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헌터 매니저는 때려치웁니다-14화 (14/68)

EP.13)성공적인 첫 캐스터, 회식도 쏜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세 번 트라이된 던전이라 쉽게 토벌했네요.”

파티 리더인 유서윤의 공표에 파티원들은 작게나마 긴장하고 있던 근육을 풀었다.

“유서윤 헌터님하고 레이드 뛰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히히, 저도요! 담에 만나면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호호, 그럼요. 저야 환영이죠.”

레이드를 캐리한 유서윤에 대한 칭송을 쏟아내는 최도군과 강나리.

진심인듯 손발짓을 섞어가며 과하리만큼 열변하는 칭송이었지만, 유서윤은 기분 좋은지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에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는 레이드, 그 속에서 이사벨라만이 외톨이마냥 우물댄다.

잘나고 고고한 척하던 자존감이 바닥 끝까지 사라진 듯 침울한 모습.

차라리 날 차버릴 때처럼 눈치없이 나대기라도 하면 마음이 편하련만.

그들의 속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이 애잔해 그만 인사를 하고 말았다.

“이사벨라 헌터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고의 인사였다. 옛 연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어떠한 감정도 없기에 나올 수 있는 그 인사에 다행히 도군과 나리도 한 마디씩 거들어주었다.

“아, 이사벨리씨도 수고했어요. C급 치고는 잘하셨죠, 뭐.”

“그래요, 다 그렇게 성장하는 거잖아요?”

“네, 넷..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어색히 인사를 받은 이사벨라가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뒷인사까지 받아줄 넓은 아량은 없었다.

그녀를 싸늘히 지나쳐, 마나포켓을 들었다.

“그럼 오늘 파밍한 것들 처분하고 오겠습니다.”

먼저 던전을 출구로 빠져나온 난, 레이드 스케줄이 잡히면 쥐도 새도 모르게 따라와 던전 출구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던전상인협회로 다가갔다.

협회에 등록된 장사꾼들이었는데, 그들은 레이드 소식이 뜨면 이처럼 던전 출구에서 호객행위를 해댔었다.

늘 구경만 했었는데, 직접 팔려니 뭔가 어색하다.

“자자~ 마물 사체 삽니다~ 최고가로 쳐드려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광석 삽니다~ 광석~ 스틸류부터 오리하르콘까지 모두 삽니다~”

“협회공식상회입니다~ 호객행위 당하시지 마시고 여기로 오세요~ 다 사드립니다~”

...부담감이 상당하구나.

호객행위들이 모두 나에게만 쏠려 있으니 중압감이 온 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다.

캐스터가 되려면 면상판에 철판 두툼하게 깔아야한다더니, 괜히 그런 게 아닌 듯싶었다.

일단 초행이다보니 협회공식상회로 향했다.

옆에서 따가운 눈초리들이 쏠린다.

으음, 나눠서 팔아줄 걸 그랬나.

“자, 여기 사인하시면 됩니다.”

거래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마나포켓에 든 물품들을 스캔하는 장비로 속에 든 아이템들을 모두 감정하는 최첨단 방식이라, 속전속결이었는데 그덕에 따가운 눈초리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총 금액은 3,250만원.

거래금은 헌터 협회의 공인계좌로 송금되며, 본래는 헌터들이 해야하지만 대개는 매니저들이 공인계좌에 헌터의 정보를 입력해 출금 받는 방식이었었다.

태블릿을 켜 공인계좌에 찍힌 금액과 거래품 명세서도 확인시켜주었다.

금액을 확인한 유서윤이 미소를 지었다.

“와.. B급 던전치고 수입이 괜찮은데? 역시 우리 강준이는 못하는게 없다니까, 호호.”

던전에 들어갔을 때 보았듯, 캐스터의 역량에 따라 총 정산금이 차이가 났었다.

급하다보니 마물 사체를 대충 벗기거나, 장비의 부족으로 광석을 캐지 못하는 등등의 변수가 많았으니까.

