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20화 (20/68)

EP.19)유안나의 전격 이적!

“지, 진짜요? 상상도 못했네요. 헌터님하고 접점이 있을 줄이야.”

“친구는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지 뭐. 아카데미 다닐 때도 서로 친하지는 않았어.”

하긴, 선녀 같은 유서윤과 악마 같은 유안나는 어울릴 수가 없었겠지. 뭐, 지금의 유안나라면 조금은 어울릴 지도. 그나저나 같은 아카데미 였다니 의외네.

“사실 가끔 너도 봤었어. 던전 토벌 선발대 회의 때 가끔 미녀사총사 걔들이랑 마주쳤었거든.”

아, 역시.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헌데 한번만 마주쳤어도 기억에 또렷히 남을 정도로 유서윤의 얼굴은 황홀경, 그 자체인데 어째서 낯이 익은 정도만이지?

“근데 왜 기억이 안 나죠..? 헌터님 뵜다면 분명 기억할 텐데.”

“뭐... 마스크랑 선글라스를 주로 착용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가?”

생각해보니 조막만한 얼굴에 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던 여성 헌터 분이 기억나긴 한다.

근데 바깥도 아니고, 헌터들 뿐인 회의장에도 굳이 선글라스를 낀 이유는 뭘까?

며칠 간 그녀를 모셨지만, 선글라스를 꼈던 경우는 없었는데.

하지만 굳이 물어보기엔 너무 하찮은 질문 같아 그냥 담아두기로 했다.

무슨 이유가 있으시겠지.

“어쨌든, 유안나가 너한테 사과를 했다는 거지? 천하의 유안나가?”

짐짓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묻는 유서윤.

그녀가 아는 유안나는 인간말종일 것이기에 다소 충격을 먹은 듯도보였다.

나 역시도 그녀가 이렇게나 바뀌리라곤 생각지 못했었으니까.

“처음엔 당연히 사과보단 붙잡기식이더라고요. 근데 뭐.. 어쩌다보니 반성문도 적고 진심으로 후회하는게 보여서 용서하기로 했었어요.”

“그렇구나... 역시 내 남... 아, 아니, 강준이는 마음도 넓다니까. 어떻게 그런 애를 용서할 수가 있대? 걔 아카데미 다닐 때도 어마어마했었거든.”

“유안나 보게 되면 깜짝 놀라시겠는데요?”

“핏, 아직 실감은 안 나. 걔가 사과라는 걸 했다는게. 어쨌든 유안나 빼고는 아직 반성조차 안 하고 있다는 거네? 하여튼 나쁜 것들. 우리 강준이를 감히 잘도 못살게 굴었겠다..!”

악보 크레센도마냥 점점 목소리가 커지던 서윤이 입술을 앙다물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 대신 복수라도 할 듯한 기세인데 뭐, 든든하기는 하네.

근데 귀여워 보이기만 하는 건... 왜일까.

“하하... 지, 진정하세요. 이제 다 끝났고, 지금은 너무 만족하고 있는 걸요.”

“진짜지? 진짜 만족하는 거 맞찌?”

“그럼요~ 헌터님 같은 분만 계시면 좋겠는걸요. 다른 매니저들도 고생 안 하게.”

“흠, 현실적으로 힘들긴하지. 내가 좀 비현실적으로 착하기는 해.”

...그런 얘기를.

“푸훕, 농담이야. 농담. 집에 가자. 소이현 걔 때문에 리듬이 깨져버린 것 같아. 커피 마시고 있으면 울면서 쫓아올 거 같던데?”

차 시동을 켜고 악셀에 발을 올렸다.

이렇게 데이트 아닌 데이트 인듯 데이트 같은 하루가 끝나버리는게 너무 아쉬웠지만.

그녀의 말대로 내가 겪은 소이현은 잔뜩 피폐해진 얼굴로 쫓아올 가능성이 있는 년이었다.

생각만으로도 소름인 걸.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그래, 아닐 거야. 미치지 않고서야.

“그럼 출발할게요~”

**

가온 길드 건물의 꼭대기 층.

광활한 도심의 으리으리한 전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통유리창으로 된 사무실은 언뜻 보아도 건물을 지배하는 이의 집무실이란 걸 알리는 듯했다.

광이 나는 대리석 바닥의 넓은 집무실엔 가온 길드의 찬란한 문양과 소속 헌터들을 증명하는 휘장과 건물 바깥에도 걸린 깃발이 고급진 액자에 담겨 벽면에 걸려 있었고, 벽장에는 각종 트로피와 감사패, 감사장 등이 즐비했다.

모두,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강의 길드 중 하나라는 걸 증명하는 것들이었다.

그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것들을 둘러보는 노신사의 이마엔 시름이 가득했다.

방금 전, 자신의 집무실을 다녀간 길드 헌터 신나희 때문이었다. 제 리더 유안나의 일탈과 대한민국 최고로 유능한 매니저가 퇴직한 이유를 전해들었었는데.

솔직히 믿지는 않았다.

이강준 매니저가 그만 둔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유안나의 변절소식은 그간의 행적으로보아 조금 신빙성이 있는 듯했지만, 신나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었다.

“흐으음....”

그렇기에 그녀를 호출한 상태였다.

진위여부는 당사자에게 들어야할 터.

