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22화 (22/68)

EP.21)삼자대면

“오랜만에 뵙네요.”

“그, 그렇구만그래. 근데... 어쩐 일로? 아차차, 내 정신 좀 보게. 이리 앉지.”

유안나의 느닷없는 방문에 놀란 강백이 급히 그녀를 쇼파로 안내했다.

그리곤 인터폰으로 비서에게 커피를 부탁한 후, 상석에 앉았다.

“그간 무례하게 굴었던 점.. 사과드릴게요.”

그가 쇼파에 앉자 다시금 고개를 공손히 숙이는 유안나.

그에 강백은 또 다시 놀래야했다.

자신이 아는 유안나가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녀의 태도는 변화되어 있었으니까.

안하무인한 집단, 미녀사총사란 헌터 파티의 리더인 그녀는 업계에선 이미 유명인사였었다.

인성파탄자로.

그런 그녀가 대뜸 사과를 한다?

대체 무슨 연유로 이러는지 감히 짐작하기조차 힘들었다.

강백이 어색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허허, 아, 아닐세. 뭐, 무례는 무슨.”

“아닙니다. 한 길드의 수장님이신데... 그간 무례를 범했죠. 인사조차 드리지 않고.”

“뭐... 괜찮으니 염려말게나. 근데... 왜...?”

함축적인 물음이 담긴 `왜`란 단어에 유안나의 눈동자가 빛난다.

질질 끌 필요는 없었다.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미 모든 마음 정리를 끝냈었으니까.

“...가온 길드에서 탈퇴했습니다. 어차피 계약 만료일도 다 되었구요.”

갑자기?

강백의 미간이 꿈틀댄다.

세계적 명성도 거머쥐고 있는 한국 최강의 길드인 가온. 모두가 입단하고 싶어하는 선망의 길드인 그곳을 추방이 아닌, 탈퇴를 했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었다.

“아, 아니... 왜? 가온 길드라면 최고의 길드이지 않은가. 연봉도 어마어마하다고 하던데..”

“돈이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았거든요.”

“그런가...? 대단한 결정이었겠구만. 근데... 그 얘길 내게 하는 이유가 뭔가..?”

“라온제나 길드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뭬, 뭬이야..?!”

껌쩍놀라 엉덩이를 들썩이고는 방언마저 터뜨리는 유강백.

내려와있던 눈꺼풀이 승천하고, 흑색 동공이 사시나무마냥 떨려댔다.

장난이 심한 것 아닌가, 라며 호통을 치려다가 그녀의 진중한 눈빛에 멈추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게 대관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란 말인가?

한국 최강의 길드를 탈퇴하고, 라온제나 길드로 가입을 한다고?

라온제나 길드도 중형 길드이긴하지만, 가온 아래 대형 길드들도 있었기에 굳이 라온제나에 가입하겠다는 선언은 정말이지.

황당할 정도였다.

만약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장 심정지로 응급실을 가야할 정도로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으며, 화들짝 놀랄 선언이라는 것이다.

“뭐... 뭐라고? 지금 자네, 우리 길드에 가입하고 싶다고 한 건가? 내, 내가 헛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고..?”

“네. 맞아요. 라온제나 길드에 가입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대, 대체 왜...?”

S급 헌터는 대형 길드들이 늘 눈독들이는 존재였다. 국내에 몇 없었기에 해외에서라도 영입을 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게 S급 헌터란 존재인데.

그런 S급 헌터가 자진해서 찾아와서는 중형 길드에 가입을 하겠다고 한다?

연일 매스컴에 보도될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었었다. 아니, 당장 오늘부터 라온제나란 길드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강백의 벌어진 입가가 서서히 반원을 그리기 시작한다.

S급 헌터 한 명만 있어도 라온제나의 위상은 드높아질 것이고, S급 추가 영입을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었다.

길드의 발전에 무한한 밑거름이 되어줄 달콤한 제안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복이 제 발로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아주 큰, 대복大福이.

하지만 이내, 그의 입가가 굳으며 다물어졌다.

“허, 헌데... 다른 건 모르겠으나.. 자네도 알다시피 가온 길드는 세계적 길드인데다... 국내에서 가장 큰 대형 길드이지.. 그러니까 말일세...”

돈이 문제다.

라온제나의 재정상황이 안 좋은 것은 아니지만, 유안나에게 지급할 계약금과 연봉은 막대할 것이고, 그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A급 헌터도 한 명 밖에 보유하고 있지 못했었고, 평균 A급 헌터 계약금만해도 실력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10억여원대였었다.

게다가 S급 헌터로 진급하는 경우가 드물기에 S급의 계약금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단위였고.

그렇기에 강백은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물려주어도, 마냥 웃으며 삼킬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유안나가 사탕을 잘게 깨서라도 삼키게 만들어줄 요량인 듯했다.

“계약금은 없이, 던전 수익금만 받겠습니다.”

“뭬, 뭬이야?!”

미친 소리다.

미친 제안이다.

아니, 계약금을 받지 않고 던전 수익금만 받는다고?

이는 분명 방언을 또 터뜨려야할만큼, 미친 소리였었다.

대체 왜?

라온제나 길드가 헌터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건 사실이나, 천문학적인 돈을 거절하고 입단할만큼.

매리트가 있는 길드는 아니었었다.

“어허, 자, 자네. 이 늙은이를 그만 놀리게나...! 장난이 심하군그래..!”

그에 결국은 호통이 나오고 말았다.

심술 궂은 장난이거나, 무슨 좋지 못한 꿍꿍이가 있는게 분명했다.

하지만 유안나의 미소는 거두어지지 않았다.

“진심입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이곳에 있거든요.”

