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파멸의 캣파이트! 콩닥콩닥 데이트!
ㅡ터덜터덜.
힘 없는 걸음을 내딛으며 하우스로 향하는 안나. 씻었음에도 초췌한 몰골은 현재의 그녀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지성인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이강준의 앞에서 소변을 누는 장면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지워지질 않았다.
“하아… 바보 같이…”
참는게 아니었는데.
차라리 옆집의 문이라도 두들겨 볼 걸.
이제와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소변이었다.
뜨겁고 가느다란 물줄기가 다리를 타고 흐르는 감각이 되새겨지자 소름마저 돋는 듯한 느낌.
최악, 그자체였다.
게다가 오늘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예쁘게 차려 입고가기 까지 했는데.
입어보지 않아 어색한 치마도 입고, 예쁜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그의 앞에서 소변이나 지려버리다니.
어디 나무에 이마를 박고 콱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쪽팔려…”
그럼에도 그녀의 입술은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기뻤다. 자신의 변화된 모습과, 반성을 그가 인정해주었고.
진심으로 용서를 해준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인정이란 것을 받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없었는데.
자신의 매니저였던 그에게 인정받은 게 이다지도 기쁠 줄이야. 비록 소변을 지리는 실수가 있었지만, 그덕에 그의 옷도 받지 않았는가.
그리고.
좋은 정보도 얻게되었고.
“유서윤… 설마 걔가 강준씨랑 일하는 건가?”
일순간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뜨였다.
가온 길드를 떠나 곧장 라온제나 길드로 들어갔다는 건,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찮았다.
“…확인 정도만 하는 건 나쁘지 않겠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확인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을 터다.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뭔가라도 해야할 것이고.
…이렇게 그를 보내기엔 아쉬웠으니까.
당대표인 국회의원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 아래를 보살피며 살지 않았던 자신이 아래를 살피게끔 만들어준 그.
수치심과 모욕, 온갖 비참함을 느끼게 해준 그는 확실히, 흔한 남자들하고는 달랐다.
가슴에 묘한 물결이 친다.
제 부모에게조차 인정을 구걸하지 않은 자신이건만, 그는 구걸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반성하기 전이었다면 그 모욕감에 치를 떨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묘한 설렘에 가슴을 떨어야했다.
이 떨림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휴…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걸까나. 뭐, 좋은 변화겠지..?”
변해버린 자신이 적응되지 않는듯, 한숨을 내쉰 안나는 서둘러 하우스로 향했다.
드디어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몽글하게 치솟았다.
**
“아…”
하우스로 돌아온 안나는 거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곤 급히 방으로 향하려했다.
하지만,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소이현과 신나희.
그 둘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왜지?
포문을 튼 건, 신나희였다.
“어디 갔다 왔어요? 못 보던 옷이네요?”
연장자에 리더인 자신에게 어떤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취조식 질문을 내뱉는 나희.
그 모습에 안나는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설마, 모든 걸 본 건 아니겠지?
리더로서 이강준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것도 면목 없는데, 그의 앞에서 소변을 지리는 바람에 옷을 갈아입고 왔다는 변명을 어찌하겠는가.
하지만 모든 걸 안다는듯, 쏘아보는 둘의 시선에 안나의 등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 아, 어제 비가 왔잖아. 도로에 웅덩이가 고여 있었는데 차가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다 젖어버렸어. 그래서 급한대로 근처 가게가서 사서 갈아입고 왔지.”
어느 정도 최악의 사태에 대비는 해둔 터였기에 술술 나오는 거짓말.
하지만 신나희가 집요하게 물었다.
“그래요? 남자 옷 같은데?”
“근처에 문 연 데가 남자옷가게 뿐이더라고.”
“흐음.. 그래요? 근데 어디 갔다 오는 길이세요? 오늘 나갈 때 옷차림이 꼭 데이트라도 하러 가는 거 같던데?”
“…간만에 기분 좀 내보고 싶었어. 근데.”
안나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파티를 위해 오줌보가 터지도록 그에게 매달리고 왔는데, 꼭 자신을 변절자로 보는 듯한 둘의 눈빛과 취조에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뭐하자는 건데? 내가 니네들한테 일일이 보고해야 돼? 장난해?”