나는 일단 장비빨 덕에 커버친 거긴 하지만 만약 일반 캐스터의 수입이었다면 살짝 현타가 왔을지도 모른다.

거의 천만원을 들여 장비를 맞췄더니 신입 캐스터라해서 정산금의 0.4퍼센트를 받았다면 배보다 배꼽이라며 후회했을 테니까.

“그러게요? B급 던전에서 번 금액치곤 오히려 많은 편인 거 같은데.”

“저도용. B급에서 3천만원 이상 찍었던 적이 없는 거 같은데, 거기다 3번이나 트라이된 던전인데.”

물론 총 정산금에서 협회와 나라에 세금납부, 길드에 납부까지하고 나면 금액이 현저히 줄어들기는하지만 여하튼 B급에서 3천만원이면 준A급에 속하는 수익이기는했다.

비록 내가 원했던 각성석은 나오지 않았지만.

첫트부터 각성석을 바라는게 말이 안 되는 거긴하지.

또 모든 이목이 내게 쏠린다.

어유, 부담스러워라.

오늘 다들 왜 이런담.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 이목에 대한 답을 토해내야했다.

“아, 뭐.. 앞전 트라이 때 급했었는가 못챙긴 아이템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거죠, 뭐.”

“그래도 대단한 걸? 첫 파밍 만에 이정도 수확이라니.”

유서윤의 칭찬에 강나리와 최도군이 코러스마냥 한마디씩 거든다.

음, 전 여친 앞에서 추켜세워주는 건 좋다만.

이제 그만해도 되는데.

이러다 이사벨라의 어깨가 접히다못해 어깨끼리 맞닿을 것만 같다고.

“그러니까요~ 재능이 있으신가봐요. 이러다 바로 S급 던전 전담 캐스터되시는 거 아니에요?”

“에이... 농담이 심하십니다요.”

S급 던전의 경우엔 강나리 말대로 전담 캐스터들이 붙는다. 보통 경력 5년 이상의 베테랑 캐스터들인데.

경력이 요구하는 실력만 있다면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통해 전담 캐스터가 가능하기도 했었었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S급 전담 캐스터가 되면 삶이 달라진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일반 캐스터들과 달리 그들은 양보다 질이니까.

한 번의 레이드만으로도 벌어들이는 금액이 어마무시한 S급을 따라다니니 황새는 못되더라도 두루미 정도는 되는 것이다.

물론 캐스터로서 야망이 없는 내겐 부질없는 소리지만.

“이정도 실력이시면 이미 A급에서도 너도나도 부르겠는데요?”

“호호, 그건 안 된다구용. 강준이는 저만의 캐스터인데~ 그치?”

“너, 너무 그러지들 마십쇼.”

어, 음...?

근데 어째 저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칭찬에 대한 답을 물질만능주의로 해결하라는 듯한 건 착각인가?

설마 그런 문화라도 있는 걸까?

첫 캐스터 임무를 무사히 마치게 해준 헌터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 같은?

“...어음, 혹시 회식하실래요?”

혹시나싶어 띄워본 운.

최도군, 강나리.

이 요망한 것들이 기다렸다는듯 박수를 친다.

하긴 전 여친 앞에서 어깨뽕을 삼단으로 쌓아주셨으니 회식 정도야 아깝지 않지.

“꺄~ 오늘 매니저님이 쏘실 건가봐!”

“역시 유서윤 헌터님 매니저 아니시랄까봐 통이 크신데요?!”

“어머, 강준아. 괜찮겠어?”

...뭐, 나와봐야 얼마나 나오겠어요?

“그럼요, 오늘 제가 쏠게요! 특급 한우로!”

“어머~! 오빠~!!”

“오빠요?! 나리씨가 나이 더 많은 거 아닙니까?!”

“흥, 지금 그게 중요해요? 소고기 사주면 다 오빠거든요~! 어서 가요!”

강나리의 비음 섞인 부름에 최도군이 발끈한다. 짜식, 그래도 남자는 남자다 이건가.

다들 돈벌이도 좋으면서 공짜소고기는 왜 이리도 좋아하는지.

