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18화 (18/68)

EP.17)콩닥콩닥 데이트 (2)

"꺄... 미, 미안.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렸네."

"괜찮슴다, 그보다 피곤하신 거 아니에요? 영화 보자고 하신 분이 잠 드실 정도면."

유서윤이 몽롱한 눈을 비비적댔다.

그리곤 눈에 힘을 주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 아냐! 괜찮아! 이것 봐, 완전 초롱초롱하짓?"

"풋, 알겠어요. 그럼 이제 나갈까요?"

눈에 힘을 주며 미간을 찌푸려도, 본판이 예쁘면 그냥 다 예쁘구나. 역시 사기급 얼굴이라니까.

영화관을 나온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백화점 상층으로 향했다.

"어서 옵쇼~"

수제 햄버거 집으로 들어온 우리를 본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A급에다 미녀천사헌터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그녀기에 어딜가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듯싶다.

뻘쭘하게 주변눈치를 살피며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근데 S급 헌터들을 맡아놓고도 되게 어색해하네? 그 사람들은 밖에 나갈 때 같이 안 다녔어?"

"네. 거의 하우스에 틀어박혀 있었거든요."

"그렇구나... 답답했겠네, 우리 강준이."

"답답할 틈도 없었어요, 네 명이서 어찌나 부려... 아, 아니에요."

급히 말을 끊으며 물을 마셨다.

그녀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 미친년 4명과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음, 이제 3명인가?

여하튼 남자로서의 일말의 쫀심도 있었고, 구구절절 읊어 그녀가 나를 측은히 안 봤으면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유서윤은 그 얘기가 듣고 싶은 모양이다.

"얘기해줘, 걔네들 성격 안 좋기로 유명하잖아. 나도 몇 번 얘기나눈 적 있는데 완전 별로더라고."

"...뭐, 힘들었죠."

최대한 짧게 압축해 내뱉은 한 마디.

말을 아끼는 모습에 다행히 유서윤은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테이블 위에 어색히 두고 있던 내 손등 위에 손을 포갤 뿐.

...나, 난감한데.

주변 시선을 의식 안 해도 너무 안 하시는 거 아닌감.

"이젠 꽃길만 걷자, 강준아. 내 옆에 평생 있어줄 거지? 이제 강준이 아닌 다른 매니저랑 일 못할 거 같아. 히히."

"그, 그럼요. 근데 소, 손... 사람들이 오해하겠어요."

유서윤이 손을 거두고는 피식 웃었다.

"오해하면 뭐 어때?"

"네, 네?"

땀이 삐질 나올 정도로 당황스러운 나와는 달리, 그녀의 언변은 거침 없었다.

그에 난 급히 화제를 돌려야했다.

"아, 아니 그 미녀사총사 파티랑 만나신 적 있으세요? 그래서 낯이 익은 건가?"

"흠, 만난 적은 있지. A급 이상되면 주변이 좁아지니까. 근데..."

그때, 직원이 다가오며 주문했던 메뉴를 놓느라 우리 둘 사이를 갈랐고.

난 그녀의 뒷말을 듣지 못했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닐 거야."

으흠, 별 말 아니겠지?

**

"맛있다, 그치?"

"넵, 엄청요. 여기 자주 오신다고요?"

"응응, 예전 매니저랑도 한번씩 오고, 아빠랑도 오고 그래."

"아버님 취향이 젊으신가봐요? 햄버거도 좋아하시고. 보통 어른들은 잘 안 드시던데."

"풋, 젊으려고 애는 쓰지. 골방에 박혀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것도 하는데, 가끔 이상한 말 따라해서 미치겠다니깐?"

아버지라, 그녀의 아버지는 아직 뵌 적도 본 적도 없는데. 아마 꽃중년이시겠지, 뭐.

잡념은 대충 넘기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햄버거를 어여쁘게도 베어문 그녀가 입가를 닦은 후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그때 그 헌터.. 전여친이지?"

"쿨럭!"

느닷없이 등장한 `전여친`이라는 단어에 사래가 걸리고 말았고, 물로 진화를 시킨 후에야 그녀에게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

근데... 그건 왜 묻는 거지?

"네, 넵."

"그런 거 같더라. 보아하니 그쪽에서 이별통보한 것 같고. 맞지?"

부업으로 무당이라도 하시는 건가.

"넵. 근데 오래됐어요. 5년이나 지났으니."

"그래? 음... 뭐, 딱히 감정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

"그럼요, 아무런 감정도 없어요."

"그래?"

그녀의 고운 입술이 예쁘게 반개한다.

"그럼 강준이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

이상형이라.

심도 있게 고민해본 적은 없어 딱히 콕 찝어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냥 뭐, 예쁘고 착하고,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는 능력있는 여자 정도 랄까?

...눈 앞에 있네?

하지만 말로 내뱉을 수는 없기에 다른 것으로 둘러대기로 했다.

"...그냥 평범해요. 착한 여자? 헌터님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괜히 쑥스러워, 질문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

뭐라도 묻었나싶어 입가를 닦아봤지만, 아무 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왜 그러시지?

뒤에 뭐가 있나 싶어 돌려보았지만, 정수기만 있을 뿐이었다.

넋을 놓은 것도 아니다.

초점이 정확했으니까.

설마....

"너. 내 이상형은 딱 너야."

...일순간 차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부끄러움에 피가 쏠렸고.

얼굴은 증기가 뿜어져 나올듯, 뜨거워졌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지, 이상형일 뿐이잖아.

이상형.

말 그대로, 이상형일 뿐.

김칫국 드링킹하지 말자고.