“아.. 아뇨.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에요.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화 안 나게 생겼어? 내가 뭐 잘못했어? 다짜고짜 그런 질문 받으면 화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둘이 뭐 작당모의라도 해?”
그간의 서러움을 토해내는 안나.
제 고역도 몰라주면서, 그리고 반성할 기미라고는 1도 보이지 않으면서 추궁질만 해대는 둘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만약 이현과 나희가 반성에 동참했더라면, 혹여나 그랬다면 강준이 돌아왔지 않을까하는 원망도 들었다.
안나의 공세에 꼬리를 내리는 나희.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볼멘소리로 중얼거린다.
“아니… 괜히 찔리는 사람처럼 화를 내세요. 아니면 아니라고 얘길하면 되지…”
“하, 나 기가 막혀서 뭐가 아닌데? 니들 지금 내 뒷담 까고 다니니?”
“아, 아니거든요!?”
“아니긴, 지금 니들 눈빛이 딱 그런데? 왜 내가 밖에서 허튼 짓이라도 하고 왔을까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언니께서 강…!”
막 이강준의 이름이 언급되려던 찰나, 소이현이 다급하게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멈추라는 그 다급한 제지에 신나희는 자신이 감정적이었단 걸 깨닫고는 급히 입을 닫았다.
이미 당사자에게 들은 이상, 의심이 아닌 확신을 하고 있었는데다, 오늘 이강준의 옷을 입고 나타난 안나에 확신을 굳힌 상태였다.
더 이상의 설전은 무의미한 것.
감정을 추스른 나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아니에요, 죄송했습니다.”
“쓸 데 없는 의심으로 사람 귀찮게 하지마. 내가 너네들하고 같은 줄 알아?”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같은 줄 알다뇨? 말씀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심해? 내가 밖에서 뭐하고 왔는지는 알고 이러는 거야? 너네들이 이렇게 쓸 데 없는 의심이나 하고 있을 때 난 너희들을 위해서 무릎도 꿇었어. 알기나 해!?”
기어이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는 유안나. 제 고충도 모르는 둘이 야속했다.
하지만 강준과 있었던 일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창피한 일을 넘어서, 이젠 반발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것을, 구태여 긁어 부스럼을 만드니 더욱 열이 받는 것. 그렇기에 안나는 그냥 함구하기로 했다.
말해주기도 싫었다.
오히려 말하면 더 비참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 가만히 있는 우리가 등신이다, 이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나요? 죄송하네요, 아주.”
“야야…! 그, 그만해..!”
다시금 불 붙으려는 2차 캣파이트에, 소이현이 다급히 신나희의 입을 틀어막았다.
안나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저런 것들을 위해 오줌보가 터져라 뛰어다닌 자신이 한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제 리더는 파티를 위해 발 벗고 나서 무릎까지 꿇으며 참회했는데, 파티원이란 것들은 의중 모를 의심을 하며 몰아세우는 꼴이라니.
잔뜩 노기서린 눈으로 둘을 노려보던 안나는, 이내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거실의 공기.
닿으면 살점을 얼릴 것만 같았다.
소이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신나희를 책하듯 말했다.
“야… 그, 그렇게까지하면 어떡해. 싸울 필요는 없었잖아.”
“없다뇨, 이현씨는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뒤통수를 그리 맞으시고도? 대놓고 이강준씨 옷을 입고 온 거 보세요. 그녀석 말대로 곧 우리를 버리겠다고 엄포하는 거잖아요.”
“그, 그치만.. 아까 무릎도 꿇고 왔다는게 무슨 뜻일까…? 설마 강준 오빠한테 빌고 온 거 아냐?”
“어휴, 그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세요. 거짓말이거나 길드장님한테 빌었든가하겠죠. 강준씨한테 직접 들은 거라니까요?”
“하긴… 직접 들은 게 정확하겠지… 힝… 언니가 우릴 버린다니… 너무해… 어떻게 그럴 수가...”
나희가 안나의 방문을 노려보았다.
입술을 잘근 깨문 채, 눈을 게슴츠레 뜨는 그녀.