이강준 매니저를 부르고 싶었지만, 학을 떼고 나간 그를 이곳으로 다시 부르기엔 힘들었었다.

그게 길드장으로서 그에게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으니까.

잠시 후, 그녀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헌데...

달랐다.

이제껏 자신이 보았던, 유안나의 모습이 달라져있었다.

공손함이 깃든 행동들.

차분해진 어조와 얼굴.

마치 다른 사람을 마주한 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어서 오게. 이리 앉아.”

쇼파에 앉은 둘 사이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는다.

“부르신 이유가?”

그에 유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호출의 이유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이강준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 정도라 생각하고 있었다.

회장이 자세를 당기며 무릎에 팔꿈치를 괴었다.

“아... 음, 돌려 말하지 않겠네. 신나희가 나를 찾아왔더군.”

“...네?”

유안나의 눈썹이 크게 움찔였다.

생각지 못한 전개에 놀란 듯도 보였다.

“자네가, 이강준 매니저와 부적절한 일들을 하고 있다며 말이야. 모든 악재의 원흉이라고.”

“...네? 뭐라고요..? 하아..”

황당함에 입을 벌린 채 한숨을 내쉬는 안나.

자신을 의심한 것도 모자라 몰래 길드회장을 찾아와 사실이지도 않은 일을 떠벌린 것에 환멸감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자네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더군.”

“엄벌요?”

헛웃음마저 나왔다.

비록 그에 대한 잘못은 있지만, 반성했고. 부적절한 일 따위는 없는 자신이기에 되레 무지성 거짓고발을 하는 나희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위해 무릎을 꿇었던 자신이 환멸스러울 정도로, 분노가 일었다. 치가 떨려왔다.

“물론 나는 믿지 않았네. 이강준 매니저의 고충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자네가 이강준과 그런 일들을 벌인다는게 믿기지 않았지. 사실 황당하기도 하고.”

“...제가 다 황당하네요. 어떤 엄벌을 요구하던가요?”

“뭐... 추방을 요구하더군. 매니저의 사퇴, 박나영의 중상, 토벌기간금지령, 길드 손해 등등. 모든 책임을 리더로서 물어야한다고.”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대체 누가 누구를?

생각해보니 잘못이긴 했다.

3년간 그들을 잘못 본 잘못.

파렴치한 그들을 위해 무릎 꿇은 잘못.

그것들이 잘못이었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한 안나가 웃음을 거두었다.

“참, 환멸스럽네요. 혐오스러울 정도로.. 아마도 그가 우리를 바라봤던 시선이겠죠? 이제야 뼈저리게 느껴져요. 그가 당했던.. 그가 느꼈을 감정들이.”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부적절한 일들이라.. 리더로서, 길드회장님의 명을 받들어 이강준 매니저에게 용서를 빌고 51장의 반성문과 10시간의 기다림 등등. 그런 게 부적절한 일인가요?”

“뭐, 뭐라고..? 자네가..? 진짜 그랬단 말인가?”

길드회장의 노쇠한 눈빛이 흔들렸다.

변화된 모습에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유안나라는 안하무인하던 여성이 매니저라는 아랫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반성문을 무려 51장이나 썼다는 사실은 듣고도 믿기 힘들었다.

사실 이강준을 다시 데리고 오라는 명도 그냥 화가 나서, 유안나의 오만방자함을 질책하기 위해 내뱉은 그냥 일회성 악성(惡聲)이었을 뿐이었다.

당연히 콧대를 꺾지 않으리라 생각했었고.

흔들리는 노쇠한 눈빛을 읽은 안나가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 힘드시겠죠. 그에게 물어보세요. 모두 사실이고, 그 노력들로 강준씨가 용서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돌아오지는 않는다고 했어요. 지금 보니... 왜 그러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네요.”

비록 자신도 그들과 같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오만과 불신, 교만함으로 가득한 그들과는 이제 달라진 것이다.

그로 인해, 그 덕분에.

이 모든 건 그의 덕분이었다.

이미 염두해두고 있던 생각을 확정짓게 만들어주는 신나희와 소이현의 염치 없는 행태에 안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나영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그들보다 낫지는 않으리라.

“어음,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나희 헌터가 내게 거짓을 고한 것이겠군. 당연히 추방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네만...”

“아뇨.”

안나를 의심한 것이 무안한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말하던 길드회장이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황당함에 일그러진 표정이 아닌, 의젓하고 당찬 표정으로 변한 안나에 의해.

“음? 뭐가 말인가?”

안나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쇼파에서 일어났다.

결정했다.

그에게 가기로.

자신을 새사람으로 만들어준, 그에게 가기로.

갱생불가한 파티원들에게서 벗어나게 해준 그에게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뭐, 뭐라고..!? 자, 잠깐! 유안나 헌터! 잠깐...!”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길드회장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유안나는 핑크빛 생기발랄한 머리칼을 휘날리며 길드를 박차고 나왔다.

어차피 계약 만료일도 다 되었고, 혹여 위약금을 요구한다면 지불할 생각이었다.

아직 그에게 못다한 반성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고 싶어졌다.

못난 자신임을 알지만, 염치 없게도 그의 곁으로 가고 싶어진 것이다.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어떠한 수치스런 짓이든, 모욕이든 감내할 각오를 다지며.

'이강준... 기다려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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