아니... 어쩌면 김칫국을 떠다 맥여주는데도 입을 닫고 무지성 거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냐, 말도 안 돼.

저런 여성이 고작 나 같은 놈을 이상형으로 꼽는다고? 잘난 것 하나 없는 나를?

"노, 농담도 과하시네요. 헌터님이 왜 저 같은 놈을."

"농담 아닌데?"

"그, 그럴 리가 없어요. 뭔가 오해를..."

"저~ 실례합니다~ 입맛에는 맞으세요? 더 필요한 거는 없으시구요?"

때마침 또 치고 들어오는 직원.

유서윤에게 관심이라도 있는 건지, 더 필요한 게 없냐는 과한 친절을 부렸는데.

그덕분에 대화의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

휴, 사람 난처하게 만드는데는 일가견이 있으시다니까.

"아뇨, 없습니다."

"저도요."

"네~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직원이 물러갔고, 어색한 적막이 찾아왔다.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댄다.

입에 족쇄가 채워진 느낌이다.

뭐야, 갑자기 상황이 왜 이래?

"푸핫,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까지 놀라구그래.. 서운하게..."

입술을 샐쭉 내밀며 말하고는 창가로 시선을 돌리는 그녀.

눈동자의 옆면이 일렁이는 건 착각이겠지?

보지도 않고 에이드잔을 들고는 빨대로 홀짝인 그녀가 싱긋 웃었다.

"별 거 아닌 거에도 되게 놀라는 편인가보구나?"

"아하하... 시, 심장이 약해서..."

되도 않는 소리가 입 밖으로 제멋대로 나온다.

아, 이거 어떻게 상황을 마무리 지어야 하지?

"이제 일어날까? 다 먹었지?"

"아아, 넵. 다먹었어요."

다행히 유서윤의 말에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휴, 다행이다. 아직도 심장이 떨린다.

나 같은 하찮은 놈이 뭐라고, 그런 농담도 과분한 놈에게 말이다.

그래, 농담일 거야, 농담.

그렇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내가 결제한다는 청을 `누나 돈 있어`라며 가뿐히 무시한 유서윤의 카드로 끝이났다.

...돈은 나도 있는데.

"그럼 이제 뭐할까? 커피 마실까? 아니면 뭐할까?"

그래도 뭔가 진짜 데이트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네.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느낌 가는 대로 즐기는 하루라. 5년만에 느껴보는 설렘에 김칫국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혀가 내밀어진다.

"음... 우선 거리로 나가볼까요?"

"그래, 걷다보면 뭐라도 있겠지."

백화점을 나서기로 한 우린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내려왔다.

오후 늦은 시간대쯤 되니 북적이기 시작하는 거리.

당연하리만큼 시선들이 쏠렸다.

"너무 어색해말구, 차라리 즐긴다고 생각해."

"처음이라 쉽지가 않네요, 부담스럽달까."

간혹 들리는 ㅡ저 놈은 매니저 아니었음 유서윤 발끝도 못 미칠 놈이야ㅡ라는 식의 비하발언에 왠지 주눅도 들고는 했다.

알긴 아는데, 굳이 말로 들으니 상처 받는 느낌이랄까.

"피, 어깨 펴. 이제 평생 나랑 다녀야하는데 시작부터 주눅들어서 되겠어?"

...이거 프로포즈아냐?

아냐, 미친 놈아.

재빠르게 분수와 주제파악을 마치곤 멋쩍게 웃었다.

"넵. 한번 즐겨볼게요."

그래, 니들이 그렇게 시샘만 할 동안.

난 헌터 매니저로서 실력을 쌓아 그녀의 곁에 선 것이다.

꿀릴 이유도, 주눅들 이유도 없겠지.

그렇게 다짐한 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처진 어깨를 폈다.

그리고.

전방에 서서 휘둥그레 뜬 토끼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소이현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 하필 기분 좋은 이 순간에 나타나고 난리야.

그나저나 사직선언 후 처음 보는 얼굴인데, 꽤 수척해 보인다.

그간 마음고생이라도 조금 한 것 같기도 하고.

뭐, 알게 뭐야.

망부석마냥 굳어서는 나를 쳐다보는 소이현을 지나쳐가려했다. 이제 그저 남남일 뿐이다.

아니, 3년간 지옥 같은 시간에서 벗어나 이제야 행복을 느끼는 내 앞에 놓인 남보다 못한 장애물 쯤.

하지만 이제껏 그들이 그랬듯, 소이현도 나를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귀찮게들 왜 이러는 거야. 진짜.

"가, 강준 오빠..! 자, 잠깐만!"

뭐?

오빠?

오빠...?

이게 미쳤나...?

언제부터 오빠라 불렀다고?

야야, 거리던 년이?

소이현의 그 부름에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던 난, 몸을 돌려 그녀와 마주했다.

눈동자에 살짝 일렁이는 물결.

토끼마냥 자그마한 체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유서윤의 앞에서만큼은 젠틀하고 싶었는데.

이것들이 질려서 떠난 사람 더 질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소이현의 푸른 눈동자를 노려보며, 뇌까렸다.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함부로 입에 담지마라."

"오, 오빠.. 미안해."

옆에는 유명 A급 헌터 유서윤에.

앞에는 S급 헌터 소이현을 두었다.

사람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

드라마 촬영이라도 하듯, 우리를 멀게 둘러싼 인파가 수근댄다. 하지만 지금 만큼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 미안해.. 그간 미안했어. 심하게 군 거.. 사과할게."

사과라.

그래도 4명 중에 2등이네.

어차피 등수는 상관은 없다만.

그나저나 사람도 많은데 여기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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