역시 헌터도 공짜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투닥대는 강나리와 최도군을 보며 피식 웃고는 이사벨라를 쳐다보았다.

표정이 경직된 채, 우물쭈물대는 그녀.

뭔가 전 여친이라기보다는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느낌이 조금 짠하게 다가왔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빠져주길 바래서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이사벨라씨! 어서 가요! 강준이가 쏜다는데 설마 집에 가실 건 아니죠?!”

머뭇대는 이사벨라의 팔을 연행하듯 잡아끄는 유서윤에 입은 닫히고 말았다.

끙, 소고기는 편하게 먹고 싶었는데.

“아앗..! 저, 저는 괜찮은데...!”

괜찮으면 가줘, 제발.

소고기님은 경건한 마음으로 한점 한점 음미해야한다고.

“무슨 소리! 한 명이라도 빠지면 섭하죠! 괜찮치? 강준아?”

하지만 해맑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 난, 씁쓸한 미소는 숨긴 채 그저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그녀의 미소는 반칙이었다.

“그럼요!”

**

손에 들린 50장의 수북한 종이들.

아니, 정확히는 51장이었다.

쓰다보니 오히려 추가 반성문까지 작성해버린 안나는 지금 강준의 빌라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오려나.'

불과 며칠 전만 같았으면 반성문 받으라고 전화로 닥달을 했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품에 안고 있는 51장의 종이는 무거웠고, 3년간 저지른 잘못의 무게란 것을 깨달은 그녀는 반성하는 사람의 태도가 어때야하는지 알게된 것이다.

'그래... 사과하러 왔으면 기다려야지. 재촉해서는 안 돼.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제껏 그 누구를 기다려본 적이 없던 그녀.

허구헌 날 집 앞을 찾아오는 남자들을 재미삼아 기다리게도 해봤던 그녀기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낯설었다.

'...오, 오늘은 오겠지?'

그가 어디갔는지도, 무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이런 진심어린 태도를 그가 받아주고, 며칠이 걸려서라도 기다릴테니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랄 뿐.

'하... 다리 아파...'

어느덧 시간은 밤 11시.

기다리기 시작한지 꼬박 6시간이 지났고, 다리가 저려왔지만 안나는 꼿꼿이 섰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내리는 벌과도 같았다.

한 인격에게 상처주는 것을 즐거워하던 자신에게.

그리고 반성보다 무마에 급급했던 자신에게 내리는 벌.

'끙... 오늘 안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어느새 시간은 12시.

다리가 저릴 때마다 한번 다리를 굽혔다 펴는 것으로 버티던 안나는 꼬르륵, 배에서 울리는 소리에 배를 문질러야했다.

'...그러고보니 저녁도 안 먹었네.'

빠른 시일 내에 그에게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인정받아야한다는 생각에 밥도 제대로 안 먹으며 썼고, 이제야 허기가 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기필코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혹여나 모를 섣부른 판단으로 진심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배고파... 애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아마도 자신의 이런 고충도 모른 채, 그저 티비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며 희희덕거리고 있을 터.

그에 조금은 짜증이 났지만서도, 이것 또한 반성의 일부이고 리더로서 잘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며 잡념은 털어냈다.

'언제 오려나... 보고싶... 아, 아니.'

잡념을 털어내자 떠오르는 이강준의 모습.

순간적으로 그의 모습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 안나가 고개를 크게 저었다.

'...무, 무슨 생각을..'

미친 생각이다.

그에게 자신의 변화를 인정받고 싶은 것일뿐,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절대 바라지는 않았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은 그저 굴욕감과 비참함 따위일 뿐이지, 누군가를 늘 정복하고 군림했던 자신이 그런 감정 따위를 느꼈다고해서 아래로 내려간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렇게 생각을 일축한 안나는 자신의 뺨을 두어차례 때렸다.

'정신차려, 정신. 유안나.'

하지만 곧이어 엄습하는 야속한 배뇨감에 그녀의 등줄기엔 식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악...! 오, 오줌 마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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