓치 않았지. 비록 마지막에 실수는 있었다만 말이다. 성격은 그랬을지 모르나, 책임감은 높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모두 널 위해서야. 그러니 토 달지 말거라.”

“아, 아빠!”

“어허, 두번 말하게 하지마.”

헌터들은 길드의 직원이자, 국방부 소속이었었다.

괴수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임명된 국가전력이라는 것.

그렇기에 국방부에서 헌터들의 무지성 레이드 회피를 용인하지 않고 있었다.

국가전력이니만큼, 이유 없는 레이드 회피는 직무유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따로 처벌은 없었지만, 장기간 토벌 기록이 없는 헌터들에 대해선 조사가 들어왔었고, 길드 입장에선 당연히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었다.

헌터 관리도 못하는 길드로 박제되버리면, 국방부의 은근한 압박을 받고는 했으니까.

하여 헌터가 되버린 제 딸에게 레이드를 만류할 수는 없었었다.

빈도 수는 줄일 수 있어도 헌터를 그만두게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입장에선.

딸의 안전을 위해서 S급 탱커가 전방을 든든히 맡아준다는데 어찌 거절하겠는가.

하지만 제 딸은 영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입술이 삐죽 나와있었으니까.

강백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강준 매니저에게 너무 정주지 말거라, 무슨 뜻인지는 너가 잘 아리라 믿는다.”

“...싫어요.”

“그녀석이지?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 이제야 알겠더구나.”

“네.”

“...설마 그녀석이 가온 길드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린 것이냐?”

“네.”

“...!”

강백의 노쇠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릴 적부터 얘기해오던 아이. 자신을 구해준 그 아이에게 꼭 시집가겠다며 떼를 쓰던 딸.

머리가 큰 이후로는 얘기하지 않았었기에 잊은 줄 알았건만....

십수 년간 딸은 한시도 잊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만약 서윤이 헌터만 아니었더라도.

그녀의 고집에 못이겨 한발 물리겠지만은... 평생의 운명이 헌터로 점철된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하아, 길게 말하지 않으마. 너의 배필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이다. 곧 좋은 배필을 데려올 테니 그때까지 마음정리하도록 해.”

“아, 아빠! 배필은 내가 정해요, 내 인생이라구요!”

“이놈!! 내 너희 어미에게 약속했었다. 꼭, 너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붙여주기로! 헌데 너는 어찌 이리도 아비 마음을 몰라준다는 말이냐!”

기어이 터져나오는 맹렬한 호통.

강백은 이 호통이 딸에게 상처줄 것을 알지만서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자신의 노력을 무시한 것도 모자라 기만까지한 것이다.

서윤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른다. 야속하고, 원망스러움에 울분이 차올랐다.

“...진짜 너무해요!!”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유서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백의 눈빛에도 서글픔이 가득했다.

호통을 쳤으나... 자식에게 미움 받는 것은 늘 마음이 아픈 일이니까.

하지만 유안나와 약속도 했었고, 더 이상 서윤을 그의 곁에 둘 수는 없었다.

“하아... 답답한지고... 여보,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긴 한숨이 제 아내가 있을 하늘로 향한다.

**

달리는 차 안.

고요한 적막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과 함께 차 안을 메운다.

차창 너머를 응시하며 상념에 잠긴 서윤에 강준은 뭐라 말도 못 붙인 채, 조용히 차를 몰고 있었다.

안나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을 줄 알았는데, 차에 오른 서윤은 별 말 없이 상념에 잠겨버렸고, 그뒤로 계속 차창만 응시하고 있는 상태였었다.

그에 강준은 뻘쭘히 전방만 응시할 수밖에 없었었다.

그녀를 모신 이후로.

가장 고요한 귀갓길인 듯싶었다.

하우스에 다다랐을 즈음, 상념에서 깨어난 서윤이 그를 불렀다.

“강준아.”

“네.”

“...A급 던전 레이드 스케줄 있는 대로 전부 잡아줘. 휴식기 없어도 상관 없으니까. 전부 다.”

“...네? 지, 진짜요?”

“응. 그리고, 탱커 포지션엔 무조건 유안나 넣고. 걔가 자처한 거니까 토를 달지는 않을 거야.”

“네..? 지, 진짜요? 걔를 왜, 왜요..?”

영문 모를 그녀의 말에 강준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윤의 눈빛엔 강렬한 투지가 비쳤다.

상념의 결과로, 유안나, 요망한 계집의 뜻 모를 꼼수를 역으로 이용하기로 한 그녀였다.

제 발로 자신의 방패막이를 자처했으니, 그 방패막을 마음껏 부려먹어 레이드를 뛰는 것이다.

그리고 업계에서 유안나에 대한 평판이 나아지고 있는 만큼, 파티원들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이고.

어쩌면, 오히려 잘 된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안나의 탱킹을 이용한다면, A급 던전을 무차별적으로 토벌할 수 있을 테니까.

아무래도 당분간은 바빠질 듯싶다.

말을 마친 서윤이 입술을 앙다물며 노을을 응시했다. 저 붉은 빛깔과 같은 색의 돌이 꼭 필요했다.

그의 꿈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각성석을...'

그렇게 그녀는 앞으로의 계획을 치밀하게 구상하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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