“그, 그게 무슨? 아니, 진짜 진심이란 말인가? 계약서를 진짜 그렇게 쓰겠다는 말인가?”

“네. 바로 쓰시죠. 저는 괜찮습니다.”

굴러 들어온 복이 다시 굴러서 나가버릴까, 하는 노파심에 곧바로 비서를 호출해 계약서를 부탁하는 강백.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펜을 잡은 손도 무자비하게 떨려댔다.

그만큼, S급 헌터의 영입은 라온제나 길드에 커다란 영광이었었다.

“아, 아니 근데 대체 왜 이러는 건가? 이 늙은이 심장이 다 떨리는군그래. 대체 왜? 왜 우리 길드에 들어오려는 게야? 계약금조차도 받지 않고?”

유안나의 고운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신....”

꿀꺽, 입단하는 이유가 나오려는 그 접두사에 강백의 울대뼈가 크게 움직인다.

두근두근, 심장 고동이 미친듯이 펌핑을 해댔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짧은 적막이 흐르고, 마침내 튀어나오는 이유.

그 이유를 들은 강백은 환한 미소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길드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볼 것 없는 이유였으니까.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S급 헌터가 계약금도 없이 길드에 가입하겠다는데. 어떤 불합리한 조건이라도 들어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비록 인성파탄자라는 이명을 달고 있지만, 지금 보아하니 인성개변도 된 듯했고.

맞잡은 손을 크게 흔들며, 강백은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허허허! 조, 좋아! 앞으로 잘부탁하네! 유안나 헌터!”

악수를 받은 안나가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핑크빛 머리와 잘 어울리는, 핑크빛 입술이 형광등에 한 차례 어여쁜 빛을 낸다.

**

어제는 레이드 뒷날이라 휴식을 가졌었지만, 오늘은 일정대로 움직여야했기에 오전부터 유서윤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오전에는 앞전에 있었던 B급 던전 레이드의 브리핑이 있었고, 오후에는 체력 훈련이 있었었다.

오후 일과까지 성실히 마무리한 유서윤이 차에 올랐다. 샤워 후 퍼지는 향긋한 그녀의 살내음은 언제 맡아도 최고라니까.

“휴, 많이 기다렸지.”

“괜찮아요, 그럼 하우스로 갈까요?”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기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우스로 향하는게 일반적인 스케줄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기분 좋은 비음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음~ 강준이는 길드에 가야되지?”

“넵. 레이드 결과 보고가 있어서.”

매니저는 헌터가 하루 휴식하는 동안, 길드에 던전 레이드 결과를 보고할 자료를 만들어야했다.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경우에는 작성할 자료가 많지만, 특별한 게 없을 경우엔 그냥 형식적인 자료였었다.

레이드에 걸린 시간, 비용, 정산금, 헌터의 상태 등등.

작성한 자료를 가지고 휴식 다음날, 길드사무소의 [ 토벌관리과장 ]에게 자료를 들고 대면보고를 해야했었다.

“그치? 그럼 오늘은 강준이 따라가볼까나~?”

“길드를요?”

“응~ 어차피 아버지한테 할 얘기도 있고 겸사겸사?”

“네? 아버지요?”

“웅. 아~ 강준이는 아직 몰랐구나? 길드장님이 우리 아빠야.”

뭐?

어쩐지 길드 계약 당시에 서로의 얼굴이 닮은 것 같더니만. 역시 가족이었구나.

음... 그렇다면 일할 때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길드 내 유일한 A급 헌터이자 실력자인 딸이 매니저와 하하호호하는 걸 그리 달갑게 보시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구나, 어쩐지 닮으신 거 같더라니.”

“헐, 아빠랑 나랑 닮았어? 하나도 안 닮았는데.”

“보통 잘 모르더라고요. 닮은 걸 싫어해서 그러는지. 어쨌든 그럼 길드로 갈까요?”

“웅. 길드로 가자.”

“넵.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라온제나 길드 사무소로 향했다.

**

길드 건물의 지하에 차를 주차한 후, 엘리베이터에 올라 3층을 눌렀다. 대표실과 토벌관리과가 같은 3층이었었다.

[ 문이 닫힙니다 ]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어 있는 라온제나 길드의 십계명을 훑어보며 기다리고 있자, 이내 3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하지만 별다른 생각없이 나서려던 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 듯한 한 여성에 의해 멈추고 말았다.

두 눈동자를 의심해야했다.

사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근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눈동자.

그리고 시선을 압도하는 생기 넘치는 짙은 분홍빛 머리칼.

...여성은 다름아닌, 유안나였다.

“유, 유안나...? 여길 어떻게...?”

헌데 만남을 예상이라도 한 건지, 당혹스러워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태연했다.

“...다시 보게 되서.. 반가워.”

반갑다라....

나는 그냥 당혹스럽기만 한데.

그녀는 반가운 모양이다.

뭐, 이제 악감정이 없으니 불쾌하지는 않은데... 어째서 그녀가 라온제나 길드에 있는 거지?

그때, 등 뒤에서 유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이제껏 내게 건네던 상냥한 말투가 아닌 날이 서있는, 적대감마저 느껴지는 어투였다.

“...유안나?”

그 싸늘한 부름에 시선을 내 등 뒤로 돌리는 유안나.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지만 내게 짓던 미소와는 다른, 왠지모를 적대심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얘기 들었어. 강준씨랑 같이 일한다고. 유서윤.”

“...너가 왜 여기 있는데?”

유서윤의 물음에 안나는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건... 강준씨와 단 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아니, 갑자기 나는 왜?

“...강준씨 미안한데.. 잠깐만 시간 내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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