이내 뭔가를 결심한듯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버림당하기 전에 저희가 버리죠.”
“뭐, 뭐라구...? 뭘 어쩌려구 그래..”
나희의 분홍빛 입술이,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파국의 시작을 알리는 조소였다.
어쩌면 이미 파국으로 치닫았는지도.
“길드회장님께 직접 보고하겠어요.”
**
“꼭 안 이러셔도 되는데.”
“히힛, 아냐. 어제 또 신세 졌는데 이건 당연하지, 모.”
“신세를 지시다뇨, 매니저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인데...”
“힝... 그래서 나랑 놀아주기 싫다는 고야...?”
“아, 아뇨! 차라리 그런 이유라면 감사히 따라가죠, 하하. 그럼 제가 감히 놀아드리는 걸로 하시죠!”
“앗싸~! 가자가자궁!”
...이러한 이유로 난 지금 유서윤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 중이었다.
어제의 일이 미안했는지, 황태해장국으로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내게 모처럼 휴일인데 영화랑 밥을 사겠다며 밀어붙였고, 결국 끌리듯 나온 것이다.
뭐, 당연히 기분 좋은 끌림이지만.
초미녀 유서윤 헌터와의 나들이인데, 그 누가 거부하겠어.
나도 예의상 거절 몇번해본 것일 뿐.
예쁜 꽃처럼 향긋한 체취를 풍기는 그녀의 옆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나온다.
영화관에 도착한 우린 곧장 매표소로 향했다.
이게 얼마만의 영화관인지 모르겠다.
5년도 더 된 거 같은데....
“어벤저스, 두 명이요.”
“네~ 좌석은 어디로 하시겠어요?”
직원의 물음에 빈좌석을 확인하던 서윤이 한걸음 옆으로 비키며 말했다.
“으음~ 강준아, 자리는 너가 정해. 너 편한 곳으루. 난 아무 데나 상관없어.”
“...여기 할까요?”
“네~ I열 5번 6번으로 티켓 끊어드릴게요~”
티켓을 받은 난, 팝콘은 제가 사겠다며 선수를 쳤지만 역시나 유서윤의 새치기를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팝콘과 콜라 세트를 들고 영화관에 들어온 우리. 심장이 콩닥댄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마지막 연애가 이사벨라였으니, 근 5년만인가.
심장을 간질이는 데이트 같은 상황에 손바닥엔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ㅡ야야, 저기 유서윤 헌터 아냐?
ㅡ헐 대박 맞는 거 같은데?
ㅡ뭔데 옆에 남자는 누군데.
ㅡ몰라 매니저겠지?
ㅡ하 띠바, 나도 헌터 매니저되면 유서윤하고 영화볼 수 있냐?
ㅡ지랄. 넌 강육수나 맡을 걸?
ㅡ이런 씨팔로미 뒤지고 싶냐?
여기저기서 속닥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앞뒤옆, 올라운드에서 우릴 흘금대며 속닥댔는데 유서윤은 별 일 아니라는듯 팝콘을 먹으며 광고를 보고 있었다.
으음, 이런 시선은 처음이라 부담스럽긴하네.
그래도 다들 부러워하는 눈치라 내심 뿌듯한 감도 없잖아있었다.
ㅡ하, 개부럽다. 유서윤하고 영화라니. 아니 근데 매니저랑 영화보는 헌터도 있나?
ㅡ있다던데? A급 정도면 연예인 수준이니까 남자여자 만나기도 힘들고해서 매니저랑 다니는 헌터들 제법 있다더라.
사실이다.
유서윤 역시 내겐 어떤 감정없이, 그저 혼자 영화보는게 싫어서 그런 것이겠지.
김칫국 드링킹은 금물이기에, 설렘은 고이 접은 난 시작하는 영화 어벤저스10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 중반 즈음,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어버리는 유서윤에 내 생애 최애 영화임에도...
결말이 어찌 끝났는지 모르겠다.
아, 결말이고 뭐고 간에.
그딴 게 뭐가 중요하겠어.
샴푸냄새 너무 좋잖아....
...발기.. 멈춰!
와이푸랩으로 뽑아본 유서윤입니닷!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